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05화

좀좀이 2017. 12. 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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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05화


 어떻게 하면 아다비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미 멀어버린 눈과 흉측해진 얼굴은 어떻게 해도 돌아올 수 없을 거다. 그러나 쿠룬나스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올 수는 있지 않을까? 예전 그 예쁘고 아름다웠던 아다비아의 얼굴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상처가 나아도 얼굴은 온통 흉터 투성이겠지. 괜찮아. 그런 건 지금 아다비아가 쿠룬나스 상태라는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문제다.


 "이고, 아다비아 얼굴, 루즈카가 그런 거야?"

 "응. 아마도."


 이고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장부만 멍하니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꼭 그래야했을까?"

 "뭐를?"

 "그렇게 얼굴을 흉측하게 만들어야 했냐구."

 "지금 루즈카가 잘못했다는 거야?"

 "꼭 그건 아니지만..."


 이고가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보았다.


 "잡아먹으려고 덤벼드는데 뭘 봐줘야 하냐? 일단 사는 게 중요한 거지. 그 상황에서 설마 말로 잘 설득하라고 하고 싶은 거야?"

 "아니."

 "그러면 왜 그런 멍청한 걸 물어보는데?"

 "뭐가 멍청하다는 거야?"


 그냥 물어본 건데 뭐가 멍청하다는 거야? 갑자기 화가 난다.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알아? 그날 보니까 루즈카는 아주 멀쩡하더만.


 "야, 루즈카를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고. 그런데 '진정하세요' 하면서 가만히 있어야 하냐?"

 "그게 아니잖아!"

 "그게 아니면 뭐? 그러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고?"

 "그래도 루즈카는 훌륭한 저주술사니까..."

 "저주술사면 다 무적이냐?"


 말을 더 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할 거 같다. 그냥 아무 말 안 하는 게 낫겠다. 더 이야기해봐야 싸우기나 하겠지. 이고와 싸운다고 해서 아다비아가 멀쩡해지는 건 아니잖아. 이고의 말에 화가 치밀어오르기는 하지만 다 의미없는 짓이다. 어차피 이고가 아다비아를 낫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구. 차라리 루즈카가 어디선가 기적의 저주술을 알아와서 아다비아를 치료해주는 것이 더 가능성 있을 거다.


 "타슈갈, 너 아다비아 좋아하는 거 아는데..."

 "그게 뭐!"


 내가 아다비아를 좋아하는 것이 지금 중요한 건 아니잖아. 아다비아가 내 애인도 아니구. 정말 많이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왜 이야기해? 마치 내가 짝사랑하고 있다는 투로 말이다.


 "그러니까 루즈카도 아다비아 안 죽인 거야. 루즈카도 위험했다구."

 "그렇다고 눈을 칼로 그어버려?"

 "눈으로 보고 잡아먹으려 드는데 어떻게 해? 너 뭔가 오해하나 본데, 눈이 멀었기 때문에 아다비아가 산 거야. 생포하려고 눈을 그어버린 거라구!"

 "눈을 가려도 되잖아!"

 "눈에 보이는 건 다 잡아먹으려 드니까 그었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쿠룬나스가 여기만 있냐? 남아드라스 공화국에도 있으니까 알지! 보이는 건 다 잡아먹는다고 해서 그어버린 거라구! 일단 사람을 못 잡아먹어야 뭐 어떻게 치료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고가 아다비아 눈을 그어버린 거 아니야? 아니면 블랑쉬블르가? 쿠룬나스를 생포하면 눈을 그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쿠룬나스가 사람을 가죽만 남기고 잡아먹는다는 말만 들었지, 그것이 어떻게 활동하고 사람을 잡아먹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접한 일이 한 번도 없다. 바하르도 그런 이야기는 전혀 해주지 않았다. 바하르도 가죽만 남은 시체를 보고 쿠룬나스가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할 뿐이다. 굳이 나 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그럴껄?


 "타슈갈,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아다비아가 죽기를 바래, 살기를 바래?"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살아야지!"

 "그러면 아다비아 얼굴 갖고 시비걸지 마라. 그게 지금 최선이야."

 "제기랄..."


 고개를 돌렸다. 아다비아는 진짜 앞으로 어떻게 하지? 눈도 멀고 얼굴도 흉측하게 상해버렸다. 앞으로 아다비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잖아. 길거리에서 구걸이나 하며 살아야 하나? 예전처럼 끝없이 위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대체 어디까지 굴러떨어져내려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야지. 블랑쉬블르 말처럼 죽는 건 아니야.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런 건 다 나중에 생각하면 돼.



