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20 타지키스탄 이스타라브샨

좀좀이 2012. 5. 27.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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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6일 수요일


산에서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일정이 망했어요. 원래는 오늘 아침 이스타라브샨을 보고 오후에 후잔드로 넘어갈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전날 산에서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이스타라브샨에서 숙소를 찾지 못했고, 결국 이스타라브샨을 지나 후잔드로 들어왔어요.


아침 8시. 눈을 떴어요. 이스타라브샨 Istaravshan 을 못 본 것이 너무 마음에 걸리고 억울했어요. 여기는 과거 이름이 우로 테파 Уро Тепа. 타지크인들은 그냥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동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론니플래닛에서는 꽤 비중있는 도시에요. 비록 지도는 실려 있지 않지만 무려 한 페이지 전체에 걸쳐 이스타라브샨을 소개하고 있었어요. 평가도 매우 좋았어요.


문제는 론니플래닛에 후잔드에서 이스타라브샨을 어떻게 가는지에 대해서는 잘 나와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정말 교통편을 왜 뒤죽박죽 써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차라리 교통편만 빼서 뒤에 보기 좋게 쫘악 정리를 해 놓든지...더욱이 이스타라브샨은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설명을 보아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반드시 간다!"


후잔드에서 90km라면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 계기판에 100km/h는 기본으로 넘겨주는 이 나라 운전자들이지만 실제 가는 거리는 한 시간에 잘 가야 60~70km 수준. 오래 걸린다고 해야 2시간인데 전날 길이 좋아서 이스타라브샨에서 후잔드까지는 1시간에 간다고 했어요. 물론 실제로는 한 시간 반 걸렸지만요. 중요한 것은 이동 시간이 짧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보고 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갑아, 너도 갈래?"
"어디?"
"이스타라브샨. 안 간다고 하면 나 혼자 가고."
"같이 가자."


을은 어제 일정을 마지막으로 체력이 완벽히 바닥났어요. 아침에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기는 커녕 눈도 못 뜨고 있었어요.


"빨리 씻어. 나가자."


을이 뻗어서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니 오늘 을은 이스타라브샨에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을은 조금 더 쉬게 놔두었다가 우리가 출발할 즈음에 깨워서 갈지 물어보기로 했어요.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나 론니플래닛이나 타지키스탄 숙소의 특징은 가격이 제법 나가는 대신 그냥저냥 괜찮거나, 가격이 저렴하고 끔찍하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워낙 개발이 되지 않은 나라라서 '가격이 착한데 그냥저냥 괜찮은 숙소'는 없는 곳이 바로 타지키스탄. 어디에서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2008년도, 1년간 타지키스탄을 방문한 관광객은 고작 3만 명이래요. 30만 명도 아니고 고작 3만 명이에요. 이런 나라에서 가격이 착한데 그냥저냥 괜찮은 숙소가 존재할 리는 당연히 없어요. 어떻게 보면 '가격이 착한데 그냥저냥 괜찮은 숙소'는 정말 전기와 물 걱정이 없거나, 또는 박리다매식 운영이 가능한 곳에서나 있는 거니까요. 아니면 유럽처럼 전체적인 생활 수준 자체가 높거나요.


먼저 화장실.


변기 뚜껑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요. 저는 변기 뚜껑 다 들어내고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엉덩이를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당연히 저기 앉으려고 하면 변기 안으로 풍덩 빠져버림. 어떻게 기묘한 자세로 볼 일을 본다고 해요.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에요. 더욱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던 것은...


물을 내릴 수가 없다.


이 변기는 변기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겨야 물이 내려가는 변기에요. 그런데 변기에 달려 있는 손잡이는 온데간데 없었어요. 변기 뒤에 있는 물통의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없었어요. 이래서 옆 세면실에 5리터 짜리 생수통이 있었구나. 세면실에 있는 5리터 짜리 생수통에 물을 받아서 변기에 부어 물을 내리라는 것이었구나.


일단 소변이 급해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한 후, 급한 대로 서서 볼 일을 보고 물통에 물을 받아 변기에 부었어요. 물통에 물을 꽉 채워 두 번 부었어요. 그래도 깨끗하게 내려간 것 같지는 않았어요.


이래서 복도에서 오줌 냄새가 났구나!


어제 방에 올라오는데 복도에서 소변 냄새가 났어요. 호텔이니 당연히 밖 으슥한 곳에서 볼 일을 해치웠을 리는 없을텐데 왜 그런 냄새가 나나 했어요. 이제 이유는 밝혀졌어요. 변기가 제 구실을 못하니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방에 화장실이 있는데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공용 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이로써 일단 화장실이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화장실 없는 방' 확정.


