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6 우즈베키스탄 히바 파히아본 마흐무드 묘소

좀좀이 2012. 11. 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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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야할 일은 숙소 찾기.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바로 탑이었어요. 그러나 탑에서 잠을 잘 수는 없는 일. 오타 다르보자 근처에 숙소가 그럭저럭 모여 있었기 때문에 여기부터 차근차근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어요.


가장 처음 간 숙소는 Alibek 게스트하우스.



"방 있나요?"

"방 있어요."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방을 보여주셨어요. 먼저 보여준 것은 2인 1실 방이었어요. 여기는 20달러였어요. 온수도 잘 나왔고 변기도 괜찮았어요. 그 다음에 보여준 방은 3인 1실 방이었어요. 3인 1실 방은 25달러였어요. 2인 1실 방은 1층에 있었고, 3인 1실 방은 2층에 있었어요.


가격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이었어요. 둘이 왔다면 매우 저렴한 가격에 지낼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혼자였어요. 마음에 드는 방은 2층에 있는 3인 1실 방이었어요. 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어요.



이렇게 방 바로 옆에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테라스가 있었어요. 여기에서 날이 춥지 않으면 아침 식사를 먹고, 앉아서 쉴 수도 있었어요. 게다가 여기에서 보는 풍경이 꽤 괜찮았어요.




마음에 딱 드는 방이 나타났기 때문에 바로 이 방에서 자겠다고 했어요. 가격이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25달러면 그렇게 크게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었어요. 3인 1실이라 방에 콘센트도 많았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방 바로 앞에 테라스가 있어서 이것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곳은 날이 추울 때 아침 식사하는 곳이라고 했어요. 여기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도 나빠 보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히바 성벽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하고 싶었어요. 야외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야 많겠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돈과 여권을 드린 후, 샤워부터 했어요. 샤워를 하니 몸이 매우 가벼워졌어요. 샤워를 마치고 1층으로 여권을 찾으러 갔어요.


"저는 여권에 거주지 등록이 잘못 찍혀 있는 것이 하나 있어서 항상 거주지 등록을 펼쳐서 보여주어요."

"그래? 이거 맞지?"


아주머니께서 아들이 복사해 놓았다고 보여준 저의 거주지등록을 보여주셨어요.


"에이, 잘못 복사했네요. 이거 잘못된 거주지등록이에요!"

"그래?"


아주머니께서는 잘못 복사했을 리 없을 거라며 제게 제 여권과 우즈베키스탄 비자, 거주지등록을 복사한 것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였어요. 이곳에서도 잘못된 거주지등록을 복사해 놓았어요. 제가 잘못된 거주지등록이라고 말씀드리자 아주머니께서는 나도 당했다는 듯 멋적게 웃으시며 제게 어떤 게 제대로 된 거주지등록이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제가 제대로 된 거주지등록을 펼쳐 보여드리자 제게 비자도 제대로 복사한 거냐고 확인해달라고 하셨어요. 당연히 비자는 제대로 된 것이었어요.


"아마 전에 머물렀던 숙소들도 잘못된 거주지등록 복사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랬을 거야."


아주머니와 잡담을 하며 놀다가 12시가 되어서야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왔어요.


히바 여행기를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참고로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히바의 4대문.


히바에는 입구가 4개 있어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동서남북으로 대문이 하나씩 있고, 문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어요. 히바는 이렇게 네 개의 성문을 가진 성 안에 있는 작은 옛날 도시를 말하는 것이에요. 각 문의 이름은 아래와 같아요.


동문 - 폴본 다르보자 Polvon darvoza

서문 - 오타 다르보자 Ota darvoza

남문 - 토슈 다르보자 Tosh darvoza

북문 - 보그차 다르보자 bog'cha darvoza


동문인 '폴본 다르보자'의 의미는 '힘센 자의 문'. 여기는 노예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polvon 이라는 단어가 육체적으로 힘이 센 사람을 가르키는 말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라 쉽게 추측해볼 수 있어요.


서문인 '오타 다르보자'의 의미는 '아버지의 문'. 여기가 히바 정문이에요.


남문인 '토슈 다르보자'의 의미는 '돌 문'.


북문인 '보그차 다르보자'의 의미는 '작은 공원의 문'. 이쪽이 디샨 칼아로 가는 방향.


각 문마다 특징이 하나씩 있는데 제가 들어가기로 한 곳은 오타 다르보자였어요.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히바 자유이용권'을 강매하는 곳이라는 것. 사실상 강매라고 보아도 무방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안 사고 싶었지만 거의 강매라서 그냥 구입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히바 자유이용권은 오직 오타 다르보자에서만 팔고, 오타 다르보자에서만 이 '자유이용권'이 있는지 확인을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게 놀이동산 자유이용권과 아주 유사한 것이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이 있어도 몇몇 특별한 놀이기구는 자유이용권이 있다고 공짜로 탈 수 없는 것처럼 '히바 자유이용권'이 있다고 해서 히바의 모든 유적을 다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일단 탑에 올라가는 것은 무조건 예외였고, 히바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파히아본 마흐무드 묘소도 예외였어요.


