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2018.12.14 17:55

추운날 억지로 집에서 나온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 복합 아파트를 가보기 위해서였어요.


이런 것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조금만 오래되면 재건축을 하니까요.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건설 경기를 위해 멀쩡한 집을 지었다 부수었다를 반복해야 한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아파트 중 제대로 잘 지어진 아파트는 과연 얼마나 될까 싶거든요. 철근 몇 개 빼먹고, 시멘트에 대충 바닷모래 섞고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여기에 과거에 지어진 아파트는 당연히 내진 설계 같은 것은 되어 있을 리가 없구요. 여기에 온갖 시설도 낡아서 실제로는 살기 매우 불편해요. 오래되면 벽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고, 수도에서는 녹슨 물이 흘러나와요. 수압도 약해지고 하수구도 쉽게 막히구요.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부수고 다시 짓는 수 밖에 없어요. 아예 1000년을 가게 짓겠다고 작정하고 지은 건물이 아니라면요.


"내가 여기를 왜 못 가봤지?"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서대문구 미근동 충정로에 있는 서소문아파트였어요. 이 아파트는 바로 옆에 경찰청이 있어요. 경찰청은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그 앞을 지나가본 적은 아예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서소문아파트 앞을 지나가본 적이 없었어요. 이쪽은 제가 갈 일도 없었구요. 그런데 웃긴 건 정작 시청에서 서울역까지는 꽤 많이 걸어봤다는 것이었어요.


진짜 등잔 밑은 어둡습니다. 거기 있을 줄 몰랐습니다.


호기심에 경찰청 앞으로 걸어가봤다면 서소문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 아파트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 거기!' 라고 외쳤을 거에요.


그러나 나는 '아, 거기!'가 아니라 '앗! 거기?'라고 외쳐야 했다.


한 번만 호기심을 갖고 그 길로 갔다면 봤을 거에요.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길을 안 걸어보았어요. 그래서 제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 거기!'가 아니라 '앗! 거기?'였어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청역으로 갔어요.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했어요. 서소문아파트를 가기 위해서는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가서 경찰서 사거리까지 쭉 걸어가야 했어요. 시청역 10번 출구는 2호선 출구에요. 그래서 2호선으로 환승한 후 10번 출구로 나갔어요.


10번 출구로 나와 쭉 걸어갔어요.


"야, 서울에서는 엄마들이 자식들이 초등학교 갈 때 횡단보도만 건너도 기겁해. 애들이 무슨 횡단보도를 건너냐구."


길을 걷는데 부동산에 관심 많은 친구가 이야기해준 것이 떠올랐어요. 시청역 10번 출구에서 그냥저냥 걸어갈만한 거리이지만, 걸어다니는 것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멀다고 툴툴댈 수도 있는 거리이기는 했어요. 저는 1km 걸어다니는 것 정도는 그냥 걸어다니는 거리라 여겨요. 제가 다닌 초등학교가 집에서 1km 넘는 거리였고, 고학년이 되었을 때 버스가 확 줄어들면서 집에 걸어가곤 했거든요. 중학교때는 아예 버스가 없어져서 1km 넘는 거리를 그냥 걸어다녔구요. 하지만 그게 당연한 것은 아니었나봐요. 그리고 이래서 제가 걷는 것을 잘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대학교 1,2학년 시절 탐라영재관 살 때도 현재 9호선 가양역이 있는 위치부터 5호선 발산역까지 매일 걸어다녔거든요. 그래서 서울에서 초등학교가 아파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가까이 있어야 집값이 잘 오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 웃었었어요. 그런데 이게 농담이 아니라 진짜래요.


길을 따라 쭉 걸어가자 드디어 서소문아파트가 나타났어요.


서소문아파트


서소문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아파트에요.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는 1967년 지어진 세운상가에요. 그 다음은 낙원상가구요. 그러나 이 두 아파트는 현재 더 이상 아파트 기능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 아파트는 1971년에 지어져서 1972년에 입주가 이루어진 서소문아파트에요.


서소문 아파트는 서대문구로 흐르는 만조천을 덮고 물길을 따라 곡선 형태로 지은 아파트에요. 이 아파트가 재건축 바람에서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만조천'이라는 하천 위에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에요. 건축법이 바뀌면서 더 이상 하천부지 위에는 건축물을 세울 수 없게 되었어요. 부수는 순간 그걸로 끝인 거에요. 그래서 그 누구도 이 아파트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있던 것이었어요.


서대문구 서소문아파트


아파트 주변을 걸어다녔어요.


충정로 서소문아파트


서소문아파트는 오진개발이 건축을 담당했대요. 구조는 7층이고, 8동까지 있어요. 이 중 1층은 상가에요.


서소문 거리


7동과 8동 사이에는 이렇게 좁은 뒷길로 이어지는 통로가 하나 있어요.


서소문 골목길


이쪽에 맛집이 많이 숨어 있다는 말이 있어요. 가게들도 노포가 많다고 하구요.


서울 서소문 아파트


'계단 따라서 한 번 올라가볼까?'


서소문 아파트 계단


계단을 보는 순간 예전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방글라데시 절을 찾아갔을 때가 생각났어요. 여기에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당연히 있을 리 없었어요.


서울 아파트


복도에 항아리가 있었어요.


장독


예전에는 아파트 베란다에 김장독 놓지 말라고 했었다지?


이걸 보는 순간, 예전 아파트가 막 지어질 때만 해도 아파트 베란다에 무거운 항아리, 김장독 놓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것이 떠올랐어요. 집 내부가 어떻게 생긴지는 몰라요. 하지만 이 아파트에 오래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집 안에 항아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 초기에는 베란다에 설치하는 장독대와의 전쟁이 벌어졌다고 하니까요. 사실 이런 항아리 보기 어려워진 것은 결정적으로 김치냉장고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일 거에요. 장류를 집에서 담가 먹는 사람이야 도시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김치를 보관하는 항아리는 그보다 더 오래 버텼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러다 러시아 기술을 도입해 김치냉장고를 생산,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에서 항아리가 아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 아파트 -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충정로 서소문아파트


서소문아파트는 확실히 아주 오래된 아파트의 특징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었어요.


가장 먼저 천장이 무지 낮았어요. 천장 높이가 상당히 신경쓰일 정도였어요. 요즘 건물들에 비해 확실히 천장이 엄청나게 낮은 것이 마구 티났어요. 이건 그냥 입구에서 세 걸음만 걸어들어가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점이었어요.


두 번째로 이 아파트에는 4층이 없어요. 오래된 아파트는 4층이 없어요. 숫자 4가 죽음을 의미하는 한자 死와 발음이 같아서 기피하는 문화 때문이에요. 요즘은 이런 것을 찾아볼 수 없지만,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이런 문화가 상당히 강했어요. 아주 오래된 건물은 4층이 아예 없고 3층에서 바로 5층으로 이어져요. 그 다음에 나온 건물은 4층 대신 F층을 사용하구요. 여기는 꼭대기층이 실제로는 7층이나 8층으로 되어 있었어요. 4층이 없고 3층에서 바로 5층으로 이어지니까요.


서울에서 제가 안 가본 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 아파트를 가본 것 자체만으로도 제게는 꽤 의미있는 방문이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아파트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미금동 충정로에 위치한 서소문아파트에요.



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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