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으로 갈 곳만 남았어요. 강남 네팔 법당에서 많은 무형 보물을 얻고 나왔어요. 몸은 피곤했지만 정말 신났어요. 고생해서 찾아간 보람이 매우 컸거든요. 네팔인 스님께서는 시간 되면 또 놀러오라고 하셨어요.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어요.
대청역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어요. 길을 걸어가며 아까 걸어온 길을 다시 되살펴보았어요.
홑벚꽃은 이제 다 지고 있었어요. 그 허전함을 겹벚꽃이 채워주고 있었어요. 이 겹벚꽃까지 지면 벚꽃을 보기 위해 다음해 봄까지 기다려야 해요. 겹벚꽃보다는 홑벚꽃을 좋아하지만 겹벚꽃도 나름대로 매우 아름다워요. 색깔만 놓고 보면 겹벚꽃이 훨씬 진하기도 하구요. 벚꽃길이라 하면 대체로 홑벚꽃 길을 이야기해요. 겹벚꽃 길을 멋지게 조성하는 것도 괜찮을 거에요. 그러면 4월 내내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할 수 있을테니까요. 홑벚꽃이 유명한 길은 여기저기 많이 들어보았지만 겹벚꽃이 유명한 길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어요.
오후 3시 7분. 대청역에 도착했어요.
대청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대청역이라고 대청마루가 있었어요.
다음에 가야 하는 절은 이 길의 마지막 절인 티베트 절 삼학사원이었어요. 다른 이름은 '랍숨섀둡링'이었어요. 이름이 참 독특하다 못해 희안했어요. 우리나라 말에서 절대 보이지 않는 발음의 조합이었거든요. 랍숨섀둡링. 얼핏 보면 졸다가 자판에 머리 박아서 제멋대로 타이핑된 글자들의 조합 같았어요. 이 절 이름을 처음 보고 진짜 무슨 오타 아닌가 했어요. 그렇지만 오타가 아니었어요.
아주 예전에 고등학교 동창이 티베트 여행을 다녀온 적 있었어요. 거기 다녀와서 뭔가 정신적인 것을 얻었다는 식으로 소감을 이야기했을 때 그런가보다 했어요. 딱히 관심 없었거든요.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야 잘 알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원래 중국, 인도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나마 위구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중앙아시아에서 우즈베크어를 하면 위구르인이냐는 말을 몇 번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나마도 제대로 관심이 생긴 것은 신장위구르자치구로 여행을 직접 가서부터였구요.
2016년 친구와 중국 여행을 계획할 때였어요. 말이 좋아 계획이지, 워낙 갑자기 가는 여행이라 대충 어느 지역 갈 지에 대해 잡담하던 중이었어요.
"우리 티베트 갈까?"
"나 티베트는 별로."
친구가 티베트 가는 것 어떻냐고 물어보았어요. 티베트는 정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별로라고 대답했어요. 친구가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어요. 당연히 좋은 정보가 나올 리 없었어요. 중국어로도 찾아봤나봐요. 온통 부정적인 정보 뿐이라고 하면서 거기 진짜 위험하지 않냐고 걱정했어요. 친구가 위구르 지역 정보를 찾아보는 동안 저는 티베트 지역 정보를 찾아보았어요.
뭐야? 라싸 밖에 못 가?
뉴스만 보면 신장위구르자치구가 티베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지역이었어요. 하지만 여행 정보를 찾아보니 신장위구르자치구 전 지역은 외국인도 여행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반면 티베트는 실상 외국인 여행 금지 지역이었어요.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이 라싸 하나 뿐이었고, 나머지 지역은 따로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보아하니 중국 정부가 외국인들에게 티베트는 라싸 포탈라궁이나 보고 꺼지라고 하는 중이었어요.
이것이 당시 위구르 여행을 결정할 때 상당히 크게 작용했어요. 친구가 '위험한 신장위구르'보다 '무언가 신비로운 것이 있을 것 같은 티베트'를 가보고 싶어했지만, 티베트에서 저와 친구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라싸 하나 뿐이었거든요. 게다가 저렇게 실질적인 외국인 출입 금지 지역이라는 것은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뭔가 심각하게 안 좋은 것이 있다는 의미니까요.
한국에 티베트 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신기했어요. 그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중국의 파룬궁 탄압 관련된 것은 간간이 길거리에서 보았어요. 하지만 티베트 폭압에 대한 것을 길거리에서 본 적은 거의 없어요. 세계적으로 중국이 티베트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 티베트인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 자체가 없었어요.
