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4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낙쉬반드 묘소

좀좀이 2012. 11. 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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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고 싶었던 장면까지 보고 시토라이 모히 코사에서 나오니 오후 6시였어요. 관광을 마쳤어야 할 시각에 날림으로 부하라 칸국 여름 궁전 구경을 끝내었어요. 계획과는 아주 어그러진 현실. 해는 사람 약올리듯 땅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어요. 브레이크 좀 살짝 밟아주면 참 고마울텐데 태양에게 그런 건 없는 거 같았어요. 오직 인생은 직진, 악셀러레이터 뿐이라는 듯 땅에 처박으려고 있는 힘껏 서쪽 땅으로 들이박으려 전력질주하는 태양을 보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럴 때 믿을 것은 오직 돈. 우즈베키스탄 숨, 나는 너를 믿는다!


"이거 택시죠? 낙쉬반드 묘소, 5천!"


시토라이 모히 코사 앞에 세워진 차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흥정을 시도했어요. 만 숨이라도 줄 생각이었어요. 낙쉬반드 묘소 하나 남았거든요. 거기만 보면 대충 부하라를 다 본 셈이었어요. 아직 시간이 6시이니 택시를 타고 달려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얼추 1시간. 7시 반에는 기차역을 향해 가야 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1시간 반 남아 있었으나, 7시 넘어가면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기에는 어려운 시각이었어요. 조명이 잘 되어 있다면 그냥 어둠 속의 낙쉬반드 묘소를 구경하는 것이고, 조명이 안 되어 있다면 돌아나와야 했어요. 그런데 이 낙쉬반드 묘소가 조명이 잘 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부하라 관광 지구도 조명이 라비 하우스 및 그 주변만 잘 되어 있었지, 나머지 구역은 그렇게 조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이거 택시 아니야. 옆에 있는 마슈르트카 타고 카르본 보조르 가서 갈아타고 가."


아저씨는 자기는 택시 운전 안 한다고 하시며 바로 옆에 서 있는 마슈르트카에 저를 태우셨어요. 제가 마슈르트카에 올라타자마자 마슈르트카는 바로 출발했어요.





카르본 보조르 도착하자마자 마슈르트카 차장의 도움으로 바로 마슈르트카를 갈아탔어요.


"이거 낙쉬반드 묘소에 가나요?"

"응. 가."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낙쉬반드 묘소에 간다고 했어요. 낙쉬반드 묘소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기 때문에 미리 운전기사에게 낙쉬반드 묘소에서 반드시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을 하고 자리에 앉았어요. 자리에 앉은 후 조금 기다리자 마슈르트카가 출발했어요.


'제발 빨리 도착해라.'


창밖 풍경은 평범한 도시 풍경. 사진을 찍을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모든 신경은 내릴 곳에서 제대로 내려야 한다는 것과 빨리 낙쉬반드 묘소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에 쏠려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낙쉬반드 묘소 멀리 남았냐고 물어보았어요.


"다 왔어. 내려."

"여기가 낙쉬반드 묘소에요?"

"응. 저기."


드디어 낙쉬반드 묘소에 도착했어요. 정말 긴 시간 마슈르트카로 달려온 것 같았는데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여기에서 기차역은 어떻게 가요?"

"지금은 마슈르트카 끊겼으니 택시 타고 가."


마슈르트카가 떠난 후, 길을 건넜어요. 이제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바카웃딘 낙쉬반드 묘소를 둘러볼 차례.



이곳은 2003년에 대대적인 복원 및 보수 공사와 신축을 통해 만든 곳이었어요. 입구부터 꽤 잘 정비되어 있었어요. 아쉬운 점은 바로 햇빛. 이 앞에 섰을 때는 이미 6시 45분 경이었어요.



