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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겨울 강행군 (2010) 28

겨울 강행군 - 27 에필로그

다시 돌아온 루카 (루아) 공항. 따뜻했어요. "야, 여긴 덥다!" "반팔 입어도 되겠다!" 눈발이 휘날리던 동네에서 몰타로 넘어왔더니 진짜 푹푹 찌는 것 같았어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쓰러져 잠들었어요. 몰타로 돌아왔구나...또 힘을 내서 공부해야겠어. 다음날. 분명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무지 덥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보니 추웠어요. "어이쿠 추워! 밤새 몰타도 영하로 떨어졌나?" 그럴 리가 없죠. 신기한 것은 하룻밤 푹 자고 나니 몸이 다시 몰타 날씨에 적응해 버렸다는 것.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잠시.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귀국하게 되었어요. 진로 문제를 확실히 결정했는데, 그 진로를 위해서는 몰타에서 여유롭게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여행 다녀온지 일..

겨울 강행군 - 26 이탈리아 베니스

"너는 오늘 뭐했어?" 친구는 박물관을 3곳 다녀왔다고 했어요. "엄청 힘들었겠다." "너는?" "나? 그냥 돌아다녔어." 정말 다리가 아팠어요. 미친듯이 걸어다녔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걸었어요. 비엔나 여기 저기 많이 보기는 했지만 몸은 완전 꽁꽁 얼어있었고 다리는 얼얼했어요. 몸을 녹인 거라고는 잠깐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신 것...그 정도였어요. 교회에 들어가 잠시 앉아서 쉬던 것도 몸을 녹인 거라면 몸을 녹인 거겠죠. 하지만 교회도 추웠어요. 안 추운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바깥보다 덜 추웠을 뿐이었어요. 기차에서 정신없이 잤어요. 국경 심사 따위는 없었어요. 친구도 저도 각자 매우 힘든 마지막 하루 일정을 소화했어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기절하듯 잠들었어요. 아침. 베니..

겨울 강행군 - 25 오스트리아 빈

빈 마지막 날. 밤에 베니스행 기차를 타야 했어요. 친구는 오늘 미술관을 돌아다니기로 했고, 저는 마땅한 계획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간 후에도 예진 누나와 잡담하며 놀았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이야기가 바로 첼로. 예진 누나가 오스트리아에 처음 오게 된 이유는 첼로 유학이었대요. 그러면서 '첼로'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 - 많은 사람들이 '첼로' 하면 한쪽 어깨에 첼로를 맨 가냘픈 소녀를 상상하는데... 그딴 거 없다! 첼로가 한쪽 어깨에 맬 수 있는 만만한 악기가 아니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니 기타를 한쪽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첼로가 크다보니 비가 오면 첼로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비 쫄딱 맞으면서 첼로한테 우산 씌워주는 건 당연한 거고, 택시탈 때 참 문제라고 했어요..

겨울 강행군 - 24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빈도 나름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이었어요. 최소 3일은 필요한 곳이었어요. 도시가 깔끔하고 예쁜데 절대 작은 도시가 아니에요. Rough Guide to Europe 에는 주요 도시 지도가 나와요. 이 지도에서 축적을 보면 큰 도시인지 작은 도시인지 바로 알 수 있어요. 빈은 축적이 500m였어요. 이 정도면 매우 큰 도시. 물론 파리보다는 작아요. 파리는 축적이 1km. 볼 것도 많고 도시도 매우 커요. 유럽을 지켜주고 유럽 대륙을 한때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어요. 우리의 빈에서의 일정은 총 4일. 3일째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했어요. "누나, 여기에서 브라티슬라바 오래 걸려요?" "거기? 버스로 2시간이에요. 여기서 금방 가요." 브라티슬라바나 갔다 올까? 빈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못 보..

겨울 강행군 - 23 오스트리아 빈

드디어 떠나는 날 새벽이 되었어요. 민박집에서는 배고프겠다며 라면을 하나 끓여주었어요. 라면을 먹고 형께 이메일 주소를 받은 후 버스 정거장으로 갔어요. 비엔나까지는 버스로 금방이었어요. 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잠깐 눈 붙이는 사이 도착했어요. "헉...글자 어떻게 읽지?" 전날 밤을 새가면서 민박집 정보를 찾아 보았어요. 하지만 너무 늦어서인지 예약할 수 있는 민박이 없었어요. 고르고 골라서 민박 2개를 추려내었어요. 일단 닥치고 가 보기로 했어요. 혹시나 예약 취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거든요. 정 안 되면 바닥에라도 재워다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일단 첫 번째 목표는 빈박. (Weinbak, http://www.wienbak.com/) 이때가 2010년 1월 초였는데 생긴지 얼마 안 된 민박이..

