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것은 필연 (2016)

그것은 필연 - 말레이시아는 내게 입질하고 있었다

좀좀이 2016. 6.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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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3개국 여행을 가기 전, 인도네시아인과 두근두근 우체통을 통해 친구가 되었어요. 이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인도네시아에 대해 관심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어요. 인도네시아는 그 친구와 만나기 전, 아주 오래 전에 인연이 조금 있는 나라였어요. 아주 잠깐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한 적이 있었거든요. 문제는 그게 10년도 넘게 전이었다는 것. 인도네시아어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인사, 그리고 mata 는 눈, mata mata 는 '간첩'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인도네시아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책을 집어넣은 박스 제일 아래에 있던 인도네시아어 교재를 꺼냈어요. 이 교재는 대학교때 잠깐 보던 교재. 그 책을 펼치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왜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과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졸리고 제출하기 귀찮아서 제출하지 않아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그 책을 읽으려 했지만...그 책은 10년이 넘은 시간이 흐른 후,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너무나 재미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종로 거리를 걷다 친구가 수입과자 전문점을 들어가보자고 말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수입과자에 그렇게 큰 흥미는 없었어요. 수입 차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어요. 애초에 차를 좋아하지도 않고, 차의 향과 맛을 깊게 음미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안을 둘러보았어요. 베트남 G7 커피를 동네보다 얼마나 싸게 팔고 있나 보고 있는데 친구가 저를 불렀어요.


"이거 인도네시아 차야."

"뭔데?"



그렇게 만난 알리티. Alitea. 포장이 예뻤어요. 초록색 포장이 매우 매력적이었어요. 삭막한 도시, 초록 곰팡이조차 없는 초록색과 무관한 방에서 살다보니 그 초록색 곽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게다가 친구가 이건 매우 유명하고 맛있다고 극찬했어요. 가격이 절대 저렴하지 않았지만, 문득 든 생각이 하나 있었어요.


'이거 일단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보여주고, 마셔본 후에 후기를 블로그에 올려야지. 맛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어?'


아주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알리티를 한 통 구입해 집으로 들고왔어요. 집에 오자마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보여주었어요.


"오늘 인도네시아 차 샀어."


인도네시아 친구는 사진을 보더니 한 마디 했어요.


"그거 인도네시아 차 아니야. 그거 말레이시아 차야."

"응?"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망할. 내 아까운 4500원. 자판기 밑 아무리 긁어봐야 4500원어치 동전 못 줍는데 중학생들 때문에 머리 깨져가고 목 쉬도록 소리치며 번 돈을 허무하게 사용했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인도네시아 친구는 그건 말레이시아 차고, 인도네시아 차는 따로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마음같아서는 아직 곽을 뜯지 않았으니 환불받아오고 싶었지만 의정부에서 종로까지 가는 게 너무 귀찮았어요.


"어휴...그냥 먹어나 보자."


정말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차를 컵에 부었어요. 컵 바닥에 가루가 수북히 쌓였어요. 뜨거운 물을 붓고 휘휘 저어서 마셨어요.


"어? 이거 완전 맛있어!"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알리티에 중독되어 버렸어요.


"이건 완전 보급형 공차야!"


공차를 좋아하는데, 이건 딱 보급형 공차였어요. 너무 맛있어서 바로 한 잔 또 타서 마셨어요. 한 통 사왔는데 이틀만에 다 마셔버렸어요. 다 마시자마자 또 사러 갔어요. 그렇게 종로 갈 때마다 사서 마시고 싶었지만 비싸서 그렇게 많이 사서 마실 수는 없었어요.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어요. 알리티를 펑펑 마셔댈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알리티는 어느새 제 머리 속에 월급 받으면 사서 먹는 차로 굳어졌어요.


그리고 어느 날. 이번에는 알리카페 Alicafe 를 발견했어요. 이것도 역시나 말레이시아.


"이것도 알리티처럼 끝내주게 맛있겠지?"


