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나의 학원 강사 이야기 - 학원 강사가 겪은 집중이수제와 자유학기제

좀좀이 2015. 8. 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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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 어느덧 석 달 째. 학원 강사로 일할 때에는 블로그에 학원 업무 관련 이야기를 올리지 않았어요.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사교육은 타도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으니까요. 게다가 그 당시에는 당장 제가 그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런 글을 쓸 때는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기 마련이었지요. 제가 일하던 학원 특유의 것도 있고, 진짜 '사회 구조적인 것'도 있는데, 이를 정확히 구분해서 글을 쓰기도 쉽지 않았구요.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의 장단점은 다른 아르바이트와는 좀 많이 달라요. 하지만 이와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것만으로 한 바닥에 몇 편은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을께요. 사실 썩 재미있는 내용도 아니구요. 이 내용을 그냥 간단히 요약하면 '상상과는 다른 고독한 세계'라는 것이에요.


제가 맡아서 가르치던 과목은 중학교 사회, 역사. 집중이수제, 교과서 개편, 자유학기제의 풍파를 제대로 맞은 과목이에요. 저는 2010년부터 2011년, 2013년부터 2014년, 그리고 2015년 1학기 5월까지 가르쳤어요. 학기로는 8.5학기, 햇수로는 4년. 그냥 가운데 우즈베키스탄 연수 간다고 쉰 것까지 다 합치면 6년이지요.


바쁜 사회인들을 위한 한 줄 요약을 먼저 해드릴께요.


'해마다 나쁜 쪽으로 통째로 바뀌는 게임'


보통 2년차가 되면 일에 적응이 되어서 일 자체는 해볼만 하다고 느끼게 되요. 물론 초보자의 행운이 사라지기 때문에 2년차가 되어서 업무가 쉽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요. 초년차와 2년차의 가장 큰 차이는 2년차의 머리 속에는 '1년 계획'이라는 큰 그림이 있는 반면, 초년차의 머리 속에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지요. 교과서 및 교육과정에서 변화가 없다면 기본 메뉴얼은 작년 것 그대로 가져다 쓰면 되니까 2년차가 되면 매우 편해져야 해요. 예전 학교 선생님들 보면 매해 새로운 교과서를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 교과서로 잘 바꾸지 않으시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그런데 매해 교과서가 바뀌거나 교육 과정에서 큰 변화가 생기거나 했어요. 전년도에 했던 것이 쓸모없어져 버리는 일이 항상 발생한 것이죠.


들어가기에 앞서 2007 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해 2010년 중학교 1학년부터 새로운 교과서와 교육체계를,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해 2013년 중학교 1학년부터 새로운 교과서를 사용하게 되었어요. 저는 편의상 2007 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해 2010년 중학교 1학년부터 적용된 교과서를 2010 개정 교과서,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인해 2013년 중학교 1학년부터 적용된 교과서를 2013 개정 교과서라고 할께요.


각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NCIC 국가교육과정정보센터 http://ncic.re.kr/ 에 들어가면 볼 수 있어요.



2010년


3월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사회, 역사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때 중학교 1학년부터 새로운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이때 중학교 1학년 교과서 개정의 가장 큰 특징은 예전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한국지리, 세계지리 내용 일부가 아래로 내려온 것. 문이과 구분없이 고교에서 공통으로 배워야하는 내용이 있는데, 고교과정에서의 학습부담을 줄여주고 보다 전문화된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니 어딘가에 학습 부담이 늘어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중고교 과정 전체 학습량이 100이라고 치면, 이 중 고교에서 50을 차지하던 것을 40으로 줄여놓으니 당연히 상대적으로 중학교 과정 학습량이 60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즉, 고등학교 교육에만 주목하다보니 고교과정 학습량을 줄이겠다고 그 부담을 죄다 아래쪽으로 몰아넣은 것이었어요. 이런 현상은 2013 교과서 개정에서도 나타나요. 이 현상이 매우 나쁜 이유는 간단해요. 고등학생 학습량 줄인답시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학습량을 확 올려버리거든요.


과학에서 배우지도 않은 지진, 화산, 조산대를 내가 왜 가르치고 있지?


