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형태론 - 교착어, 굴절어, 고립어의 특징

좀좀이 2015. 3. 3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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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언어는 형태론적으로 보았을 때 교착어, 굴절어, 고립어 - 이렇게 셋으로 분류되어요. (포합어도 있지만 이것은 특수한 경우라 제외하겠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고립어는 시제, 인칭 변화를 하지 않는 언어로, 대표적 언어로는 중국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등이 있지요. 이들 언어들의 특징은 '어순이 매우 중요하다'에요. 단어 형태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단어의 위치가 단어의 의미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단어+위치 = 완벽한 의미' 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흔히 영어가 굴절어라고 알고 있지만, 영어는 굴절어의 특성을 거의 다 잃어버린 고립어에 가까운 언어에요. 대표적인 예가 영어 공부할 때 달달달 외우는 바로 그 '영어 5형식'이지요.


교착어와 굴절어는 단어의 모습이 바뀌면서 완벽한 의미가 만들어져요. 하지만 둘의 특징에 대한 정의를 보면


굴절어

<언어> 형태론적 특징으로 본 언어의 한 유형. 어형과 어미의 변화로써 단어가 문장 속에서 가지는 여러 가지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를 이른다. 인도-유럽 어족에 속한 대부분의 언어가 이에 속한다.


교착어

<언어> 언어의 형태적 유형의 하나.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차례로 결합함으로써 문장 속에서의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로, 한국어, 터키어, 일본어, 핀란드어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이것만 보면 사실 이해될 것 같아보여요. 하지만 실제로 둘을 비교해보면


먼저 굴절어인 러시아어


주격 книга -> книг|а -> 책은

생격 книги -> книг|и -> 책의

여격 книге -> книг|е -> 책에

대격 книгу -> книг|у -> 책을

조격 книгой -> книг|й -> 책으로

전치격 книге -> книг|е


- 아항! 'книг + 조사' 로 이해하면 안 됨?


당연히 틀린 말이지요. 저런 식으로 외우기는 하지만요. 그렇다고 а 를 '여성 명사 주격 조사'라고 본다면 상당히 그렇지요.


- 아항! 러시아어는 명사는 격변화한다고 치고, 동사가 수, 시제에 따라 변하니까 굴절어 아님? 교착어인 한국어는 동사가 성, 수에 따라 안 변하잖아!


교착어인 터키어의 동사변화를 예로 들면


가고 있었다

1인칭 단수 gidiyordum

2인칭 단수 gidiyordun

3인칭 단수 gidiyordu

1인칭 복수 gidiyorduk

2인칭 복수 gidiyordunuz

3인칭 복수 gidiyorlardı

갔다

1인칭 단수 gidiyorum

2인칭 단수 gidiyorsun

3인칭 단수 gidiyor

1인칭 복수 gidiyoruz

2인칭 복수 gidiyorsunuz

3인칭 복수 gidiyorlar


- 어?????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는데, 교착어와 굴절어는 사전에 적혀 있는 내용만 보면 알 것 같은데 오히려 사례들을 보면 더 헤매고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흔히 나타나요. 알려고 더 공부했더니 오히려 더 헤매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니만 못해져버리는 우습지만 겪어보면 전혀 우습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교착어와 굴절어는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요?



교착어는 어간과 접사의 결합이 기계적이에요. 그러면 대체 어떻길래 기계적으로 결합한다는 것일까요? 일단 교착어에서는 접사에 의미가 있지요. 그리고 마치 레고 놀이를 하듯 어간에 접사를 이것 저것 붙였다 떼어냈다 할 수 있어요. 어간과 접사의 경계는 매우 분명하지요.


