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14화

좀좀이 2018. 7. 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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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14화


 이고는 루즈카 집에 갔다. 켈라자야는 활짝 웃으며 서점에 들어오더니 나를 향해 달려와 나를 꼭 껴안으며 지금 너무 기분이 좋다고 외쳤다. 왜 기분이 좋냐고 물어보니 마음이 너무 시원하다고만 말했다. 그때 라키사가 들어왔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가서 책을 펼쳤다. 켈라자야가 너무 들떠서 나한테 달려들어 나를 꽉 껴안았다는 것 말고는 다를 것 없는 아침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였다. 이고에게 혹시 밤에 산책하고 왔냐고 물어보았다. 이고는 그때 안 자고 있었냐고 되물었다. 그건 아니고 상당히 복잡한 꿈을 꾸었는데, 그 속에서 누군가 이 서점에서 나가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무슨 꿈이었는데?"

 "모르겠어. 내가 여럿으로 쪼개지고, 여럿이 모여 내가 되는..."

 "가끔 그럴 때 있잖아. 예지몽 같은 거. 아니면 네가 그때 선잠 들어서 내가 나가는 거 봤거나."

 "그런 거겠지?"

 "뭐 다른 이야기 없어?"

 "어떤 집 안으로 뛰쳐들어가 막 사람을 죽였어. 뭔가 안 보이는 벽이 있어서 수백 개의 칼이 그 벽을 깨부수고 찌르는 상상을 하니까 진짜 그렇게 되더라구. 진짜 나쁜 놈들이었어. 과거에 무지 나쁜 짓을 나한테 저질렀더라구. 그렇게 하는 동안, 동시에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떤 놈이 막 죽이려고 달려드는 거야. 그래서 잘 걸렸다 하고 죽여버렸어. 그러는데 또 한편으로는 말야, 친구가 죽은 것이 떠올라 울컥하며 밤길을 걷고 있었어. 그 친구가 누구 대신 화형당했거든."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고가 순간 눈을 살짝 치켜떴다. 그러더니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개꿈이네. 나는 또 뭐라구. 무슨 특별한 거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


 무슨 꿈인지 알 수 없다. 그 꿈에서 나는 누구였을까? 나는 왜 여럿이 되어 여러 일을 동시에 겪었던 걸까? 꿈 내용도 매우 안 좋았다. 우울하고 암울하고 잔인한 이야기들.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표현이 되지 않는다. 전부 나이고, 전부 똑같이 진행된 사건들. 꿈 속에서 무엇이 진짜였는지도 모르겠다. 다 뒤엉키고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여럿으로 쪼개짐과 동시에 여럿이 모여 내가 되는 꿈. 별 거 아닌 개꿈일 거야. 별 의미있어 보이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잖아. 그런 꿈을 처음 꿔봐서 조금 신경쓰이는 것 뿐이다. 정신없기만 하지, 뭔가 느낌이 안 오잖아. 이런 건 무가치한 꿈이야.


 지금 켈라자야는 안에 들어가서 자고 있다. 라키사는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있다. 아까 켈라자야 행동을 떠올려보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라키사는 절대 내 말을 믿지 않을 거다. 라키사가 들어온 순간 켈라자야를 나한테서 뜯어내었어도 똑같은 오해를 받았겠지. 그랬으면 나를 더 이상하게 바라보았겠지? 차라리 라키사한테 네 말대로 나와 켈라자야가 사귄다고 말해버릴까? 하지만 나와 켈라자야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잖아. 켈라자야의 표현이 격한 것 뿐이지. 걔는 친구가 필요한 거야.



 오늘따라 이고가 일찍 돌아왔다. 켈라자야가 세수하러 물통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라키사는 책을 읽고 있다. 평범한 오전. 조금 후에 우리 모두 같이 점심을 먹을 거고, 점심을 먹은 후 라키사는 집으로 돌아가겠지. 이따 아다비아 병문안이나 다녀올까? 오늘도 보나마나 나한테 돌머리라고 화내고 차라리 나가 죽으라고 소리치겠지. 예전에 내게 알려주던 모습은 아마 거짓이었을 거야. 지금처럼 성질 버럭버럭내는 것이 아다비아 원래 모습일 거다.


 "어제 학습 모임 잘 갔다왔어?"

 "응. 잘 다녀왔어."


 이고가 라키사에게 학습 모임에 잘 갔다왔냐고 물어보았다. 라키사는 잘 다녀왔다고 짧게 대답했다.


 "어제는 뭐에 대해서 이야기했어?"

 "어떻게 하면 보다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라키사는 이고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고는 흥미가 생겼는지 '흐음' 소리를 내며 살짝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서 결론은 뭐였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거였어."

 "그래? 무거운 짐을 나눠 드는 것 같은 거야?"

 "아니.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모두가 지식과 지혜를 합치면 최고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야."


 라키사의 대답에 이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고작 그거야? 더 특별한 거 없어? 그거 별로 안 좋은 거잖아."

 "어째서?"

 "모르는 놈들끼리 모인다고 답이 나와?"

 "그러니까 모두가 지식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구. 우리 모두 부족하니까. 그리고 그러려면 자유와 평등이 반드시 필요해."

 "갓난 애기들 천 명 모아놓으면 걔네들끼리 1000 곱하기 1000 풀어?"


 라키사는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고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니까. 이고 딴에는 라키사가 걱정되어서 저러는 거겠지. 아예 엉뚱한 쪽으로 생각이 홱 돌아버리는 것은 막아보고 싶을 테니까. 사실 지금 라키사가 제일 불안하다. 그 학습 모임은 제대로 된 모임이 아니다. 미친놈 헛소리만도 못한 소리들을 어려운 말로 왠지 있어보이게 꾸며놓는 모임이다. 이건 지금 당장의 상태 문제가 아니다. 방향의 문제다. 켈라자야는 더 좋아져가고 있으니까. 아다비아도 아마 좋아져가고 있을 거다. 나한테 성질을 버럭버럭 내기는 하지만 그때 그 순간보다는 차라리 그게 훨씬 낫잖아. 그렇지만 라키사는 아니다. 라키사는 나날이 생각이 더 나빠진다. 이상해지는 게 아니다. 진짜 나빠져간다. 원래 저랬던 애였나 놀랄 지경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단어에 점점 더 집착한다. 이고가 저렇게 기분 상할 수도 있게 말하면 라키사는 그 말에 반박하기 위해 공부를 할 거다. 전에 이고가 나한테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반박하려고 공부하지 않으면 그때는 진짜 쫓아내버릴 거라구. 저건 이고가 라키사를 걱정하는 동시에 라키사를 쫓아낼 때가 되었나 시험해보는 거다.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켈라자야는 내 옆에 앉더니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졸리면 들어가서 더 자."

 "아니야. 안 졸려."

 "그러면 하품은 왜 해?"

 "그냥. 하품하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닌데..."


 켈라자야는 내가 펼쳐놓은 책을 힐끗 바라보았다.


 "너는 왜 항상 같은 같은 페이지만 보고 있어?"

 "응?"

 "항상 같은 페이지라서..."

 "읽고 있는 중이야."

 "내가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이거 조금이라도 봐야 하는데 참 보기 싫다. 일단 편히 읽을 수가 없잖아. 마딜어로 되어 있는 것이라면 눈으로 글자를 긁듯 쭉 읽기라도 할텐데 아드라스어다. 기껏 한 문장 읽어놔봐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글자만 보면서 속으로 발음만 할 뿐이다. 이렇게 해서 가면 아다비아가 또 성질을 잔뜩 낼텐데. 그렇지만 사전 펼치기 정말 귀찮다. 그냥 이번에도 아다비아 성질내는 거 그냥 듣지, 뭐. 정말 화나면 베개로 때리려 들 거다. 그 정도는 그냥 맞아도 괜찮아. 사실 아다비아 덜 화나게 하려고 마구 휘둘러대는 거 쫓아가서 맞아주는 거다. 허공에 베개 휘두르면 아다비아가 더 화내니까. 그래도 할퀴려 들지 않아서 다행이야. 할퀴는 건 어쩔 수 없이 피해야 한단 말이야. 아다비아도 속이 터지려고 하는 거 나름대로 참는 건가? 그런데 켈라자야한테 그랬다가는 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아. 일단 얘는 앞이 보이잖아. 게다가 성질나면 진짜로 때린다. 얘한테 뺨을 맞아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너한테만은 절대 아드라스어 도와달라고 하지 않을 거다.


 "슬슬 점심 먹을까?"

 "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곡물 가루와 물, 그리고 말린 고기와 말린 과일을 들고 나왔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드디어 싱싱한 과일과 야채도 먹을 수 있다. 사발 네 개에 곡물 가루를 물에 개고, 말린 과일을 잘게 썰어서 그 속에 집어넣었다. 이고는 말린 고기 위에 천을 덮고 망치로 두드렸다. 켈라자야는 찻주전자에 차를 집어넣고 물을 끓였다. 할 게 없어서 가만히 앉아 있던 라키사는 말없이 내가 건넨 사발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 내가 보던 책을 바라보았다. 저 책 뒷내용은 서로 대화할 때 완벽한 의미는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라키사가 그렇게 알려줬지. 라키사 말이 맞은 걸까? 책에 적혀 있는 내용이니 틀릴 리는 없겠지. 라키사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거 같지 않으니까. 아다비아는? 켈라자야는? 베개를 휘두르며 화내는 아다비아, 자꾸 연인처럼 나한테 들러붙는 켈라자야. 얘네하고는 말이 안 통할 때가 있기는 해도 의미 전달이 안 된다는 느낌은 안 든다. 의미 전달은 되나 의견이 충돌하는 거지. 그런데 왜 라키사만큼은 의미 자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계속 받을까? 그것도 단순히 '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행동에서.