 밖으로 나갔다. 속이 답답하다. 정말 블랑쉬블르 말대로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 아다비아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었을까. 얼굴 흉측해진 건 괜찮아. 하지만 눈이 멀어버린 건 끔찍하다. 장님이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어? 구걸이라도 똑바로 할 수 있나? 눈만 멀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루즈카에게 아예 아무 것도 못 하게 손발 다 잘라놓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찾아가서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건가. 아다비아, 이 머저리 같은 것은 왜 갑자기 쿠룬나스가 된 거야? 평소에는 그렇게 똑똑하던 애가 뭐에 미쳐서 제일 최악의 결과를 택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살아야지.'


 뭔가 방법이 있겠지. 이 미친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리는 없잖아. 이 도시에 안정이 찾아오면 앞이 안 보이는 아다비아가 할 수 있는 일도 뭔가 생길 거다. 세상에 아무 것도 못 하고 굶어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대기근이 몰아닥쳐서 멀쩡한 사람들까지 다 굶어죽지 않는 한 어떻게 살아갈 방법은 있겠지. 어떻게든 길은 있을 거다. 지금까지 아다비아가 걸어온 길에 비하면 아주 형편없고 심지어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길일 수도 있겠지만.


 벌써 2월이다. 2월 1일. 작년 이맘때에는 정말 기뻤다. 드디어 고향을 벗어나 에드자로 가게 되었으니까. 진절머리나는 모든 것과 끝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마딜 땅을 떠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돈이야 학교 다니며 꾸준히 벌면 어떻게 될 거고, 학교를 졸업하면 모아놓은 돈을 들고 바로 외국으로 떠날 작정이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애초에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땅. 내가 외국인인 곳이 당연한 곳.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이 꿈이다. 작년 2월에 내가 상상하던 지금의 내 모습과 지금 현재 내 모습은 어느 정도 비슷할까? 돈은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 딱히 쓸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에드자가 이렇게 미쳐돌아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걸 알았다면 나는 에드자로 왔을까?


 '아마 왔겠지?'


 쓸 데 없는 가정.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알아도 왔을 거다. 그만큼 어떻게든 아예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으니까. 쿠룬나스에게 잡아먹혀도 좋으니 에드자로 갈 거라고 집에서 뛰쳐나왔을 건가? 그러고도 남겠지. 에드자에서 지금까지 지내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못 해보았으니까. 이런 사실을 알아도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나왔다. 그냥 이 상황이 싫은 것 뿐이야. 그래도 이게 그나마 나은 상황이잖아. 내가 고향에 있었다고 해서 학교에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어차피 일어날 시위였다. 내가 없었다면 아다비아는 지금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천만에. 아다비아는 결국 저렇게 되었을 거다. 뭐가 뭔지 아직 모르겠지만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잖아. 내가 있었든 없었든 전혀 상관 없었던 일이다. 설령 내가 없었다 해도 아다비아는 계속 위를 향해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고, 그 결과는 지금 눈이 멀고 얼굴이 흉터투성이인 쿠룬나스였을 거다. 켈라자야가 정신이 참 희안한 건 나와 단 하나도 상관없는 일이다. 나 때문에 밤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잖아. 그 이전에 나와 만나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한 애였구. 라키사라면...라키사는 잘 모르겠다. 라키사가 이 서점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준 건 맞다. 내가 없었다면 3월부터 라키사가 여기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을까? 그건 모르겠다. 아마 그러지는 않았을 거다. 이고가 서점 일 힘들기 때문에 여자를 직원으로 뽑는 것은 별로라고 했으니까. 내가 없었다면 라키사가 이 서점에서 일하는 것 하나 바뀌었겠다. 그러나 라키사는 스스로 자기가 할 일을 찾아내었을 거다. 그 일이 여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의 차이니 무의미한 것이라 봐도 되겠지.


 "정말 오랜만이야!"


 서점에 들어가려는 순간 누가 나를 불렀다. 뒤돌아보았다. 자에드와 예라였다. 


 "응. 진짜 오랜만이다."

 "너는 우리들 안 반가워? 우리는 이 서점 다시 오고 싶어했는데."


