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쳐 잠들었지만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했어요. 자다 깨어서 눈을 떠보니 창밖에 별이 빽빽하게 많이 떠 있었어요. 은하수를 볼 수 있나 하고 창밖을 내다 보았지만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어요. 창 밖에 떠 있는 별을 감상하다 다시 잠을 청했어요. 그래도 새벽이 되니 그나마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객실이 시원해지기는 했어요. 그래도 이것은 아까 하도 극악으로 더운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원해지고 잠을 청할 수 있는 정도였지, 정말로 시원해서 잠을 청할 수 있는 정도는 절대 아니었어요.
겨우 잠들었다가 또 깨어났어요. 창밖을 보니 동이 트고 있었어요. 그래서 세수하러 화장실로 갔어요.
이것은 대체 어떻게 쓰는 수도꼭지란 말인가!
이 수도꼭지를 사용하는 방법은 사진에 보이는 수도꼭지에서 기역자로 꺾인 부분에 있는 금속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는 거에요. 그러면 물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당연히 나올 곳은 하나 밖에 없어요. 버튼을 눌러야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보고 놀랄 이유는 없어요. 그러나 저렇게 물 나오는 부분에 버튼이 달려 있는 수도꼭지는 처음 보았어요. 당연히 사용하기 매우 불편했어요. 세수 좀 하고 싶은데 한 손으로 수도꼭지를 누르고 있어야하니 당연히 한 손으로만 물을 받아 얼굴에 물을 바르는 고양이 세수 외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피곤한데 얼굴에 물만 치덕치덕 바르고 있으니 정신이 돌아올 리 없었어요. 대체 왜 이렇게 희안하고 팔이 3개 달린 사람이나 편하게 쓸 수 있는 인체비공학적 수도꼭지를 달아놓았는지 의문이었어요. 아예 물을 조금만 쓰라고 이렇게 반인체공학적으로 만든 것일까요?
2012년 7월 1일 새벽 6시 45분. 드디어 부하라 역에 도착했어요.
역에서 나오자마자 달려드는 택시기사들. 이제는 택시기사들이 안 보이면 허전할 지경이에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택시기사들을 물리치는 것이 즐거운 짓은 아니지만요. 계속 부하라 시내로 가냐고 물어보아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에 간다고 했어요. 그러자 한 택시기사가 자기가 투르크메니스탄 국경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헀어요.
"국경까지 너희 둘만 태워서 10만숨!"
"5만이요."
일단 반으로 후려쳤어요. 참고로 중앙아시아에서 택시는 차를 한 대 빌리는 개념이에요. 우리나라 택시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미묘하게 달라요. 중앙아시아에서는 어떻게든 4명 꽉 채워서 택시기사가 가려고 해요. 일반적으로 4명을 꽉 채워야 출발하기 때문에 가격을 부를 때도 4명을 꽉 채웠을 때 한 사람의 가격을 처음에 불러요. 그래서 처음 가격이 얼마인지 - 즉 나 혼자 타고 가는 가격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 태우고 가는 가격인지 확인을 해야 해요. 여기서 나오는 가격들은 당연히 저와 친구의 가격을 합쳐 한 차를 빌리는 가격이에요.
"8만숨에 해줄게."
"6만숨이요."
"그러면 한 명 더 태워서 7만숨."
그래서 그냥 8만숨에 국경까지 택시 타고 가기로 했어요. 역에서 기다려봐야 한 명이 더 올 거 같지 않았거든요. 예전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해 아제르바이잔이나 이란으로 가는 관광객이 많았다면 그냥 기다리겠다고 하겠는데, 비자법이 바뀌어서 이제 그렇게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게다가 파라브 국경이 아니라 투르크멘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카라칼팍 자치공화국에 있는 다쇼구스 Dashogus 국경이라면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넘어가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투르크멘인들이 조금 있으니 기다려보겠는데 제가 있는 곳은 부하라. 대사관 앞에서 기다리며 만난 투르크멘인들 중 부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어요.
택시에 타자마자 택시기사는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기는 부하라 사람이 아니라 부하라 주변 시골 사람이라고 했어요. 택시기사 아저씨께서는 부하라 시내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고 했어요. 그 사람들은 관광객을 너무 등쳐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여러 가지 사례와 사건들을 이야기해주셨는데 몇 개는 제대로 이해하고, 몇 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하라 시내에서 택시기사들이 국경까지 데려다준다고 하고서는 다른 곳에 있는 국경까지 가는 택시 정거장까지만 데려다준다는 것. 택시를 타고 지나가며 그 아저씨가 알려준 '국경까지 가는 택시 정거장'을 보았어요.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택시 정거장은 운전자 쪽에 있었고, 저는 조수석에 타고 있어서 찍지는 못했어요.