 식사랄 것도 없는 이 부실한 점심 먹거리.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사발과 컵을 정리해 들었다.


 "내가 설거지할께."

 "아니야. 뭐 별 거라구."


 라키사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다. 이거 씻는 것이 뭐 대단한 거라고 맡겨? 그냥 내가 하고 말지. 이거 씻는 데에 얼마나 걸린다구. 그동안 켈라자야가 남은 것들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이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화장실로 가서 사발과 컵을 물로 씻었다. 이런 거야 금방 하지. 어디 눌러붙어 있는 것도 없는데. 겨울이 아니라 손이 시릴 일조차 없다. 사발과 컵을 후딱 씻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라키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쳐 읽고 있다. 조금 후면 퇴근한다고 하겠지. 라키사는 오늘도 아마 학습 모임에 갈 거다. 오늘은 또 무슨 이상한 말을 듣고 올까? 내일 이고와의 대화를 들어보면 알겠지. 그러고보니 라키사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은지 꽤 된 것 같다. 며칠? 몇 주? 잘 모르겠다. 대화해봐야 서로 거리만 더 멀어지는 거 닮으니 지금 정도의 거리라도 유지하려면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겠지. 라키사한테까지 자유, 평등, 진리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치롤라가 외치는 자유, 평등, 진리와는 또 뭔가 다른 라키사가 말하는 자유, 평등, 진리. 진짜 진절머리난다.


 라키사가 나를 한 번 흘낏 쳐다보더니 뭐가 못마땅한지 두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다시 책 쪽으로 돌렸다. 뭐가 불만이지?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그냥 내가 싫은 건가? 아니면 켈라자야 때문에? 점심 식사 준비나 설거지나 라키사가 기분상할 일이 있었나? 아니면 그 전에 뭐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 라키사 기분을 나쁘게 한 건 떠오르지 않는다. 사발 건넬 때에도 라키사에게 먼저 주었는데.



 갑자기 서점 문이 활짝 열리더니 루즈카가 안으로 들어왔다. 손으로 계속 눈물을 닦아내는 빨갛고 헐렁한 원피스를 걸친 여자가 루즈카 손에 이끌려 따라들어왔다. 쟤는 또 누구야? 왜 저렇게 펑펑 울고 있어? 새까맣고 가슴까지 내려오는 곱슬기 있는 긴 머리, 조금 두꺼워보이는 입술, 그리고 대체 얼마나 울었는지 뻘겋게 부어서 퉁퉁 부어오른 눈. 처음 보는 애다. 나이는 대충 내 또래쯤 되어보이는 거 같다. 저건 또 뭐 때문에 미친 거야?


 "호즈라, 진정해."


 루즈카가 울고 있는 애 등을 토닥여주었다. 쟤 이름은 호즈라구나. 설마 쟤도 저주술사인가? 저주술사고 뭐고 떠나서 그보다 왜 저렇게 질질 짜고 있는 거야? 그리고 쟤는 왜 여기로 데려왔어? 그 이전에 루즈카는 지금 이 시각에 서점에 왜 왔지? 루즈카가 서점에 왔다는 것은 지금 루즈카 집에 아다비아 혼자 있다는 것일텐데? 뭔가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다. 그렇지 않고서는 루즈카가 아다비아를 혼자 집에 남겨놓고 저렇게 계속 울어대는 여자를 데리고 여기로 왔을 리 없잖아.


 "오빠, 큰일났어요!"

 "무슨 일인데?"

 "룬 바사르님과 에클레 마스라히님께서..."

 "둘이 왜?"


 이고가 인상을 찌푸리며 루즈카를 바라보았다. 루즈카 옆에 있는 호즈라는 계속 흐느낀다. 제기랄...망할...하여간 개같이 안 좋은 일이다. 아다비아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아니기를. 그건 아닐 거야.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면 키란 제자 아니야? 그 키란님에 대한 책 쓴 사람들이고. 둘한테 무슨 일이 생길 게 있나?


 "어제 살해당했어요."

 "뭐? 진짜?"


 귀를 의심했다. 룬 바사르과 에클레 마스라히 부부가? 말이 돼? 그 사람들이?


 "오빠, 어서 옷 갖춰 입어요. 타슈갈, 켈라자야, 너희는 나 대신 아다비아 좀 봐줄래?"

 "내가 거기를 왜 가?"

 "당연히 가야죠."

 "내가 그 사람들하고 뭔 상관이라고 거길 가?"


 이고가 찡그린 얼굴로 루즈카를 바라보았다. 루즈카는 어이없었는지 이고를 바라보며 입을 반쯤 벌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고는 그런 루즈카를 보더니 머리를 박박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그 인간들을 왜..."

 "오빠, 그건 아니죠!"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면 될 거 아니야? 기다려. 옷 갈아입고 나올께."


 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너무 가기 싫어하는 티를 아주 팍팍 냈다. 이고가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랑 무슨 관계지? 아무 관계 없을 거 같은데. 호즈라가 갑자기 크게 엉엉 소리를 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루즈카는 호즈라를 꼭 껴안아주었다.


 "미안해. 얘가 지금 많이 충격받았어."

 "아니에요."


 켈라자야는 신기한 듯 두 눈을 반짝이며 호즈라를 바라본다. 얘는 이게 뭐가 신기하다고 저러는 거야? 라키사를 쳐다보았다. 라키사는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살해당했다는 말에 충격받았는지 입을 쩌억 벌리고 있다. 그리고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켈라자야를 바라보았다. 켈라자야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살짝 더 크게 뜨며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꺾었다. 뭘까, 이 기묘한 상황.


 충격적이긴 해. 하지만 이게 호즈라와 라키사처럼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하는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어. 마딜인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지? 룬 바사르는 마딜인들을 해방시킨 영웅인 키란의 유일한 제자니까. 바로 그 점 때문에 충격적이야. 분명히 실력도 뛰어날 거고, 키란의 유일한 제자라는 이유로 모두의 존경을 받던 사람이 살해당했으니까. 멀쩡한 마딜인이라면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를 살해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거다. 실력도 안 될 거고, 그 이전에 그들을 죽여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겠지. 지금 에드자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밤 하늘의 별 갯수를 곱한 만큼 훨씬 더 심각한가봐. 모두의 존경을 받고 저주술 실력도 굉장할 거라 여겨지는 사람들이 살해당했으니...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울고 슬퍼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궁금한 건 이고가 그들의 장례식장에 왜 가야하냐는 거다. 라키사와 '호즈라'라는 애는 지금 왜 우는 걸까? 여기에서 사람 죽어나가는 게 하루 이틀에 한둘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인가?


 "죽여버릴 거에요! 꼭 갚아줄 거에요!"

 "호즈라, 진정해. 범인은 반드시 잡힐 거야."

 "꼭 붙잡히겠죠?"

 "응."

 "룬 바사르님...에클레 마스라히님..."


 호즈라는 계속 운다. 켈라자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루즈카에게 다가갔다.


 "저랑 타슈갈은 언니 집으로 가면 되나요?"

 "응."


 루즈카가 라키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라키사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눈으로 루즈카와 호즈라를 바라보고 있다.


 "라키사, 장례식 끝날 때까지는 집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라키사는 루즈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충격이 귀를 막아버렸나보다. 아무 반응이 없다. 잠깐만, 아다비아는 나와 켈라자야 둘이 돌보라고? 라키사는 빼고? 라키사도 친구인데? 라키사는 마딜인이라 이 소식에 너무 충격받아서 그런 거겠지. 아다비아 앞에서 충격받은 모습 드러내면 아다비아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을 테니까. 라키사가 충격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키란을 엄청나게 숭배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건이 그만큼 충격적으로 느껴지고 있을텐데. 이럴 때 라키사도 옆에서 지켜줘야하는 거 아냐? 하지만 쟤는 혼자서 다 할 수 있으니까...혼자 두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다비아 곁으로 가는 게 맞겠지.


 그나저나 켈라자야는 너무나 담담한 모습이다.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구. 쟤야 원래 이상한 애였으니까 크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래도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죽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 만도 한데...너무 담담해보인다. 오히려 이 상황이 왜 일어난 건지 이해를 아예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쟤를 혼자 둔다면 무슨 이상한 짓을 할 지 몰라. 눈치없이 실실 쪼개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다가 사람들한테 두들겨맞을 수도 있어. 쟤가 그런 상황에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차라리 내가 옆에서 이상한 행동 못 하게 감시하고 막는 게 낫겠지.


 그렇지만 정말 충격적이다. 어떻게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살해당하지?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것 전부 거짓이었던 거야? 아니면 진짜 괴물이 나타나기라도 한 거야? 키란의 유일한 제자잖아. 아무리 인식론의 저자 라짐 마이슈프라 해도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를 죽일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거다. 라짐 마이슈프도 어쨌든 마딜인이니까. 인식론에서 아무리 저주술에 대해 악평을 가했다 해도 키란이 에드자를 해방시켜서 궁극적으로 마딜인을 우르간 대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한 것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잖아. 우르간 왕국에서 복수하려고 누군가를 보낸 건가? 설마...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그건 대놓고 전쟁하자고 하는 건데. 게다가 둘이 보통 인물도 아니구. 이 살벌한 에드자의 밤거리를 아무 걱정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들인데...


