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룰 외국의 아랍어 교과서는 타지키스탄 초등학교 3학년 아랍어 과목 교과서에요. 타지키스탄 초등학교 3학년 아랍어 과목 교과서는 제가 갖고 있는 아랍어 과목 교과서 중 가장 특이한 교과서에요.
"중앙아시아 국가들 아랍어 교과서는 없겠지?"
남아시아 국가인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랍어 교과서를 구했어요. 여기에 동남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아랍어 교과서도 구했어요. 심지어 튀르키예의 아랍어 교과서도 구했어요. 이 정도면 아시아 대륙의 아랍어 교과서는 대충 다 모은 셈이었어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아랍어 교과서는 예전에 구해서 갖고 있었거든요. 아랍 국가들의 아랍어 교과서도 모든 나라 것을 다 갖고 있구요. 이러면 아시아 통일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중앙아시아 국가들 아랍어 교과서는 없었어요. 중앙아시아 5개국 -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모두 이슬람 국가에요.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세속화되었고, 러시아인 및 비무슬림 인구도 나름대로 꽤 있기는 하지만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아랍어 교과서 있을 건가?"
일단 투르크메니스탄 교과서는 찾을 필요도 없었어요. 이건 아랍어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투르크멘어 교과서 구하기도 힘들어요. 제일 교과서 구하기 쉬운 나라는 우즈베키스탄이에요. 우즈베키스탄은 교과서를 예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에 올려서 공유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희안하게 책을 인터넷에 올려서 공유하는 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에요.
'우즈베키스탄은 당연히 없지.'
우즈베키스탄 아랍어 교과서를 찾아봤지만, 예상대로 당연히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 이슬람을 가장 독실하게 믿는 국가에요. 그 반대 급부로 정부 차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 상당히 경계하고 감시하며, 세속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상당히 많이 노력하는 나라에요. 그러니 이슬람과 직결된 아랍어를 그렇게 빨리 가르칠 리 없었어요. 아랍 국가와의 교류가 매우 많은 것도 아니구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전부 아랍어 교과서는 없었어요. 이것도 이상할 거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이 없는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있을 리 없었어요.
'타지키스탄 한 번 찾아볼까?'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5개국 중 결이 다른 나라에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튀르크 국가이지만, 타지키스탄은 페르시안 국가에요. 민족과 언어 모두 완전히 달라요.
타지키스탄 아랍어 교과서를 한 번 찾아봤어요.
"뭐야? 타지키스탄은 있네?"
신기하게 타지키스탄은 아랍어 교과서가 있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을 제외하면 사실 제일 확률 없을 거라 생각한 나라가 타지키스탄이었어요. 타지키스탄은 소련 붕괴 후 독립하자마자 이슬람주의자와의 격렬한 내전을 겪은 나라에요. 우즈베키스탄은 페르가나 계곡 쪽에서 이슬람주의자들과의 교전이 있었지만, 타지키스탄은 아예 수도 두샨베까지 전투가 벌어졌었어요. 그래서 타지키스탄이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아랍어 교과서 없을 나라 같았는데 의외로 타지키스탄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더 놀라운 점은 아랍어 교육이 상당히 빨리 시작된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구한 타지키스탄 아랍어 교과서 중 가장 낮은 학년은 3학년 것이었어요. 타지키스탄은 5학년부터 중학교에요. 아무리 학제가 한국과 다르다고 해도 3학년은 초등학교에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아랍어 교육이 시작되었어요.
타지키스탄에서 아랍어 교육은 의무 교육 과정은 아니에요. 외국어 교육 과정 중 아랍어를 선택할 수 있어요. 이때 아랍어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었어요.

타지키스탄 초등학교 3학년 아랍어 교과서는 위와 같이 생겼어요.
책 제목은 ЗАБОНИ АРАБӢ 에요. 뜻은 '아랍어'라는 말이에요.
그 아래를 보면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어요.
Китоби дарсӣ барои синфҳои 3 ва 4-уми муассисаҳои таҳсилоти умумӣ
이 문구의 의미는 '일반 교육 기관 3, 4학년을 위한 교과서'에요. 이 책은 단권이지만, 3학년 과정과 4학년 과정이 한 권으로 묶여 있어요.
과거 중앙아시아 교과서를 보면 2년 과정을 묶어서 한 권으로 출판하는 일이 있었어요. 이 교과서는 2017년판이지만, 3학년 과정과 4학년 과정이 한 권으로 묶여 있어요.
'분권해도 되지 않나?'
재미있는 점은 이 책 목차를 보면 3학년 책과 4학년 책으로 완전히 분권해도 상관없다는 점이에요. 책 한 권을 주고 학교와 교사 재량으로 2년 안에 한 권을 끝내라고 되어 있는 책이 아니에요. 3학년 과정과 4학년 과정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어요.