택시기사 아저씨는 투르크메니스탄 멜론이 그렇게 맛있다고 극찬하셨어요. 부하라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알아주는 좋은 멜론이 생산되는 곳이에요. 그런데 그런 부하라 사람이 인정할 정도의 멜론이라면 정말 믿고 먹어도 되는 것이죠.
정말 인상적이지 못한 황량함이었어요. 이런 풍경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실컷, 아니, 질리도록 볼 수 있는 풍경이에요. 도로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전혀 놀랄 것이 못 되었구요.
아침 9시. 국경에 도착했어요. 국경에는 환전상 한 명 외에 아무도 없었어요.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내려주자마자 한탕 더 뛰기 위해 차를 급히 몰아 돌아갔어요.
즉, 파라브 Farab 국경은 택시기사들도 버린 국경이에요.
지금까지 육로로 통과한 국경들에는 항상 택시기사들과 환전상이 진을 치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택시기사는 고사하고 승용차도 한 대도 안 보였고, 환전상은 딱 한 명 있었어요. 환전상이 우즈베키스탄 숨을 투르크메니스탄 마나트로 바꾸라고 하는데 환율이 너무 안 좋아서 하나도 바꾸지 않았어요. 어차피 투르크메니스탄 입국하면 거기도 환전상이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게다가 일반 여행자라면 우즈베키스탄을 나가는 순간 우즈베키스탄 숨은 종이조각에 불과하겠지만, 우리는 다시 우즈베키스탄에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숨을 안 바꾸는 게 유리했어요.
이제부터 긴장되는 국경 심사의 시작.
먼저 우즈베키스탄 출국 심사. 출국시 작성하는 세관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했어요. 우리가 우즈벡어를 몇 마디 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매우 좋아졌어요. 어디에서 우즈벡어 배웠냐, 얼마나 배웠냐, 우즈베키스탄 좋아하냐 등등 우리가 우즈벡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것과 관련해 이것 저것 물어보다 세관신고서만 받아 입력하고 그냥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국경은 정말 쉽고 별 것 없이 통과할 수 있었어요. 짐조차 풀러보지 않았고, 짐과 몸 모두 엑스레이 검사조차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좋은 여행 하고 오라고 하며 손까지 흔들어 주었어요.
국경을 나서자 군인이 우리를 제지했어요. 이유는 승합차 타고 가라는 것이었어요. 잠시 후, 승합차가 와서 승합차를 타고 투르크메니스탄 영토까지 갔어요. 승합차 탑승 비용은 1인당 500숨.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에 도착하자 드디어 투르크메니스탄 군인이 우리에게 여권을 달라고 했어요. 군인은 비자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초소로 여권을 가져갔어요.
'이제부터 흡연 금지, 해바라기씨 금지의 땅, 게다가 감시가 엄청나기로 유명하고 입국도 최악으로 힘든 투르크메니스탄이구나.'
여권을 건네주고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그냥 황량한 땅이었어요. 별로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어요. 당연히 이 지역에서는 사진 촬영 불가. 국경은 그저 닥치고 빨리 조용히 통과하는 게 최고에요. 한 번 잡히기 시작하면 국경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골치 아프거든요.
군인이 여권을 초소에 가져가더니 저를 불렀어요. 그래서 초소에 갔더니 제 얼굴을 한 번 확인하고 여권 2개를 돌려주었어요. 친구는 확인도 하지 않았어요. 초소에서 여권을 돌려받고 걸어가려는데 투르크메니스탄 군인도 우리를 제지했어요. 차 타고 가라고 했어요.
잠시 후. 승합차가 왔어요.
"얼마에요?"
"1마나트."
"마나트 없는데 달러로 되나요?"
운전기사는 그래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2명에 1달러 내고 국경 심사대까지 승합차 타고 왔어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만약 혼자 1달러 낸다면 1마나트를 거슬러주지 않을까 해요. 어쨌든,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까지 걸으면 꽤 되는 거리인데, 저희는 승합차 두 번 타고 갔어요. 지루한 길을 뙤약볕 다 맞아가며 걷지 않아서 좋았어요.
