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식당, 카페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 제육덮밥 맛집 - 자매분식

좀좀이 2018. 12. 14. 19:00
728x90

주상복합 아파트란 무엇인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인 서소문아파트를 쭉 둘어보았어요. 복도 계단을 따라가 올라가보기도 했어요. 일단 건물 자체를 보기는 했어요.


그러나 과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주상복합아파트란 무엇인가요. 아랫층은 상가, 윗층은 거주시설로 구성된 아파트를 주상복합 아파트라 하죠. 주상복합 아파트를 제대로 봤다고 하기 위해서는 단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계단 한 번 올라가본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오! 그건 아니오!


집 내부는 당연히 들어가볼 수 없어요. 이건 전시관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니까요. 민폐 끼치지 않고 계단 조용히 올라갔다 내려오는 정도는 용납될 수 있지만, 집 안에 들어가는 건 절대 안 되요. 설령 문이 조금 열려 있다 한들 절대 그 안을 향해 눈을 향해도 안 되구요. 이건 도덕적 문제를 떠나 범죄거든요. 그래서 집 내부는 사실 볼 방법이 없어요. 그렇지만 1층 상가라면 달라요. 정 안 되면 1층 상가 중 슈퍼마켓에 가서 음료수라도 사는 방법을 통해 1층 상가를 조금이라도 구경해볼 수 있어요.


밥 먹어야지. 나 아침, 점심 다 안 먹었어.


집에서 서소문아파트까지 오는 동안 먹은 거라고는 오직 커피. 아침에 눈 떠서 커피, 그리고 간간이 계속 커피, 커피, 커피. 믹스커피를 계속 타서 마시다가 집에서 의정부역 가는 길에 이디야 커피 들려서 또 커피. 커피만 마셔대었어요. 밥은 아무 것도 안 먹었어요. 밥을 먹기는 해야 했어요. 다행히 서소문아파트 1층에는 식당이 몇 곳 있었어요. 여기에서 분식집 가서 밥을 먹기로 했어요. 이러면 1층 상가도 나름대로 구경하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점심시간 끝나서 문 닫았구, 이따 5시에 와요."

"예."


아, 망했다.


한 곳은 '임대' 라고 인쇄된 종이가 문에 붙어 있었어요. 다른 한 곳은 고깃집. 분식집이라고는 자매분식 뿐이었어요. 여기 말고는 다 카페. 주변에 경찰서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어서 카페가 여러 곳 들어와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밥을 어디에서 먹어야 합니까?


계획이 틀어졌어요. 경찰서, 국가인권위원회 근처에 분명 맛집이 많기는 할 거에요. 공무원 입맛 까다로운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거든요. 경찰도 공무원, 국가인권위원회도 공무원. 경찰은 힘들어서 잘 먹어야 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은 자기들 인권 챙기느라 맛있는 거 먹으려 들 테니 이 둘의 교집합으로 인해 맛있는 것이 여기저기 있을 게 분명했어요.


느낌 없음. 전혀 없음. 맛집 같아 보이는 곳 안 보임.


서소문아파트 및 경찰서, 국가인권위원회 주변을 한 바퀴 뺑 돌아봤어요. 느낌이 안 왔어요. 느낌이 오는 가게가 있기는 했어요. 돈까스 가게였어요.


나는 뭐 맨날 돈까스만 먹냐?


돈까스를 요즘 유독 자주 먹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자주 먹기도 했구요. 진짜 돈까스만은 먹고 싶지 않았어요. 모처럼 제육덮밥이 먹고 싶었어요. 진짜로 제육덮밥이 먹고 싶었어요. 제대로 된 '쌀밥에 고기'를 안 먹어본지 꽤 되었거든요. 제육덮밥을 한 번 복용해줘야 할 때가 되었어요. 그러나 제육덮밥을 잘 하게 생긴 가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술집만 잔뜩 보였어요. 밥집이 있기는 했어요. 경찰서 쪽문 바로 옆에 있는 집이었어요.