하지만 이건 맛없었어요. 이거 사서 마실 바에는 G7 커피에 연유 부어서 마시는 게 약 3배 더 맛있었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거에요. 비싼 돈 주고 구입하기는 했으니 다 마시기는 했지만, 다시는 사서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이렇게 말레이시아는 제게 한 번의 기쁨과 한 번의 슬픔을 안겨주었어요. 그 후 말레이시아는 다시 저로부터 멀어졌어요. 동남아시아 여행 계획을 짤 때, 말레이시아를 가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를 과감히 제외했어요. 그 당시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말레이시아를 넣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말레이시아에 꼭 갈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언어적으로도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어요.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실상 거의 한 언어. 인도네시아어를 배울 때 말레이어가 어휘 몇 개 다르고, 발음이 영어의 영향을 받았는지 인도네시아어보다 부드럽다는 것 정도만 다르다고 몇 번 들었었거든요. 인도네시아어로 인해 인도네시아에 대해 관심이 생겼지만, 말레이어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말레이-인도네시아어가 궁금하니 인도네시아 하나만 다녀오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레이시아는 저와 인연이 없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말레이시아와의 인연이 다시 생긴 것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야간 스태프로 근무하면서부터였어요. 제가 근무한 게스트하우스에 말레이시아인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말레이시아는 화교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강제로 싱가포르를 독립시켰어요. 정확히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싱가포르를 강제 추방시켰어요. 그리고 '말레이-인도네시아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말레이시아인들은 인도네시아인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근무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오는 말레이시아인들은 대부분 화교였어요. 그렇지 않아도 타이완에서 오는 손님이 매우 많아서 중국어를 공부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레이시아 화교까지 오니 매일 중국어를 듣게 되었어요. 중국어를 하도 듣다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쏼라쏼라쏼라 쐉쐉쐉' 이미지의 매우 시끄러운 중국어는 4성조의 중국어 - 보통화가 아니라 광동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괜찮았어요. 평점을 너무 짜게 준다는 점만 제외하면요. 분명히 리뷰에 칭찬을 많이 써주는데 정작 평점은 잘 받아야 8점 초반. 부킹닷컴에서 그냥 '좋음' 선택하면 7.5점이 나와요. 어쨌든 그들이 좋은 곳이라고 점수를 준 것은 맞았어요. 평점 7.5면 국내 게스트하우스에서 평점이 낮은 곳에 속한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지요. 말레이시아에 대한 관심은 말레이시아 화교들을 아무리 만나도 높아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낮아졌어요. 말레이시아인이기는 하지만 중국어를 사용하는 화교였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자체에 대한 관심도는 전혀 높아지지 않았어요. 그들이 남기는 평점을 보며 '아, 우리 평점 더 떨어지는구나' 생각하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늘어갈 뿐이었어요. 말레이시아 화교들을 만날 수록 오히려 타이완에 대한 관심만 높아져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말레이인 가이드가 단체 관광객을 이끌고 찾아왔어요. 이 가이드가 온 날, 계속 날이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어요.


"여기에서 서쪽이 어디에요?"

"아, 키블라요?"


서쪽을 물어보는 가이드. 순간 이 사람이 지금 이슬람의 예배 방향인 '키블라'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건물 구조가 서쪽을 찾기 쉽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키블라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었어요.


"어? 키블라를 알아요?"

"예."


이쪽이라면 저도 조금 알아요. 제 옛날 이야기를 해주자 저에 대한 신뢰가 마구 올라갔어요. 이렇게 해서 말레이인 가이드와 친구가 되었어요.


이때 당시, 말레이인 가이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포함된 3대 가족을 이끌고 왔어요. 보통 배낭여행 단체를 인솔하는데 이번은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했어요. 문제는 이 가이드가 왔을 때도 특이한 날씨였다는 것. 날씨는 갑자기 추워졌고, 가이드는 겨울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 계속 지낸 나도 추워 죽겠는데 이 가이드는 저보다도 옷을 더 얇게 입고 왔어요. 그냥 놔두었다가는 100% 감기가 걸릴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핫팩을 사주고, 동대문 야시장까지 데려다 주었어요. 동대문 야시장에 데려다주는데 사람들이 많이 걷는다고 툴툴대었어요. 분명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도요.


날씨는 날씨대로 안 좋고, 하필 이 가이드가 인솔해야 하는 여행객 무리에는 노약자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날씨가 안 좋으니 관광할 곳에 제약이 많이 따랐고, 노약자가 포함되어 있다보니 대중교통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없었어요. 그야말로 정말 난감한 상황. 이 가이드가 무사히 일정을 잘 소화해내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어요. 그렇게 하다보니 가이드와 친해졌어요.


"나중에 말레이시아 꼭 놀러와!"


말레이인 가이드와 친구가 되었어요. 가이드는 제게 꼭 말레이시아 놀러오라고 했어요. 말레이시아에 대해 관심이 조금 생기기는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반드시 말레이시아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말레이시아에 대해 잘 알지 못했거든요. 그냥 인도네시아 비슷한 나라에 오랑우탄이 살고 있는 나라, 알리티를 생산하는 나라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페트로나스 타워가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발전한 나라인지 전혀 몰랐어요. 게다가 말레이시아 역시 큰 나라. 쿠알라룸푸르가 있는 본토 외에도 여러 섬이 있었고, 오랑우탄은 본토에 살지도 않았어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종종 게스트하우스로 와서 말레이시아 여행을 한 번 가볼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 가지고는 될 나라가 아니었어요. 본토도 볼 곳이 여러 곳이었고, 섬도 여럿 있다보니 말레이시아도 제대로 보려면 한 달은 잡아야 했어요.


그렇게 말레이시아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만 갖고 있었을 때, 갑자기 휴가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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