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2018.12.14 20:31

늦은 점심을 아주 배터지게 먹은 후 식당에서 나왔어요.


"이제 슬슬 좀 걸을까?"


배가 부르자 추위가 훨씬 덜 느껴졌어요. 그리고 춥더라도 걸어야 했어요. 어쨌든 이 꽉 찬 배를 조금이라도 꺼뜨려놓아야 했거든요. 다행히 먹고 바로 잠이 쏟아질 정도까지 배가 부르지는 않았어요. 만약 반찬을 한 번 더 받아먹었다면 걷기고 나발이고 잠만 자고 싶었을 거에요. 진짜 식곤증에 취해 헤롱거릴 양보다 아주 미세하게 적게 먹고 나와서 다행이었어요.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졸다가 집에 가서 바로 골아떨어질 것이 뻔했어요. 글 쓸 것은 잔뜩 있는데 글을 하나라도 어떻게 써놔야 했어요. 집에 가면 집중이 안 되어서 계속 미루고 미루다 나중에 숙제처럼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글 써야 하는 것이 아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요.


소화도 시키고 산책도 할 겸 해서 걸었어요. 공기는 매우 차가웠지만 걷기 괜찮았어요. 집에서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추워서 어쩔 줄 몰라 했어요. 그런데 그새 추위가 적응된 것인지, 배가 불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위가 별로 안 느껴졌어요. 차가운 햇살도 나름대로 기분좋게 느껴졌어요. 공기에 미세먼지도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시베리아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나라 기온은 무지 차가워지지만, 대신 중국에서 뿜어내는 미세먼지는 우리나라로 못 넘어온대요. 아주 좋은 현상이에요. 자기들이 만든 미세먼지는 자기네들이 다 들이마셔서 해결해야지 왜 우리나라에 보내나요.


'그냥 종로5가까지 걸어갈까?'


종로5가까지 가는 길은 알고 있었어요. 이건 길을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요. 시청까지 간 후, 시청에서 광화문 앞까지 간 후,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종로 길을 쭉 따라가면 종로5가가 나오거든요. 종로5가에 가면 거기에서 저는 버스를 타고 귀가할 수 있어요. 가는 길에 카페가 있으면 카페에 가서 뭐 하나 사서 마셔도 되구요. 사서 마셔도 되는 게 아니라 카페 들어가서 뭐 하나 마실 계획이었어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글을 몇 개 쓰고 갈 작정이었거든요.


집에 가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이거 분명히 미루고 미루다 며칠 걸려서 쓴다.


후딱 써서 끝내버릴 생각이었어요. 지금 밀린 글감만 생각하면 끔찍했어요. 그것들 다 글로 써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오늘 수집한 글감까지 또 얹어놓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면 보나마나 미루고 미루다 엉망으로 글을 쓰거나 아예 글을 안 써버릴 테니까요.


오늘 작정하고 나온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모처럼 여행기 같은 글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제가 여행기를 쓸 때 쓰는 문체가 있어요. 여행기 쓸 때 사용하는 문체는 다른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문체와 달라요. 특히 제가 쓰고 있는 소설에서 사용하는 문체와는 아주 상극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여행기를 쓸 때 사용하는 문체로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 문체를 사용하려면 일단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래야 보다 자연스럽게 그 문체를 활용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대로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면 만사 귀찮아서 그냥 자버릴 것이고,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여행기에서 사용했던 문체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싹 사라질 게 뻔했어요.


나는 나를 잘 아니까.


보나마나 미루고 미루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쓰겠지. 여행기에서 쓰던 문체는 무슨 여행기에서 쓰던 문체야? 그냥 평범한 글 쓸 때 쓰는 문체로 다다다다 쓰고 끝내버리겠지. 그러면 오늘 추위를 무릅쓰고 나온 게 너무 아깝잖아. 최소한 하나라도 쓰고 집으로 돌아가야 해.