그리고 이곳 입구에는 한국어를 아시는 가이드도 계셨어요. 저는 대충 어떤 곳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읽어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머무르며 주워들은 것이 있어서 고용하지 않았지만, 이 가이드를 고용해 돌아다닌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가이드를 고용해서 돌아다니는 것도 꽤 괜찮았다고 했어요.


히바는 크게 2개 지역, 엄밀히는 3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크게 2개 지역 - 즉 그냥 돌아다니는 여행자들 입장에서는 이찬 칼아와 디샨 칼아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찬 칼아는 '내부 성'이라는 뜻이고, 디샨 칼아는 '외부 성'이라는 뜻. 그러나 이 도시는 원래 3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외성인 디샨 칼아가 있고, 여행자들이 흔히 '이찬 칼아'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곳은 다시 '아르크'와 '이찬 칼아'로 이루어져 있어요. 여기에서 '아르크'는 지금 Kohna Ark 라고 불리는 곳으로, 위에서 본 히바 사진에서 커다란 망루처럼 생긴 부분이 바로 이 '아르크'에요.


한국어 전문 가이드분께서 가이드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셔서 우즈벡어로 지금 타슈켄트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언어와 역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 잘 알아보고 왔다고 대답했어요. 제가 우즈벡어로 이야기하자 제 말이 그럴듯했는지 저를 계속 잡지 않고 즐거운 여행 되기를 빈다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히바의 볼 것은 거의 전부 이찬 칼아 안에 들어가 있었고, 이찬 칼아 자체가 그렇게 큰 곳이 아니었어요. 지도를 보니 이찬 칼아만 본다면 정말 한나절이면 충분히 다 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이체리 셰헤르 정도 되는 크기였어요. 게다가 여기는 무언가 딱 '이것을 꼭 보아야 한다'라는 목표와 사명감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도시도 아니었어요. 도시 자체가 오래되었는데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그냥 가고 싶은 대로 돌아다니는 곳이었어요. 즉, 지도 따위도 필요 없었어요. 반나절 구경하는 거라면 그래도 중요한 곳을 찾아다니기 위해 어느 정도 볼 필요는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다음날 오전까지 시간이 있었거든요. 오늘 여기에서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경이 아니라 여기에서 우르겐치로 가는 마슈르트카를 찾는 것이었어요.


이미 코흐나 아르크에 사람들이 올라가서 부하라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아무리 볼 게 있고, 왕궁이었다 하더라도 상관 없었어요. 이름에서 드러나듯 코흐나 아르크는 옛날 왕궁. 부하라 아르크에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아르크는 오늘 맨마지막에 본다.'


딱 보아도 석양을 볼 만한 자리가 코흐나 아르크 밖에 없었어요. 적당히 해가 질 시간에 들어가서 내부를 구경하고 위에 올라가서 히바의 일몰을 감상하는 것으로 일단 오늘 일정을 마무리할 생각이었어요. 이미 히바의 세 가지 악명은 많이 들었거든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최소 6개월 이상 머무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히바의 세 가지 악명을 고려했을 때 오늘 일정은 석양을 보는 것으로 끝날 것 같았어요.


"어디 두 번째 악명이 맞는가 확인해볼까?"


첫 번째 악명은 타슈켄트에서 히바 가는 것이 매우 고약하다는 점이었어요. 이것은 이미 확인했고 경험했어요. 저는 비록 부하라에서 기차로 우르겐치에 갔지만, 제 주변에 기차로 우르겐치에 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 모두 히바는 비행기 아니면 부하라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갔어요. 비행기는 비싸고, 택시는 힘들어서 히바를 두 번 다녀온 사람이 없었어요. 이제 확인해볼 것은 두 번째 악명. 히바는 성수기가 되면 이찬 칼아 전체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구경하기 고약하다는 악명이 있었어요.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히바의 상징인 칼타 미노르 Kalta minor 였어요. 이 탑은 지어지다 말아서 오히려 더 유명해졌어요. 만약 완성되었다면 부하라에서 가장 큰 미나렛은 되었겠지만 히바의 상징이 되었을까 의문이었어요. 오히려 짓다 말아서 '저건 대체 정체가 뭐야?'라는 신비감을 뿜어내고 있었어요.



칼타 미노르에 올라갈 수 없었고, 그 옆에 있는 마드라사는 호텔로 개조되어 있었어요. 이제 문화재가 호텔이나 식당으로 개조되어 있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부하라에서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아서 호텔이나 식당으로 개조되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였어요.



아직까지 관광객으로 미어터진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오히려 오타 다르보자 근처는 한가했어요. 이렇게 그늘에 앉아서 쉬는 현지인도 보였구요.


특별히 어느 유적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어요.





"그냥 큰 길로 나가야겠다."



야르 모함메드 디반 모스크 Yar Mohammed Divan Masjidi 를 보고나서 토슈 다르보자 (남문)로 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방향을 틀어 다시 큰 길 쪽으로 나갔어요.



볼 것이 몰려 있는 큰 길 쪽으로 가자 드디어 관광객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것은 바닥 무늬가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인 논에 찍는 무늬처럼 생겨서 재미있었어요.