일단 세면대에서 물이 안 나왔어요. 그냥 수도꼭지가 둘 다 헛돌 뿐이었어요. 온수는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켜야 나온다고 했는데 어제 친구가 온수 틀고 발을 씻는데 나오라는 온수는 안 나오고 전기만 나온다고 했어요. 스위치 올렸더니 전기가 섞인 물이 흘러나온 것. 온수로 몸을 씻는 게 아니라 전기로 마사지하라는 건가?


그나마 물도 졸졸졸 나왔어요. 이게 수도꼭지 틀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도꼭지 틀고 한참 기다려야 '푸슉, 푸슈슉'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물이 찔찔찔 나왔어요. 그 물도 뿌연 물이라서 양치는 불가. 양치는 생수로 했어요. 그 물로 양치했다가는 치약으로 이를 닦고 이물질로 입안을 코팅하는 효과가 날 것 같았어요. 욕조가 물이 잘 안 빠지는 것은 덤. 발을 씻는데 예전 '7박 35일'에서 기차 화장실에서 발을 씻던 것처럼 기괴하고 기묘한 자세로 발을 씻어야 했어요. 찔찔 흘러나오는 물조차 욕조에 고여버려서 욕조에 들어가서 발을 씻으면 비누칠을 씻어낼 방법이 없었어요.


샤워는 전적으로 불가. 그건 참을 수 있었어요. 어차피 1박만 더 하면 되기 때문에 까짓거 하루만 더 참으면 되는 문제. 진짜 문제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하루 종일 볼일을 참고 다음날 다른 숙소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그 전에 체력과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일단 어떻게 세수하고 머리를 감은 후 친구에게 빨리 준비해서 나오라고 한 후, 방 밖으로 나왔어요. 복도에 창이 있어서 복도에서 후잔드 사진을 찍었어요.



이것이 바로 에흐손 호텔.


호텔 앞에 있는 분수 앞에 앉았어요.


"니하오."
빈 수레를 끌고 가던 소년이 제게 '니하오'라고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애들이 동양인 보면 그냥 가는데 이 나라 애들은 동양인 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니하오'를 외쳐요.
"여, 볼라!"


니하오를 하고 가려는 애를 불러세웠어요.


"이스타라브샨 어떻게 가?"
신기하게도 이 현지인 소년이 우즈벡어를 알아들었어요. 현지인 소년은 신이 나서 침을 열심히 강력히 튀겨가며 설명해 주었어요. 설명을 들어보니 에흐손 호텔에서 길을 건너지 말고 마슈르트카를 타고 아브토바그잘에 간 후, 거기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었어요.


소년에게 고맙다고 하고 분수 앞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또 누군가가 '니하오'라고 했어요. 이번에는 딱 보니 중국인이었어요. 당연히 멀뚱멀뚱 쳐다보았어요.


"니하오. 쏼라쏼라 쐉쐉쐉?"


저는 중국어를 몰라요. 그런데 중국인은 동양인이니 중국인일 거라 생각한 것 같았어요. 반갑게 중국어를 하며 다가왔어요.


"워 한궈."
이게 맞는지 틀린지도 몰라요. 중국어는 배워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 배울 필요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 주워들은 몇 마디 - 니하오, 셰셰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어디선가 '나'는 중국어로 '워'라고 하고 '한국'은 '한궈'라고 한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대충 '워 한궈'라고 했어요. 중국인은 머쓱해하며 가던 길을 갔어요.


분수 앞에 앉아 갑을 기다리는데 갑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중국인처럼 생긴 동양인이 제게 그늘로 오라고 손짓했어요.


"빠 루스끼 즈나이쉬?"


그 사람은 제게 러시아어를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녜뜨."


당연히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우즈벡 틀르 빌라스즈므?'라고 물어보았어요. '우즈벡 틀르 빌라스즈므?'는 '우즈벡어 아세요?'라는 우즈벡어.


"하."


그 사람은 우즈벡어를 안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그 사람과 우즈벡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은 수르한다리오 주 출신. 생각해보니 카슈카다리오와 수르한다리오로 가면 매우 동양인처럼 생긴 우즈벡인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오늘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간다고 했어요. 그리고 후잔드에는 우즈벡어를 아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했어요. 방언으로 이야기하는데 대충 다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그쪽을 두 번이나 가 보아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들어보아서 크게 어색하지 않았어요. 카슈카다리오와 수르한다리오에서는 '어디로'인 'qayerga'를 'qayqa' (카이카, 카-카)라고 하고 'yo'발음을 'to'로 하는 특징이 있어요. 제가 이스타라브샨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자 제게 따라오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택시기사들에게 가서 우즈벡어로 이스타라브샨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놀랍게도 택시기사들은 우즈벡어로 대답해 주었어요. 그 사람이 다시 제게 어떻게 가는지 설명해 주었지만 그 사람과 택시기사의 대화를 듣고 이미 이해했어요. 그 사람은 자기가 마슈르트카 잡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분수 앞에 앉아서 수르한다리오 사람과 이런 저런 잡담을 하는데 갑이 제게 호텔로 와보라고 소리쳤어요.