이제 드디어 대망의 투르크메니스탄 입국 심사. 이때부터 긴장되기 시작했어요. 중앙아시아 5개국을 다녀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우즈베키스탄 입국심사가 가장 까다롭고 짜증난다고 하던데 투르크메니스탄은 일단 비자 받기에서 우즈베키스탄과는 서울과 제주도 거리 만큼의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에 당연히 긴장이 되었어요. 더욱이 만에 하나의 잘못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입국 거부 당하면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제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2회 입출국 가능 비자인데 그 중 1회는 타지키스탄을 다녀오며 사용해서 여기서 거부 당하면 아제르바이잔은 비자가 있어도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어요. 저는 반드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요.
입국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투르크멘어로만 되어 있었어요.
"이거 알 거 같기는 한데..."
투르크멘어 알파벳을 읽는 방법은 알고 있었어요. 투르크멘어에서 특히 조심해야할 거라면 y가 있어요. y는 '이'가 아니라 '으'에요.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투르크메니스탄의 도시 Mary를 '마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틀린 것이에요. Mary는 '마르'에요. 우리가 '이'로 읽는 'y'는 투르크멘어에서 'ý'에요. 그리고 우즈벡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투르크멘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막상 종이를 받아드니 알 수 있을 거 같기는 한데 대체 알 수가 없었어요. 결국 사무실에 찾아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직원이 도와주어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했어요.
이제 입국심사를 받아야하는 순간. 입국심사대가 있는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란인 트럭기사들이었고, 터키 트럭기사도 몇 명 있었어요. 그리고 트럭기사가 아닌 사람은 우리 둘과 우즈베키스탄 여권을 가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쌍이 전부였어요.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은 두 명. 둘 다 아주 고압적인 자세였어요. 이란인들이 여권을 모아 한 번에 제출해서 줄에 서지도 않은 이란인들이 갑자기 사무실에 들어가서 여권을 받아 밖으로 나가기도 했어요. 한 터키인이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직원에게 여권을 던져주자 뭐라고 하면서 여권을 바닥에 던져버렸어요. 아마 자기 차례가 아닌데 와서 입국심사 받으려고 왔다고 여권을 던져버린 것 같았어요. 터키인은 여권을 주워 맨 뒤로 가서 다시 줄을 섰어요.
드디어 우리 차례.
"중국인?"
"아니요. 한국인이요."
이 지긋지긋한 중국인이냐는 질문. 당연히, 그리고 당당하고 확실히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경유?"
"예. 경유요."
직원이 투르크메니스탄 경유비자를 찾기 위해 여권 페이지를 넘기며 다시 물어보았어요.
"이란?"
"아니요. 아제르바이잔이요."
대사관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경유비자라면 으례 이란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듯 했어요. 그도 그럴만한 것이 우즈베키스탄에서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경우나, 다른 나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수출하는 경우나 이란을 통해 가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우즈베키스탄은 리히텐슈타인과 더불어 세계에서 둘 밖에 없는 이중내륙국.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이란에 있기 때문에 이쪽으로 경유비자 받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트럭기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리 같은 여행자들도 언제 뜰 지 모르는 배를 기다려야 하는 아제르바이잔보다는 육지로 이어져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이란으로 나가는 것을 더 선호하구요.
참고로 Lonely Planet에 나온 설명을 보면, 투르크메니스탄에 경유비자로 들어왔는데 제 날짜에 정해진 국경으로 출국하지 못했을 경우, 아슈하바트로 돌아가서 초과한 1일당 200달러씩 벌금을 물고 비행기로 출국할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아제르바이잔으로 나가는 것은 그만큼 여행자에게는 도박이자 심리적 부담이 큰 방법인 것이죠.
우리 여권과 비자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직원은 옆 창구에 가서 돈을 내라고 지시했어요. 그래서 옆 창구에 가서 12달러를 내자 영수증을 주고, 그것을 가지고 입국심사대에 가자 여권을 돌려주었어요. 여권을 펼쳐보니 투르크메니스탄 비자에 입국 도장이 찍혀 있었어요. 우리가 입국세를 내러 간 사이에 우리 비자에 도장을 찍어놓은 것이었어요.
입국심사 사무실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짐검사를 한 번 받았어요. 세관에서 검사하는 것인데, 가방에 옷가지 밖에 없고, 카메라 가방에도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어서 그냥 좋은 여행 하라고 하며 웃으며 우리들을 보내주었어요.
드디어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