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13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 구시가지

좀좀이 2016. 7. 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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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난을 구워서 파는 가게가 보였어요.


"안녕하세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너무나 많이 보았던 그 모습이었어요. 그 논 굽는 모습을 여기에서 다시 보니 너무 반가웠어요. 논이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서 가면 갓 나와서 만지지도 못할 정도로 뜨거운 논을 구입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뜨거운 논을 사와서 집에서 주식으로도 먹고, 간식으로 뜯어먹기도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논 때문에 여러 일을 겪기도 했어요. 우즈베크인이든 다른 민족이든 외국인이든 논은 논 만드는 사람인 논보이 nonvoy 는 그냥 이웃 같은 존재였어요.


위구르 전통 빵


위구르의 난은 제가 먹던 타슈켄트의 논보다 크고 얇았어요. 물론 우즈베키스탄에도 저것과 비슷한 크고 넓적한 논이 있기는 해요. 그러나 타슈켄트 및 사마르칸트에서는 저것보다는 작고 불룩하고 두툼한 논은 주로 먹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흔히 보던 그 두툼한 논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얇은 난만 구워서 팔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마침 난을 화덕에서 빼내고 있어서 난을 하나 구입했어요.


"이거 맛있다!"


위에 양파를 살짝 뿌려서 양파향과 갓 구운 빵의 냄새가 잘 어우러지고 있었어요. 양파맛 과자를 먹는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양파맛 때문에 맛있는 난이라면 매일 하나씩 구입해서 과자 대신 먹어도 좋을 것 같았어요. 만약 여기에서 며칠 머무른다면 매일 이 난을 구입해서 하나씩 뜯어먹었을 거에요. 가격은 2위안이었는데, 이 크기면 하루 종일 간식으로 조금씩 갉아먹을 수 있었거든요.


안에서는 난을 만들기 위해 반죽을 하고 있었어요.



난이 올라가 있는 탁자 아래에 있는 쓰레기통에 담긴 것이 바로 양파 껍질이에요.


위구르인 음식 난


친구도 난의 매력에 사로잡혔어요. 직접 난 반죽을 하고 화덕에서 구워내는 모습을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찍었어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어요. 저도 우즈베키스탄 도착해서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논 만드는 장면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어요. 화덕 안에 반죽을 탁탁 붙이고, 다 구워지면 커다란 국자처럼 생긴 것으로 논을 톡톡 떼어내는 그 장면에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이 장면에 무덤덤해진 것은 과장하지 않고 몇 개월 지난 후였어요. 몇 개월간 매일 보니까 그제서야 '오늘도 논 만드는구나. 대충 몇 시쯤 되었겠네' 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되었어요. 게다가 이 난의 맛은 꽤 훌륭했어요. 이것은 중앙아시아에서 먹어본 난과 비교해도 거의 1등을 차지할 만큼 맛있었어요. 친구가 이 난의 매력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어요.



이 풍경을 보자 갑자기 타슈켄트에 있는 유누소보드 시장이 떠올랐어요. 거기만큼 붐비지는 않았지만 모습이 대충 비슷했어요.


"여기서 배추도 파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야채


어떤 야채를 파나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배추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타슈켄트에 있었을 때 배추 파는 모습은 많이 보지 못했어요. 배추를 보면서 여기가 우즈베키스탄보다 더 동쪽에 있는 땅이라는 것이 실감났어요. 배추 때문에 이곳이 매우 인상적으로 보였어요. 배추 외에는 거의 비슷한 것들을 팔고 있었어요.감자, 토마토 같은 것은 한국이나 우즈베키스탄이나 여기나 똑같이 생겼어요.


투루판 아파트


황사 먼지빛 아파트 옆을 지나 큰 길로 나갔어요.


"저기 오쉬 판다!"


딱 보니 우즈베키스탄에서 먹던 우즈베크 전통 볶음밥인 오쉬였어요. 오쉬는 이쪽의 대표 음식이고, 지역마다 특징이 다른 음식이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요리하는 방법은 거의 다 똑같지만, 어떤 재료를 넣는지, 어떻게 담아주는지는 제각각이거든요. 우즈베키스탄 여행 중 오쉬를 꼭 먹었던 이유는 이 음식이 지역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었어요. 마침 오쉬를 팔고 있는 가게가 보이자 투루판 오쉬는 어떤 맛인지 맛보려고 가게로 갔어요.