마음은 급한데 해는 저의 급한 마음보다 더 빠르게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해는 저물어가고, 사진은 자꾸 심하게 흔들리니 빨리 보고 나오려 해도 빨리 보고 나올 수가 없었어요. 분명 정비를 매우 잘 해 놓아서 아름다운 곳이기는 했어요.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커져 갔고, 마음은 급해졌어요.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짐작컨데 약 10분. 이런 상황에서는 과감히 사진을 포기할 수도 없었어요. 눈으로 볼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으니까요.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나중에 사진을 보며 어떤 곳이었는지, 어떻게 아름다웠는지 조금이라도 기억을 살릴 수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 사진도 안 찍어놓으면 나중에 이곳을 떠올릴 때 떠오를 거라고는 '시간에 쫓겨 급히 둘러보고 나왔다' 정도일 것이 뻔했거든요. 어두워서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우면 조명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그냥 컴컴해지는 곳이었으니까요.



낮에 왔으면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천천히 잘 둘러보았을 거에요. 이렇게 잘 정비된 곳은 우즈베키스탄 전체에서도 많지 않거든요.



일단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어요.



어두워서 사진 자꾸 흔들리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자꾸 사람들까지 보기 싫게 찍히고 있었어요. 이건 아마 마음이 그때 정말 급했다는 증거일 거에요. 보통은 사람이 화면에서 비켜주기를 기다렸다가 찍는데 이때는 일단 빨리 찍고 보자는 식이었거든요. 예쁘게 찍는다는 생각은 머리에 이미 없었어요. 그저 어차피 제대로 못 보는 곳, 사진으로 기록이라도 남겨놓자는 식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그래서 빨리 사진을 찍으며 안쪽으로 가고 싶은데 그때마다 툭하면 사람이 보기 싫게 찍혔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사진을 다시 찍어야 했구요. 어두워서 사람이 찍힌 것인지 그늘이 찍힌 것인지 분간이 안 되어서 그냥 넘어간 사진들도 있었어요. 이 사진은 후자에 속하는 사진.





여기도 꽤 괜찮았어요. 규모가 매우 크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거든요.



이 모스크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 아름다웠던 것은 바로 모스크 정원에 연못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찍어도 이 정도인데 일찍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 일정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어요. 보통 이유 없이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일이 있기 때문에 여행 일정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오늘 일정에서 그런 것은 없었어요. 굳이 문제를 삼자면 이란 모스크를 간 것과 밥을 먹느라 추가적인 시간이 들어갔다는 것 정도.


'이건 정말 현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여행 일정을 짜지 않은 잘못이야.'


한국인들이 부하라 하루 정도 보고 떠난다는 것만 보고 널널하게 부하라 일정을 이틀 잡았어요. 주변에서 부하라를 다녀온 사람들도 한결같이 한나절 보고 기차역에서 기차 기다리는데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는 말을 했구요. 그래서 알고 지내는 부하라 사람이 3일은 걸릴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는데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요. 마치 서양인들은 그리스 아테네를 일주일 걸려도 다 보기 어렵다고 떠들어대지만, 막상 가 보니 한나절이면 충분했던 것 처럼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침부터 부지런히 다녀야 이틀 걸리는 곳이 부하라였어요.


한국인들이 부하라에서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깨달았어요. 그들이 왜 부하라를 하루 만에 다 보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라비하우즈에서 아르크, 그리고 아르크에서 볼로하우즈 모스크 간 후 사모니 공원 적당히 둘러보면 하루 만에 다 볼 수 있거든요. 즉, 하루면 다 본다고 한 사람들은 전부 관광 지구만 둘러보고 왔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해서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저는 부하라를 다 보지 못한 것이니까요.



'이제는 가지가지 하는구나.'


저의 당시 심리 상태를 정말 잘 표현한 사진. 그런데 이때는 사진 흔들린 거 보고 어이없어서 그냥 웃기만 했어요. 대체 어떻게 흔들리면 이렇게 원을 그리듯 사진이 흔들릴 수가 있는지 신기했어요. 이것도 나름 사진 촬영의 기술이라면 기술. 그런데 이런 기술이 원할 때 나와야지, 이렇게 전혀 쓸 이유가 없을 때에 튀어나오는 건 또 뭐야. 이렇게 손을 흔드는 법을 안다면 정말 배워보고 싶을 정도여서 사진이 흔들렸는데도 다시 웃으며 한 장 더 찍었어요.