 방에서 이고가 나왔다. 이고는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왼팔에 검은 띠를 매었다. 장례식장에 가긴 갈 건가 보다. 이고는 그 둘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둘의 장례식장에 찾아가는 거지? 정확히는 루즈카 손에 끌려가는 거지만. 이고는 마딜인도 아니잖아. 루즈카가 그 둘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루즈카의 애인이라는 이유로 끌려가나? 이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엄청 짜증나나보다. 어지간하면 서점 안에서 담배 절대 안 태우는데...


 "호즈라, 그만 울어."


 이고는 호즈라에게 한 마디 하고는 나와 켈라자야,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3일간은 루즈카 집에 있어. 아다비아 잘 돌봐주고. 라키사, 너는 쓸 데 없이 돌아다니지 마. 분위기 그다지 안 좋을 거야."

 "저도 장례식장 따라갈래요!"

 "오지 마. 거기 뭐 좋은 곳이라고."

 "아니요! 저도 갈래요! 저도 데려가줘요!"

 "안 돼! 나중에 운구할 때 행렬에 껴."


 루즈카가 이고를 노려보더니 라키사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라키사, 가고 싶으면 따라와."

 "쟤는 왜 데려가?"

 "가고 싶어하잖아요. 쟤에게는 소중한 분이었을 거에요."

 "그러면 나 대신 라키사나 데려가든가."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요?"

 "알았어. 라키사도 가고 나도 가면 되잖아!"


 이고는 가기 정말 싫은 티를 팍팍 내었다. 그냥 가기 싫은 게 아니다. 무슨 원수의 장례식장에 끌려가는 꼴이다. 둘하고 무슨 일 있었나?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아드라스인을 혐오했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아드라스인을 싫어할 이유가 있을까? 남아드라스 공화국과 셀베티아 왕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땅의 사람들은 해방되지 못했을 거잖아. 루즈카의 애인이라는 이유로 안 좋은 소리라도 한 마디 들었던 거 아니야? 내가 봐도 루즈카와 이고는 정말 안 어울리는데. 이고에게 루즈카는 너무 과분하잖아. 루즈카는 돈도 많지, 실력 엄청난 저주술사라고 하지, 얼굴도 예쁘지, 똑똑하지. 그에 비해 이고는...내가 봐도 답없어 보인다. 진짜 저건 루즈카가 이고와 '사귀어주시는' 거야.



 모두 서점에서 나왔다. 문 앞에 마차 두 대가 서 있다. 라키사와 호즈라가 마차에 올라탔다. 루즈카는 내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먹을 것은 부엌에 있어. 먹고 싶은대로 먹어."

 "예."

 "3일만 나 대신 고생해줘."


 루즈카가 마차에 올라탔다. 루즈카를 따라 이고가 찌푸린 얼굴의 주름을 단 하나도 펴지 않고 오히려 더 찌푸려 주름을 더 만들며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가 서점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제 루즈카 집에 가야지. 서점 문을 잠갔다. 오늘부터 사흘간 루즈카 집에 머무르랬지? 서점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했다.


 "너, 책 챙겼어?"

 "무슨 책?"

 "너 아다비아랑 공부 같이 하잖아."

 "그 책? 그걸 왜 들고 가?"

 "아다비아는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책 들고 가고 싶지 않다. 그냥 그 책 자체를 보기 싫다. 그런데 안 들고 가면 또 안 들고 왔다고 아다비아가 성질낼까? 켈라자야한테 나를 알려주다 속 터져서 분노하는 아다비아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데...하지만 켈라자야는 너무나 당연한 걸 왜 안 들고가냐는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아...그러고보니 사흘이었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왕 들어온 김에 방도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정리할 거 있으면 정리해야겠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불씨가 살아있지 않은지 확인했다. 사흘이면 옷이라도 챙겨가야 하지 않나? 켈라자야야 여자니까 정 안 되면 아다비아 옷이라도 빌려 입으면 되겠지만 나는 그게 안 되잖아. 옷가지를 챙겼다. 그때 책 하나가 보였다. 이거 에베디나단이 나한테 보라고 준 책이잖아? 이거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건 마딜어로 된 책이라고 했다. 이것도 들고갈까? 아니다, 이건 나중에 봐야지. 아닌가? 혹시 모르니까 들고 가 볼까? 사흘간 있어야 하니 정말 무료하고 심심할 때가 있으면 그때 읽어봐도 되잖아. 책을 옷가지로 둘둘 말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다비아와 같이 보는 책도 챙겨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따스한 바람이 두 볼을 어루어만진다. 그래도 둘은 올해 벚꽃은 보고 죽었겠네. 진짜 어떤 미친 놈이 죽인 거지? 그리고 그 둘을 죽인 놈을 사람들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걸 해버렸다면 일반인의 범주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놈일 거야. 마음만 먹으면 몇 놈이고 원하는 만큼 죽일 수 있는 놈이겠지? 마딜인이 맞기는 할까? 마딜인이라면 아무리 막 나가도 그짓을 저지르겠다는 생각은 못 할텐데. 한동안 잠잠해지나 했더니 한 방에 몰아쳐서 큰 거 하나 터뜨려버리네. 미치겠다. 설마 또 시작일 건가? 또 여기저기에서 낮밤 구분없이 죽어나가는 사람들 쏟아져 나오는 거야? 어떤 미친 새끼인지 모르겠지만 병이라도 걸려서 빨리 뒈져버렸으면 좋겠다. 얼마나 상황을 더 막장 쓰레기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할 거야?


 "너, 밤에 안 돌아다니면 안 돼?"

 "나? 갑자기 왜?"

 "위험하잖아."

 "뭐가?"


 켈라자야는 아예 내 말을 이해 못한다. 얘가 얼마나 뛰어난 저주술사인지 모른다. 내가 본 얘가 저주술 쓰는 거라고는 담뱃불 붙여주는 정도 뿐이니까. 아, 한 번 나한테 저주술로 충격을 준 적이 있었지? 그거보다 더 강한 저주술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를 죽일 정도면 켈라자야도 정말 많이 위험할 거다. 그때 할머니 척추를 뽑아버린 미친놈보다도 더 강하겠지. 얘가 지금까지 멀쩡히 밤에 잘 돌아다니고 있는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 뿐 아냐.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살해당했다구!"

 "그게 누군데?"

 "너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응. 아까 호즈라인가? 걔는 왜 그렇게 추하게 울어?"


 할 말이 없다. 얘 진짜 마딜인 맞아? 어떻게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를 모를 수 있지? 이들도 독립영웅이다. 게다가 룬 바사르는 마딜인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저주술사라는 키란의 제자라구. 키란의 숭고한 최후를 옆에서 지킨 사람, 그리고 그의 최후의 거대한 저주술을 본 유일한 사람이 바로 룬 바사르다. 이건 따로 공부해야 아는 게 아니다. 마딜 땅에서 살고 있다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얘는 어디 다른 나라에서 살다 넘어온 거야? 지금 가장 유명한 저주술사가 바로 룬 바사르잖아!


 "너 진짜 룬 바사르 몰라?"

 "몰라."


 켈라자야는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본다. 설명해줘봐야 못 알아듣겠지. 설명해서 알아들을 거라면 그 전에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을 거다. 켈라자야가 내 팔을 잡더니 팔짱을 꼈다. 얘 자꾸 왜 이래?


 "아다비아한테 너랑 팔짱 끼고 왔다고 자랑해야지!"


 켈라자야가 환하게 웃었다. 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나랑 팔짱 끼고 길을 걸었다고 좋아할 때야? 그리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단순한 친구일 뿐인데 팔짱은 왜 껴? 그걸 아다비아한테는 왜 자랑하고? 거리를 둘러보았다. 우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수근대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구나. 충격 안 받았으면 마딜인이 아니지. 아드라스인인 나도 충격을 받았는데...켈라자야 빼고. 얘는 대체 정체가 뭘까? 어떻게 성장했길래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누군지도 모르고 분위기 파악 하나 못하고 나랑 팔짱끼고 걷는다고 헤헤거리고 있지? 앞에서 매우 눈에 익은 여자 둘이 휘청거리며 우리쪽으로 걸어온다. 와히디야와 치롤라다.


 "야, 지금 웃냐?"

 "예?"


 와히디야가 다짜고짜 켈라자야를 노려보며 시비를 걸었다. 와히디야는 크게 충격받았겠지. 저러는 게 이해되기는 해.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죽었으니까.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살해당한 거니까. 이 상황에서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내 팔짱을 끼고 있는 켈라자야가 이상한 게 맞긴 맞아.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시비거는 건 아니잖아. 왜 엉뚱한 사람한테 자기 감정 다 토해내고 있어?


 "피가 더러우니까 머리도 썩었나봐? 아니면 귀 막고 사니?"


 켈라자야가 주먹을 꽉 쥐고 와히디야를 노려보았다. 와히디야는 어이없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어떻게 끝내지? 이고는 그때 책으로 얘네 둘 팔을 내리쳤다. 지금 그럴 수는 없잖아. 치롤라를 바라보았다. 치롤라도 켈라자야를 노려보고 있다. 진짜 머리아프네. 제발 켈라자야한테 시비 좀 걸지 마. 너네가 못 봐서 그런가 본데, 얘도 한 성질 한단 말이야. 켈라자야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천천히 열었다.