나는 분명 사회 선생인데? 지리 과목이 지구과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는 해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에서 지금 상황에서야 닭이든 달걀이든 뭐가 앞이든 별 상관은 없어요. 만약 '지진은 땅 흔들리는 거, 화산은 뻥 터지면서 마그마가 쏟아져 나오는 거, 조산대에서는 지진과 화산활동이 많이 일어난다' 이렇게 초등학생 수준으로 하고 넘어가면 별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 과학에서도 이 부분을 배우기는 하는데, 과학에서는 정작 1학년 2학기때 배웠어요. 즉, 사회에서 먼저 조산대니 판구조론이니 하는 걸 배우고 과학가서 배우는 뭔가 심히 이상한 구조.


이것을 제외하고는 그냥 무난한 한 해였어요. 1년차였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뭐가 문제인지 살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


2011년


들어는 봤나? 집중이수제.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2011년은 그냥 딱 저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그야말로 최악. 진짜 저거 생각해낸 사람 멱살 잡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무슨 술 마시고 저런 계획 짜셨냐구요. 일주일에 매일 기계를 4시간씩 5일 돌리는 것을 2일에 10시간 돌려도 생산량은 똑같아요. 이론적으로는요. 당연히 기계를 사용해 본 사람은 알 거에요. 무슨 공장에서 사용하는 대형 기계 뿐만 아니라 컴퓨터, 핸드폰을 비롯한 모든 기계요. 장시간 사용하면 과열되요. 과열되었는데도 계속 사용하면? 기계에 문제 생기죠.


간단히 말해서 기계도 못하는 걸 사람에게 시키겠다는 이야기에요. 2학기에 걸쳐서 배우던 것을 한 학기에 몰아서 쫙 배운다는 건데, 이건 수업 시간만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요.


"선생님, 저희 사회 안 배워요."

"응? 무슨 소리야?"


중학교 1학년 교실 들어가서 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이 사회를 배우지 않는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얘들이 무슨 학교 행사 같은 거 있어서 안 배우나 했어요. 그래서 시간표에도 없냐고 물어보자 시간표에도 없다고 대답했어요. 시간표에 사회가 있는 애들은 달랑 2명. 애들에게 학교 시간표를 가져와보라고 시켰어요. 애들이 들고온 시간표를 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어요.


한 반은 일주일에 사회가 5시간, 한 반은 일주일에 도덕이 5시간.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를 한 학기에 다 배운다는 것이었어요. 진짜 뭐 하자는 건가 싶었어요. 저야 학원 강사니까 어떻게든 수를 내서 진도를 다 빼지만, 과연 학교에서 이런 조건에서 똑바로 가르칠 수 있을까 의문이었어요. 교과서 한 권을 한 학기에 끝내려면 수업시간에 랩을 하듯 진도를 나가야 해요. 저는 일주일에 3시간, 학교는 5시간. 이론적으로 보면 학교가 주당 2시간씩 수업시간이 더 있어요. 그러나 실제 상황은 학교나 저나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학교는 각종 행사들이 있거든요. 온갖 행사들이 있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1학기에 집중이수제 걸린 과목은 진도를 제대로 뺄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줘야 학원 강사들도 편해요. 이쪽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반대이지요.


뉴스에서는 학원에서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시키는 등 과도한 선행학습을 찾아서 보도하고 사람들은 이게 일반적일 거라 믿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이렇게 과도한 선행을 진행하려면 일단 학원이 규모가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해요. 초등학생에게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중학생, 고등학생에게도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중학생에게 중학교 수학을 못 가르치면서 초등학생에게 중학교 수학을 가르친다? 이건 엉터리죠. 게다가 학습은 '비약'이 가능한 것이 아니에요. 초등학교 3학년이 초등학교 4,5,6학년 단계 제끼고 바로 중학교 1학년 과정을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선행과외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거야 일대일로 가르치는 거니까요. 하지만 학원에서 무지막지하게 선행을 해나간다? 그러면 프로그램 도중에 들어오려는 학생들은 안 받을 건가요? 특정 시즌마다 원생들 모집하고 그 이후에는 원생 절대 안 받을 건가요? 결국 단계를 세분화시키고 자유로운 승급이 가능하게 프로그램을 짜야 제대로 된 상당히 빠른 선행학습을 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하려면 학원 규모가 꽤 커야 해요. 아니면 원생 없어서 진짜 파리만 날리는 학원이거나요. 동네에서 흔히 보이는 대부분의 보습학원들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과도한 선행학습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요.


