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81 라오스 루앙프라방 왕궁 박물관, 호 파방, 왓 빠후악
"점심 먹으러 다라시장 갈까?"
"다라시장? 거기 먹을 곳 있어?"
"뭐 있지 않을 건가?"
"그럴 거면 볼 거 다 보고 가."
슬슬 점심을 먹어야 할 때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여행자 거리 말고 다라 시장 가서 점심을 먹을까 했어요. 거기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식당 하나 없겠냐 싶었어요. 친구에게 다라 시장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하자 친구가 볼 거 다 보고 점심을 먹자고 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라시장까지 갔다 돌아오는 시각은 제일 더울 때였어요. 날이 제일 뜨거울 시각이었기 때문에 박물관 들어가서 더위 좀 피하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오후 1시 48분. 왕궁으로 갔어요. 왕궁의 정식 명칭은 루앙프라방 국립 박물관이었어요.
왕궁 오른쪽에는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한 황금 불상인 파방이 모셔진 호 파방이 있었어요.
왕궁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로 씨싸왕웡 왕의 동상이었어요.
루앙프라방 왕립 극장 건물도 보였어요.
왕궁 안으로 들어가기 전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았어요.
철망이 쳐진 주차장, 야외 창고 같이 생긴 건물이 하나 있었어요.
'이거 보트 경기 축제할 때 사용하는 보트들인가?'
"이건 고인돌인가? 왜 바위를 이렇게 꾸며놓았지?"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바위를 나무를 심어서 돋보이게 만들어 놓았어요.
"이제 왕궁 들어가자."
"응? 밖에 더 보고 들어가자."
"밖은 이따 나와서 보면 되잖아."
친구가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어요. 지금 보나 이따 보나 크게 다를 것은 없었어요. 친구 말대로 안에 먼저 들어가기로 했어요.
뒤를 바라보니 어제 올라간 푸시산이 보였어요.
그리고 왕궁 입구. 왕궁 입구에는 코끼리 세 마리가 그려져 있었어요.
라오스는 코끼리의 나라.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 라오스는 란쌍 왕국이었어요. 란쌍은 '코끼리 백만 마리' 라는 뜻이에요.
건물 내부로 들어갔어요. 내부에 가방, 카메라를 맡기고 들어가야 했어요. 왕궁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였어요.
'왕이 참 소박했네.'
이 나라에서는 화려하게 꾸민 것일 거에요. 나름대로 화려하기는 했어요. 그러나 지금껏 보아왔던 왕궁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규모가 작고 소박했어요. 왕궁을 보며 왜 라오스가 불교 사회주의를 부르짓었고, 스님들에 대해 대대적으로 숙청을 감행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왕이 이 정도로 사치를 부릴 정도였다면 공산화 이전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을 거에요. 그나마 식자층이 스님들인데, 그들을 죽이면 누가 일을 하고 교육을 담당하나요. 캄보디아 킬링필드처럼 전국민을 우민화할 것이 아니라면 숙청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에요. 아무리 이 나라를 좋게 보아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정말로 애매했어요.
왕궁을 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이것은 보트인가, 수레인가?
뭔가 참 애매했어요. 바퀴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수레 같은데, 생긴 것은 보트였어요.
이것은 수륙양용 수레인가!
하여간 참 독특하고 신기하게 생긴 운송수단이었어요.
돈 내고 들어왔으니 하나도 빠짐없이 보려고 돌아다녔어요.
나무가 참 멋졌어요. 여기의 기후가 어떤지 말해주는 모습이었어요.
왕궁 한켠에는 이렇게 과거 주유 시설로 사용된 장소가 있었어요. 관리가 하나도 안 된 것으로 보아 지금은 아예 안 쓰는 시설 같았어요. 저것으로 왕의 자동차에 기름을 채워넣고 했던 걸까? 저것이 언제 생긴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최근까지 여기를 주차장으로 썼을 리는 절대 없구요. 앞에 굴러다니는 대나무로 짜서 만든 큰 바구니들은 그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지금은 여기가 버려진 장소라는 것만 알려주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주유 시설만 봐도 알 수 있었어요.
왕궁에는 라오스 국화인 참파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어요.
'저런 꽃이 내 고향에 한가득 핀다면 참 예쁠 텐데.'
귀국할 때 저 꽃과 같이 귀국하고 싶었어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데, 세련되고 우아하고 단아했어요. 꽃이 참 기품이 있었어요. 참파꽃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았어요. 라오스의 절처럼 끊임없이 계속 보아도 볼 때마다 좋았어요.
이제 호 파방을 보러 갈 차례.
호 파방에는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이라는 파방 (프라방) 불상이 모셔져 있었어요. 즉, 태국 방콕의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진 곳처럼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곳. 건물부터 다른 절들과 달리 번쩍번쩍했어요.