겨울 강행군 - 22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

체코에서의 마지막 날. 다음날 일찍 빈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사실상 체코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어요.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어요. 버스터미널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곳에서 조금 걸어가자 건물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여기 진짜 예쁘다!"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이것은 눈이 긍정적으로 쌓인 사례라고 해야 할까요? 너무 많이 쌓이지 않아서 무언가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동화 같아졌어요. 관광객도, 주민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겨울 여행이라서 그런 것인지 프라하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곳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여간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정말 텅 빈 것 같은 거리를 셋이서 걸었어요. 왠지 동화책 속 세상으로 들어..

겨울 강행군 - 21 체코 프라하

1월 1일 새해. 아침 먹고 다시 자다가 아주 늦게 나왔어요. 무슨 건축 디자인 대상인가 탔다는 유명한 건물을 보고 구시가지를 향해 갔어요. 카를교를 건너 바투스 성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거 찍는데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어서 꽤 찍기 어려웠어요. 저게 다 은이라고 했어요. 정말 크고 웅장한 바투스 성당. 친구와 저녁을 먹었어요. 저는 이날도 꼴레노를 먹었어요. 저녁을 먹고 카를교를 건너 돌아오는데 오늘도 불꽃놀이...알고보니 오늘 것은 정부에서 하는 불꽃놀이라고 했어요. 지난 번 프라하 왔을 때 인형극 돈 조반니를 못 보았기 때문에 인형극을 보러 갔어요. 민박집에서 할인된 가격에 표를 구해주어서 다른 투숙객들과 함께 보러 갔어요. 무슨 내용인지 잘 몰라도 재미있었어요. 돌아오는 길. 돌아오자마자 골아떨어..

겨울 강행군 - 20 체코 프라하

민박집에 돌아왔어요. "오늘밤에 큰 불꽃놀이 있어요." "무슨 불꽃놀이요?" "여기 애들은 연말에 폭죽 엄청 터트리거든요. 구경하러 가시려면 옷 든든히 입고 가세요. 그리고 술 먹고 난동 피우는 애들도 거리에 많으니까 조심하시구요." 그래서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프라하를 세 번째 온 저는 머리를 굴렸어요. 분위기야 카를교 위가 제일 좋겠지만 여기는 안 봐도 비디오. 보나마나 아수라장일 거에요. 더욱이 카를교는 소매치기가 득시글 서식하는 곳. 프라하에서 가장 조심해야하는 곳이 바로 카를교에요. 여기에서 불꽃놀이 관람하겠다는 것은 설 연휴 시작일에 우리나라의 설날을 직접 몸으로 느껴 보겠다고 일 없이 차 몰고 경부고속도로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는 일. 카를교보다는 카를교 옆 다리가 훨씬 전망은 좋을..

겨울 강행군 - 19 체코 프라하

프라하에는 기차역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프라하 중앙역이고 하나는 프라하 홀레소비체 (holesovice)역이에요. 우리가 내려야하는 역은 중앙역. 솔직히 중앙역에서 내리나 홀레소비체역에서 내리나 요금 차이는 없어요. 모르고 잘못 내린 적이 있었는데 추가 요금 같은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예약한 민박은 중앙역 민박. 프라하 중앙역 바로 앞에 있어요. 홀레소비체역에서 내리면 불필요하게 전철을 타고 다시 중앙역까지 와야 했어요. 다행히 별 일 없이 중앙역에서 잘 내렸어요. 문제는...시각이 너무 일러서 민박집에 들어가기 참 미안한 시각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새벽 4시 좀 넘어서 중앙역에 도착했어요. 일단 지하 매표소로 갔어요. 거기만은 이 새벽에 문을 열어 놓았어요. 홀레소비체역은 정말 고약한 것이 ..