선행학습을 나간다는 것은 현재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진도는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이것은 학교 시험 점수로 확인이 가능하지요. 선행학습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은 현재 학교 시험 점수가 최소한의 검증방법이라는 것이에요.


일반적인 학원은 방학때 중간고사~한 한기 정도의 진도를 선행으로 가르쳐요. 그래서 지인들에게 만약 자녀 학원을 옮길 거라면 방학 시작할 때 옮기라고 조언해주고 있어요. 고작 그 짧은 방학 기간 동안 1년치 선행이요? 위에서 썼어요. 그게 쉽게 가능하다면 집중이수제도 문제가 있을 리 없어요. 1년치 선행 못 시키는 건 아니에요. 단지, 그러려면 방학 내내 애를 잡아놔야 할 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시켜놓은 선행학습의 효과를 유지하려면 또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학원들은 방학때 대체로 중간고사~한 학기 분량을 선행으로 가르치는데, 이것을 애들이 완벽히 익히고 기억할 거라 기대하는 강사는 실상 없어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애들의 망각 속도는 어른의 망각 속도보다 더 빨라요. 초짜 강사들이야 모르겠지만, 1년 애들을 겪어보면 알게 되요. 방학때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봐야 그 중 절반만 애들이 기억하고 있어대 대성공이라구요. 그러다보니 동네 학원들은 방학때 선행을 '무언가 큰 것을 이루어내겠다' 보다는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놓겠다'에 맞추어서 진행해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다면 결국 학원이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해요. 이것은 거창한 시대적 사명이니 하는 것과 관계 없어요. 보습학원은 애들 시험 점수로 밥 벌어먹는 곳이고, 애들이 시험을 잘 치려면 일단 누군가에게는 똑바로 배워야하니까요. 이러니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학원 강사 입장에서는 업무가 무섭게 불어나게 되요. 학교에서 잘 가르쳐주면 학원 강사는 애들이 부족한 부분만 찾아서 보충해주면 되구요. 사교육이 공교육을 이기려 한다? 사교육은 결국 학교 시험 점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사교육이 공교육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있어요. 수능 100% 대입 전형요. 학교 교사는 학원 강사들이 선행학습 시켜놓아서 공교육이 무너진다고 하는데, 정작 학원 강사들은 학교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희안한 상황이지요. 여기에서 발생한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것은 동네 특성이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할께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학교에서 1학기에 사회 과목 교과서 한 권 통째로 떼는 것은 절대 불가능. 주어진 일주일 5교시 수업이 100%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더욱이 1학기는 학교 행사도 많아요. 3월은 새학년 시작되어서 어수선하고, 5월은 아예 사회 전체가 '즐기는 달' 분위기이지요. 이런데 1년치를 몰아서 한 방에 다 나간다?


학교 진도는 느리고 학원 진도는 매우 빠른 부조화가 당연히 일어났어요. 그리고 시험때가 되면 학교 진도와 학원 진도가 일치하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했지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시험이 다가오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교과서 쓱 읽고 프린트물 쫙 뿌리고 프린트물에서 시험 나온다고 하고 진도를 후다닥 날림으로 빼었거든요.