모스크에서 나와 더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끝났어..."


이제 빨리 걸을 필요도 없어졌어요. 날이 거의 다 저물었거든요. 더 빨리 돌아다녀야 할 이유도 없어졌어요. 어차피 사진 찍기는 이제 사실상 끝났어요. 마지막으로 감도를 마구 높여서 찍는 방법이 아직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조명이 조금이라도 잘 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 후다닥 본다는 것도 의미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적당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저녁 7시. 이곳에 섰어요.



이 건물은 박물관인데 이 시각에 문을 열었을 리가 없었어요.


이제 돌아나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이 정도까지 보았으면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어요. 하지만 저 자신의 거짓된 위로에 저 자신이 속아넘어가지 않았어요.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다른 곳들처럼 안에 볼 거 없을 거야'라고 자신을 속이고, 컴컴해서 안 보이는 것은 '밝아도 별 볼 일 없을 거야'라고 넘어가며 돌아다닐 수도 없었어요. 게다가 이곳은 조금 외진 곳에 있어서 택시를 잡는 것도 고려해야 했어요.





"돌아가자."


왔던 길을 돌아가는데 아쉬움이 계속 저를 잡아당기며 더 놀다 가자고 졸랐어요. 저 역시 20여 분 만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떠나기 아쉬워서 두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고 있었어요.


이곳에는 아주 오래 전에 조성된 공동묘지도 있었어요. 이것 역시 꽤 볼 만 했어요. 그리고 공동묘지에서 본 풍경도 괜찮았구요.



카메라가 초점을 못 잡았어요. 가뜩이나 어두워져서 어쩔 수 없이 가는데 카메라까지 말썽을 피우자 초점을 잡든 말든 셔터를 눌러서 강제로 사진을 찍게 시켰어요. 그 결과는 당연히 흐리멍텅한 사진. 무엇을 찍으려 해도 초점을 못 잡는 카메라와 초점을 못 잡아서 흐리멍텅하게 찍힌 사진을 보니 그나마 계속 놀자고 조르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었어요.


낙쉬반드 묘소에서 나오니 7시 10분 정도 되었어요. 낙쉬반드 묘소에서 기차역 가는 방법은 오직 택시 뿐. 아까 내릴 때 마슈르트카 기사가 낙쉬반드 묘소에서 부하라 기차역 가는 막차가 끊긴 시간이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어요. 기차역까지 걸어가는 건 절대 불가능했고, 없는 마슈르트카를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기차역 방향으로 걸어가며 차가 지나가면 잡아타기로 했어요.


차가 없어!


차가 옆으로 지나가야 손이라도 흔들텐데 달려가는 차가 한 대도 없었어요. 여기는 부하라 외곽 지역. 집과 건물이 많은 지역도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면 차가 없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었어요. 차가 많아야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차가 많은 게 이상한 상황. 하지만 이상하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제게 중요한 것은 오직 빨리 택시 잡아 기차역 가는 것.


땅으로 해가 떨어지니 어두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어요. 이제 깜깜해서 보이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가로등조차 거의 없어 희미한 별빛이 땅을 비추어주고 있었어요. 이렇게 칠흑같이 어두우니 택시 잡기는 더 나빠졌어요. 가뜩이나 지나가는 차도 없는데 제가 입은 옷도 어두운 색이라 차가 저를 발견하고 세워주기도 나쁜 상황이었거든요.


뒤에 차가 오나 살피며 앞으로 가는데 제 쪽으로 걸어오는 행인이 보였어요.


"택시 어디에 있나요?"


지나가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걸어가다 지나가는 차를 잡아탄다는 건 매우 어려워 보였어요. 정확히 말해서, 뒤에 차가 오나 살펴보며 가는 짓 자체가 쓸모없는 짓 같았어요. 차가 지나가야 차를 잡든 할테니까요.


"앞으로 쭉 가면 택시 있어. 멀지 않아."