 "이 도시에서 사람 죽는 게 하루 이틀 일이야?"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네가 대신 죽지 그랬어?"


 켈라자야 말에 와히디야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켈라자야는 와히디야의 두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너 나 때리게? 내가 그런다고 겁먹을 줄 알아?"


 와히디야가 켈라자야 얼굴을 향해 따귀를 날렸다. 켈라자야가 허리를 숙여 와히디야의 손바닥을 가볍게 피했다. 아, 일 났다. 둘이 싸우면 이고처럼 둘 다 때려서라도 뜯어말려야 하나? 얘네는 머리끄댕이 잡는 수준으로 안 끝날 거 같은데...와히디야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 치롤라도 할 말을 잃고 켈라자야를 쳐다보았다. 켈라자야는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씨익 웃었다.


 "병신. 너 지금 표정 진짜 웃기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병신."


 와히디야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켈라자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와히디야를 가만히 쏘아보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피하지? 와히디야 저건 완전 미친 거 아냐? 하지만 많이 웃기다. 어지간해서는 따귀 때리면 못 피하고 맞는데. 그걸 피한 켈라자야가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 완전 바보가 된 와히디야 표정도 재미있다. 켈라자야 말대로 와히디야는 따귀 날렸다가 진짜 자기만 병신된 거잖아.


 "타슈갈, 가자."


 켈라자야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지금은 일 더 커지기 전에 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야.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쪽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와히디야도 더 이상 난동 못 부리겠지. 켈라자야는 치롤라 옆을 지나가다 멈추어섰다. 치롤라가 고개를 돌려 켈라자야를 쳐다보았다.


 "쓰레기."

 "응?"

 "이게 평등이니? 내가 웃을 자유는?"


 이번에는 내가 켈라자야 옷깃을 잡아끌었다. 빨리 얘네들과 멀리 떨어져야 해. 지금이 기회다. 와히디야도 켈라자야 못지 않게 미친년이다. 먼저 따귀를 내렸는데 켈라자야가 피해서 지금 많이 당황했겠지. 제정신이 돌아오면 또 켈라자야에게 시비를 걸 거다. 어쩌면 또 때리려 들 수 있어. 아까 따귀는 켈라자야가 운이 좋아서 피한 거다. 둘 다 정상이 아닌데다 저주술사니까 끝이 매우 나쁠 거야. 켈라자야는 나를 따라 걸었다. 켈라자야, 참아줘서 정말 고마워. 와히디야 저건 아예 정신이 돌어버린 거 너도 알잖아.



 아까 그 장소에서 멀어졌다. 켈라자야가 갑자기 내 팔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타슈갈, 나 참았어."

 "응. 정말 잘 했어. 그런 애는 일일이 맞대응할 필요 없어."


 켈라자야가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내 팔을 세게 움켜쥐기 시작했다. 켈라자야의 손톱 모두가 내 팔을 찌른다. 아프다. 켈라자야 얼굴에서 땅으로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왜 나만 참아야 해?"

 "응?"

 "왜 나만! 나는 행복해지면 안 돼?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귀를 찢고 머리를 후벼파 들어오는 켈라자야의 절규. 먼저 시비를 건 것도, 따귀를 날린 것도 와히디야다. 켈라자야는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솔직히 그 상황을 내가 당했다면 주먹을 날렸을 거다. 정말 많이 잘 참아준 거야. 하지만 이상하지. 왜 그 상황에서 나는 켈라자야가 참기를 바랬을까? 잘못한 건 오히려 와히디야인데. 와히디야한테 작작 하라고 소리라도 쳤어야 했다. 그저 켈라자야가 끝까지 참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와히디야가 병신이고 치롤라가 쓰레기가 아니라 내가 병신에 쓰레기인가? 왜 아까 그렇게 할 생각을 못 했을까? 걔네가 여자라서 참은 것도 아니다. 당연히 켈라자야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진짜 그 상황에서 켈라자야가 참아야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잖아. 왜 그 상황에서 켈라자야 편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미안."

 "너 미워!"


 그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내가 켈라자야한테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와히디야와 치롤라에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야 했나? 걔네는 여자잖아. 둘 다 저주술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자인데 어떻게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던 그 상황에서 함부로 막말을 퍼부어? 그거야말로 내 인성이 쓰레기라고 알리는 거잖아. 어떻게 해야 했을지 아직도 모르는 것 자체가 잘못이야. 사람들이 나를 보고 쓰레기라 여기든 말든 차라리 둘한테 뭐라고 했으면 켈라자야가 이렇게 울지 않았을텐데. 일이 더 커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켈라자야가 울 일은 없었을 거 아냐.


 "가자."


 켈라자야가 내 팔을 놔주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켈라자야를 따라 걸어갔다. 켈라자야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다음번엔 두 년 다 진짜 갈가리 찢어죽일 거야."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이건 다짐이다. 얘만큼은 절대 '설마 그러겠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한다고 하면 분명히 저질러버릴 거 같아.


 "그래도 그건..."

 "그러면 나만 당해야 해? 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켈라자야가 두 눈에 힘을 주며 나를 쏘아본다. 아니야. 왜 네가 잘못했다는 거야? 당연히 너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아니. 너는 하나도 잘못 안 했어."

 "그러면 왜!"


 켈라자야라면 진짜 죽일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안 돼. 사람을 죽이는 짓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사람 죽인 후 잡히면 너도 죽어."

 "그러면 몰래 죽이면 된다는 거야?"

 "응?"

 "그러니까 내가 경찰한테 안 잡히게 몰래 죽이면 되냐구."


 당연히 안 되지. 제발 그런 말 하지 마. 너를 진짜 믿는단 말이야. 너, 그거 빈 말이 아니잖아. 그건 몰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반드시 죽이겠다는 다짐이잖아. 


 "사람 죽이는 건 하지 마. 진짜야. 그런 건 하는 거 아냐."

 "왜?"

 "나쁜 짓이니까."

 "내가 사람 죽이면 너는 나 미워할 거야?"

 "아니. 안 미워할 거야."


 켈라자야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얘가 진짜로 사람을 죽인다면...아마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 정말로 무섭겠지. 만에 하나, 사람을 죽이고 잡혀서 처형당한다면...정말 원망스러울 거다. 켈라자야가 행복해하고 활짝 웃었으면 좋겠으니까. 나를 보며 활짝 미소짓는 켈라자야의 얼굴이 좋다. 그 얼굴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매우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친구로써의 호감 표시도 좋단 말이야.


 "너 그 말 진짜야?"

 "응."

 "거짓말이면..."

 "거짓말이면?"


 켈라자야는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네 목을 잡아찢을 거야. 그 다음 칼 수백 개를 쑤셔박아버릴 거야."


 목을 잡아찢어? 칼 수백 개를 쑤셔박아? 말 너무 무섭게 하는 거 아니야? 켈라자야가 아무리 저주술 실력이 굉장하다고 해도 그런 짓은 못 하겠지. 치롤라 죽이려 들었을 때 얘가 어떤 모습인지 보았다. 그냥 협박하듯 말한 것일 거다. 그래도 죽이려면 곱게 죽이든가 목을 잡아찢고 칼 수백 개를 몸에 쑤셔박는 건 또 뭐야? 그만큼 내가 자기를 미워하면 자기가 받는 상처가 그만큼 크다는 걸 표현한 거겠지. 생각해보니 그렇네. 아까 잘못한 건 분명히 와히디야다. 켈라자야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켈라자야가 참아야하지?



 문을 열고 루즈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부드러운 장미향이 코를 가볍게 자극했다. 텁텁한 공기만 가득한 서점 안 방과는 확실히 다르다. 전부 다 깔끔하다. 문을 잠그었다. 오늘은 계속 여기에 있어야한다. 먹을 것은 부엌에 있는 것 중 적당히 골라 먹으면 되겠지. 일단 아다비아를 보러 가야겠다.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와히디야 때문에 늦어버렸다. 그 사이 별 일 없었겠지? 켈라자야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별 일 있겠어? 아다비아가 투정 좀 부리는 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을 거다. 윗층으로 올라가 아다비아가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켈라자야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아다비아, 나 왔어!"

 "켈라자야!"


 침대에 누워 있던 아다비아가 활짝 웃으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켈라자야가 성큼성큼 걸어가 아다비아를 껴안았다. 아다비아도 켈라자야를 꽉 껴안았다. 쟤네는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닌데 왜 저렇게 친하지? 어떻게 해서 둘이 친해졌는지 너무 궁금하다. 저 둘은 절대 친하게 지낼 수 없을 거 같은데...둘 다 뭔가 결여되어 있어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건가? 아다비아는 눈이 정상이 아니고 켈라자야는 정신이 정상이 아니니까. 둘에게 안 물어본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서 둘이 친하게 지내게 되었냐고 물어볼 때마다 둘 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래, 둘 다 정상이 아니라 뭔가 통하는 것이 있을 거야. 나는 정상이라서 그걸 깨달을 수 없는 거구.


 "아다비아, 나 왔어."

 "왜 왔어?"

 "아...루즈카가 3일간 자기 대신 너 돌봐달라고 부탁해서."

 "필요없어. 저리 가."