이때, 애들에게 떠들고 잠자고 멍때리지만 않고 수업만 듣는다면 과자를 먹든 음료수를 마시든 뭘 해도 좋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한 학기에 1년치 분량을 다 나가야 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수업을 놓친 학생 때문에 다시 설명해줄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2학년. 이때부터 역사만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역사 교과서 구성이 참 희안하게 바뀌었어요. 원시인의 진화과정을 배우고 4대 문명을 배운 후, 국사를 배우기 시작해서 병자호란까지 배운 후, 세계사로 넘어가서 세계사를 배우게 되는데, 동아시아 역사 조금 배우다 서양 역사 조금 배우다 기타 아시아 지역 역사 조금 배우다 하는 식이었어요. 년도별로 어느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느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느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연대표 보는 것처럼 교과서를 바꾸어 놓았어요. 그런데 전세계가 서로 많은 영향을 끼치는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은 서양 근대 이후부터에요. 중국 송나라가 멸망하든 청나라가 건국되든 프랑스대혁명과는 거의 아무 관계가 없었다는 거에요. A 지역 역사 조금 배우고, B 지역 역사 조금 배우고, C지역 역사 조금 배우다 다시 A 지역 역사 조금 배우는 식이라 흐름 잡기만 나쁘게 바뀌었어요. 이것은 현재 중학교 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랍니다. 역사는 흐름을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흐름 잡기만 고약하게 바꾸어 놓았어요.


2012년 1년간 우즈베키스탄에 있었고, 그 후 귀국해 2013년부터 다시 사회 강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2013년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학원. 2012년에 중1이었던 학생들은 중3이 되었어요. 그리고 다행히 집중이수제가 사실상 폐지되다시피 했어요.


2010 개정 교과서 중학교 3학년 과정은 이때 처음 보았어요. 원래 2012년에 처음 사용된 것인데, 그때는 제가 학원을 그만두고 우즈베키스탄에 가 있었거든요. 2010 개정 교과서 중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은 무슨 청개구리도 아니고 그 이전 교과서의 앞뒤가 뒤바뀌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예전 교과서는 1학기에 정치, 경제를 배우고 2학기에 지리 - 자원 및 공업지역 등등을 배웠어요. 이것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었어요. 내용 자체는 그냥 대동소이했어요.


그리고 역시나 또 바뀐 중학교 1학년 교과서. 이번에는 2013 개정 교과서.


"어? 법 어디 갔냐?"


예전에는 1학년 2학기 2학기 기말 범위 - 즉 얼추 3/4 부터는 법 내용이었어요.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라든가, 헌법의 내용 및 헌법에서 인권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려주는 범위였어요. 중학교 1학년때 이런 것을 알려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사고를 많이 쳐요. 이 시기 학생들의 법률 지식은 그냥 없다고 해도 될 지경이에요. 판사는 그냥 재판하는 사람이고, 검사는 그냥 힘 세고 멋진 사람이며, 미성년자는 뭐 잘못하면 경찰이 와서 혼나고, 학교에서 선도 열리고 끝난다. 딱 이 수준이에요. 헌법까지는 모르더라도 민사소송, 형사소송에 대한 지식은 당장 영화, 드라마 볼 때도 도움이 되고, 앞으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어떤 일이 자신에게 발생할 지 알려주는 범죄 예방 교육의 역할도 해요.


그런데 이 시기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좋은 법은 쏙 빠지고 그 자리에 중학교 3학년 사회에 있던 정치, 경제가 딱 들어와 있었어요.


'이거 골때리네...'


중학교 1학년으로 정치, 경제를 내려보낼 거면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역사는 빼든가. 근대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역사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역사 범위에 들어 있는 거잖아. 사회 수업하다가 뜬금없이 미국 독립혁명이니 프랑스 대혁명이니 절대왕정이니 설명해야 하고 산업혁명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완벽한 불일치였어요.


'이것을 여기에서 다 배우면 중3 때는 뭐 배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불안감을 주는 것이었어요. 과연 중3때는 무엇을 배울까? 게다가 중학교 1학년으로 내려보낸 정치, 경제 내용은 사회 과목에서 정말로 중요한 부분인데 이것을 1학년 2학기 제일 마지막에 배우게 해놓고는 1년간 역사만 공부하게 해서 잊어버리게 만들면 뭘 어쩌라는 걸까? 게다가 수요-공급 곡선에 대한 내용은 책 제일 마지막 단원. 책 제일 마지막 단원은 2학기 기말고사 전에 다 배우지 않는 한 어물쩍 넘어가버리기 일쑤에요. 그런데 대체 왜 이 중요한 것을 제일 비중이 적은 부분이 들어가야 할 사회 교과서 제일 마지막에 집어넣은 것일까? 그야말로 의문. 참고로 이 교과서는 지금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랍니다.