"고맙습니다."


알려준 대로 쭉 걸어갔어요. 어둠 속에서 길가에 서 있는 자동차가 보였어요. 그리고 차주인이 차 옆에 서 있었어요. 차주인은 다른 두 사람과 잡담을 하고 있었어요.


"지금 택시 하나요?"

"응. 어디?"

"부하라역, 5천이요."

"에...안 돼. 만숨."

"조금만 깎아주세요."

"만숨이 적정가야."

"그러면 9천숨에 해주세요."

"안 돼. 만 숨."

"아유...딱 천 숨만 깎아주세요. 9천숨에요."

"그래, 타라."


'어쨌든 기차역 가야할 시간은 맞추었네.'


제가 절대 만 숨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론리플래닛 중앙아시아편 지도를 근거로 기차역에서 낙쉬반드 묘소는 멀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틀린 생각이었어요. 낙쉬반디 묘소에서 기차역까지는 꽤 먼 거리였어요.


차에 타자 새 차 냄새가 났어요. 차 내부를 보니 절대 오래된 차가 아니었어요.


"이 차, 새 거에요?"

"응. 새 차야."

"와! 좋은데요?"


확실히 사고가 나면 사람은 부셔져도 차는 멀쩡하다는 지굴리와는 차원이 다른 승차감이었어요. 차가 좋다고 칭찬하자 아저씨 기분이 좋아지셨어요. 아저씨는 자기 차 자랑을 시작하셨어요. 저도 아저씨의 자랑에 맞장구를 쳐 드렸어요. 아저씨와 이런 저런 잡담을 하며 가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 있었어요. 그것은 부하라 기차역과 관련된 질문이었어요.


부하라에는 기차역이 두 개 있다고 지도에 나와 있어요. 하나는 그냥 '부하라역'이고, 하나는 '옛날 부하라역'이라는 역이에요. 그리고 부하라역은 부하라에 없어요. 부하라 근처에 '코콘'이라는 지역에 부하라 기차역이 있어요. 그리고 부하라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도 아니구요. 차로 가면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리는 아니지만, 걸어가려고 하면 꽤 먼 거리에요.


아저씨께서는 부하라 기차역이 부하라에서 왜 그렇게 멀고 엉뚱한 곳에 떨어져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어요. 아저씨께서 알려주신 것을 토대로 여행 후 찾아본 정보를 정리해보면 부하라 기차역이 부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부하라 칸국 마지막 지배자인 알림 칸은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도인 러시아인이 무슬림의 땅인 부하라에 들어오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기차역을 아예 엉뚱한 부하라 인근의 코콘에 짓도록 명령을 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코콘에 있는 '부하라 기차역' 근처에 러시아 귀빈들을 머물게 할 특별한 건물을 지어놓아서 러시아에서 귀빈들이 오면 얌전히 거기에 머무르게 하고 부하라 시내에는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했대요. 하지만 기차역을 부하라에서 먼 곳에 지어놓았기 때문에 자기가 이용하기도 불편했는지, 자기 전용 기차역을 부하라에 건설했어요. 이 지배자 전용 기차역이 바로 '옛날 부하라 기차역'이에요.


택시를 몰고 부하라 기차역으로 가시던 아저씨께서 부하라 기차역 거의 다 와서 차를 잠깐 세우더니 건물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어요.


"저 건물이 바로 지배자가 러시아 귀빈들 머무르라고 만든 건물이야."

"저거요?"


두 번이나 러시아 건물 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며 지나간 역 근처에 있던 건물에 그런 역사적 의미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어요. 그냥 오래되고 러시아식으로 지어져서 '러시아인들과 관련이 있는가 보다'라고 추측만 하며 지나갔거든요. 부하라역은 부하라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주변 설명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도 주요 원인이었어요. 부하라 기차역 주변에 크게 눈에 띄게 생긴 것도 없었을 뿐더러 일반적으로 부하라 기차역에 온 목적은 부하라 시내로 가거나 부하라를 떠나기 위해서이지, 기차역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아니니까요.