 아다비아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네 말대로 방에서 나가려 하면 보나마나 또 성질내겠지? 켈라자야가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더니 나한테 자기들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아다비아와 켈라자야를 향해 갔다. 아다비아 입을 보니 내가 자기쪽으로 오는 것이 영 못마땅한가보다. 그래도 가야지. 켈라자야가 손짓하지 않았어도 갈 거였다. 태도는 저래도 내가 와주기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 켈라자야 옆으로 갔다.


 "켈라자야, 진짜로 루즈카가 3일간 쟤한테 나 돌봐달라고 했어?"

 "글쎄?"

 "거짓말이지? 저 멍청이한테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다비아 말에 켈라자야가 나를 보며 손으로 침대를 가볍게 두드렸다. 켈라자야 옆에 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진짜야. 루즈카가 부탁했어. 3일간 일이 있다고 너 좀 돌봐달래."

 "그럴 리 없어. 너 같은 놈은 여기 와서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잖아!"

 "진짜야."

 "너만 3일간 여기 있을 거야?"

 "아니. 켈라자야도 같이."


 내 말에 아다비아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우리 셋이 3일간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좋아? 이렇게 셋이 3일간 같이 있을 일은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다. 잠깐이라면야 나와 켈라자야가 같이 여기로 찾아오면 되지만 며칠을 보낼 일이 있을 리 없잖아. 루즈카가 일이 있어서 집을 3일간 비워야한다는 소리인데. 루즈카가 일 때문에 멀리 가야 해서 그 정도 비울 일이 또 생길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안 생기기를 바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그렇게 집을 비워야할 일은 좋은 일일 거 같지 않으니까.


 아다비아가 만약 눈을 뜨게 된다면? 거기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집을 하나 장만한다면? 둘 다 불가능해. 아다비아가 눈을 뜨는 일은 기적이야. 케르무크가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찾아내지 않는 한 아다비아가 눈을 뜰 일은 영원히 없을 거다. 문제는 케르무크가 그 비밀을 발견해낼 일이 없을 거라는 거지. 그 비밀이 뭔지 알아낸다는 것은 키란만큼 뛰어난 저주술사가 된다는 건데.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이미 뭐가 되도 되지 않았을까? 내가 이런 집을 장만하는 건 그거보다는 가능성이 높을 거다. 정말 아주 약간. 실상 없다고 봐야겠지. 지금 서점에서 일해서 모으는 돈으로는 죽을 때까지 모아야 간신히 될 건가? 차라리 내가 어느 버려진 땅에 집을 짓는 게 빠르겠다.


 아다비아가 손을 더듬어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타슈갈, 지금부터 잘 들어."

 "뭐를?"


 아다비아가 다시 한 번 미소를 가볍게 짓더니 낮고 작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3일간 말이야, 우리는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아다비아의 저 미소. 뭔가 이상한 일일 거야. 뭘 할지 말하지 않아도 저 미소만 봐도 알겠어. 분명히 해괴하고 고약한 일이겠지. 긴장되네. 대체 무슨 일을 하자고 할 것이길래 이러는 거야? 3일간 너네 둘을 돌봐야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구. 아니, 그 이전에 이렇게 켈라자야, 아다비아와 이틀간 보내야한다는 것이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다. 앞이 안 보이는 아다비아, 정신이 이상한 켈라자야를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거니까.


 "나랑 켈라자야는 있잖아, 너를 반으로 갈라서 가질 생각이야."

 "뭐?"

 "그러니까...켈라자야는 너를 위아래로 갈라서 갖자고 하고, 나는 너를 세로로 반으로 나눠 갖고 싶거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켈라자야는 모두 너를 원하거든. 하지만 너는 하나니까...나와 켈라자야의 우정을 위해 나누어 갖기로 했어. 너도 좋지 않아?"

 "뭔 미친 소리야?"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괴팍한 소리 지껄인다고 웃었을 거다. 하지만 얘네는 아니야. 얘네들은 진짜 그럴 거 같아. 왠지 그러고도 남을 거 같단 말이야. 내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자 켈라자야가 깔깔 웃었다. 아다비아도 내 표정이 어떨지 짐작이 가는지 깔깔 웃는다. 참자. 그냥 3일간 나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기에서 아무 일도 없어야 하니까.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다 필요없어. 그냥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농담이야! 왜 그렇게 놀라?"

 "너네는 진짜 할 거 같단 말이야."

 "응. 진짜 할까 고민중이야. 네가 우리들을 하도 힘들게 해서."

 "내가 뭘 너네를 힘들게 해?"


 켈라자야가 나와 아다비아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는 멍청하고 눈치도 없으니까."

 "내가 뭐가 또 멍청하고 눈치도 없다는 거야?"


 내 말에 켈라자야는 아다비아에게 아드라스어로 뭔가 이야기했다. 아다비아가 켈라자야에게 아드라스어로 뭔가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그렇게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대충 나를 어떻게 약올릴지, 그리고 지금 자기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못 알아들을 거라는 내용이라는 건 대충 알아듣겠다. 둘 다 내 부모님의 아드라스어 발음과 억양과는 많이 다르다. 켈라자야 발음은 말이 좋아 아드라스어지 완전 마딜어 발음과 억양이다. 켈라자야가 아드라스어를 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지. 다른 건 잘 모르면서 아드라스어는 대체 어디에서 배웠대? 아다비아 발음은 내 부모님 발음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역시나 억양이 확실히 다르다. 내가 어렸을 적 아드라스어만 배웠어도 쟤네들보다 훨씬 나았을 건데.


 "아다비아, 나 졸려."

 "우리 그러면 잠시 낮잠 잘까?"

 "그럴래? 우리 같이 누워서 잠깐 자자."


 켈라자야가 신발을 벗고 침대 위에 두 다리를 올렸다. 아다비아는 침대 구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타슈갈, 너는 아래 내려가서 집 지키고 있어!"


 침대에서 일어났다. 켈라자야가 아다비아와 사이좋게 침대에 드러누웠다. 쟤네 둘 자고 있는데 내가 이 방에서 할 게 뭐 있어. 아래 내려가서 집이나 지키고 있어야지.


 1층으로 내려가 루즈카가 앉던 의자로 가서 앉았다. 둘이 정말 잘 지내네. 아까 아다비아의 말이 떠오른다. 뭘 둘이 나를 나눠가져? 둘 다 나를 원한다니, 뭘 얼마나 나를 괴롭혀대려고. 앞 안 보이는 아다비아나 정신 이상한 켈라자야나 둘 다 감당 하나도 안 되는데. 아다비아와 켈라자야가 멀쩡하다면 이게 왠 내 인생의 행운이냐 했겠지. 하지만 둘 다 정상이 아니잖아. 하나랑 이어져도 저주받은 인생 확정인데 둘 다? 무서운 소리다.


 "책이나 볼까?"


 지금 아다비아가 보는 것을 도와주는 책을 봐놓는 게 좋을 거다. 그러나 그건 아드라스어로 된 책. 보기가 싫다. 에베디나단이 준 책이나 한 번 볼까? 그건 아드라스어로 된 책이니까. 마땅히 할 것도 없잖아. 쟤네 둘만 놓고 어디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구. 평소에는 하루 종일 서점 안에만 있어도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 얼마나 있었다고 벌써 답답하고 지루하다. 그래도 쟤네가 사고치는 것보다는 지루한 게 낫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첫 번째 장 내용은 저주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룬 내용이었다. 저주술은 인간의 상상을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는 것. 이걸 누가 몰라? 상상한 것을 현실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저주술이잖아. 마딜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 내용. 이것을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이런 걸 왜 읽으라고 한 거야? 읽을 가치가 하나도 없다. 내가 주워들어서 아는 것을 정리해서 써도 이것보다 훨씬 더 잘 적겠다.


 "이거 마딜인이 쓴 거 맞아?"


 철자가 틀린 거야 글을 잘 배우지 못한 사람이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문법이 틀린 경우가 많이 보인다. 마딜인이라면 절대 실수하지 않을 문법을 틀린 것도 꽤 있다. 이렇게 마딜어를 이상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텐데? 누가 일부러 외국인 흉내낸다고 이렇게 엉터리로 써놓은 건가? 자기 스스로 써놓고 내용이 워낙 한심하니까? 그러고도 남을 거다. 첫 번째 장만 보면 그렇게 해도 쪽팔릴 수준이니까.



 책을 덮고 밖으로 나왔다. 루즈카 집 안에서 담배를 태우면 안 된다. 이고도 루즈카 집에 갈 때는 꼭 밖에서 담배를 뻑뻑 태우고 들어갔다. 루즈카 집에 있는 중에 담배를 태우고 싶으면 밖으로 나가서 한 대 태우고 다시 들어왔다. 나도 따라서 그랬구. 그럴 때마다 루즈카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고를 살짝 노려보았다. 이고는 표정 변화 없이 루즈카를 쳐다보았고. 중요한 건 루즈카가 자기 집에서 저 둘을 돌봐달라고 했지만, 그게 자기 집 안에서 담배를 태워도 된다고 허락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 앞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리는 조용하다. 이 동네야 항상 조용하지만 오늘따라 더 조용한 것 같다. 거리에 사람이 없다. 전부 이고와 루즈카가 간 곳으로 갔나? 아니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집으로 다 돌아가버린 건가? 낮인지 밤인지 눈 감고 있으면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제발 시끄러운 일만 일어나지 말아라. 여기서 사람 죽어나가는 것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룬 바사르', '에클레 마스라히'라는 이름을 떼고 보자구. 두 명이 죽었어. 그딴 일은 매일 일어나. 이상할 거 없잖아. 이렇게 겁먹고 긴장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구. 항상 있던 일이 오늘도 일어난 것 뿐이야.