그래서 걸었어요. 의정부보다는 더럽지만 그래도 다른 겨울날에 비해 상쾌하게 느껴지는 공기를 깊이 빨아마시며 거리를 둘러보았어요. 딱히 신기한 것은 없었어요. 서소문아파트를 벗어난 순간 모두 이제 최소 한 번은 걸어봤던 길을 걷는 것이었거든요. 별 생각 없이 거리를 둘러보며 길을 걸었어요. 사람들 표정이 전부 무채색이었어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연말이 다가오고 있는데 들뜬 분위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어요. 무채색 표정을 보면 이게 오늘이 12월 14일인지 1월 4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어요.


시청 광장에 도착했어요.


"크리스마스 트리 세웠네?"


시청광장 크리스마스 트리


시청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었어요. 그 뒤로는 오늘날 서울 강북 지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은 서울시청 건물이 보였어요. 뭔가 개발되려나 싶더니 무슨 보존이네 어쩌네 하면서 다 막아버리는 바람에 슬럼화되어버린 서울 강북지역이요.


서울시청 크리스마스 트리


밤에 조명을 켜면 얼마나 화려하게 보일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지금 보았을 때는 엄청 수수해 보였어요. 예년 같으면 이걸 사진으로 찍는 사람들도 여럿 있고 했는데, 지금은 없었어요. 저만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서울 망신


서울 망신 I SEOUL YOU 도 있었어요. 제발 저딴 것은 이제 좀 집어치울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밀고 있어요.


대체 I SEOUL YOU 에서 SEOUL 이 동사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뒷통수친다? 모두가 잘 살게, 하하호호 살맛나게 해준다 말만 하고 강북 지역은 완전 슬럼화시켜놓고 강남지역은 아주 삐까번쩍하게 바꿔버렸죠. 여의도-마포-공덕-시청-광화문-종로-동대문-동묘-제기동-청량리로 이어지는 이 엄청난 길이 10년째 변한 게 거의 없어요. 뭐 아파트 같은 거 몇 채 들어서긴 했어요. 그거 말고는 오히려 완전 슬럼화되고 있어요.


부동산 기획 사기친다? 용산, 여의도 개발한답시고 나대서 그 동네 땅값 엄청 올려놓고 나중에 슬그머니 없던 일로 만들었죠. 정부가 그리 나대지 말라고 해도 나대서 땅값 쫙 올려놓더니 고점에 물린 사람만 엄청 생겨났어요. 공공기관이 대놓고 부동산 기획 사기 같은 짓을 했어요.


대놓고 세금 낭비한다? 이건 뭐 말이 필요없죠. 서울로 7017과 희대의 망작 슈즈트리. 슈즈트리로 억 단위의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어요. 예술은 그냥 민간이 알아서 하라고 제발 놔두세요. 누가 정권 잡든 자기네들끼리 세금 헤쳐먹는 수단이 예술 지원이잖아요. 누가 정권 잡든 똑같이 쓰레기만 싸지르고 세금만 헤쳐먹는 문화 예술 지원 사업 전부 때려치고 그 돈으로 차라리 대중교통비나 인하해주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예술 즐겨요. 아니면 제대로 예술을 통해 돈을 버는 '예술 산업'을 육성하든가요.


다시 보는 서울역 고가도로 슈즈트리 : http://zomzom.tistory.com/2121


또라이로 만든다? 강북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확실히 예전에 비해 또라이, 노숙자가 더 많이 잘 보여요.


올해도 서울광장에 야외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있었어요.


서울시청 실외 스케이트장


누가 봐도 순간 즐거움과 기쁨을 느껴야 할 크리스마스 트리. 그러나 올해 서울 시청 광장 크리스마스 트리는 참 우울해 보였어요.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이 시기 이 분위기에 사람들이 어울리지 못 하는 건지, 저 트리가 주변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혼자 즐거운 시간이라고 환호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어요.



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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