이 책은 목차가 책 맨 뒤에 있어요. 구소련 시절의 출판물 특징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목차가 가장 뒤에 있어요. 목차를 보면 3학년 과정이 위와 같이 84쪽으로 끝나요. 그 다음부터는 목차 제목도 4학년 과정이에요.
즉, 이 책은 한 권으로 2년간 배우는 단본이 아니라 3학년 책과 4학년 책을 한 권으로 만든 합본이에요.

이 책의 시작은 위와 같아요. 일단 인사를 배우고, 자기 이름 말하는 법을 배워요. 이 첫 페이지만 보면 이 책이 어떤 매우 특이한 점이 있는지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바로 다음 장부터 독특한 점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바로 두 번째 장이에요. 맨 위를 보면 매우 재미있는 문장이 있어요.
Мā-смука (ҷ.м.)? - 'Исми Рустам.
Мā-смуки (ҷ.з.)? - 'Исми Зайнаб.
이 문장은 아랍어 문장을 타지키스탄 키릴 문자로 그대로 옮겨놓은 거에요. 첫 페이지 맨 아래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어요.
ما اسمك؟ اسمي رستم.
ما اسمك؟ امسي زينب.
이 문장을 키릴문자로 옮겨놓은 거에요. 한 문장씩 대조해 보면 이래요.
ما اسمك؟
Мā-смука (ҷ.м.)?
اسمي رستم.
'Исми Рустам.
ما اسمك؟
Мā-смуки (ҷ.з.)?
امسي زينب.
'Исми Зайнаб.
교과서에 발음을 키릴 문자로 적어놨어요. 이렇게만 보면 발음 기호 적어놓은 것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요. 3학년 과정에서는 아랍어 글자를 제대로 안 배워요.

위와 같이 아랍어를 키릴 문자로 전사해서 배워요. 3학년 과정에서는 아랍 문자를 아예 따로 배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키릴 문자로 아랍어를 배워요.
한국어로 비유하자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어요.
하다 키타브(운).
이것은 책입니다.
하다 다프타르(운).
이것은 공책입니다.
하다 칼람(운).
이것은 연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를 든 것이 아니에요. 바로 위에 있는 지문에 적혀 있는 Ҳāза китāб(ун), Ҳāза дафтар(ун), Ҳāза қалам(ун) 이 각각 '하다 키타브(운), 하다 다프타르(운), 하다 칼람(운)'이라고 써놓은 거에요. 아랍 문자가 같이 있다면 단순 전사나 발음 표기라 볼 수 있겠지만, 아랍 문자가 없어요. 그러니 진짜로 교과서에 '하다 키타브(운), 하다 다프타르(운), 하다 칼람(운)' 이라고만 써놓은 셈이에요.
'이런 아랍어 교육 방법을 진짜 쓰는 교과서가 있었네?'
아랍어 문자는 아랍어 학습에서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높은 장벽이에요.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랍 문자는 학습 시작 단계에서 심리적으로 거부감을 크게 일으켜요. 글자를 연결해서 쓰고, 글자가 연결이 되는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필기체까지 적용되면 정말 알아보기 어려워요.
또한 아랍어에는 아랍어를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발음들이 있어요. 인두음과 q 발음이에요. 또한 언어에 따라서 خ와 ح를 아예 구분하지 않고, 더 나아가 여기에 خ와 ح와 ه가 전부 h (ㅎ) 발음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언어들도 있어요. 당장 한국어가 그래요. 이런 언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랍 문자 익힐 때 글자 장벽과 발음 장벽을 동시에 느껴야 해요.
이 문제는 아랍어 학습에서 워낙 유명하고 누구나 예외 없이 한 번은 경험하는 문제라서 연구도 꽤 많이 된 문제에요. 대부분은 글자를 하나씩 익히고 글자를 쉽고 재미있게 익히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진행해 나갔어요. 그래서 거의 전부 다 - 교과서고 어학 수업이고 어학 교재고 상관 없이 아랍어를 배울 때 처음에는 선 그리기, 점 찍기부터 시작하며 아랍어 글자의 기본 형태에 익숙해지는 단계부터 시작해요. 그 다음에 글자에 따라 쉬운 단어를 배우며 글자를 하나 둘 익혀가도록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주장도 있어요. 처음에 아예 글자를 가르치지 말자는 주장이에요. 일단 말만 가르치고, 그 다음에 말을 약간 할 수 있게 되면 그때 글자를 가르치자는 주장이에요. 이 주장을 따르는 교육 방법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없다고 해도 될 정도에요. 이유는 바로 위에서 말한 대로에요. 글자도 같이 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다고 해도, 아랍어의 자음 중 학습자의 언어에 없는 자음들이 여럿 있어서 전사로 가르치고 글자 없이 가르치기 매우 어렵거든요.