 담배를 태우고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지금 곤히 자고 있겠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마딜어로 된 책이라 매우 잘 읽혀. 아다비아가 내 공부를 도와줬을 때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철자, 문법 틀린 것 볼 때마다 하나씩 전부 지적해주면서 뭐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도중에 누가 조금 도와줬는지 문법과 철자가 다 맞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내 곧 틀린 부분이 나온다. 이걸 아다비아가 써서 내게 보여줬다면 나는 읽다가 이거 또 틀리냐고 한 마디 했겠지? 아다비아가 눈 멀기 전에 내 공부 도와줄 때는 정말 천사같았어. 같은 거 계속 틀리고 헤매도 단 한 번도 짜증내지 않았잖아.



 두 번째 장은 조금 재미있었다. 인간의 상상. 글쓴이는 상상에 대해 '인간이 머리 속에서 하나의 사건을 가정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아다비아가 눈을 뜨는 것, 켈라자야가 멀쩡해지는 것, 그리고 그 둘과 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모두 '사건을 가정하는 것'이잖아. 저자는 이 상상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기술했다. 저주술을 위해 상상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희망은 반드시 미래에 대한 희망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거로의 회귀를 희망하는 것은 저주술을 통해 현실로 구현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진짜로 불가능할까?'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건 왜 현실이 될 수 없지? 현실이 부정되니까? 여기에 대해 별 설명이 없었다. 그냥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단지 저주술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만 나와 있었다. 그래도 저주술에 대해 뭔가 아는 사람이 쓴 책일 거다. 글자도 매우 못 썼고 철자, 문법 다 엉망이지만 저주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런 것을 썼을 리는 없어. 최소한 자기가 해보고 안 되니까 안 되는 거라고 단정지어서 썼겠지. 그렇지만 과거로의 회귀가 진짜 불가능한 걸까?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잖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저주술이라면 과거로의 회귀도 어떻게 방법이 있지 않을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방법을 못 찾아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거 아냐?


 만약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면 나는 어디로 시간을 되돌릴까? 시험이 끝난 그 순간으로 되돌릴 거다. 비록 켈라자야가 없는 과거이기는 하지만 켈라자야는 어떤 식으로든 그 이후 만나게 되겠지. 아다비아에게 식사를 사주고나서...그때 아다비아는 왜 삐진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다비아가 뮈젤로 못 가게 막을 거라는 거다. 진짜 이러면 안 되지만...때려서라도 말릴 거다. 아니면 진짜 발목을 잡고 매달리던가. '너 없으면 나 어쩌라구!' 외치면서. 그랬으면 아다비아도 멀쩡하고 라키사도 지금처럼 이상한 모임에 나가는 일이 없지 않을까? 이후에 켈라자야가 나타나면 아다비아, 라키사, 켈라자야와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거야. 내 상상대로 될 지는 모르겠지만...그렇게 된다면 셋 다 나한테 아주 무관심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때 셋과 잘 지내고 행복한 시간 보내게 되라고 또 저주술을 쓰는 거지.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게 저주술이라면 그렇게 계속 바꿔나가면 되잖아?



 세 번째 장 내용은 언어에 대한 것이었다. 언어와 상상은 일단 아무 관계 없다고 나와 있었다. 인간이 느끼는 감각은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세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기준이 세밀화되지 않았을 경우, 말로 자신의 느낌을 완벽히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저주술의 상상은 전부 언어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언어 없이 저주술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어가 저주술에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은 아니라 했다. 사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리가 있고, 이 소리를 통해 상상의 힘을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추상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가 필요하기는 하다고 적혀 있었다. 단, 상상은 어디까지나 자력으로 깨우쳐야 하며, 언어 없이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 역시 딱히 할 말이 없는 내용. 당장 나라고 모든 상상을 언어로만 하는 건 아니잖아. 기분좋은 느낌은 그 느낌 자체를 떠올리니까. 켈라자야가 내 팔짱을 껼 때 그 촉감이라든가 아다비아의 환한 웃음 같은 건 언어가 아니다. 장면과 느낌이지. 그것들은 철자와 문법으로 변형되어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 그 느낌과 장면, 그리고 그때 내 마음 속 무언가의 반응을 그대로 떠올리는 거지. 재미있지는 않다. 그래도 마딜어로 적혀 있기 때문에 머리 아프지는 않다. 그냥 생각없이 읽기 좋다. 사실 내용보다 이거 쓴 놈이 틀린 철자, 문법 찾아내는 것이 더 재미있다.



 3장까지 읽자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켈라자야가 방에서 나왔다.


 "잘 잤어?"

 "응. 푹 잤어."


 켈라자야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루즈카가 부탁했으니 오늘밤에는 얌전히 여기 있겠지? 켈라자야와 부엌으로 갔다. 빵과 과일, 물을 챙겨서 아다비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다비아는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위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칼로 과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빵을 작게 뜯어서 아다비아 입에 넣어주었다. 아다비아가 이번에는 전처럼 내 손가락을 꽉 깨물지 않았다. 켈라자야는 말없이 빵을 혼자 뜯어먹는다. 조용한 저녁 식사. 빵이 맛있다는 것이 인상적인 이 순간. 나도 매일 이런 빵을 먹고 싶다. 둘이 멀쩡했다면 이 순간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그래도 지금처럼 조용한 저녁 식사였을까?


 "너희는 이제 다시 잘 거야?"

 "응."

 "그러면 나는 1층 내려가서 자면 되지?"

 "아니."

 "그러면?"


 켈라자야가 바닥을 가리켰다.


 "응?"

 "너는 이 방 바닥에서 자라구."


 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을 다시 1층 부엌에 갖다놓았다.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문을 잘 잠근 후 2층으로 올라갔다. 아다비아와 켈라자야는 침대에 걸터 앉아서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드라스어로 이야기한다. 내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는군. 하지만 아예 못 알아듣는 건 아니야. 조금은 알아듣는다. 서로 얼마나 아프냐고 물어보고 괜찮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뭔가 중요한 것 같은 이야기는 작게 귓속말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졸리다. 이제 자야겠다. 둘이 밤새 떠들든 말든 잠이나 자야겠다.


 "쟤 잔다."

 "바보."


 나에 대해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공통된 화제가 나에 대한 것밖에 없겠지. 비슷한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애들인데.



 새까만 공간 속에서 무수히 많이 반짝이는 하얀 점들. 분명히 시끄러워.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런데 한없이 조용해. 내 두 팔이 쫙 펼쳐져 있다. 두 손을 누군가 잡고 있어. 기분이 좋아. 시끄럽든 말든 알 게 뭐야. 지금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한 손에 부드러운 붕대, 한 손에 따스한 볼. 아, 두 명이 내 손을 잡고 있구나. 이거면 충분해. 이 어둠 속에 위험한 것도 걱정거리도 없잖아. 이렇게 평화로우면 되었지. 한 방울. 그 물방울을 이루는 테두리. 그리고 전체. 전체들의 전체. 빗물이 물길을 따라 강으로. 강은 흘러서 어디로 가나. 흘러갈 대로 흘러가라지. 강의 끝은 바다? 바다가 바라본다. 강을, 물길을, 빗물을, 빗방울 하나를. 양팔에 느껴지는 둥글고 무거운 것. 머리카락과 향기. 여전히 조용해. 양팔이 둥글고 무거운 무언가에 꽉 눌려서 몸을 뒤척일 수 없다. 괜찮아. 조용하고 좋잖아. 어둠에 녹아드는 내 몸. 새까만 공간 속에서 반짝이는 하얀 점들. 분명히 밖은 시끄러운데...내 알 바 아니야. 여기만 조용하면 돼.


 점심 즈음에야 일어났다. 앞도 안 보이는 아다비아가 용케 나를 찾아내서 발로 툭툭 걷어차서 깨어났다. 켈라자야와 아다비아 말로는 아침에 루즈카와 이고가 여기 왔다 갔다고 한다. 바닥에 드러누워 쿨쿨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고 했다. 모처럼 기분좋은 꿈을 꾸었다. 점심을 먹고 또 1층으로 내려왔다. 내일은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 장례식이 있겠구나. 내일 장례식 행렬때에는 조금 시끄럽겠다.



 어제 읽던 책을 펼쳤다. 또 이어서 읽어야지. 이럴 때 아니면 이 책을 언제 읽겠어. 지금 빨리 읽어치워야지. 오늘은 이 책을 다 읽어야겠다. 내일 장례식 행렬이 끝나면 다시 서점으로 돌아갈테니까. 서점 돌아가면 이 책을 이어서 읽을 리 없지.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이 책을 읽을 만큼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느낄 일은 없을 거다. 에베디나단은 이걸 왜 읽으라고 한 걸까? 딱히 놀랍거나 굉장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거 진짜 마딜인이 쓴 거 맞아?"


