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06 우즈베키스탄 파르고나

좀좀이 2012. 10. 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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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문제 없이 오늘 하루 일정이 잘 끝났다고 생각하며 눈을 붙였어요. 오늘 마지막 일정은 파르고나 Fergana 에서 숙소를 찾는 것. 이것만 잘 끝나면 일단 오늘 일정은 모두 아주 잘 완수한 것이었어요. 내일은 파르고나에서 일어나 파르고나를 보고 안디잔으로 넘어갈 계획이었어요. 오전에는 파르고나를 보고, 오후에는 안디잔을 본 후, 안디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타슈켄트로 가면 타슈켄트를 기준으로 우즈베키스탄 동부 도시들은 대충 잘 본 것. 파르고나 주변에는 파르고나 계곡 (페르가나 계곡)이 있고, 이 동부 지역에 '나만강'이라는 도시가 있기는 했지만 여기는 이번 여행 일정상 생략했어요. 여기까지 다 둘러보려면 아무리 동부 도시들이 가까운 거리라고 해도 시간이 더 필요했거든요.


일단 코칸드 일정을 잘 끝냈기 때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이 버스의 종점은 제 목적지인 파르고나. 버스에 타니 잠이 슬슬 밀려왔어요. 도중에 내려야 한다면 차장에게 부탁하고 자면 되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진짜 종점 도착해서 차장과 운전기사가 내리라고 할 때 내리면 되었으니까요.


잠깐 눈을 붙였다가 얼핏 깨었어요. 버스가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여기 어디에요?"

"양기 바자르."


사람들은 빨리 출발하자고 버스 기사와 차장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어요. 버스 기사와 차장은 한 명이라도 더 버스에 집어넣으려고 노력중이었어요. 버스에 사람이 없어서 버스 기사와 차장이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버스에는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정말 우겨넣고 쑤셔넣는 지경인데도 둘이 버스 밖에 나가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노력중이었어요. 더 황당한 것은 이 파르고나행 버스에 탈까 하던 사람들도 버스에 사람이 우겨넣은 듯 꽉 찬 것을 보고 모두가 발길을 돌려 넥시아를 향해 가고 있었다는 것. (참고로 우즈벡에서 장거리 택시는 보통 '넥시아'라고 합니다. 이유는 넥시아 승용차로 장거리 택시 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결국 제가 눈을 뜬 후 한 명도 더 못 태웠어요. 진심으로 버스 기사와 차장은 버스에 사람을 더 태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한 명이 타려고 했었는데 버스 난간에서 위로 도저히 못 올라가서 넥시아로 갔어요. 어떻게 밀고 쑤셔들어가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 하는 것을 보니 그냥 어이가 없었어요.


별로 먼 거리도 아닌데 이렇게 코칸드 양기 바자르에서 시간을 한참 끌어버리는 바람에 파르고나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밤을 샌 것처럼 보내고 여행을 시작해서 버스에서 잠을 잤는데 정말 실컷 잔 것처럼 잤어요.


파르고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밤 8시 30분. 파르고나에 도착한 첫 소감은


왜 이렇게 어두워?


이 동네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동네야? 거리가 온통 깜깜했어요. 게다가 식당도 보이지 않았어요. 이 시각에 먹을 수 있는 메뉴라고는 무조건 카봅 (샤슬릭). 타슈켄트에서 이 시각에 카봅 파는 가게는 하나 정도는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하나도 없었어요.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어요. 파르고나에서 내린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모두 사라졌어요. 버스 터미널에는 저 혼자 덩그러니 남아 버렸어요.


멀리 불이 켜진 식당이 보여서 그쪽으로 갔어요. 거기도 문을 닫고 있었어요.


"호텔 어디 있어요?"

"저쪽으로 가면 하나 있어."


그렇게 지옥이 시작되었어요. 파르고나 시내 중심가를 여기 저기 다 걸어다녔어요. 하지만 호텔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홈스테이에 전화를 걸어 보았어요. 론니플래닛에 세 곳이 나와 있었는데 세 곳 다 뭐라고 러시아어로 뭐라고 말하더니 바로 끊어버렸어요. 그러면 남는 호텔이라고는 아시아 호텔과 지요라트 호텔. 아시아 호텔은 엄청나게 비쌌고, 지요라트 호텔은 공사중이라고 했어요.