이것이 이해 안 된다면 خ와 ح와 ه 를 보면 바로 이해될 거에요. 이 셋은 전부 전혀 다른 발음이에요. 하지만 한국어로 전사한다면 خ는 'ㅋ'로 전사해서 구분한다고 해도 ح와 ه는 결국 h 'ㅎ'로 전사해야 하고, خ는 ك 및 ق 와 함께 'ㅋ'로 전사되요. 억지로 ق를 'ㄲ'로 전사한다고 해도 خ는 ك와 같이 'ㅋ'이고, ق는 엉뚱한 'ㄲ'가 되요. 이 문제는 두 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해요. 첫 번째로 학습 단계에서 이렇게 여러 발음이 한 발음으로 묶이면 학습자가 엄청 헷갈려요. 뭐가 다른지 알기 어려워요. 그래서 나중에 글자를 배울 때 철자법 보면서 교정해야 하는데, 이 교정이 쉽지 않아요. 모국어 화자가 모국어를 배울 때 받아쓰기 하는 거 떠올리면 쉬울 거에요. 이 짓을 나중에 계속 해야 해요. 두 번째로는 발음은 습관이기 때문에 한 번 습관이 들면 정말 안 바뀌어요. 발음 습관이 전사된 발음에 의지해서 잘못 익히게 되면 이거 고치는 게 진짜 끔찍하게 어려워요. 아랍어라고 특별하게 생각할 것 없이, 영어 발음 교정을 떠올려보면 바로 와닿을 거에요. 처음 배울 때 발음을 같이 교정받아가면서 배우는 것과 처음에는 한글로 전사된 발음으로 배운 후에 나중에 발음 교정 받는 것은 차이가 상당히 커요. 나중에 발음 교정 받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경험하게 해요.
이 때문에 아무리 아랍어 글자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심해도 아랍어를 가르칠 때는 글자를 같이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일단 말부터 가르치자는 방식은 이론으로나 존재한다고 봐도 되요.
하지만 이 책은 무려 한 국가의 교과서인데 3학년 과정 - 즉 1년 내내 아랍어 글자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오직 '말'에만 집중해서 학습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처음에 글자를 가르치지 않고 말만 가르치는 교수법 자체가 거의 이론에서나 존재하는 방식인데, 그걸 무려 교과서에서 정식으로 채택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대신에 장점이 있기는 했어요. 글자 장벽이 없으니 진도를 보다 더 빠르고 많이 나갈 수 있어요. 이것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어요. 다른 책들은 저학년 과정에서는 1년간 글자 익히느라 정신 없어요. 반면 이 책은 글자 익히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문법을 그만큼 더 많이 배우도록 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3학년은 키릴 문자로 전사된 아랍어로 아랍어를 배우고, 4학년 과정에서 아랍어 글자를 배우도록 구성되어 있었어요.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하나 더 있었어요. 이것은 책 내부에는 나오지 않는 특징이에요.
원래는 5~6학년 교과서였다
즉, 중학교 교과서였다
타지키스탄 아랍어 교과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2000년대 아랍어 교과서도 같이 구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2000년대 아랍어 교과서를 보면 3~4학년 책이 없었어요. 대신에 2007년 아랍어 교과서 중 5~6학년 교과서가 바로 이 교과서 - 2017년 3~4학년 교과서와 똑같았어요. 첫 장의 발행 년도만 달랐어요.
이 책만이 아니었어요. 2016년 5~6학년 아랍어 교과서는 2007년 7~8학년 교과서와 완전히 같았어요.
타지키스탄 정부가 공교육에서 2010년대에 외국어 교육을 더 조기 - 2년 앞당겨서 시키기로 결정했어요. 하지만 교과서를 완전히 새로 편찬하지 않고 기존 교과서를 그대로 학년만 낮추는 방식을 택했어요. 이것도 매우 독특한 점이에요.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는 1년 차이가 상당히 커요. 이 때문에 교육과정 적용 학년이 바뀌면 교과서도 그에 따라서 새로 만들기 마련이에요. 이것이 매우 보편적인 교육 정책인데, 타지키스탄은 이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아래 학년으로 교과서를 내려버렸어요. 위에서 말했지만 타지키스탄에서 5학년부터 중학교에요. 중학교 교과서를 초등학교로 그대로 내려버린 거에요.
이 책 내용과 지문이 매우 쉬워서 이 교과서를 2년이나 아래로 낮춰도 문제가 별로 없었을 수도 있어요. 타지크어에는 아랍어 어원의 어휘가 많이 있기도 하구요. 중요한 것은 교과서를 하향 조정할 때 난이도란 단순히 배워야 하는 양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교과서 구성 전체를 포함해요. 가독성 및 삽화도 난이도와 관련이 있어요.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타지키스탄 3~4학년 교과서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보기에는 글이 너무 많고 빽빽한 느낌이 꽤 있었어요.
타지키스탄 아랍어 3학년 교과서는 여러 부분에서 다른 나라의 아랍어 교과서와 상당히 차이가 있는 교과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