겨울 강행군 - 18 헝가리 부다페스트

기차는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어요. 기차에서 나오자마자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밖에는 빗방울이 기분 나쁘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환전을 하고 프라하행 기차표를 구입한 후 대중교통 1일권을 구입했어요. 일단 왕궁의 언덕을 가기로 했어요. 전철과 버스를 타고 왕궁의 언덕으로 갔어요. 불쌍한 친구... 뭐 할 말이 없었어요... 어제는 안경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못 보더니 오늘은 악천후로 아무 것도 못 보는구나!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보수 공사에 안개까지 겹치는 완벽한 환장의 조합! 이건 그나마 코앞에서 찍은 거라 이 정도였어요. 이건 그래도 좀 분간이 되는 것.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안개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조르나이 제품으로 장식되어 화려한 지붕을 자랑하는 마..

겨울 강행군 - 17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야, 그러면 일단 안경 맞추러 가자." "아 몰라! 이 거지 같은 나라, 당장 떠날 거야!" 일단은 머리 끝까지 열받은 친구를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친구는 무작정 당장 베오그라드를 떠난다고 했는데 떠난다고 될 일이 아니었어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상황에서 몰타로 돌아갈 방법도 마땅찮았어요. 무조건 이 망할 베오그라드를 떠나자고 하는데,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가려면 일단 베니스로 가야 했어요. 베니스로 가서 무작정 공항으로 간 후 표를 구해서 몰타로 돌아가야 하는데 하필 이 시기는 성수기 시즌이라 표가 없었어요. 두 번째, 원래 여행 경로를 앞당겨서 당장 위로 올라갈 경우 기다리고 있는 것은 높은 물가. 차라리 여기에서 일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안경 문제 만큼은 해결해야 했어요. 여행 일정을..

겨울 강행군 - 16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소피아에서 기차를 타고 베오그라드 가는 것은 저도 처음이었어요. 기차에 타서 양말을 갈아신고 잠을 잘 준비를 했어요. 기차에 사람이 없어서 둘이 한 칸에 들어가 의자에 드러누워 잘 수 있었어요. "야, 귀중품 잘 챙겨." "알았어." "품에 지니고 자." "괜찮아. 가방에 자물쇠 채웠잖아." 친구에게 귀중품은 최대한 몸에 지니고 자라고 했지만 친구는 몸에 지니고 자면 불편해서 잘 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여권과 돈이 든 목걸이 지갑은 목에 걸고 옷 속에 집어넣은 후 잤어요. 귀찮음과 피로가 팍팍 느껴지는 친구의 말에 그냥 놔두었어요. 저는 매일 그랬듯 귀중품을 전부 얇은 외투 안주머니에 넣고 잠근 후, 외투를 잘 잠그고 그 위에 두꺼운 점퍼를 잘 껴입고 의자에 드러누웠어요. 곤히 자고 있는데 부스럭거..

겨울 강행군 - 15 불가리아 소피아

10시 30분. 폭우 퍼붓는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소피아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이 다양하고 아름답고 정신 차릴 수 없는 불가리아의 모습! 혹시나가 역시나. 소피아행 버스는 연착했어요. 이 동네에서 정시에 도착할 거라 생각하면 그게 오산. 제발 팍팍 연착하라는 벨리코 터르노보에서는 쓸데없이 예정 도착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더니 정작 빨리 도착해야 하는 소피아는 1시간 연착했어요. 연착 이유는 바로 눈 때문. 눈 때문에 소피아로 버스가 진입해서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데 길이 너무 막혀서 1시간 연착하고 말았어요. 소피아에 도착하니 13시 40분이었어요. 버스가 소피아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기차역으로 갔어요. 만약 기차 시간이 안 맞는다면 어쩔 수 없이 루마니아 부쿠레슈티행 버스를 타야 했어요. "다행이다!" 정..

겨울 강행군 - 14 불가리아 벨리코 터르노보

친구와 만나 오토가르로 갔어요. 여행 책자에는 분명히 이스탄불 오토가르에서 벨리코 터르노보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어요.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거칠게 잡는 호객꾼의 손길. '벨리코 터르노보'로 간다고 하면 무조건 버스가 없다며 '소피아'행 버스로 끌고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여기에 굴복할 제가 아니었어요. 분명히 제가 보고 있던 여행 책자에 벨리코 터르노보행 버스가 있다고 나와 있었거든요. 호객꾼들을 뒤로 하고 버스 회사 사무실을 하나하나 들어가보기 시작했어요. "벨리코 터르노보 가요?" "안 가요." 전부 벨리코 터르노보 가는 버스는 없다고 했어요. "책이 잘못 나온 건가?" 버스 사무실을 한참 돌아다녔지만 벨리코 터르노보로 간다는 버스는 없었어요. 책이 잘못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겨울 강행군 - 13 터키 이스탄불