2014년


이런 거 대체 왜 하나요? 자유학기제


"선생님, 2학기에 저희 시험 안 친대요."

"뭔 뚱단지 같은 소리야?"

"자유학기제라서 시험 안 친대요."


처음에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잘못 듣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였어요.


자유학기제.


이건 무려 홈페이지까지 있어요.


자유학기제 홈페이지 : https://freesem.moe.go.kr/



이것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자유학기제의 소개에요.



장담한다. 이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 될 거다.


설명 보면 아주 그럴싸해요. 한 학기 동안 중간, 기말고사 등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토론과 실습 등 직접 참여하는 수업을 받고 꿈과 끼를 찾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게 만드는 제도래요. 강의식, 암기식 수업을 줄이고, 토론, 문제해결, 프로젝트 학습 등 참여하는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운영해 수업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한대요. 학교의 여건에 따라 기본교과의 교과목 시수를 일부 감축하여 자율과정을 운영하게 되며, 일반적으로 오전에는 기본교과 위주로 공부하고, 오후에는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율과정을 운영한대요.


말은 진짜 좋아요. 너무나 아름다워요. 저것대로 하면 왠지 애들 인성이 너무나 좋아지고 자아를 찾는 데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창의력도 마구 키워지고 학업에 대한 흥미도 마구 올라가구요.


그래서 교과 진도는?


진도는 진도대로 나간대요. 평가는 수행평가 등으로 대체하고 정형화된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안 치는 거래요. 평가 자체를 안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을 서술형으로 평가한대요.


아, 그러니까 교과 진도는?


예, 교과서는 그대로에요. 여기서 이미 답은 다 나온 거에요.


까놓고 물어볼께. 교사들이 항상 행정업무 등 잡무로 힘들고 시간 없다고 하지? 그런데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짤 시간이 있어? 만약 있다고 한다면 교사들은 지금껏 근무태만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네?


정형화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문제라구? 알면 푸는 거고 모르면 못 푸는 거야. 세뇌를 시켜놓든 토론과 참여를 통해 경험으로 익히든 말이야. 문제는 시험이 아니라 교수법과 진도겠지. 정 학생들이 등수에 민감해하면 절대평가 실시하면 되는 거야. 점수가 낮아서 괴로워하는 학생의 고통은 학생과 교사가 머리를 싸매고 같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해가야 할 문제이지, 그 고통 때문에 시험 자체를 없앤다는 건 속은 썩었는데 겉만 페인트칠 다시 해서 깨끗하게 보이는 행위와 뭐가 다르지?


그리고 꿈과 끼를 찾는 다양한 체험 활동. 그냥 대충 깔짝여보면 꿈과 끼가 찾아져?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숨 고를 시간이 없다'는 거에요. 학교 가서 잠만 자든 급식만 타먹든 대형 사고 안 치고 출석만 하면 어쨌든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자동으로 올라가서 고졸이 되요. 막말로 중학교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학생으로 올라가 있으면 출석은 개근이니 고교생이 될 수 있다는 거에요. 학생들이 쫓아오든 못 쫓아오든 학교 진도는 자동으로 쭉쭉 나가고, 학생들도 알든 모르든 계속 진급을 해요. 학생의 실제 학습 능력 수준과 학교 진도의 괴리는 한 번 생기면 공교육에서는 계속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말 그대로 교육 제도의 문제에요. 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수학이 어려워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가 매우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대요. 당연해요. 고등학생 되었다고 들뜬 마음으로 몇 달 공부 제끼고 놀아버리면 바로 '수포자'되요. 진도는 일방적으로 쭉쭉 나가니 잠깐만 손 놓아도 이미 학교 진도는 아디오스, 안드로메다. 이것은 중학교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꿈과 끼를 찾는 다양한 체험 활동도 그래요. 한 두 번 깔짝여보고 그게 자기 적성이고 꿈인 거 알 수 있다면 애들이 왜 진로문제로 고민하겠어요? 이런 논리라면 장사하는 사람들 다 잘 되어야죠.