 4원소설과 입자론. 모든 것은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소설과 모든 것은 무한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입자론. 어렵다. 바하르한테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4원소설과 입자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것도 자세하게. 4원소설은 '아그라'라는 조합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4원소설과 입자론 모두 각자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분야에서는 4원소설을, 미세한 분야에서는 입자론을 선호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것은 그러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나와 있으니까 그러려니 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4원소설, 입자론과 저주술을 합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4원소설과 입자론은 마법의 토대가 되는 이론. 저주술과 맞을 수가 없는 거다. 바하르가 전에 말했었다. 4원소설과 입자론은 저주술과 아예 다른 거라고. 이 둘을 합친다는 것은 한 발은 앞으로, 한 발은 뒤로 내뻗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데 저자의 말은 바하르의 설명과 아예 달랐다. 4원소설과 입자론, 그리고 일반적으로 '저주술'이라 부르는 것을 합쳐 새로운 저주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아그라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입자론을 이용해 순수함을 끌어올리고, 이들을 움직일 때 저주술을 사용하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마법도 저주술이다.


 저자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저자가 근거로 든 점은 바로 '직접파괴'였다. 아그라를 이용하는 마법은 저주술로도 구현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아그라로는 직접파괴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직접파괴는 그 어떤 공식도 법칙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간절히 어떻게 파괴되기를 상상하면 그게 현실이 되는 것이 직접파괴. 직접파괴를 사용하는 저주술사는 많다. 그런데 이 직접파괴는 마법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마법을 저주술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기에 하나 더 굉장한 이야기가 있었다.


 방법이 알려지지 않은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를 이용하면 '불가능'이라 주장하는 것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저주술과 마법의 조합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인가?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를 만들어내는 방법? '아그라'라는 것 자체가 마딜 땅에서는 전혀 이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낸 사람은 없어. 만약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가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이라면 왜 마딜인들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는지 납득이 간다. 마딜인들은 아그라를 이용한 마법을 적대시하고 배척하니까. 아예 연구할 생각을 안 하지. 엉뚱한 방향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니 답을 못 찾는 거 아닐까? 물론 저자의 말에 의하면 아그라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의 비밀을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그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저주술만 파고 있는 마딜인보다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낼 확률이 훨씬 높은 거 아니야? 아그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게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이라는 걸 몰라서 못 찾는 거고, 마딜인들은 애초에 방법이 잘못되어서 못 찾고 있는 거구.


 만약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으면 아다비아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켈라자야의 저 위험한 정신상태를 치료해줄 수 있을까? 다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지금 환경이 아무리 거지 발싸개 같다고 해도 견뎌낼 수 있다. 견뎌내는 게 뭐야? 공포에 질려 하루하루 보내더라도 행복할 거다. 라키사도 그 이상한 학습모임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고, 감비르도 그 되도 않는 헛소리에 여장도 때려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 아니야! 아니지, 죽어도 다시 살릴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것들만 알아내면 뭐든 다 된다는 거잖아. 과거로의 회귀만 빼고 말이다.



 5장은 영혼, 6장은 정신에 따른 저주술의 형태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기는 의외로 크게 중점을 두고 관심을 끄는 내용이 없었다.


 정신은 인간의 상상을 지배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저주술이 모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의 정신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으니 한 가지 확신이 든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저주술과 마법 둘 다 꽤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설마 키란이 쓴 책인가? 마딜인들이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마법 연구 자체를 안 하는 곳인데. 마법사에게 아주 도륙을 당했으면서도 마법을 연구할 생각 자체를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그라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식화된 것이라면 아무 것도 없이 상상만 하면 된다는 저주술보다야 낫겠지. 그런 마딜인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 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런 걸 생각했을 리도 없을 거다. 이 땅 바깥에서 저주술을 사용하면 바로 사형이니까.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뿐. 키란이다. 키란이 아니고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을 거야. 책 마지막 장을 펼쳤다. 저자를 확인했다.


 이고 샤카샤그.


 이고 샤카샤그? 설마 그 이고 아니지? 나와 같이 서점에서 일하는 그 이고와 같은 이름이잖아. 설마...이고가 저주술을 쓸 수 있을 리 없잖아. 저주술이라면 아주 학을 떼는 인간인데. 게다가 이고가 저주술은 마딜인들이나 쓸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저주술 따위는 관심도 안 두는 게 좋다고 했다. 왜 저주술사인 루즈카와 사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주술을 엄청 싫어하는 인간인데? 게다가 이고가 마법을 쓸 줄 안다고? 그러면 루즈카가 이고와 사귀지도 않았겠지. 오히려 엄청나게 적대시했을 거다. 마법사들에게 당한 게 있는데. 게다가 루즈카는 전쟁을 직접 겪어봤잖아. 내가 아는 그 이고는 아닐 거다. 설마 진짜 그 '이고'이려구. 그 '이고'가 이 책의 저자인 '이고 샤카샤그'라면 왜 서점에서 미래고 전망이고 아무 것도 없이 그따위로 살고 있어? 저주술을 사용할 줄 안다면 맨날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있지 않았겠지. 그 정도 저주술은 아무 것도 아닌데 굳이 숨길 필요도 없잖아. '이고 샤카샤그'라는 이름이 같은 건 우연이겠지. 키란의 가명이 '이고 샤카샤그'였나?



 "타슈갈!"


 아다비아가 큰 소리로 나를 다급히 불렀다. 무슨 일이야? 책을 가방에 대충 쑤셔넣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방문을 활짝 열었다. 켈라자야가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아다비아는 계속 나를 불러댄다. 켈라자야에게 뛰어갔다. 켈라자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이를 꽉 악다물고 있다. 온몸을 바르르 떤다. 얘는 갑자기 왜 이래? 먹은 것이 뭐 잘못되었나? 왜 켈라자야만? 나랑 아다비아는 지금 멀쩡하잖아!


 "켈라자야! 왜 그래?"


 갑자기 켈라자야가 나를 꽉 껴안았다. 켈라자야의 손톱 열 개가 내 등을 꽉 찌른다.


 "갑갑해! 살려줘! 속이 찢어질 거 같아!"

 "야, 진정해!"


 켈라자야는 갑자기 내 어깨를 꽉 깨물었다. 이거 떼어내야 해! 켈라자야를 떼어내려 했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엄청난 힘이다. 죽기살기로 매달린다.


 "그만해! 제발!"


 진짜 아프단 말이야! 나 죽이려고 작정했어? 이걸 어떻게 잡아뜯어내지? 아다비아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계속 악악 소리를 지른다. 다 그만해! 이 미친 것들아! 켈라자야의 팔에 들어간 힘이 약해졌다. 간신히 켈라자야를 뜯어내었다. 켈라자야가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정신없다. 숨을 헐떡이는 켈라자야. 귀막고 계속 소리치는 아다비아. 뭐부터 해야 해? 등과 왼쪽 어깨가 쓰리다. 일단 아다비아 손목을 잡고 귀에서 손을 떼어내었다.


 "나 왔어. 나 왔다구!"

 "켈라자야! 켈라자야!"

 "켈라자야가 뭐?"

 "아프단 말이야! 너 때문이야!"


 그래, 다 나 때문이지. 켈라자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켈라자야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는 진짜 아무 것도 안 했다. 아래에서 조용히 책 읽고 있었다구. 얘네 둘은 2층 방에만 있었구. 내가 너네한테 대체 뭘 했길래 내 잘못이라는 거야? 켈라자야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나 나를 노려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실룩이다 말없이 침대로 가서 주저앉았다.


 의자에 앉았다. 오른손으로 어깨를 문질렀다. 다행히 피가 나지는 않는다. 이렇게 셋만 있는데 왜 아무 일도 없나 했다. 기분좋은 꿈? 무슨 꿈을 꾸든 나쁜 일이 일어날 거란 예지몽이겠지. 만약 아다비아가 붕대를 풀고 멀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분명히 지금 나를 째려보고 있을 거다. 켈라자야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고. 얘네 둘과 같이 있으면 나까지 미쳐버릴 거 같아. 내 정신도 찢겨나가는 기분이다. 이건 합리적 이유니 뭐니 하는 걸로 설명이 안 된다. 이 상황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나도 미친놈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 미쳐버릴 거 같다.


 "나 잘래."

 "응. 나 정말 놀랐어."

 "아니야. 괜찮아. 다 타슈갈 때문이야."

 "그러니까."


 켈라자야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다비아도 같이 드러누웠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 가!"

 "어디 가다니?"

 "여기 있어!"

 "너네 잘 거잖아."

 "너도 여기 있어!"

 "알았어."


 둘은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감았다. 갑자기 잠이 온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도 미쳐버리겠어. 대체 쟤네 둘은 왜 저 모양인 거야? 진짜 내가 그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가 뭔지 밝혀내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 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겠지? 둘을 다 고쳐놓으면 나도 이 고통에서 해방될 거다. 진짜 감당이 안 돼.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해도 같이 있으면 언제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서 너무 불안하단 말이야.


 "라키사는 안 오네."


 아다비아가 중얼거렸다.


 "루즈카가 얌전히 집에 있으라고 했어."

 "그래도..."


 라키사가 병문안 오지 않아서 많이 아쉬운가보다. 사실 나도 많이 의외였다. 쟤네 둘을 나 혼자 어떻게 감당해내라고. 라키사가 있었다면 보다 마음이 놓였을 거다. 오늘 방금 전 켈라자야가 이유없이 나를 공격한 것 외에 딱히 별 일 없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진짜 그보다 심한 일이 열 번은 더 일어날 거라 각오하고 있었거든. 루즈카도 분명히 나 혼자 감당하기 매우 어려울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라키사한테는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며 돌려보냈다. 라키사가 그 학습 모임에 나가는 것이 루즈카도 마음에 많이 걸리나? 아다비아는 라키사가 안 왔다고 서운해하고 있다. 라키사는 아마 루즈카가 자기는 여기 오지 못하게 해서 서운해하고 있겠지.