4시 3분. 연신내역에 도착했어요. 연신내역에서 나오니 시장이 펼쳐져 있었어요.
시장을 구경하며 길을 걸어갔어요.
좁은 인도를 따라 시장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길이 실제보다 훨씬 좁게 느껴졌어요.
산을 보며 지도를 보며 계속 걸어갔어요.
"여기 어디쯤인데?"
양꼬치집을 지나 지도로 제 위치를 확인해 보았어요. 랍숨섀둡링 위치를 이미 지나갔다고 나왔어요.
"길 건너인가?"
분명히 제가 걷는 길에 있어야 했어요. 랍숨섀둡링은 보이지 않았어요. 길 건너에 주유소가 보였어요. 주유소가 있는 쪽 길 반대쪽에 티베트 사원이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건물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저기다!"
교회 간판 바로 옆에 '랍숨섀둡링'이라는 글자가 보였어요.
입간판에는 '삼학사원 (티벳사원)'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2층 당구장, 3층 교회, 4층이 티베트 사원. 위치를 보고 웃었어요.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들이 마치 '랍숨섀둡링'이라는 말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엘리베이터로 4층으로 올라갔어요.
입구에 '랍숨섀둡링'이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어요. 옆에는 달라이라마 생신 기원 장수 기원 법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불단을 보니 얼핏 보면 우리나라 절과 비슷해보이지만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확 느껴졌어요.
벽에는 티베트 불교 소개가 붙어 있었어요.
삼배를 드리고 불단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불단에서 인상적인 것은 바로 이 보살상들이었어요.
바로 전에 갔던 네팔 사원에서 네팔인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여기도 불단에 다기가 매우 많이 올라가 있었어요.
벽 한 쪽에 화이트보드가 있었어요.
이거 뭘 적어놓은 거야?
죠띾모 죠띾모 죠죠띾모 툰죠카 라락첸모띾모 아짜따짜 툰죠루루루루 홈죠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한글의 조합. '띾'이라는 글자는 여기에서 처음 보았어요. 이 글자가 자판에서 입력된다는 사실 자체를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았구요. '띾'은 한글이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한글이었어요.
불당 내부를 구경한 후 나가려던 때였어요.
문이 열리고 키가 큰 스님 한 분께서 안으로 들어오셨어요. 스님께 인사를 드렸어요.
"여기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아, 인터넷에서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다는 글 보고 궁금해서 한 번 찾아와봤어요."
스님께서 잘 오셨다고 웃으며 말했어요. 이 스님 역시 한국어를 상당히 잘 하셨어요. 외모로 보나, 한국어 실력으로 보나 한국인이었어요. 스님께 티베트인이냐고 여쭈어보았어요. 스님께서 맞다고 대답하셨어요.
"스님, 저 화이트보드에 적힌 거 뭔가요?"
"그건 마하칼리 진언이에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글로 적힌 무언가는 '마하칼리 진언'이라는 것이었어요.
"스님, 티베트 불교와 한국 불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스님께서는 티베트 불교도 대승불교에 속한다고 알려주셨어요. 한국 불교와 다른 점이라면 티베트 불교는 밀교 성격이 있고, 경전 공부를 상당히 중요시한대요. 티베트 불교에도 종파가 있는데, 여기는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빠의 사원이라고 하셨어요. 반야심경도 있는지 여쭈어보았어요. 티베트 불교 또한 반야심경이 있다고 대답하셨어요.
"한국의 반야심경은 원래 반야심경보다 짧아요. 티베트 불교의 반야심경은 한국 반야심경에서 생략된 내용들이 있어요."
"혹시 티베트어로 된 반야심경 볼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 제 부탁에 찾아보시더니 지금 당장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대신 한국어로 번역된 티베트 불교 반야심경을 주셨어요.
떼야타 가떼가떼 빠라가떼 빠라쌍가떼 보디히 솧하
이게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에요. 그 아래 있는 내용이 우리나라 반야심경에서는 생략된 내용이래요.
스님께서 음료수를 하나 주셨어요. 그리고 토요일에 티베트 불교 강의가 있으니 원하면 와서 참여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스님께 법당 내부 불을 환하게 켜셨어요.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어요.
서울 은평구에는 티베트 불교 사원인 랍숨섀둡링이 있어요. 여기 홈페이지는 http://kidkoala.cafe24.com/ 이에요. 티베트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찾아가보시는 것도 매우 좋으실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