컴컴한 밤길을 헤맸어요. 지요라트 호텔은 혹시 숙박비가 싸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지요라트 호텔을 찾아다녔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요. 다른 호텔은 없나 길을 걸어다녔지만 역시나 없었어요. 게다가 진짜 문제는


나 지금 어디 있는 거야?


한 시간 넘게 거리를 헤매다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문제를 알게 되었어요. 지도를 보며 돌아다녔는데 한 시간 넘게 돌아다니도록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단 한 번도 정확히 안 적이 없다는 것. 이러니 길을 못 찾죠. 이런 어이없는 이유가 발생한 결정적 원인은 거리가 너무 어둡다는 것이었어요. 밤이라 어두운 것은 당연한 것. 하지만 이 도시는 정말로 깜깜했어요. 불이 켜져 있는 거리보다 불이 안 켜진 거리가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 건물들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고, 가로등도 제대로 켜진 것이 몇 개 보이지 않았어요. 거리 표지판을 보아야 내가 어디 있는지 파악이 되는데 어두워서 어디에 표지판이 있는지 찾기도 어려웠어요. 사실 론니 플래닛 지도를 들고 이 어둠 속을 헤쳐나가겠다고 생각한 제가 한심한 것이었어요. 낮이면 지도가 허접해도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지도를 읽어가며 갈 수 있지만, 밤에는 그게 안 되거든요. 론니 플래닛에 수록된 조그만 지도에 모든 길이 다 표시되어 있을 리는 당연히 없구요. 더욱이 자기 취향대로 대충 만들어놓은 론니 플래닛 중앙아시아편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데다 몇 번이고 이걸 가지고 욕을 해댄 제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사태였어요. 이건 제가 제 자신에 제대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자아비판을 해도 부족한 일. 그런데 어쩌겠어요. 일은 이미 터졌고 방법은 없구요. 우즈베키스탄 여행 따위야 내가 우즈벡어를 알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산 지 반 년 넘었다고 너무 쉽게 생각한 저의 잘못.


길을 물어보고 싶은데 사람도 안 보였어요.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 무조건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단 한 번도 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안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돌아다닐수록 문제만 꼬일 뿐이었어요. 이러다가는 진짜 밤새 파르고나 걷든가, 어디 몰래 숨어서 노숙할 기세였어요. 물론 몸만 안전히 보호할 수 있다면 노숙을 해도 아무 법적 문제가 없었지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체류중이어서 제대로 된 거주지 등록이 있었어요. 이것이 저와 일반 여행자와 가장 큰 차이. 설령 노숙을 하고 다음날 경찰에게 잡힌다 하더라도 여권에 찍혀 있는 거주지 등록 도장을 보여주면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시작할 때부터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나선 것이었어요.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데 전화하고 있는 현지인이 보였어요. 속으로 '살았다!'고 외쳤어요.


"지요라트 호텔 어디에요?"

"저것인데...그런데 공사중이야."


현지인 아저씨는 혹시 모르겠으니 같이 가 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가 보았어요. 역시나 내부는 공사중. 그래도 방은 있었어요. 문제는 저렴한 방은 다 나갔고, 남아 있는 방은 1박 100달러. 여기에서 자면 우즈베키스탄 여행 자체가 휘청할 상황. 타슈켄트에서 히바까지 비행기 안 타서 경비 크게 절약했다고 좋아했는데, 이 돈을 파르고나에서의 하룻밤으로 다 날리게 생겼어요. 더욱 문제는 설마 1박에 100달러 들겠냐고 달러 자체를 150달러 정도 들고왔다는 것.


머리를 굴렸어요. 남은 선택지는 오직 두 개. 다른 저렴한 호텔을 찾아보든가, 아니면 현지인에게 부탁을 하거나요. 일단 후자를 시도해 보았어요.


"혹시 당신 집에서 하룻밤 잘 수 있나요? 10달러? 20달러 드릴게요. 저는 현재 타슈켄트에 살고 있어서 거주지 등록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우즈베키스탄 물가 및 일반적인 한 달 수입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 부르면 괜찮겠다고 판단했어요. 당연히 공짜로 재워달라고는 안 해요. 이것은 여행자의 윤리상 원래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 적당히 차 한 잔 얻어먹거나 식사하던 사람들에게 먹던 음식 조금 받아먹는 정도라면 몰라도, 이렇게 신세를 지는 것은 정말로 문제가 있는 행위에요. 한국에 가서 한 달 1000달러 송금하면 인생 역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빌붙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니까요. 저는 여행을 간 것이지 민폐끼치며 구걸하러 간 것은 아니었어요.