"이거 오쉬에요?"

"차오판."


오쉬냐고 물어보자 '차오판'이라고 대답했어요. '차오판'은 중국어로 볶음밥. 제가 위구르인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오쉬라고 하지 않고 '차오판'이라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쉬가 담겨 있는 솥을 보니 아주 기본적인 재료들이 들어가 있었고, 그 위에 큼지막한 양고기가 올라가 있었어요. 생긴 것은 딱 우즈베키스탄 안디잔 오쉬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어요.


"얼마에요?"

"20위안."


이거 왜 이렇게 비싸?


그 물가 비싸다는 상하이에서도 볶음밥은 10위안이었어요. 이것은 중국의 차오판과는 다른 음식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넓은 의미에서는 볶음밥에 들어가는 음식.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바로 볶아주는 차오판과 달리 이것은 아예 한 솥 잔뜩 만들어놓고 주문 들어오면 큰 주걱으로 퍼주어요. 차오판과 비교해도 비싸고, 예전 우즈베키스탄에서 먹던 것을 생각해도 비쌌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쉬 가격이 다른 음식들의 2배 하지는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바가지를 씌우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흥정을 해보려고 했으나, 흥정이 되지 않았어요. 가격은 양고기를 올리면 20위안, 양고기 없이 밥만 먹으면 10위안이라고 했어요. 양고기를 대체 얼마나 많이 주려고 양고기를 밥 위에 올리는 것이 10위안이라는 거야?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이해해요. 한국은 양고기가 비싸고 흔히 먹는 고기가 아니니까요. 여기는 위구르 지역. 돼지고기를 올리는 것도 아니고 양고기를 올리는데 10위안이 추가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다른 곳에서 오쉬를 먹기로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하나의 기초를 다지고, 세 개의 모범을 세우고, 다섯 개의 투르판을 건설해나가자.


'다섯 개의 투르판은 또 무슨 말이지?'


위구르어를 더듬더듬 읽어보니 '하나의 기초를 다지고, 세 개의 모범을 세우고, 다섯 개의 투르판을 건설해나가자'라는 의미였어요. 우즈베크어와 얼추 비슷했어요. 아직 위구르어 모음이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읽으면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는 있었어요. 듣고 바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글로 적힌 것은 읽고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어요. 모음 글자를 아직 잘 못 읽는다 해도 대충 글자 보고 어느 계열 모음일지 예측 범위는 줄어들었어요. 아랍어에서 w 소리가 나는 글자를 써놓았으면 일단 원순모음 계열 소리일 테니까요. '머리'라는 의미를 가진 우즈베크어 단어 'bosh' 를 위구르어에서 저렇게 쓰나 하고 아래 중국어를 보니 五个 였어요. 진짜 5개 맞았어요.



여기도 중국스럽게 오토바이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어요. 그래도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지는 않았어요.



"오늘 비오지는 않겠지? 여기서 비 쏟아지면 진짜로 재수없는 건데."


하늘이 너무 꾸물꾸물했어요. 구름이 껴서 그렇게 덥지는 않았어요. 그 구름이 적당히 껴 있으면 좋을텐데, 비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껴 있는 것이 문제였어요. 상하이에서 이미 비를 한 번 만났어요.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은 건조기후지역인 투루판에서 비를 만난다면 그건 진짜로 재수없는 일. 진짜 뒤로 자빠졌는데 코 깨지는 급으로 재수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어요.


'우리 여행이 그 정도까지 박복하지는 않겠지.'



길 건너에 식당이 보였고, 그 옆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구시가지 같은 마을이 있었어요.


"우리 구시가지 탐험이나 할까?"


친구가 동의하자 길을 건너서 구시가지로 들어갔어요.


골목길


중앙아시아의 흔한 마을이 펼쳐졌어요.



위구르인 집



위구르인 가옥 담벽


'여기는 집 안이 어떻게 생겼지?'