호 파방은 루앙프라방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에요. 루앙프라방 양식의 특징은 여러 층이 쌓여 있는 것 같은 모습이 특징인 높고 뾰족한 기와 지붕이에요. 이 여러 층으로 된 지붕은 불교 교리와 연관이 있다고 해요. 라오스 사찰 건물 양식은 크게 루앙프라방 양식, 비엔티엔 양식, 씨엥 쿠앙 양식으로 구분되요. 비엔티엔 양식은 루앙프라방 양식보다 지붕이 높고 좁은 편이고, 지붕이 1단인 경우가 많다고 해요. 씨엥 쿠앙 양식은 지붕이 낮고 입구까지 지붕이 덮고 있는 경우도 있대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여행자 거리에서 거의 상징 같은 건물이라 매우 기대했어요. 안에 모셔진 불상은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이라고 해서 더욱 기대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불상 자체는 딱히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파방을 모시고 있는 건물 그 자체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호 파방 내부 역시 사진 촬영 금지. 너무 큰 기대를 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심장이 시들시들해졌어요. 그래도 최대한 정성껏 삼배를 드렸어요.
부처님, 제발 이번 여행 무사히 잘 끝내게 해주세요.
부처님, 진짜 꼭 이번 여행 무사히 잘 끝내게 해주세요.
부처님, 오늘 정말 아무 일 없이 비엔티엔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친구도 삼배를 드렸어요. 친구가 절을 하며 무엇을 빌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무엇을 빌었는지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말하면 행운 포인트 적립이 무효가 되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진짜 내가 어제 그렇게 절을 돌아다니며 몸을 내던져가며 무사히 비엔티엔 도착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 정도 소원은 들어주시겠지? 뭐 로또 당첨, 인생 역전, 우주 통일 이딴 거 빈 것도 아니잖아? 멀쩡한 버스 타고 버스가 얌전히 길만 따라가면 되는데.'
왜 이것을 간절하게 빌어야하는지 몰라요. 하지만 한 번 당해보니 간절히 빌게 되었어요. 친구의 가설에 의하면 치앙콩 국경까지는 무사히 갔으니까 태국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는 잘 써먹었어요. 단지 국경을 넘으면서 태국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 사용 지역을 벗어나게 되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라디오 전파가 국경 너머 빌빌빌 기어오는 것처럼 훼이싸이 국경을 넘어서 조금까지는 효력이 있었는데, 산으로 들어가면서 그 영역을 벗어나 버린 것. 루앙프라방이나 비엔티엔이나 라오스. 여기는 라오스 부처님 행운 포인트 사용 지역간의 이동.
'설마 산을 넘어야 한다고 치사하게 루앙프라방 부처님 행운 포인트 지역과 비엔티엔 부처님 행운 포인트 지역으로 나뉜 건 아니겠지?'
라오어 성조는 루앙프라방 지역과 비엔티엔 지역이 다르다고 해요. 라오스 정부에서 표준 발음 확립에 그렇게 열성적이지 않아서 각 지역마다 자기네 성조로 교육받는대요. 그리고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엔 사이에는 험한 산지가 끼어 있구요. 처음에는 웃자고 한 부처님 행운 포인트 이야기였어요. 이때도 웃자고 하는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정말로 운이 많이 따라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부처님 행운 포인트 적립 왕창 하지 않으면 답이 없겠다 생각했어요. 원래 인간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하면 미신과 잡념에 의존하게 되거든요.
라오스 올 때 목표를 단 하나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어요. 영어를 잘 하는 라오인도 못 사귀었어요. 연락처를 교환한 라오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영어를 몇 마디 아는 것이었지, 잘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책을 만족스럽게 구한 것도 아니었어요. 동화책과 요리책을 구하기는 했지만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까지는 이제 기대도 안 해요. 제대로 된 도서관이라도 보고 싶었어요. 교보문고, 영풍문고 규모의 서점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우리나라 동네 서점 규모라도 되는 서점이라도 있기를 바랬어요. 라오어로 된 책 그 자체가 보고 싶었어요. 이 나라는 어떤 책을 출판하는지 보고 싶었어요.
그래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라오어판은 포기할 수도 있어요. 아예 출판이 안 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 경험을 몰타에서 한 번 겪어보았기 때문에 딱히 놀랍지도 않아요. 몰타에 있었을 때에도 그 당시에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몰타어판이 없어서 결국 못 구했어요. 나중에 귀국한 후에야 출판이 되었고, 그것은 인터넷 주문을 통해 해결했어요. 투르크멘어 번역본 역시 마찬가지. 이것은 어떤 투르크멘인이 번역해서 올린 파일을 인터넷으로 구했어요.