아저씨는 일단 같이 호텔을 돌아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함께 택시를 타고 간 호텔은 타지마할 호텔. 이 호텔은 Lux 80달러, Semi-Lux 60달러, 그 아래는 40달러. 여기라면 비싸기는 해도 잠을 잘 수 있는 가격이었어요. 문제는 무슨 선수단이 와서 자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 그래서 다시 아저씨와 함께 아시아 호텔로 갔어요.


여기는 120달러!


여기서는 도저히 잘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께서 너무 비싸다고 하시며 저를 바라보셨어요.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정말 답이 없는 상황. 지요라트 호텔 가서 사정을 해 보아야 하나? 아니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또 버스 터미널 쪽으로 가서 거기 진치고 있는 택시 기사들하고 하룻밤 집에서 재워달라고 적당히 가격을 흥정해봐? 그도 아니면 진짜로 노숙? 머리 속이 복잡했어요.


"우리 집에 가자."


아저씨께서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같이 택시를 탔어요. 택시는 도시에서 외곽쪽으로 나갔어요. 택시 안에서 아저씨께서는 어디론가 계속 통화하셨어요. 집에 있는 손님방을 치워놓으라는 이야기였어요. 어느 마을에 도착하자 아저씨께서는 제게 택시에서 내리라고 하시고, 택시 기사에게 5천숨을 주셨어요. 택시 기사가 8천숨 달라고 조르자 1천숨 더 주고 내리셨어요.


"들어와."


집에 들어갔어요. 아저씨께서는 제게 대문 옆에 있는 그네처럼 생긴 흔들 의자에 앉으라고 하시더니 포도 한 송이를 가져와 제게 주셨어요. 아저씨께서는 그 포도가 자기 집 정원에서 나는 포도라고 하셨어요.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아저씨께서는 러시아 쪽과 관련된 사업을 하시는 분이시고, 이분의 형은 한국에서 일하고 계시다고 하셨어요. 포도를 먹으며 아저씨와 이야기하는 동안 아저씨의 아내분께서 손님방을 치우고 잠자리를 만들고 계셨고, 그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제 주위를 왔다 갔다 했어요.


문 옆 손님방이 정리가 되자 아저씨께서는 제게 들어가서 쉬라고 하셨어요. 아저씨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오늘 것 기록하고 자야지."


항상 여행에서 그래온 것처럼 여행 기록을 남겼어요. 이것을 얼마나 잘 쓰느냐가 여행기의 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특히 저처럼 글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 기록에 따라 글의 질이 크게 좌우되더라구요. 그래서 최대한 집중해서 쓰려고 했지만...


도저히 졸려서 못 견디겠다.


몇 줄 쓰지도 않았는데 너무 졸렸어요.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몇 번 쓰다가 졸다가 했어요. 게다가 이날은 숙소를 못 찾은 것 외에는 솔직히 크게 쓸 것이 없었어요. 타슈켄트에서 코칸드로 간 방법과 코칸드 양기 바자르에서 사람들이 미어터지던 것 정도를 제외하니 특별히 꼭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어디 갔는지는 사진으로 이미 다 찍어놓았구요.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만 하는 사건이라든지 강렬한 느낌 같은 것이 없는 밋밋한 하루였어요. 졸려서 자세히 쓰기 매우 귀찮았구요. 글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드는 것도 없는데 졸려서 머리 반은 이미 작동을 멈춘 상태. 그래서 대충 마무리짓고 잤어요.


다음날 아침. 너무 밝아서 눈을 떴어요.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굳이 이 시각에 일어나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방에 햇볕이 직선으로 쏟아져 들어와 눈을 뜰 수밖에 없었어요. 밤새 잠을 너무 깊게 잤어요. 불 끄고 눈 감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부터는 아무 기억이 없었어요. 정말 기절하듯 골아떨어졌어요. 얼마나 졸렸는지 짐을 풀러놓은 것도 아무 것도 없었어요.


"어휴...가관이네."




전날 여행 기록을 남겨놓은 것을 보니 이것을 왜 적어놓았나 싶을 지경이었어요. 아무리 기록으로 남겨놓을 생각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았어요.