 너희들은 예전에 왔을 때도 하나도 안 반가웠어. 쟤들이 나한테 친해지고 싶어서 저러는 건지 형식상 저러는 건지조차 분간이 안 된다.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예라가 내 반응에 아쉽다는 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진짜 아쉬운 건지 꼬투리 잡으려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쟤들도 아다비아랑 뮈젤로 교육받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었나? 순간 바하르가 이야기해준 것이 떠올랐다. 쟤들도 아직 에드자에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둘의 옷을 보았다. 중앙학문연구소 다니는 애들이 입는 갈색 제복이다.


 "너네 뮈젤에 교육받으러 간 거 아니었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바하르한테 들었어."

 "아, 바하르? 걔 요즘 안 보이던데?"

 "너네 학교 동원령 내려졌잖아."

 "몰랐어. 우리한테는 동원령 통지 안 오던데."


 얘들은 중앙학문연구소 학생들에게 동원령 내려질 때 뮈젤에 있어서 완전히 면제된 건가? 그렇다면 바하르가 뮈젤 따라갈걸 엄청 후회할 만 하다. 바하르는 동원령 때문에 오늘도 계속 근무 투입되고 있을텐데. 그런데 얘네들이랑 아다비아랑 같이 교육받지 않았었나? 얘네들은 왜 멀쩡하고 아다비아만 쿠룬나스가 된 거지? 거기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가?"


 "너네 교육에서 뭐 배웠어?"

 "최신 선진 교육을 받았어."

 "어떤 교육인데?"

 "세상의 진리 같은 거. 너는 그 지식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뭐가 진리인데?"

 "있어. 평범한 마딜인들은 죽을 때까지 깨우치지 못할 것들."


 자에드가 나를 하찮은 인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눈을 살짝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이것들과는 내가 이래서 말 섞기가 싫어. 자에드도, 예라도 아주 자기 잘난 척 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대체 뭘 얼마나 대단한 것을 배웠길래 평범한 마딜인들은 죽을 때까지 깨우치지 못할 거라는 거야? 그리고 무슨 세상의 진리? 이놈들도 감비르처럼 남자가 여자 되고, 여자가 남자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헛소리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꼬락서니를 보니 다행히 그런 거 같지는 않다.


 "아다비아도 그 교육 같이 받았어?"

 "아다비아? 아, 걔? 응. 같이 받았어."

 "아다비아는 거기서 잘 지냈어?"


 자에드와 예라는 잠시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예라가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다비아는 우리와 친하지 않았어."

 "아...그래?"

 "그렇지만 매우 만족해하는 거 같았어."


 그때 자에드가 예라의 말에 자기 말을 덧붙였다.


 "거기 생활 만족하는 것에는 아마 1등이었을걸? 음식도 엄청 먹고 온갖 물품도 엄청 써대던데."

 "그래? 거기 생활 꽤 좋아했나보네."


 비아냥거리는 것 같지만 참자. 이놈이 진짜 비아냥거리려고 저 따위로 말한 건지, 자기 딴에는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것을 저 따위로 표현한 건지 모르겠다. 원래 사람 속 박박 긁고 잘난 체 엄청 해대는 놈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여기서 흥분하면 결국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되어서 루즈카 집에 잡혀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갈 거다. 냉정해야 한다. 아다비아가 쿠룬나스라는 이야기는 절대 이놈들에게 해서는 안 된다.


 "적응은 1등이었을걸? 실력이 밑바닥이어서 문제였지. 그래도 나름 발악하더라구. 일반인 주제에 끝까지 버텨낸 거 보면 정말 대단하기는 해."


 이 새끼 면상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지금 이 새끼 한 방 먹인다고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그래? 거기서 정말 열심히 했나보네."


 예라가 인상을 가볍게 찌푸리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할 정도였어. 비록 나중에 도망치기는 했지만."

 "도망치다니?"

 "몰라.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이던데? 교육 견디기 정말 힘들었나봐."


 도망치다니? 아다비아는 그 교육을 끝까지 다 마친 게 아니었어?


 "그래도 거기까지 쫓아왔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자기 딴에 열심히 했으니까. 자기 주제를 깨달았겠지. 거기는 노력한다고 되는 곳은 아니니까."

 "너희는?"

 "우리들은 조기 수료하고 돌아왔어."

 "아...축하해."

 "뭐, 당연한 건데."


 예라가 미소를 지으며 자기들이 조기수료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이만 가볼께.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놀러올께."

 "그래."