다음날. 돌마바흐체 궁전은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1리라였기 때문에 11시에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어요. 친구는 성 소피아 성당으로 갔고, 저는 블루모스크에 갔어요. 블루 모스크는 입장료 공짜. 단, 주의할 게 있다면 예배 시간에는 관광객을 다 쫓아내요. 예배 시간이 끝나면 다시 입장. 블루 모스크로 가자!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는 서로 마주보고 있어요. 아침인데도 아야 소피아쪽은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 있었어요. 그에 비해 블루 모스크는 줄이 많지는 않았어요. 이것이 공짜의 힘! 블루 모스크는 크게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입구에서 신발 벗고 신발을 공짜로 주는 비닐 봉지에 집어넣으면 끝. 그리고 문을 열어놓는 시간도 길어요. 원하면 발도 씻을 수 있어요. 여기는 아무리 커도 원래부터 모스크. 여기는 구..

겨울 강행군 - 12 터키 이스탄불

버스에서 열심히 자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기 시작했어요. "국경검사구나..." 잠이 덜 깨서 비틀거리며 버스 밖으로 나왔어요. 불가리아 국경을 넘고 터키 국경을 넘었어요. 확실히 귀찮은 터키 국경심사. 다른 나라 국경심사는 몸만 내리면 되는데 터키 국경심사는 짐도 다 내려요. 입국심사 받은 후 버스에 있는 모든 짐을 다 꺼내서 다시 한 번 세관 검사를 받아요. 밀무역이 극성이라 이렇게 까다롭게 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추운 겨울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는 극악으로 귀찮은 일. 모든 심사가 끝나자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잠을 청했어요. 오늘은 성탄절. 그러나 여기는 터키. 터키는 이슬람 국가. 성탄절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버스가 이스탄불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환전소 ..

겨울 강행군 - 11 불가리아 소피아

2009년 12월 24일 기차에 타자마자 외투 안주머니 속에 귀중품을 전부 집어넣고 위에 점퍼를 걸치고 정신없이 잤어요. 귀중품을 전부 외투 안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점퍼를 입은 이유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어요. 강도야 어쩔 수 없지만 도둑은 조금만 신경쓰면 피할 수 있는데, 겨울에는 가장 좋은 것이 옷 속에 집어넣고 위에 외투를 걸치고 자는 것. 옷을 발가벗기고 훔쳐가면 그것은 강도. 기차에서 도둑을 한 번 당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확실히 도난을 당하지 않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었어요. 솔직히 깊이 잠들면 가방을 건드리는 것은 신경쓰기 어려워요. 친구와 불침번을 서며 자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친구는 기차에 타자마자 정신 못 차리고 잠들었어요. 솔직히 피곤한 상황에서 불침번을 선다는 것 자체가 말이 ..

겨울 강행군 - 10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내려올 때는 올라갔던 길과 다른 길로 내려갔어요. 개구멍은 아닌 다른 입구이지만 올라왔던 입구에 비하면 작은 입구였어요. 그 이유야 당연히 아까 올라왔던 길에는 극장도 있고 이것 저것 큼지막한 유적들이 있었지만 이쪽은 별 거 없었거든요. "우리가 많이 올라갔구나." 다른 쪽으로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보였어요. 우리나라보다 도시화가 더 심해 보였던 아테네였지만 이렇게 예뻐 보이는 구석도 있었어요. 헤파이스토스 신전으로 가야 하는데 다 내려와서 길을 따라가다보니 시장으로 가게 되었어요. 시장 바로 옆이 유적이에요.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유료. 서양인들이 아테네 유적에 열광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정말 일주일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어요. 시장에 들어가서 무언가 살..

겨울 강행군 - 09 그리스 아테네

일단 그 청년과 함께 가 보기로 했어요. 택시비가 매우 비싼 동네였기 때문에 택시비는 1/3씩 분담하기로 했어요. "여기 볼 거 뭐 있어요?" "여기는 정말 환타스틱해요!" 아 맞다...너 서양인이지...미안하다... 서양인에게 그리스 아테네 어떻냐고 물어보는 것이 바보. 서양인에게 그리스 아테네란 한국인에게 백두산 천지보다 더 큰 의미를 가져요. 얘네들 문화의 기본을 이루는 한 축이 바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그래서 바이런은 총을 들고 그리스 독립 전쟁에 직접 참전까지 했어요. 그리고 고대 그리스 - 특히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시발점. 고등학교때까지 질리도록 외워야하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치'가 이루어졌던 곳이에요. 그래서 서양인들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장소. 서양 청년은 아테네를 다 보기 위해..