저기는 자리 때문에 장사가 되는 것 아닌가 사료됨.


보자마자 견적이 딱 나왔어요. 이건 맛보다는 일단 위치가 너무 좋았어요. 경찰서 쪽문 옆 식당. 이건 맛 때문이 아니라 경찰서 주변에서 후딱 때워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서 어떻게든 장사가 되는 집일 것 같았어요. 맛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위치가 너무 먹고 들어가서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마 느낌이 오는 집은 점심시간 지났다고 문을 걸어잠갔어요. 문을 열고 장사하는 집은 정말 여자들이 '오빠, 나 아무리 오빠를 좋아하려 해도 오빠가 이성으로 안 느껴져' 라 말하는 수준으로 들어갈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여기를 벗어나서 시청으로 가자니 거기도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어요. 최악의 경우 을지로나 가야 뭐 들어가서 먹고 싶게 생긴 식당이 보일 수도 있었어요.


느낌 없음. 전혀 없음.

느낌이 없다. 전혀 들어가고 싶지 않다.

느낌이 없소. 대충 들어가면 분명 후회할 것이오.

느낌이 안 옵니다. 편의점을 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됩니다.

느낌이 안 와요. 이건 먹을 곳이 없어요. 점심을 먹어야 하기는 하는데 막막해요.


결국 다시 자매분식 앞으로 돌아왔어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 제육덮밥 맛집 - 자매분식


할아버지께서 가게 앞에 나와 계셨어요.


"여기 옆 가게 지금 밥 먹을 수 있나요?"

"거기 임대 붙였잖아요."


5시까지는 한참 남았어요. 5시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을만한 것을 찾아 무턱대고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어요. 그 길은 제가 한두 번 걸어본 게 아니에요. 그 길에 들어가보고 싶은 식당, 먹고 싶은 것 아무 것도 없어요. 을지로라면 모르겠지만 종로 길에는 진짜 없어요. 가보고 싶은 데는 이미 다 가봤고, 막 또 가고 싶다고 감동한 식당도 없었어요. 그 길에서 제가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오직 하나 - 아마스빈 뿐이었어요. 아마스빈은 타로 알갱이가 들어가 있기는 하나 식사가 될 수는 없었어요. 타로알갱이가 무슨 고농축 탄수화물 알갱이 폭탄도 아니구요.


"그냥 들어와요."


할아버지께서 식당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막 와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장사 시간이 아닌데 덤으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진짜 운이 좋았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비록 영업시간은 아니나 지금 한 명을 위해 요리하고 있으니 그냥 제 것도 만들라고 하신 것이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제를 조금 불쌍하게 보신 것 같았어요. 사실 그 시간에 그 동네 식당들 거의 전부 문을 닫고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즉, 제가 밥을 먹을 곳이 아무 곳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걸 알고 계셨던 것이었어요. 얼마나 답이 안 나왔으면 5시에 문 연다는 그 가게 앞으로 다시 돌아왔겠어요.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자매분식


확실히 1층도 천장이 매우 낮았어요.


"여기 카드 되나요?"

"거기 벽 보세요."


자매분식 메뉴


5000원 이상 카드 결제 가능하고, 1인 손님은 점심시간 12시 30분 이후에 식사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어요.


'아하, 어쨌든 5천원만 넘기면 카드 된다는 말이지?'


가방 맡기고 돈 찾으러 다녀와야 하나 고민했는데 답은 간단했어요. 5000원 이상 주문하기만 하면 되었어요.


"제육덮밥이랑 김밥 주세요."


마음이 급해서 제육덮밥 숫자를 잘못 보았어요. 그래서 김밥에 제육덮밥을 주문했어요. 주문후 한참 지나서야 제육덮밥만 주문해도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제육덮밥 가격은 6500원, 김밥은 3000원이었거든요.


"여기 몇 시에 쉬어요?"

"여기는 3시부터 5시까지 쉬어요. 새벽 6시부터 문 열거든요."

"그렇게 일찍 열어요?"

"조금만 늦게 열어도 막 전화와요. 빨리 문 열어달라구요."