"어설프게 깔짝댈 거면 차라리 애들 택배 까대기나 시키지? 용돈도 벌어보고, 힘든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고 얼마나 좋아? 이게 애들한테 훨씬 도움되겠다."


진심이었어요.


만약 누가 밀가루 반죽 쪼물딱거려서 집에서 빵 몇 번 구워보고는 '빵 구워보니까 재미있더라. 내 적성과 흥미는 제과제빵이야. 그래서 나 빵집 차릴 거야' 라고 창업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속으로 진심으로 '너는 성공할 거야. 너의 적성은 제과제빵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박수를 쳐주고 응원할 수 있나요? 왜 이런 사람에게는 무모하다고 하면서 애들은 몇 번 깔짝여보는 걸로 적성과 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고통을 느껴보지 않고 적성과 꿈을 찾았다구요? 그건 그냥 취미에요. 몇 번 깔짝여보는 것에서 재미를 느껴서 흥미가 생겼다구요? 그건 그냥 흥밋거리에요.


아이들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어야한다는 생각에 저는 전적으로 반대해요. 오히려 애들일수록 솔직하게 - 좋은 면, 나쁜 면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힘들고 고된가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거에요. 사회 명사 특강? 그거 들어서 인생 바뀐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네요. 체험 활동? 그 체험 활동이 대체 얼마나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기억을 주나요? 그냥 적당히 잘 놀았다는 추억 정도는 주겠네요.


취지는 이해해요. 하지만 이게 제대로 돌아가려면 교과 과정의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해요. 어설프게 깔짝여보는 체험 학습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체험이 실시되어야 하구요. 아무 때에나 알아서 한 학기 시험 치지 말라고 할 것도 아니에요. 애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이런 제도를 적용한다고 해야 해요. 교과 과정은 '복습'에 맞추어야 하구요. 한 학기에서 1년 (1년이라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정도 복습에 중점을 둔 기간을 두어서 학생들이 학습에 대한 정비를 할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해요. 진도는 일방적으로 빼면서 알아서 쫓아오라고 하면 토론식을 하든 참여식을 하든 그게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잖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들 왕창 투입하기만 하면 고급 기술이 필요한 일이 잘 해결되나요? 참여식이니 토론식이니 하는데 당장 수업 주제 쫓아갈 능력도 없는 애들한테 협업으로 해결해보라고 하면 이 학생들의 능력이 향상될까요? 손에 손잡고 해결해나간다는 것은 팀원들의 능력 격차가 크지 않고, 팀원들이 주어진 일을 감당할 능력이 어느 정도 있을 때의 이야기죠. 왜 사회에서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을 애들은 초인적 능력을 발휘해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 불가.


그리고 적성과 꿈을 찾는 체험 활동을 실시할 거면, 어설프게 깔짝일 게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실제 체험을 해볼 수 있게 해야죠. 제대로 교육을 받으며 정말 이건 힘들어서 못하겠다 싶으면 그건 적성이 아닌 것이지요. 학생들이 어느 정도 고통을 느낄 정도까지 시켜봐야 학생들이 적성과 꿈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지, 어설프게 해봐야 오히려 적성과 꿈을 찾는데 방해만 되요. 어설프게 깔짝이는 것은 좋은 면과 나쁜 면 중 좋은 면만 보여줄 수밖에 없어요. 체험 교실은 결국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힘들고 어려워요'라고 하면 다음부터 그 체험 교실로 누가 가겠어요. 한두 번 올 사람이라면 그냥 자신에게 유리한 점만 보여주는 게 최고인 것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해서 것이고, 저런 체험 교실이라면 당연히 이 체험과 관련된 직업의 장점만 집중 부각하지요.