"이따 잠잘 때 다시 써야겠다."


이건 정말 종이 낭비. 이 정도는 사진과 기억력으로도 충분히 복원해낼 수 있는 것이었어요. 지난 번 여행이었다면 그 앞의 여행기도 못 쓴 상태였기 때문에 정말 하나 하나 꼼꼼히 기록을 남겨놓아야 했어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여행기를 쓸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이번에는 타슈켄트 돌아가자마자 여행기를 쓸 것이었거든요.


나갈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아저씨께서는 벌써 세수를 하시고 나갈 준비까지 다 끝내셨어요. 아저씨께서는 자기 집 정원을 구경시켜주셨어요. 집 안에는 포도 나무, 석류 나무, 살구 나무가 있었어요.


"우리 부모님께 인사드릴래?"

"예."


아저씨의 부모님께서는 아침 식사를 막 마치신 후이셨어요. 제가 인사를 드리자 옆에 와서 앉으라고 하셨어요. 제가 옆에 앉자 아저씨의 어머니께서 논과 집에서 자란 과일들, 초콜렛과 사탕, 차를 내오셨어요.


"고맙습니다."


논은 그냥 삼키기에는 너무 빡빡했어요. 그래서 차를 마셔서 넘기거나 포도를 같이 입에 집어넣어서 삼켰어요. 포도와 같이 먹는 논도 의외로 매우 맛있었어요. 아침을 먹으며 간단한 대화를 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아저씨를 따라 다시 집 밖으로 나왔어요. 동네는 사진으로 찍지는 못했지만 너무 아름다웠어요. 길 옆 물길에는 정말로 투명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아저씨는 동네 주민분들께 인사를 하며 버스 정거장으로 갔어요. 거기에서 택시를 잡더니 제게 타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내린 곳은 시장 근처였어요. 아저씨께서는 공사중인 사무실 문을 두드렸어요. 그러자 안에서 인부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어요.


"여기가 내 사무실이야."


아저씨는 공사중인 사무실이 자기 사무실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공원과 시내를 둘러보고 안디잔으로 넘어갈 거라 하고 10달러를 꺼내 아저씨 손에 쥐어드렸어요.


"안 돼, 안 돼. 너는 내 손님이야. 손님에게 돈을 받을 수 없어!"


손에 아무리 쥐어드리려 해도 아저씨는 강력히 거부하며 제 손에 다시 꽉 쥐어주시고는 즐거운 여행 하라고 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


아무리 집에 있던 논과 과일들만 먹고 나왔더라도, 단지 잠만 잤더라도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아저씨의 친절과 호의에 정말 감사해요. 저도 외국인이 와서 '저 잘 곳 없는데 하룻밤만 재워주세요'라고 한다면 절대 쉽게 재워주지는 못 할 테니까요. 밤 늦게 호텔 찾아서 같이 돌아다녀주시고, 자기 집에 재워주셨어요. 게다가 이동을 모두 택시로 했는데 택시비조차 자기 돈으로 내셨어요. 아저씨께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것은 당연한 것.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의 무책임과 부실한 계획으로 현지인에게 하룻밤 빌붙었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현지인들에게 빌붙고 구걸하지 않아도 현지인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많거든요. 어울리는 것과 빌붙고 구걸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 더욱이 저는 우즈벡어를 알기 때문에 빌붙고 구걸하며 친해지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었어요. 현지인에게 빌붙고 구걸하는 것은 여행자의 윤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 스스로 너무 자만하고 방심한 결과, 하룻밤을 현지인에게 빌붙어 넘겼어요. 더 자신에게 용서가 안 되는 것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면서 이랬다는 것이었어요. 정말 모르는 나라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고 나름 반 년 넘게 살아서 약간은 안다고 하는 나라에서 이렇게 되었으니 정말 반성해야 했어요.


문제는 오늘 안디잔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이었어요. 안디잔은 코칸드, 파르고나보다 정보가 더 없는 곳. 저 역시 이곳을 갈 지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했어요.


"안디잔은 저렴한 숙소가 하나는 있겠지."


먼저 알 파르고니 공원으로 갔어요.



저쪽에 보이는 것은 시장. 저 시장 근처에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와 택시들이 있어요.