 뭘 또 놀러와? 영원히 이 서점에 제발 나타나지 마라. 마음 같아서는 둘 다 흠씬 두들겨패서 머리를 도랑에 처박아버리고 싶다. 저 망할 것들은 교육 받고 오더니 말하는 꼴이 더 사람 열받게 바뀌었다. 그래도 하나 알았다. 아다비아는 거기에서 도망쳐서 에드자로 돌아왔다. 자에드와 예라 말대로라면 도저히 교육을 못 쫓아가서 몰래 도망친 거구. 아다비아가 그 교육을 쫓아가기는 무리였을 거다. 어떤 교육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앙학문연구소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바로 자에드, 예라 같은 애들과 교육을 받으러 갔으니 처음부터 무리이기는 했을 거다. 대체 무슨 교육을 거기에서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도망치고나서 쿠룬나스가 된 건가?'


 아다비아가 어쩌다가 쿠룬나스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뮈젤에서 교육을 받다가 도망쳤다. 그 후 에드자로 돌아왔다. 이 다음에 쿠룬나스가 된 건가? 어떤 방법으로? 누가 강제로 쿠룬나스로 만들어버린 건가? 연초에 서점에 왔을 때 매우 피곤해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에 특별할 것은 없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쿠룬나스였다면 나를 보고 잡아먹으려 들지 않았을까? 켈라자야도 별 반응 보이지 않았잖아. 설령 아다비아가 인간을 잡아먹고 싶다는 욕망을 꾹 누르고 있었다 해도 저주술사인 켈라자야한테는 어떤 식으로든 그 욕망이 들키지 않았을까?


 자에드와 예라가 멀쩡한 것으로 보아 아다비아가 뮈젤에서 쿠룬나스가 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뮈젤에서 도망칠 때까지는 멀쩡했다는 거잖아. 뮈젤에서 여기로 오는 동안에 뭔가 있었다는 건가? 그러면 나와 만났을 때 이미 이상한 상태였겠지. 그러나 켈라자야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눈 맞으며 쭈그려 앉아 있던 그날 이후 며칠 사이에 뭔가를 겪고 쿠룬나스가 되어버렸다는 건가? 쿠룬나스는 전염병 같은 거야? 차라리 전염병이라면 좋겠다. 그러면 약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고는 여전히 장부만 보고 있다. 장부를 보고 싶어서 보는 건지,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싫어서 장부만 바라보는 건지 모르겠다. 켈라자야는 방 안에서 계속 자고 있다. 라키사는 오늘 서점을 쉬고 아다비아 문병을 다녀온다고 했다. 어제 이고가 이제 아다비아 문병을 가도 된다고 이야기해줬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병을 가도 될 정도라고 하니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나보다. 낮에 나와 라키사 둘 다 서점을 비우는 것은 그래서 라키사가 오늘 먼저 병문안을 다녀오고 내일 내가 다녀오기로 했다. 아다비아 상태가 많이 좋아졌을까? 내일 라키사가 서점 와서 이야기해주겠지. 라키사에게 이야기를 듣고 직접 가서 볼 거다. 기적이 일어나서 모든 것이 싹 다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적이 제발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제 문병을 가도 된다고 했으니 그때 그 모습보다는 확실히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일 거다. 그 전까지는 아예 문병도 못 가게 했으니까. 아다비아를 어떻게 쿠룬나스에서 인간으로 되돌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블랑쉬블르가 일단 두고보자고 하기는 했는데.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아다비아. 작년 봄에는 아다비아가 이 책을 보는 것을 계속 도와주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 그렇지만 정말 만약의 만약이라는 것이 있잖아.


 "괜찮겠지?"

 "뭐가?"


 혼자 중얼거린 말에 이고가 반응했다.


 "아다비아."

 "상태 좋아졌어."

 "앞으로 어쩌지?"

 "몰라. 너 하기 나름 아닐까?"

 "나 하기 나름이라고?"


 갑자기 왜 나와 아다비아가 묶이는 거야? 아다비아가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네가 살려주라고 했잖아. 너 스스로 네 말에 책임져야지."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는데?"

 "너 때문에 살려서 숨기고 있는 거야. 아니었으면 그날 죽였든가 경찰에 넘겨서 연구를 했겠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쿠룬나스잖아. 너는 걔가 '아다비아'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쿠룬나스야. 잡아 죽여야할 것."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

 "너는 그러면 왜 쿠룬나스를 무서워하는데? 아다비아가 쿠룬나스면 착한 쿠룬나스고 다른 사람이 쿠룬나스면 나쁜 쿠룬나스냐?"