이것은 1726년 지어진 셰르고즈혼 마드라사 Sherg'ozixon madrasasi. 내부는 박물관이었는데 그렇게 인상적인 것은 없었어요.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라면 이것이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마드라사는 1718년 셰르고지 칸이 원정에서 잡아온 노예들에게 마드라사가 완성되면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겨서 화가 난 노예들이 칸의 목을 베어버리고, 이때 노예들이 이 마드라사를 파괴했는데 그 이후 보수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거든요.


박물관을 돌아다니는데 문이 하나 있었어요.


"저거 혹시 열릴까?"


설마 열릴까 하면서 문으로 갔어요. 당연히 열리지 않고 잠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혹시 열리나 하고 가서 문을 밀어보았는데 문이 열렸어요.



내부는 그냥 평범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박물관에서 문을 열고 안쪽에 들어가보았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 다음 간 곳은 14~16세기에 지어진 파히아본 마흐무드 묘소 Pahiavon Mahmud maqbarasi. 입구를 들어가자 아주머니께서 돈을 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자유이용권을 보여드렸어요.



"여기는 따로 돈을 내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학생 할인 없나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을 제시했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제 학생증을 유심히 살펴보시더니 2000숨 내고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그 장면을 본 독실한 무슬림처럼 보이는 청년이 다가와서 아주머니께 따지기 시작했어요. 그 청년이 따진 이유는 왜 우즈베키스탄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돈을 받냐는 것이었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돈을 받아야 한다고 맞섰어요. 돈을 내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참 애매한 상황이었어요. 2000숨 내고 들어가느냐, 공짜로 보느냐의 문제였는데 현지인 둘이 공짜로 들여보내는 것이 옳다, 외국인이니 돈을 받는 것이 옳다고 논쟁을 벌이고 있어서 돈을 낼 수 있는데 가만히 서 있어야 했어요. 결국 언쟁의 승자는 아주머니. 그래서 2000숨 드리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논이었어요.




"음...멋있기는 하네."


자유이용권으로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느긋하게 감상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때 들이닥친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들. 역시나 독일 단체 관광객들이었어요.


"히바에서까지 단체 관광객들이랑 엉켜서 다니는 거야?"


단체 관광객들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어요. 이 조그만 공간에 단체 관광객들이 들어오니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고, 감상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우즈벡인 관광객이라면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우즈벡인이나 우즈벡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아닌 전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찍히면 그렇게 눈에 거슬릴 수가 없었어요. 이런 곳에 사람이 없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벡인이나 우즈벡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아닌 사람이 사진에 찍히면 왠지 사진을 막 찍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만큼 이 지역은 그 독특한 분위기가 강한 곳이었어요.


다행히 좁은 공간이라 잠깐동안 사진을 열심히 찍더니 또 우루루 나갔어요. 그제서야 다시 천천히 감상하기 시작했어요. 안에는 오직 저밖에 없었어요.



여기는 들어갈 수는 없는 곳. 그래서 렌즈를 집어넣고 플래시를 터트려 찍었어요.





충분히 감상하고 나오는데 우물이 하나 보였어요.



아주머니께서 저 우물은 마시면 소원을 들어주는 우물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 우물의 물맛은 짜다고 알려주셨어요. 하지만 직접 마셔보지는 않았어요. 설사가 낫기는 했지만 한 번 설사를 하고 나니 음식과 물을 막 먹을 수 없었어요.



다른 조그만 방에도 관이 있었어요. 사진으로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곳이 아까 보았던 곳보다 더 좋았어요. 좁은 방이었기 때문에 더욱 화려해 보였거든요. 아름다움을 좁은 공간에 꽉 우겨넣은 듯한 모습이었어요.


그 다음 간 곳은 1884년에 지어진 오토존보이 마드라사 Otojonboy madrasasi. 내부에서 한 명은 바닥에 앉아 우리나라 쌍륙과 비슷한 나르드 판을 깔아 놓고 쉬고 있었고, 할아버지와 소년은 나무 조각을 만들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응."

"저, 실례하지만 사진 찍어도 될까요?"

"응, 찍어."



이 마드라사는 그냥 조그마한 마드라사였어요.



그리고 이 마드라사 안에서 찾아낸 미흐랍.



여기도 그냥 평범한 마드라사였어요. 안에서 어떻게 나무 조각 제품을 만드는지 구경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 그리고 이 마드라사에는 단체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이분들과 이야기를 하며 잘 할 줄 모르는 나르드를 한 판 했어요. 나르드 하는 방법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배웠던 것과 방법이 달랐어요. 가장 큰 차이는 상대편 말을 잡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에서는 구슬치기하듯 주사위를 엄치손가락으로 튕기는데, 여기 사람들은 손등을 하늘을 향하게 해서 주사위를 던졌어요.


당연히 나르드는 졌어요. 사실 룰이 적응이 하나도 안 되어서 아저씨 혼자 제 말과 자기 말을 다 움직이다시피 하셨어요. 그래도 우즈벡인 방식으로 해보니 이것도 이것만의 재미가 있었어요. 나르드 한 판을 끝낸 후 웃으며 재미있었다고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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