라오스는 국민들이 깊은 불심을 지닌 국가. 불교의 나라답게 번뇌에서 벗어나야죠. 좋아요. 다 포기할께요. 책도 포기하고 서점도 포기하구요. 무욕의 삶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 쳐요. 그런데 정말 마지막까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어요.
영어를 잘 하는 라오인 친구 하나만은 만들어야 해!
라오스 들어온지 며칠 되지 알았어. 나도 알아. 입국한지 이제 3일이나 되었나? 입국한지 3일만에 라오어를 술술 하면 그게 인간이냐? 그게 가능하면 부처님께 진정한 가르침 받고 이 라오스 땅에서 성불할 동방예의지국 잡귀지. 여기 와서 이제 글자는 읽겠다. 그런데 글자는 어차피 한국에서도 더듬더듬 읽기는 했어! 그딴 것은 카페에 가서 하루 날잡고 꺼까이 해가며 외우면 돼! 글자 외우려고 온 게 아니잖아! 이대로 한국 돌아가면 라오어 공부 못하는 것은 변함이 없잖아!
예전부터 라오스 궁금하고 가보고 싶기는 했어요. 한국인 대부분이 '라오스'라는 나라 자체를 모를 때부터 가보고 싶었어요. 론니플래닛에서 추천 관광지라고 소개하기 전부터 이 나라에 언젠가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싸바이디를 외웠고, 라오어 교재도 구입했어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순수히 그것 때문에 라오스를 온 것이 아니었어요. 라오어는 혼자 해보려 해도 정말로 답이 없어서 영어를 잘 하는 라오인 친구를 하나 만들려고 온 것이었어요.
이제 모든 것을 비엔티엔에 걸어야 하는 상황. 그래서 더더욱 비엔티엔에서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졌어요. 훼이싸이에서 루앙프라방 넘어올 때처럼 길에서 시간을 허무하게 날릴 수 없었어요.
왕궁을 보고 왓 빠후악으로 갔어요.
왓 빠후악은 푸시산 입구에 있었어요.
왓 빠후악은 라틴 문자로는 wat pa houak 이고, 라오어로는 ວັດປ່າຮວກ 에요.
벽에는 이런 안내문이 걸려 있었어요.
왓 빠후악은 1850년부터 1872년까지 재위했던 Chantharat 왕이 1861년 창건한 절이에요. 원래 이 자리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대요. 그래서 절 이름 자체가 '대나무 숲 사원'이라고 해요.
위의 사진이 바로 왓 빠후악의 대법당인 씸이에요. 이 씸의 입구에 해당하는 빠뚜 탕카오의 지붕 아래 삼각형 공간인 합각에 놓인 상인방에는 머리가 세 개인 흰색 코끼리인 아이라바타 Airavata 를 타고 있는 인드라 신이 조각되어 있어요. 이 조각은 그리 오래된 조각은 아니라고 해요. 왓 빠후악의 대법당 건물은 1945년 이후 라오스 문화부의 도서관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고 해요.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에는 Jumbupati Sutta 전설이 그려져 있었어요. 이 전설을 다룬 벽화에서 Bimbisara 왕이 중국 고위 관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통해 중국의 영향을 쉽게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전설 자체가 뭔지 잘 몰랐어요. 벽화에는 루앙프라방에 중국인, 유럽인, 페르시아인 사절단이 방문하는 장면도 있다고 했어요. 벽화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사실 설명이 없었다면 이 절은 못 들어가는 건물인 줄 알았을 거에요.
여기에서도 삼배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어요.
"오늘 일정 끝났다!"
오늘 계획한 일정이 모두 끝났어요. 푸시산 입구에 있는 벤치로 가서 앉았어요.
"이제 뭐하지?"
"밥 먹어야지."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제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어요. 아직까지 점심을 안 먹었어요. 이제 점심 겸 저녁을 먹어야 했어요.
"아, 나 달러 환전해야 한다!"
라오스 낍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오늘밤, 내일 점심까지 어떻게 될 지 몰랐어요. 낍이 필요했어요. 숙소 돌아갔다가 환전하러 나오면 많이 걸어야 했어요. 환율 좋은 환전소가 숙소에서는 거리가 좀 있었거든요. 왕궁에서 걸어가면 그렇게 많이 걸어갈 필요가 없었어요. 숙소 돌아가기 전에 달러 환전을 하고 돌아가기로 했어요.
환전소로 갔어요. 여기는 달러가 소액권이든 고액권이든 환율이 같은 환전소가 대부분이었어요. 태국, 베트남에서는 달러 소액권 환율과 고액권 환율이 다른데 루앙프라방에서는 지폐 권종에 차이를 안 두는 곳이 많았어요. 환율 얼마냐고 물어보자 1달러에 8100낍이라고 했어요. 100달러를 환전해달라고 하고 돈을 내었어요. 낍을 세어서 주었어요. 돈을 받아들었어요.
어? 이거 왜 이렇게 적어?
