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

2018년 라마단 이프타르 - 서울 이태원 모스크

좀좀이 2018. 6. 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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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라마단이 찾아왔어요. 5월 16일부터 라마단이 시작되었어요. 2018년 라마단은 단식 시간이 매우 긴 라마단이에요. 왜냐하면 하지 즈음에 있는 라마단이거든요. 적도 부근에 위치한 국가들은 동지, 하지때 일조시간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언제나 단식 시간이 거의 일정해요. 그러나 극지방에 가까워질수록 - 즉 고위도 지역으로 갈 수록 단식 시간이 크게 변해요.


"올해도 이프타르 보러 가야겠지?"


2013년부터 매해 라마단이 되면 이태원 모스크로 이프타르를 보러 갔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5년 라마단이었어요. 동남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 한국은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었어요. 동남아시아에 머무르는 동안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보았어요. 진지하게 귀국을 미루고 일단 메르스를 피하고 봐야하나 고민했어요. 그러나 메르스 때문에 귀국을 미루지는 않았어요. 귀국후, 라마단 이프타르를 보러 가자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자 모두 경악했어요. 메르스 덮밥 먹으러 가냐고 했어요. 거기 가면 일주일동안 만날 생각 하지 말라고 하며, 제발 가지 말라고 다 뜯어말렸어요. 그러나 저는 갔어요. 


벌써 6년째. 우즈베키스탄에서 돌아온 해인 2013년부터 계속 갔으니까요. 2013년에는 8월 2일에 이프타르를 보기 위해 모스크에 갔어요. 이슬람력은 윤달이 없기 때문에 매해 조금씩 일찍 시작되요. 한여름에 있던 라마단이 어느덧 늦가을~초여름까지 올라왔어요. 이렇게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오다보면 언젠가는 한겨울에 라마단이 찾아올 때도 올 거에요. 그때는 금식 시간이 엄청 짧아지겠죠. 북반구 초고위도 지역은 거의 금식 시간이 없어질 거구요.


라마단이 시작된 이후, 항상 한 번 가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가기 많이 귀찮았어요. 결정적으로 올해 금식 종료 시간은 대략 오후 8시였거든요. 의정부에서 출발해야 하는 제게 상당히 어정쩡한 시간이었어요. 밖에서 다른 일 보고 놀다가 가기에는 시간이 늦어서 애매하고, 의정부에서 출발해서 가려니 이프타르만 보고 다시 의정부로 돌아와야 했어요. 그래서 계속 미루었어요.


"오늘은 진짜 가야겠다."


6월 2일. 날이 매우 좋았어요.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햇볕이었어요. 미루면 미룰 수록 이프타르 시간은 계속 늦어졌어요. 지금이라도 가야 했어요. 그나마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을 때에요.


밖에서 돌아다니다 7시 40분쯤 이태원 모스크로 갔어요.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올해 우리나라 서울 이프타르 시간을 제 블로그에 올려놓았어요. 그 글을 보고 시간을 맞추어간 것이었어요. 혹시 거기 나와 있는 시간보다 일찍 끝나는 것 아닌가 조금 걱정되었어요. 그러면 또 와야하니까요.



모스크를 향해 걸어올라가는 무슬림들이 보였어요.



식당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어요. 모두 과일 등 가벼운 음식을 앞에 놓고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아직 마그리브 예배 시작 안 했구나.'


모두가 마그리브 예배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태운 모스크 안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가고 있었어요. 저도 따라서 들어갔어요.



"올해는 테이블 놓았네?"


지금까지 항상 바닥에 카페트를 깔아놓았어요. 사람들 모두 이프타르를 바닥에 앉아서 먹곤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테이블을 빼곡하게 설치해 놓았어요. 테이블 위에는 대추야자와 수박, 바나나 등이 놓여 있었어요. 모두 음식을 안 건드리고 있었어요.



"언제 이프타르 시작하지?"


테이블은 이미 가득 차 있었어요. 벤치에 앉아서 이프타르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어요. 7시 58분이 되었어요. 그러나 아잔은 흘러나오지 않았어요. 사람들 모두 과일과 대추야자를 받아 기다리고만 있었어요. 저는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아잔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음식을 적당히 먹은 후 기도하러 올라갈 즈음에 과일을 받아 테이블에 앉아서 먹을 생각이었어요. 슬슬 출출해지기 시작했어요. 아잔이 나와야할 7시 58분이 되었음에도 아잔은 나오지 않았어요.


8시. 드디어 아잔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우유와 대추야자, 과일을 먹기 시작했어요.



이 무슬림들이 가볍게 허기를 지우고 기도하러 올라갈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이분들이 과일과 물, 우유를 먹는 동안 모스크로 올라갔어요.



안에서 기도를 드리는 무슬림도 있고, 그냥 앉아서 잡담하는 무슬림도 있었어요.




드디어 무슬림들이 하나 둘 모스크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과일을 받으러 갔어요.



다행히 대추야자가 많이 남아 있었어요. 대추야자 한 접시와 바나나를 받았어요. 빈 자리에 가서 앉아서 먹기 시작했어요. 그때였어요. 흑인 한 명이 제 접시 위에 있는 대추야자를 하나 둘 말없이 집어먹기 시작했어요.


'그래, 같이 먹자.'


처음에는 저기서 주는데 받아다 먹지 왜 내것을 집어먹나 했어요. 그러나 라마단. 같이 먹어요. 제 접시를 흑인 쪽으로 밀고 같이 먹기 시작했어요.


"무슬림이에요?"

"아니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이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감비아요."


감비아!


우리나라에 감비아 식당이 있어요. 녹사평역 근처에 '졸로프 아프리카 코리아'라는 세네갈-감비아 식당이 있어요. (졸로프 아프리카 코리아 : http://zomzom.tistory.com/2624) 거기에서 감비아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러나 여기에서 감비아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흑인이라 당연히 나이지리아 사람일 줄 알았거든요. 모스크에서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집트, 튀니지, 수단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있지만 감비아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감비아 사람은 제게 대추 야자 한 접시를 더 갖다주었어요. 아쉽게도 감비아 사람이 갖다준 접시의 대추야자는 먹지 못했어요. 대추야자는 너무 달기 때문에 혼자 그렇게 많이 먹을 수가 없거든요. 감비아 사람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스크로 올라갔어요. 제 접시에 있는 대추야자를 다 먹은 후 모스크로 다시 올라갔어요.





모스크 안이 무슬림으로 꽉 들어찼어요. 뒤늦게 올라온 사람들은 모스크 입구 밖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자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섰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비르야니가 나왔어요. 카레는 양고기 카레였어요.



남김없이 싹싹 다 먹은 후 설거지를 하러 갔어요. 작년에는 비누가 놓여 있었는데 올해는 세제를 풀어놓은 통에 수세미가 담겨 있었어요.



설거지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러 갔어요. 립톤 홍차 티백과 커피, 온수통이 놓여 있는 테이블에는 설탕이 수북히 담긴 통이 하나 있었어요. 립톤 홍차는 이미 다 떨어진 상태. 커피를 타서 마시려는데 아랍인 한 명이 커피 믹스에 설탕을 큰 수저로 한 스푼 푹 퍼서 더 붓고 물을 붓는 모습을 보았어요. 정말로 아랍인들은 엄청 단 거 잘 먹어요. 이건 대추야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대추야자 자체가 무지 달거든요.


올해도 이렇게 라마단 이프타르를 갔어요. 2013년부터 매해 라마단이 되면 이프타르를 보러 모스크에 가곤 해요. 올해는 지금까지 가장 잘 먹은 이프타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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