예를 들면 어간 '먹-' 이 있다고 해요. 여기에 어떤 접사를 붙이든 자유에요. 일단 '먹-' 에다 완료상 접사 '-었-'을 붙여서 '먹었-'을 만들 수 있고, 이 뒤에 다시 불확실을 나타내는 접사 '-겠-' 을 붙일 수도 있고, 또 다시 '-었-'을 붙일 수도 있어요. 마지막에 어말 접사를 붙여주면 하나의 조합 - 완벽한 의미가 완성되지요. 먹-었-겠...까지 만들었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먹-었-었-다 조합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요. 이렇게 교착어는 어간과 접사의 경계가 명확하고 접사들을 하나씩 붙여가며 최종적으로 완벽한 뜻을 만들어내요.


그에 비해 굴절어는 교착어의 관점에서 보면 어간과 접사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요. 게다가 동사 하나가 몇 개의 어근을 갖는 경우도 있어요. 성, 수, 시제에 따라 다른 어근을 이용하고, 그 결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영어 단어 have - has - had 에서 우리는 대충 ha-/ve, s, d 라고 눈대중으로 가늠해볼 수 있지만, 문제는 ha- 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건 말 그대로 have 라는 단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has, had 로 형태가 바뀐 것이에요.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불어의 aller (가다) 동사의 동사변화처럼요. aller 와 va, irai 사이에서 그 어떤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지요. 전부 aller 동사의 변화형태인데요.


교착어와 굴절어의 차이를 보다 쉽게 느낄 수 있는 예를 들자면...


예를 들어서 한국어 문장 '철수가 가...았...어...요'을 보면 화자는 접사 '었'과 '어, '요''를 띄엄띄엄 붙여나가고 있어요. '가다'라는 내용을 말하려고 하는데, 화자는 완료가 아니라 미완료로 말하려다 완료로 바꾸었고(가 -> 갔), 그 다음 추측으로 말하려다 확언으로 바꿨고 (갔지?->갔어.), 마지막으로 평어에서 높임으로 바꾸었어요(갔어->갔어요). 한국어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모습이에요. (이런 모습의 대표적 예가 청소년들이 쓰는 '했다요'다. '했다'라고 말한 후 상대에게 존칭을 써야함을 떠올려서 마지막에 접사 '요'만 붙인 경우죠) 하지만 이것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건가요? 접사를 붙여나가 의미를 완성하는 이런 모습은 굴절어 화자가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난해해요.


또 다른 예를 들자면, go 와 went 의 차이는 어떻게 접사의 차이로 설명할 것인가요? 굴절어에서는 이렇게 형태를 바꾸는데, 교착어 입장에서 보면 설명이 되지 않아요.


이래서 굴절어 화자 입장에서 교착어를 보면 조사를 죄다 격변화로 이해해서 격변화가 끔찍하고, 동사에 접사를 붙여나가는 과정을 전부 동사의 굴절로 이해하려 해서 동사변화가 괴랄하기 그지없다고 느껴요.


외국인을 위한 굴절어로 된 한국어 교재를 펼쳐보면 왜 굴절어 화자들에게 교착어가 이상하게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실제로 굴절어 화자 관점으로 교착어를 굴절어 화자에게 설명한 책을 보면 교착어 화자인 우리가 봐도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고 상당히 끔찍하고 이상한 언어처럼 보여요.



간단히 정리하면


교착어 : 접사를 붙여간다

굴절어 : 형태를 바꾸어간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사실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 경우들이라면 교착어를 굴절어 관점에서, 굴절어를 교착어 관점에서 보고 이해한다 해도 어지간히 맞아들어가지는 해요. 하지만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알아두면 좋답니다. 특히 외국인 - 특히 고립어, 굴절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이 왜 한국어를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답니다. 교착어인 한국어에서 나타나는 어간+접사 결합을 모두 격변화, 시제 변화로 이해하려 드니 정말로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보면 고립어, 굴절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교착어는 한결같이 격변화가 끔찍한 언어로 알려져 있어요. 또는 동사변화가 끔찍하거나요.


예전과 달리 한국어에 흥미를 갖는 외국인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어요. 이는 이제 우리도 여행 중 대충 '안녕하세요'나 알려주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질문과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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