부피가 적었어요. 원래 환전하면 그 자리에서 돈을 맞게 주었나 세어보지만, 이번에는 뭔가 이상해서 직원 앞에서 매우 꼼꼼하게 세었어요. 81만낍을 받아야 하는데 61만낍이었어요.
"이거 61만낍이에요."
직원에게 바로 돈을 돌려주었어요. 직원은 돈을 세어보았어요. 직원이 세어보아도 61만낍이었어요. 직원은 돈을 몇 장 더 붙여서 제게 주었어요. 돈을 세어보았어요. 81만낍 맞았어요. 지난번에는 2만낍 지폐로만 주어서 부피가 매우 컸어요. 지폐가 40장이 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10만낍짜리 지폐로 주었어요. 부피가 매우 적어졌어요. 지갑에 쏙 들어갔어요.
'행운 포인트 쌓은 것이 효력을 슬슬 발휘하기 시작하는 건가?'
지갑을 가방에 넣고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거리에서 바나나를 말리고 있었어요.
도넛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보여서 도넛을 구입했어요. 딱 도넛 맛이었어요.
일단 조금 쉬러 숙소로 돌아갔어요. 숙소 정원 의자에 앉아서 쉬었어요. 비엔티엔에 계신 블로그 지인분께 연락을 드렸어요. 오늘 저녁에 슬리핑 버스를 타고 비엔티엔으로 출발할 거라 말씀드렸어요. 블로그 지인분께서는 비엔티엔에서 시간 괜찮으면 한 번 만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내일 '무사히 잘' 도착한다면 지인분 시간 괜찮으실 때 만나자고 대답했어요.
비엔티엔에 계시 블로그 지인분과 친구의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숙소에 버스터미널로 가는 뚝뚝을 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직원은 알겠다고 대답했어요. 몇 시에 뚝뚝이 오냐고 물어보자 7시에 올 거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타고 갈 슬리핑 버스는 오후 8시. 직원 말로는 다음날 9시쯤 비엔티엔 도착 예정이었어요.
이제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해야할 때가 되었어요. 숙소 밖으로 나갔어요.
"여기 페탕크 하네?"
우체국 쪽에서 라오인들이 프랑스에서 테니스공 크기의 쇠로 된 공을 던지는 구슬치기 같은 놀이인 페탕크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오늘 저녁은 국수. 전에 참 맛있게 먹었던 그 가게로 갔어요.
제가 처음 왔던 날만 해도 이 가게에 한국인들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여기가 루앙프라방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소문이 났는지 떠나는 날에는 한국인들이 계속 몰려왔어요. 전날 여기에 한국인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예 5시 반에 가서 먹었어요.
식탁 위에는 취향에 따라 양념장 및 라임을 넣어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국수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한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야시장을 향해 걸어갔어요. 루앙프라방에서 꼭 사야할 것을 오늘 알게 되었어요. 그것을 어디에서 파는지도 알고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호 파방 안에 모셔져 있던 불상인 파방 불상 모형.
야시장에서 파방 불상이 부조로 새겨진 조그만 팬던트를 구입했어요. 이것은 이제 부적. 지갑에 넣었어요. 이 여행에서 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제 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어요.
'부적아, 제발 효력 좀 발휘해다오.'
라오스는 태어난 요일별 불상을 모시는 문화가 없어요. 그래서 태국에서 구입한 저의 태어난 요일 불상은 효력이 없을 거에요. 루앙프라방에서 조그만 '싸우지 마라' 불상 호신불도 구입했고, 이제 파방 불상이 새겨진 팬던트도 구입했어요. 진심으로 이 부적이 효력을 발휘해주기를 빌었어요. 일단 비엔티엔까지 잘 도착해야 했어요. 그래야 운을 바래볼 시간이 생기니까요.
불상을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갔어요. 멍하니 탁자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었어요. 어느덧 이 숙소를 떠나야할 때가 되었어요. 뚝뚝이 왔어요. 직원과 인사를 하고 뚝뚝을 탔어요.
이것이 제가 타고 갈 버스였어요. 7시 30분이 되자 차에 짐을 싣고 탑승이 시작되었어요.
버스 자체는 괜찮았어요. 베트남에서 탔던 슬리핑 버스와 별 차이 없었어요.
슬리핑 버스 좌석은 이렇게 생겼어요.
"어? 저 사람 블로그 지인분 블로그 보고 있다!"
대각선 앞자리에 누워 있는 한국인이 무언가 열심히 보고 있었어요. 무엇을 보나 보니 제가 비엔티엔에서 만날 예정인 블로그 지인분의 블로그를 열심히 정독하고 있었어요.
버스는 오후 8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어요.
'제발 내일 아침 9시에 무사히 비엔티엔 도착하게 해주세요.'
노트북으로 여행 기록을 남기며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간절히 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