아저씨께서 기차역 앞에 택시를 세워주셨어요. 시각을 확인해보니 7시 30분쯤 되었어요. 기차역에는 8시 30분 정도에 들어가면 되니까 아까 그 건물에 갔다 올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어요.



두 번이나 무심결에 지나친 그 건물. 만약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부하라에 도착한 날 아침에 여기를 들렸을 거에요.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그냥 기차역과 관련 있는 건물이거나 행정 관청 정도 되는 줄만 알았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에 불이 켜진 방이 하나 있었고, 주변은 공원이었어요. 야외 식당도 있어서 여름이었다면 지금 이 시각에 카봅을 구워서 팔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보았어요. 그래도 이 건물은 조명이 어느 정도 잘 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감사했어요. 만약 조명이 주변 다른 건물처럼 잘 되어 있지 않았다면 눈으로만 보고 아쉬워하며 돌아가야 했을 테니까요.


건물에서 불이 켜진 곳은 오직 단 한 곳 뿐이었어요. 그곳은 바로 건물 왼쪽 측면의 한 사무실. 혹시 들어갈 수 있을까 해서 사무실로 다가갔어요. 안에는 한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어요. 문은 전부 잠겨 있었기 때문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창문 너머로 본 내부는 평범한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어요'라고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구요.


"안녕하세요."


오른손을 가슴 왼쪽에 얹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제 쪽으로 오셨어요.


"지금 보수중이야."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보자마자 보수중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타슈켄트에서 온 학생이에요. 타슈켄트에서 우즈벡어를 공부하고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좋아해요. 이 건물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이라고 들었어요..."

"들어와."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우즈벡어로 말하기 시작하자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저는 아직 '들어가서 구경해도 되나요'라고 말을 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안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께서는 열쇠를 챙기시고는 제게 따라오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불을 계속 켜면서 어디론가 저를 데려가셨어요.


"구경하고 나와."



어두컴컴한 공간이 밝아지며 모습이 드러났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위해 이 방에 있는 모든 샹들리에를 다 켜주셨어요.


이 글을 쓰며 어떻게 그때 그 기분과 생각을 이야기해야 할 지 감도 안 와요. 여기까지 오는 길에 우즈벡어를 안다는 사실 하나로 이득을 많이 보아왔어요. 사람들과도 쉽게 대화했고, 쉽게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친해져서 도움도 많이 받았구요. 이번도 마찬가지. 말이 통했기 때문에 안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게다가 할아버지께서는 오직 저만을 위해 샹들리에를 모두 켜 주셨어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유적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오직 저만을 위해 모든 실내 조명에 불이 다 들어왔어요. 게다가 이 공간을 혼자 마음껏 구경하고 나오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정말로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제일 안쪽에는 단상이 있었어요.



단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어요.



한참동안 단상 위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단상에 올라가서 보니 느낌이 달랐어요.


다시 부하라에 온다 하더라도 이 건물은 또 들어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벽 사진을 전부 다 찍고, 작은 방으로 갔어요. 여기 역시 샹들리에가 다 켜져 있었어요.




여기 역시 모든 방향으로, 그리고 모든 벽을 사진으로 다 찍고 한참동안 감상했어요. 이 방을 감상하며 외우기 위해 노력했어요. 본 벽을 또 보고 자세히 보고 몇 번씩 보았어요. 부하라에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르는데, 이곳은 다시 부하라에 온다고 해도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인 곳. 하지만 이곳이 있기에 부하라역이 왜 엉뚱한 곳에 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본 모든 것을 다 외우고 싶었어요. 눈으로 보며 머리 속에서 따라 그려보며 방의 모습을 머리 속에 최대한 그대로 남기기 위해 노력했어요.


방을 충분히 감상하고 나왔어요.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부하라역으로 돌아갔어요.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았어요. 하루...부하라에서 하루만 더 있었다면...처음 오자마자 숙소 잡고 바로 부하라 칸국 여름 궁전을 갔더라면...첫날 낙쉬반드 묘소라도 보고 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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