호텔로 다시 들어가보니 갑과 을이 방을 바꾸어달라고 하기로 했다고 했어요. 일단 갑이 화장실에 문제가 있다고 러시아어로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러자 직원이 종이에 '방-화장실 고장'이라고 썼어요. 그러자 을이 방을 바꾸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직원은 오늘 다른 방에 있는 사람이 나간다면 그 방으로 바꾸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타지크어로 '같은 가격이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직원들이 '얘 타지크어 해'라고 말하며 깔깔 웃으며 같은 가격이라고 했어요.


을은 자기는 오늘 이스타라브샨에 가지 않고 호텔에서 그냥 쉴 것이므로 그 방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 아침 9시에 나간다고 했기 때문에 기다렸다가 방을 보고 우리들에게 말해준다고 했어요. 우리들은 분수 앞에 앉아서 을을 기다리기로 하고 을에게 우리들은 분수 앞에 있겠다고 했어요. 만약 방을 보고 괜찮으면 우리들에게 와서 알려달라고 했어요. 을이 알려주면 짐을 바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을에게 우리들 가방까지 혼자 다 옮기라고 할 수는 없었어요.


8시 50분부터 수르한다리오에서 온 분과 다시 잡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후잔드에 사시는 한 우즈벡인 아주머니께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더니 아들이 지금 한국어를 공부할지 중국어를 공부할지 고민중인데 혹시 한글 적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한글과 발음을 적어드렸어요.


9시 20분까지 계속 잡담을 하며 을을 기다렸는데 을이 분수로 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갑이 한 번 방에 가본다고 호텔로 들어갔어요.


잠시 후. 갑이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돌아왔어요.


"방에 들어갈 거면 들어간다고 와서 말을 하고 가야할 거 아니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을은 9시 조금 넘어서 호텔 입구에서 우리에게 들어간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대요. 그런데 우리는 그때 아저씨와 대화중이었고, 거리는 당연히 차 때문에 시끄러워서 호텔 입구에서 들어간다고 말한다고 해서 (을은 외쳤다고 말했대요) 우리에게 들릴 리가 없었어요. 을은 호텔 입구에서 방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후 들어갔고, 우리는 당연히 그것을 못 들었기 때문에 9시 20분까지 계속 분수 앞에서 을을 기다렸던 것이었어요.


"일단 3시쯤 돌아올 거라고 말했어."


화가 난 갑을 달래며 수르한다리오에서 온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아브토바그잘로 가는 마슈르트카를 탔어요. 마슈르트카를 타며 놀란 것은 차장이 너무 어린 아이였다는 것이었어요. 이 아이가 1소모니 동전을 가지고 있길래 지폐 1소모니와 동전 1소모니를 교환했어요.


아브토바그잘에 도착하자 택시기사들이 몰려왔어요.


"이스타라브샨! 우로 테파!"


그러자 서로 자기 택시에 오라고 했어요.


"칸차 투라드? 찬드 아스트?"


가격은 1인당 10소모니. 그래서 택시에 탔어요. 택시에는 한 명이 미리 타고 있었기 때문에 택시 기사는 한 명만 더 태우면 바로 출발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택시기사가 그 말을 하자마자 이스타라브샨 가는 손님을 한 명 더 태워서 사실상 타자마자 바로 이스타라브샨으로 출발한 꼴이 되었어요.


11시. 이스타라브샨 시장에 도착했어요.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일단 오는 길에 조그만 언덕 정상에 있는 성을 보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걸어가기로 했어요.


이스타라브샨 중심 거리 사진이에요.



우승의 순간. 손으로 그린 교통 표지판인데 왠지 올림픽 육상 승리 기념 표지판이라고 해도 믿을 듯.


계속 이어지는 이스타라브샨 중심 거리.







길을 걸어가는데 모스크의 일부분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어요.


타슈켄트도 그렇고, 구 소련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에는 모스크였는데 소련 시절을 겪으며 용도가 변경되거나 파괴되어 일부분만 남아 모스크로 활용되는 건물들을 간간이 볼 수 있어요.


"우리 저기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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