 "야, 뭐하냐?"

 "응?"


 누가 나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눈을 떴다. 이고였다.


 "아..."

 "야, 아침이야. 아다비아랑 켈라자야 굶길 거야?"

 "응?"


 눈을 비비고 침대를 바라보았다. 아다비아와 켈라자야가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있다. 루즈카가 먹을 것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 여러분에게 고백할 거 있어요!"


 아다비아가 이고와 루즈카, 켈라자야를 쭉 훑어보고는 외쳤다.


 "뭔데?"

 "저랑 켈라자야는 타슈갈을 나눠가질 거에요."


 아다비아 말에 이고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진짜? 야, 너 이틀간 뭘 한 거야? 완전 대박이네?"

 "뭐가 대박이야? 그리고 뭘 나눠가져?"

 "야, 쟤네 둘이 너보다 훨씬 낫잖아! 아다비아는 너보다 머리 좋지, 켈라자야도 너보다 머리 좋지. 이틀간 쟤네한테 뭘 어떻게 했냐? 완전 부럽네!"


 이고 말에 루즈카가 이고 옆구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있는 힘껏 쿡 찔렀다.


 "오빠, 부러워요? 아주 부러워 죽겠어요? 막 다른 여자들이랑도 사귀고 싶어요?"

 "아냐! 나는 너 하나도 과분해!"

 "당연히 그래야죠. 타슈갈, 축하해! 여자친구 두 명이면 엄청 바쁘겠다?"

 "뭐가 또 여자친구 둘이에요?"


 켈라자야가 활짝 웃으며 루즈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요. 저랑 아다비아는 타슈갈을 반으로 쫙 찢어서 나눠가질 거에요."

 "응. 그거도 방법이겠다."


 루즈카가 미소를 지으며 빵을 반으로 찢었다. 이고는 실실 쪼개며 과일을 깎았다. 뭘 또 그게 방법이야? 이러려고 나와 켈라자야만 여기로 보낸 거야? 하지만 나는 둘과 사귄다고 말하지 않았다. 라키사가 이 이야기 들으면 엄청 오해하겠네. 어쩔 수 없지. 라키사와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분명히 혼자 엄청나게 오해를 할 거다. 게다가 게첸 그새끼하고 잘 놀고 있잖아.



 식사를 마치자 이고와 루즈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장례식장으로 가기 위해 집에서 나갔다. 방에 나와 아다비아, 켈라자야만 남았다. 뻘쭘하다. 그리고 조금 무섭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무슨 결론을 내린 거야? 켈라자야가 내게 침대로 와서 앉으라고 침대를 살짝 탁탁 두드렸다. 침대로 가서 앉았다. 켈라자야가 작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대고 이야기했다.


 "걱정마. 안 아프게 찢어줄께."

 "야! 진짜 그 소리 좀 하지 마!"


 내 말에 아다비아와 켈라자야가 깔깔 웃는다. 이번엔 아다비아가 내 귓가에 대고 이야기했다.


 "우리도 알아. 우리 둘 다 정상이 아닌 거. 그래서 너 하나를 혼자 다 갖기는 무리고...반씩 갖기로 했어."

 "뭘 반씩 가져?"

 "타슈갈, 나는 네가 좋아. 정말 사귀고 싶어. 가끔은 진심이 전달되는 거 같단 말이야."

 "타슈갈, 나도 네가 좋아. 진짜 사귀고 싶어. 너는 나를 진짜로 믿어주잖아."


 얘네 둘이 정상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엄청나게 행복한 고민이었겠지. 그러나 이건 어둠 아래의 어둠으로 빨려들어가는 거다. 아다비아는 앞이 안 보여. 쟤를 무슨 수로 먹여살려? 먹여살리는 문제가 아니다. 한평생 항상 쟤 옆에서 쟤를 돌봐야 한다. 돈도 두 배로 벌어야 하고 시간도 두 배로 필요해. 감당이 될 일이 아니잖아. 돈만 많이 필요하든가, 아니면 시간만 많이 필요하든가...둘 다 많이 필요할 건데 나로서는 솔직히 방법이 없다. 켈라자야는 정신이 이상해. 쟤를 어떻게 통제해? 어제도 켈라자야가 풀어준 거지, 내가 푼 게 아니다. 감당이 안 돼. 쟤가 사고친다면 그걸 내가 막을 방법이 없다. 이건 내가 얼르고 달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구. 둘 중 하나만 감당하라고 해도 답이 없는데 둘 다? 이건 그냥 내 인생 종치는 거지. 나 혼자 종치는 게 아니라 셋 다 사이좋게 망하는 거다. 쟤들이 정상이어도 솔직히 여자 두 명? 감당 안 돼. 게다가 아내가 둘인 사람이 없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한 명하고 사귀고 결혼하고 싶다고. 그게 당연한 거잖아!


 "너는 우리가 싫어?"

 "아니...그건 아닌데..."

 "그러면 그냥 사귀면 되잖아. 여자가 먼저 고백한 건데!"


 아...이게 아닌데...이거 또 할 말이 없네. 내 주제에 여자가 먼저 고백했으면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 게 맞지. 단, 쟤네 둘이 멀쩡하다는 전제 조건이 달렸을 때. 지금은 아니야.


 "둘이랑 사귀는 거 이상하단 말이야!"

 "그래? 그러면 반으로 찢으면 되겠네!"

 "그러면 내가 사냐? 죽지!"


 아다비아와 켈라자야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켈라자야가 천천히 말했다.


 "좋아. 네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줄께. 어쨌든 우리는 말했어. 반드시 너를 가질 거야."


 이게 고백이야, 협박이야? 제발 조금 이따 자기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싹 다 잊어버려라. 머리가 복잡하다. 담배나 한 대 태워야겠다.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장난친 걸거야. 쟤네도 진짜로 미치지 않고서는 둘이 동시에 나와 사귀겠다는 생각은 안 하겠지. 그런 건 진짜로 많이 이상하잖아. 과거로의 회귀. 만약 회귀한다면 아다비아한테 무조건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사귀어달라고 빌어야 하나? 그리고 뮈젤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거야. 그러면 이런 일은 안 당했겠지? 진짜 쟤네 둘이 정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둘 다 정상이라면 둘 중 누구와 사귀어야 하나 선택하는 행복한 상황인데!


 "안녕하세요!"

 "아, 차라클라야!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이에요."


 차라클라야다. 꽃이 가득 담긴 바구니 두 개를 양손에 나눠들고 있다. 진짜 오랜만에 본다. 전에 언제든 서점에 놀러오라고 했었는데 한 번도 안 왔지. 뭐, 짬이 없었을 거다. 그 밤중에도 꽃 팔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대낮에 무슨 시간이 있다고 서점에 놀러오겠어.


 "예. 잘 지냈어요?"

 "예. 타슈갈은 잘 지냈어요?"

 "예. 그런데 지금 꽃 들고 어디 가요?"

 "장례식장이요."


 저 꽃을 다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 부부 장례식장에 바치게? 저 정도면 한두 푼이 아닐텐데?


 "그 꽃 전부 바치게요?"

 "아니요. 가서 팔려구요."


 뭐? 가서 팔려고?


 "예?"

 "저는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이루어야 하니까요."


 차라클라야의 말이 심장을 흔들었다. 꿈을 이루어야 하니까요. 꿈을 이루어야 하니까요.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 꿈은 뭐지? 아다비아와 켈라자야의 고백. 쟤들이 정상인이었다면 오늘 아주 좋아 죽는 날이었을 거다. 만약에 기적이 일어난다면? 아니,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아진다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 이건 과거로의 회귀도 아니잖아. 아다비아와 켈라자야 상태가 좋아진다는 내 꿈이 이루어진다면 지금 일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 아닐까? 둘보다 라키사가 더 좋기는 하지만 라키사와는 어차피 안 될 거 같고...꿈을 이루어야 하니까요. 정신차리고 차라클라야를 다시 바라보았다. 온몸에서 새하얗고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차라클라야와 작별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문을 열었다. 저 시커먼 암흑을 뿜어대는 둘. 저 둘도 언젠가는 조금 전 보았던 차라클라야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새하얗고 눈부신 빛을 뿜어낼 수 있겠지? 앞으로 나날이 저 암흑의 기운이 더 시꺼매지는 거 아냐? 그래도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어둠이 점차 연해지고 차차 새하얗고 밝은 빛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바닥에 드러누웠다. 켈라자야와 아다비아가 내 양옆으로 와서 같이 드러누웠다. 이게 너무나 행복한 느낌이어야 하는데 왜 지금은 시꺼먼 어둠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일까? 몸을 뒤척이고 싶지만 양 옆에 켈라자야와 아다비아가 누워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겠다. 한쪽으로 몸을 돌리면 다른 한쪽에게는 등돌리는 게 되는 거니까. 천장을 바라보았다. 꿈을 이루어야 하니까요. 심장이 뛴다. 차라클라야는 진짜 멋지구나.


 밖이 시끄럽다. 드디어 장례 행렬이 여기를 지나가는구나. 별 일 없기를. 아다비아를 바라보았다. 아다비아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수줍게 미소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빨갛게 상기된 볼이 보인다. 붕대 아래의 눈도 아마 웃고 있겠지? 켈라자야를 바라보았다. 켈라자야는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꿈? 얘네 둘이 멀쩡해지는 것. 진짜 그 책에 나와 있는 방법으로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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