이렇듯 이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교과 과정의 개혁이 필수에요. 안 그러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지요. 그들이 예상하던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더 안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에요. 사교육 부담요? 장담컨데 더 늘어납니다. 문제는 이게 예전처럼 적당히 학교 진도 잘 쫓아가자는 사교육이 아니라 그야말로 최악이라는 '선행학습 열풍', '집중 몰입 교육' 형태로 나타날 거에요. 이미 한 번 경험해 보았잖아요. 초등학교에서 성적표에 온통 말로만 써놓고 정형화된 성적 안 매겨놓아서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 공부 잘한다고 생각하다가 중학교 1학년 시험 점수 받아들고 어떤 모습을 보였나요?


자유학기제의 영향은 금방 나타났어요. 애들은 학교에서 배워오는 게 없고, 학습 의욕도 없었어요. 의욕 없어서 눈이 풀린 것을 '썩은 동태 눈깔'이라고 비하하는데, 진짜 이때 학생들 눈이 딱 썩은 동태 눈깔이었어요. 그렇다고 학교에서 잘 배워오는가 확인해보면 왜 하는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수행평가와 내가 봐도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수업 프로그램들. 그리고 학생들 자신들조차 의미를 찾지 못하는 어설픈 체험 활동.


그렇게 썩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억지로 끌어가며 1학년 2학기를 보냈어요.


2015년


그래요. 올해에요. 일단 저 자유학기제의 후폭풍은 바로 나왔어요. 한 학기를 실상 놀아버린 애들이니 공부하는 감이 엉망이었어요. 사교육 부담 줄인다고 하면서 오히려 사교육 부담을 늘려놓은 셈. 이 학생들에게는 1월부터 실상 학습 두뇌 재활훈련이었어요.


'에휴...엉터리 모범생들 대거 양성되겠구나.'


그리고 올해 처음 가르치게 된 개정 2013 개정 중학교 3학년 교과서.


고등학교 것 좀 그만 내려보낼래?


예전 중3 때 배우던 정치, 경제가 중 1로 내려갔고,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거시경제. 그리고 국제 정치.


그냥 다 아래로 내려보내라. 하하하.


학생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법, 국제정치, 거시경제를 1학기에 나간다고 해서 이것들을 가르치고 학원을 그만두었어요. 어려워서 못 배울 정도다? 그것까지는 아니에요. 단지 중2 때 사회를 아예 안 배웠고, 역사는 중학교 3학년 2학기나 되어야 서양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배운다는 것 정도였어요.




그러고 보면 집중이수제, 자유학기제도 겪어보고 그 외에 학교에서의 학원 견제를 위한 악의적 물먹이기 작전들도 겪어봤어요. 일단 최대한 '교육제도의 모순'에 맞추어 글을 쓰려고 했어요. 기분 상하게 하는 표현들이 글에 들어 있는 것 알아요. 하지만 상당히 많이 완화한 것이랍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왜 이렇게 갈 수록 예전보다 안 좋아졌을까 궁금해요. 제 생각에는 '교사 슈퍼맨주의'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물 아닐까 싶어요. '교사 슈퍼맨주의'는 그냥 제가 지어낸 말로, 교사들과 대화할 때 나타나는 교사들의 특징을 정의한 거에요. '애들을 다루고 애들을 가르치는 건 뭐든지 잘 할 수 있다. 단지 잡무에 치여서 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이랄까요? 일종의 자만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 변화를 가장 못 따라가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교사라고 하지요. 교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에요. 상대하는 사람이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고, 가르치는 내용의 변화가 혁명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보니 급격히 변동하는 현대 사회의 변화를 잘 못 쫓아가요. 그런데 '내가 능력은 있는데 잡무에 치여서 능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은 교사 세계에 만연해 있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에요. 구조적 모순은 무슨 노력을 하든 완벽한 극복이 불가능해요. 완벽한 극복이 가능하면 그건 모순이 아니라 그냥 풀기 어려운 '난제'죠. 사교육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구조적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기 때문이구요. 그런데 이 현상에 대해 정부와 공교육계에서는 전혀 엉뚱한 처방전만 내리고 있죠. 그러면 또 사교육은 그 엉뚱한 처방전이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또 성장하는 것이지요.


또 학원 강사를 할 지, 다른 일을 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겪었던 일을 정리는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썼어요. 저 역시 시간이 흘러갈수록 잊어버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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