겨울 강행군 - 08 그리스 아테네

친구는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게 골아떨어졌어요. 저는 그리스 문자를 열심히 외우기 시작했어요. "알페, 베타, 감마..." 하지만 그리스 문자는 정말 쉽지 않았어요. 대소 문자 구분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알파 같은 것 몇 개 빼면 모양도 낯설었어요. 글자 모양이 라틴 알파벳과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도 있었지만 발음까지 라틴 알파벳과 같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글자 모양이 이상하게 제 신경을 박박 긁었어요. 뭔가 둥글둥글하면서도 뾰족뾰족한 게 있고 흘려쓴 듯 한 느낌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어요. "외워야 해!" 말은 모르지만 글자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최소한 글자는 읽어야 표지판이라도 읽으며 돌아다니니까요. 글자를 겨우 다 외웠을 때, 버스가 국경..

겨울 강행군 - 07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

메치트 모스크를 지나 조금 걷자 제카테 저택이 나왔어요. "저기 들어갈까?" "글쎄?" 짐을 들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제카테 저택에 들어갈까 망설여졌어요. 그러나 크게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음을 금방 깨닫게 되었어요. 입구가 잠겨 있어. 혹시 다른 문이 있나 둘러 보았지만 다른 문은 보이지 않았어요. 분명 정문이었어요.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가자." 멀리 보이는 교회의 종탑. 제카테 저택을 지나 걷다 보니 공산 알바니아의 흔적을 또 찾을 수 있었어요.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산 알바니아의 흔적. 여담이지만 공산 알바니아는 유고슬라비아와도 사이가 안 좋았고, 소련과도 사이가 안 좋았고, 중국 (중공)과도 사이가 안 좋았어요. 진짜로 철저한 고립 국가..

겨울 강행군 - 06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

다시 마을로 내려왔어요. 길을 따라가다보니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사)가 나왔어요. 돔은 양철로 만든 듯 했어요. 그래도 저나마 형태가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전깃줄을 만지고 계신 아저씨. 가뜩이나 비가 와서 모든 게 젖어 있는데 맨손으로 전깃줄을 만지는 장면을 보니 제가 더 불안했어요. 아저씨께서는 저희를 잠깐 바라보시더니 다시 전깃줄을 만지시기 시작하셨어요. 이 모스크가 지로카스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에요. 이름은 '지로카스트라 모스크', 또는 '바자르 모스크'에요. 무언가 특별한 이름이 있을 것 같지만 특별한 이름은 없어요. 모스크 입구. 들어가보려고 했으나 문이 잠겨 있었어요. 보통 모스크는 24시간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는 문을 아예 걸어잠그었어요. 그래서 유리창을 통해 ..

겨울 강행군 - 05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

지로카스트라 관광 참고 사이트 : http://www.gjirokastra.org/ 드디어 출발한 버스. 나름 빨리 달리는 것 같았지만 여기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알바니아. 모든 일정이 망했어요. 중간에 휴게소를 들려서 간단히 밥을 사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어요. 정말 정신없이 잤어요. 모두가 쿨쿨 잠을 자고 있었어요. 창밖에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 뿐. 그렇게 얼마나 잤는지 몰라요. 친구가 뒷사람과 이야기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아...망할...왜 비는 내리는 거야!" 잠이 덜 깨서 졸린데 갑자기 짜증이 버럭 밀려왔어요.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었어요. 알바니아에서 밤 11시면 모두가 잠잘 시간. 이 시각에 비를 맞으며 여관을 찾아 돌아다닐 생각 하니 한숨만..