이렇게 보면 참 아름다운 공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온통 공사중 투성이였어요. 어제는 깜깜해서 잘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밝아서 너무나 잘 보였어요. 이 도시 자체에 크게 볼 것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도시였어요. 무언가 큰 특징이나 볼 것이 있는 도시라기 보다는 그냥 예쁘장하고 이곳이 페르가나 계곡으로 가는 입구라는 것 정도. 그렇게 크게 볼 것이 없는 도시라 잠만 자고 대충 둘러보고 안디잔으로 떠날 계획을 세운 것이었어요. 이런 도시인데 도시가 온통 공사중, 보수중이었어요. 내년이 되면 꽤 예쁜 도시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어요.




정말 이곳을 제외하면 별로였어요. 그렇게 크게 볼 것은 없었어요. 한 가지 매우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었어요.




물이 정말 풍부해 보였어요.


전날 밤에 여기 저기 마구 돌아다녔고, 아침에 보니 온통 보수중에 공사중이라 그냥 빨리 안디잔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시장으로 갔어요.



시장 근처에 버스 정거장이 있었어요. 여기에 타슈켄트 이포드롬 시장 가는 버스도 있었어요.


"어디 가?"

"안디잔!"

"여기에 없어! 저기로 가!"


버스에 타라고 부른 차장에게 제가 안디잔으로 간다고 하자 차장은 시장을 넘어가야 안디잔행 버스가 있는 버스 터미널이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이곳이 시장.





정말 흔한 우즈베키스탄의 시장이었어요.



우즈벡어로 밭은 poliz 라는 말도 있고, dala 라는 말도 있어요. 그런데 둘이 무엇이 다른지 아직까지도 잘 몰라요. 대충 짐작컨데 poliz에서는 주로 수박, 멜론, 호박을 키우고, dala에서는 벼, 밀 같은 것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참고로 우즈벡식 과일 및 야채 분류법에서는 수박, 멜론이 호박과 같은 분류에 들어가요. 그리고 이 셋 - 수박, 멜론, 호박은 야채도 과일도 아닌 별도의 집단으로 분류해요.



"어휴...파리 꼬인 거 봐라."


아침을 안 먹었기 때문에 케이크 같은 것을 사서 요기를 할까 하고 다가갔는데 벌레가 엄청나게 꼬여 있었어요. 처음에는 파리인 줄 알았어요.



"헉...벌이잖아!"


저 케이크에 잔뜩 꼬여 있는 것은 파리가 아니라 벌이었어요. 케이크에 파리가 꼬여 있는 것은 흔하게 보아왔지만, 벌이 꼬여 있는 것은 처음 보았어요. 그것도 적당히 몇 마리가 아니라 아주 떼거지로 잔뜩 꼬여 있었어요. 케이크를 하나 사기는 고사하고 다가가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였어요. 저기서 태연히 서 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어요. 저기 서 있는 케이크 장수와 사람들이 예전 전국 노래자랑에 온 몸에 벌을 붙이고 나온 사람 같았어요. 벌이 얌전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윙윙 날아다니는데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었어요.



이렇게 보면 매우 한적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이곳은 바로 시장 근처.



간단한 파르고나 구경이 끝났어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안디잔행 버스나 마슈르트카를 찾아보았어요. 안디잔행 마슈르트카가 한 대 있기는 했는데 사람이 잔뜩 타서 제가 탈 자리가 없었어요. 제가 버스 터미널에서 이 마슈르트카를 발견했을 때, 이 마슈르트카는 문을 탁 닫고 안디잔을 향해 출발했어요.


"안디잔?"


역시나 여기도 택시기사가 있었어요. 아니, 없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만요.


"안디잔이요. 얼마에요?"

"8천숨."


8천숨? 이 정도면 정말 저렴한 가격. 타슈켄트 택시비에 비교하면 정말 싼 가격이라 흥정도 하지 않고 바로 택시에 탔어요. 택시 기사는 택시 문을 열어주고 다른 손님을 모아오겠다고 마슈르트카가 몰려 있는 쪽으로 갔어요. 저는 첫 번째 손님. 그래서 앞자리에 앉았어요. 앞자리에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 택시 기사가 순식간에 다른 손님 세 명을 데려왔어요. 나중에 온 사람들은 뒷좌석에 탔어요.


2012년 9월 23일 아침 10시. 넥시아 승용차에 승객 네 명을 채운 택시 기사는 택시에 시동을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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