안에는 탁상이 있고, 그 위에 알록달록한 천이 깔려 있었어요. 어떤 점이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았던 전통 가옥들과 다른지 찾아보았지만 그렇게 크게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중국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고 있었어요.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어요. 제 눈에 신기한 것은 없었어요. 중국 같지 않고 중앙아시아 같아서 좋기는 했지만, 두뇌를 자극하는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어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그렇게 위험해보이지는 않았어요. 한족들이 위구르인들을 워낙 무서워하기도 하고, 실제 테러도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조차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이미지는 위험한 곳이에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위험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듣고 읽었기 때문에 약간 긴장하기는 했어요. 다행히 특별히 위험해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어요.


"인터넷 찾아보니까 여기가 이제 범죄자 신고하면 포상금을 두둑히 주어서 치안이 많이 좋아졌대."


친구가 여행 가기 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다 알게 된 사실을 말해주었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에서 위험하기로 소문난 지역. 중국의 강점에 대항하여 독립 운동을 하고 있는 위구르인들도 있어요. 한족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은 편이에요. 중국 정부가 이 지역 주민들에게 특히 테러 계획 관련하여 공안에 신고하면 두둑한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치안이 많이 안정되었대요.



투르판 구시가지


투르판 전통가옥


동네는 정말 조용했어요. 베이징 시각으로는 11시 30분이었지만, 여기 시각으로는 9시 30분. 11시 30분으로 생각하면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9시 30분이면 조용할 시간이었어요.



수박 파는 트럭이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투루판 수박장수 트럭


'여기는 널찍널찍하게 건물이 떨어져있네.'


오랜만에 흙과 벽돌로 세워진 흙빛 마을길을 걸으니 재미있었어요. 그냥 걸어도 오랜만에 우즈베키스탄 거리 걷는 기분이 들어서 좋을텐데, 친구와 조용히 잡담하며 걸으니 더욱 재미있었어요. 친구는 골목길을 걸으며 사진을 계속 찍으며 신기해했어요. 아직 본격적으로 위구르인의 음식을 먹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나 딱 이 시점까지 본 투르판의 모습은 놀랄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중국어가 조금 보이고 들리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어요. 그나마도 마을 안으로 들어오니 보이지 않았어요.


old town in Turfan


벽에는 무슨 캠페인 같은 것이 걸려 있었어요.



'네 가지가 있고 네 가지가 없는' 가족을 세워서 화기애애한 거주지를 건설하자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어요.



road in Turfan


"모스크다!"


눈에 모스크가 확 들어왔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모스크는 어떨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투루판 위구르 모스크


"야, 이거 아까 내가 말했던 거!"


중국 고자질 정책


친구가 모스크 벽에 매달린 공고문을 가리켰어요. 시꺼먼 배경색에 노란색 글자와 빨간 글자가 적힌 공고문은 누런 벽돌 벽 위에 매달려 더욱 눈에 띄었어요. 1번 조항을 더듬거리며 쭉 읽어보았어요. '법으로 정한 악행, 나쁜 사람을 현장에서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에게 500 위안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라고 적혀 있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별 문제없이 평화로운 곳 같아 보였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어요. 투르판을 돌아다닌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것이 여러 개 눈에 들어왔어요. 이쯤 되자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투르판이 이 정도면 우루무치는 대체 얼마나 심할까?'


투루판이 이 정도인데 우루무치는 대체 어느 정도일지 마구 궁금해졌어요. 바로 이날 오후에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로 넘어갈 계획이었어요. 몇 시간만 참으면 그 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어요. 원하지 않더라도 확인당할 것이었어요. 왠지 안 좋은 쪽으로 답이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어쨌든 일단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여기 지금 사용하는 모스크 맞아?"



이거 그냥 나가야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보아도 여기에서 예배를 드릴 것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수리중이었어요. 보수공사가 끝나면 다시 여기를 모스크로 사용할 거에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어요. 지금은 그냥 보수공사중인 곳이었어요. 아예 버려진 곳이 아닌 게 어디야. 이 모스크 들어오기 직전에 본 그 공고문을 떠올렸어요. 이 여행을 오기 전 읽었던 위구르와 관련된 자료들을 떠올렸어요. 버려진 곳이 아니라면 괜찮아.




친구를 보니 나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친구가 아무리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거든요. 보수공사중인 것은 보면 그냥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안쪽 깊숙히 들어가볼 생각이었어요. 사람이 있으면 인사를 하면 되는 것이고, 사람이 없으면 끝까지 둘러보고 돌아나오면 되는 일이었어요.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뒷편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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