겨울 강행군 - 04 알바니아 티라나

비행기가 티라나 마더 테레사 공항에 착륙했어요. 테레사 공항은 처음 와보는 곳. 티라나에 2번 갔는데, 전부 육로로 가서 육로로 나왔어요. 제가 이용한 경로는 버스로 그리스 테살로니카, 마케도니아 스코페,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티라나로 오고 가는 경로였어요. 비행기로 알바니아 티라나에 간 것은 처음이었어요. 공항 자체는 크지 않았어요. 입국 심사대 옆이 환승 심사대였는데 환승 심사대로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환승 심사대를 통과할 때에는 신발도 벗어야 했어요. 우리는 입국 심사대. 입국 심사는 별 것 없었어요. 그냥 여권을 스윽 훑어보더니 여권 맨 뒷장에 도장을 쾅 찍어주었어요. "Welcome to Albania." "Thank you." 입국 심사대에서는 긴 말이나 현지어 안 하는 것이 상책. 괜히 주..

겨울 강행군 - 03 이탈리아 베니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오후 2시 출발. 그래서 아침, 점심 합쳐서 빵 1개 먹고 공항에 왔어요. 티라나행 지연. "뭐라고!" 베니스발 티라나행 비행기가 2시간 지연이라고 전광판에 떴어요. 공항에 12시에 도착해 비행기 타기만을 기다리던 우리에겐 정말 힘빠지는 소식. 사진 재활용. 창밖을 보니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고 있었어요. 도무지 그칠 기색이 아니었어요. "설마 오늘 결항되나?" 숙소를 예약하고 다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결항된다고 해서 일정이 크게 꼬이는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공항에서 하룻밤 또 노숙을 해야 한다면 정말 돌아버릴 일. 날이라도 따뜻하면 어떻게 버틸 수 있어요. 하지만 전날 이 공항이 얼마나 추운지 경험했기 때문에 그냥 눈 앞이 깜깜했어요. 눈이 어느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었냐하면 ..

겨울 강행군 - 02 이탈리아 베니스

"여기서 쉴까?" 아무리 난방이 없다고 해도 바깥보다는 매우 따뜻했어요. 밖에는 바람도 불고 눈도 내리고 있었어요. 여기는 베니스. 바닷가 동네라서 해풍이 슁슁 불어요. 그 차가운 바닷바람에 눈까지 내리는 끔찍한 바깥. 차가운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확실히 따뜻했어요. "뭐 하나 먹자." 양심적으로 자판기에서 뭔가 하나 뽑아먹어야겠지? 그래서 고른 것이 가장 가격이 싼 과자였어요. 혹시 주인이 와서 쫓아낼 지도 모르니 과자를 하나하나 세어 가면서 먹었어요. 입에 넣고 녹여가며 재료와 양념의 맛을 하나하나 음미했어요. 친구는 짐에서 옷을 꺼내 껴입었어요. 저는...신발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어요. 양말이 축축하게 젖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랐지만 확실히 신발에 문제가 있었어요. "혹시 그..

겨울 강행군 - 01 이탈리아 베니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뉴스에서는 불안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어요. 유럽 본토에 폭설. "야, 유럽에 계속 폭설 내린다는데?" "엄청 춥겠다." "옷 최대한 껴입고 가야겠는데?" 2010년 12월 19일. 드디어 여행 당일이 돌아왔어요. 오직 이 날만을 기다렸어요. 아침부터 짐을 싸고 발레타에 갔어요. 발레타 입구 앞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버스를 루카 공항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어요. 우리 둘의 짐은 제 캐리어 한 개와 백팩 2개가 전부. 저가 항공이라 짐을 하나 부칠 때에도 돈을 추가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혹시나 액체류를 사게 되면 보낼 용도로 제 캐리어 한 개만 부치기로 했어요. 나머지 짐은 전부 가방에 우겨넣고 최대한 껴입었어요. 짐이 적으니 다행히 엄청나게 작은 몰타..

겨울 강행군 - 프롤로그

날이 급속히 추워지던 2009년 10월말. 저는 몰타를 향해 떠났어요. 2008년도에 번 돈을 조곤조곤 갉아먹으며 하루하루 보내던 2009년의 매일매일.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놓은 것은 아니다보니 슬슬 위기감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타난 제 친구 Y군. "몰타로 영어 어학연수 가자." 영어라고는 '하와유', '땡큐' 수준인 저. 일단 영어를 좀 배우고 오기로 결심했어요. 하루하루 벌어놓은 돈을 허무하게 갉아먹으며 보낼 바에는 차라리 영어 한 마디라도 배워오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1월부터 몰타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첫날 시험을 보았는데 당연히 최악의 결과. 맞은 게 안 보였어요. 하지만 굴욕적인 beginner 는 피해서 elementary로 들어갔어요. 다행히 이 코스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