제육볶음


헉! 이거 왜 이렇게 많아!


계란후라이는 특별히 서비스로 준다고 하셨어요. 계란후라이를 제외해도 양이 무지막지하게 많았어요. 원래 저기에 김치도 더 나와야 했어요. 게다가 저는 김밥도 시켜서 단무지도 나와야 했구요. 그런데 너무 많아서 김치와 단무지는 주지 말라고 부탁드렸어요.


김밥


이건 왜 이렇게 두꺼워?


"너무 많으면 김밥은 드시지 마세요. 포장해 드릴께요. 김밥 하나로 남자들 한 끼 식사 되어야 해서 좀 커요."


이건 그냥 큰 게 아니라 왕창 크잖아!


자매분식 김밥


아주 고전적인 김밥이었어요. 속이 꽉 차 있었어요. 쌀에 밥에 야채 쪼가리 몇 개 가느다랗게 들어간 다른 집들 김밥이 아니었어요. 아주 집에서 싸서 만든 김밥처럼 이것저것 골고루 들어가 있고 속이 꽉 차 있었어요.


참기름 마구 바르지 않아 맛이 깔끔했어요. 맛은 수줍게 살금살금 쳐다보는 소녀의 눈길처럼 은은하면서 부드럽고 묘하게 매력있었어요. 자극적이지 않은데 맛있었어요.


제육덮밥


사발에 김이 깔려 있었어요. 여기에 밥을 넣고 제육볶음을 넣고 비벼먹으면 되었어요. 저는 여기에 반찬으로 나온 김도 집어넣었어요.


너무 챙겨주시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양이 무지막지하게 많았어요. 마님이 돌쇠에게 쌀밥을 주셔서 돌쇠가 마님 앞에서 밥을 마구 입에 퍼넣듯 먹었어요. 하도 많아서 그렇게 먹어야만 했어요. 포만감이 느껴지기 전에 다 먹어치우지 않으면 너무 많아서 어찌 감당이 될 양이 아니었거든요.


반찬이 부족하면 말하라고 하셨어요. 소시지 어묵 볶음과 무채를 일부러 잘 배분해서 먹었어요. 홀라당 다 비우면 부족하냐고 하시며 더 채워주실 것 같았거든요. 더 채워주시면 배가 터질 것 같았어요.


자매분식 제육볶음은 상당히 맛있었어요. 일단 자극적이지 않았어요. 단맛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식당들처럼 지나치게 달지 않았어요. 서울에 있는 식당에서 판매하는 제육볶음은 제가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2002년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무지 달았어요. 원래 경기도, 충청도 지역은 제육 볶음을 다른 지역보다 달게 만들기는 해요. 설탕을 퍼넣는다는 소리가 아니라 사과, 배 등 단맛을 내는 과일 과즙을 양념에 섞거든요. 이렇게 해서 단맛이 잘 느껴지게 제육볶음을 만들어요. 그런데 식당 것은 서울에 있는 식당 것이 백종원씨가 간편 레시피 공개하기 전부터 무지 달았어요. 백종원씨가 간편 레시피를 공개한 후에는 식당에서 더 자극적인 맛을 내야 하다보니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달고 짜게 되었구요.


여기는 은은하게 달고, 은은하게 짰어요. 색이 붉기는 하나 맵지는 않았어요. 딱 집에서 건강 챙기라고 만들어주는 음식 같았어요. 상당히 고전적인 맛이기도 했구요. 흔히 말하는 '먹은 후 속이 편한 맛'이었어요.


푹푹 퍼서 입에 계속 집어넣었어요. 다행히 맛이 순해서 양이 많기는 했지만 잘 먹을 수 있었어요. 양도 맛도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순한맛 제육볶음으로 맛이 꽤 뛰어났고, 양은 그냥 최고였어요.


경찰청, 국가위원회 근처에서 제육덮밥 맛집을 찾는다면 서소문아파트 1층에 있는 자매분식 제육덮밥을 먹는 것도 괜찮아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