 이 헛소리를 반박하고 싶다. 그런데 맞는 말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오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이고 말이 틀린 말이어야 어떻게 하든 말든 하지. 그래, 내 눈에는 아다비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것은 아다비아가 아니라 사람을 가죽만 남기고 잡아먹는 쿠룬나스지. 원래는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는 거야? 나 때문에 일부러 일단 그 지하실에 던져놓은 거야?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하려고?


 "그게 왜 나랑 관련있는데?"

 "아다비아는 네 친구잖아. 작년에 너 공부 도와주던 거 다 잊었어?"

 "그게 뭐!"


 이고가 한숨을 쉬더니 나를 노려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가 사람 새끼냐? 그걸 나한테 왜 물어봐? 작년에 아다비아가 너 구제해준 거 잊었어? 네가 사람이면 갚아야할 거 아니야!"

 "나보고 뭘 어쩌라구!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봐? 어찌해야 하냐고 방법을 물어보고 있잖아!"

 "내가 아냐? 너랑 아다비아가 알아서 해야지!"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어?"

 "그러면 나라고 아냐? 너 스스로 생각 좀 해!"


 이고가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서점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짜 열받는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본 것이 뭐가 문제야? 주먹으로 있는 힘껏 계산대를 내리쳤다. 잠시 후 이고가 서점 안으로 들어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일 가봐. 나도 아다비아 생각하면 머리 아파."


 아무 말 하기 싫다. 뭐가 머리아프다는 거야. 아다비아를 못 죽여서? 나한테 어떻게 하면 다 떠넘길지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


 "지금 앞이 안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애가 정신차리는 게 문제지."


 이고는 다시 장부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뭐? 나한테 지금 어떻게 하라는 거야? 걔가 정신차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거야 나도 안다. 지금 제정신이 아니겠지. 충격이 클 거다. 사람을 잡아먹는 쿠룬나스가 되었고, 눈은 안 보인다. 게다가 얼굴도 형편없어져버렸다. 거울을 볼 수 없겠지만, 자기 얼굴 만져보면 이제 더 이상 예전 예쁜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알 거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데? 얼굴 흉측한 장님 여자가 여기에서 뭐 하면서 먹고 살아? 평생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구걸이나 하라고 해? 은혜는 당연히 갚아야한다. 아다비아 때문에 낙제를 면했어. 항상 기억하고 있다. 그래, 이제 내가 그때 받은 걸 갚을 차례다. 그런데 뭘 어떻게 갚으라는 거야. 그걸 물어본 거잖아. 안 갚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갚아야 하냐구. 그런데 그게 '네가 사람 새끼냐'란 말을 들을 만큼 잘못한 거야?



 어느덧 서점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켈라자야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서점 밖으로 나갔다. 나와 이고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느꼈나보다. 그러고보면 요즘 들어서 켈라자야가 조금은 정상인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른 아침에 조용히 서점에 와서 얌전히 있다가 자러 들어가고, 오후가 되면 밖으로 나와서 책 보고 서점 일 조금 돕기도 하다가 서점 문 닫을 때가 되면 조용히 나간다. 예전처럼 이해할 수 없는 짓은 안 하고 있다. 아다비아를 본 이후, 서점 분위기가 계속 안 좋아서 그 분위기에 맞추어가는 건가? 예전이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타슈갈, 놀자!"

 "근무 끝났어?"

 "응. 끝나고 바로 왔지."


 이고에게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이고는 다녀오라고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래? 너 이고랑 한 판 붙었냐?"

 "아니야."


 마음 같아서는 한 판 붙고 싶었지. 아까는 정말 이 서점 때려친다고 하고 한 판 붙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이고도 오죽 갑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다비아와 이고 자체야 별 관계가 없는 일이겠지만 지금 아다비아가 있는 곳은 루즈카 집이다. 루즈카는 이고의 애인이니까, 그렇게 본다면 이고와 무관한 일도 아니겠지. 게다가 아다비아 눈은 루즈카가 그어버렸다. 루즈카에게 아다비아가 저렇게 된 것에 어느 정도 책임은 있고, 그것은 이고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고 봐야겠지. 눈을 멀게 해버렸는데 정신이 돌아온 후 매정하게 내칠 수도 없을 테니 이고도 답답하기는 하겠다.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그 따위로 말한 건 분명히 잘못한 거다.


 "별 일 없는 거지?"

 "별 일 없어. 그냥 웃을 일이 없었을 뿐이야."


 진짜 웃을 일이 이렇게 없을 수도 있을까. 바하르는 뭐가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너는 뭐 좋은 일 있어? 왜 그렇게 얼굴이 밝아?"

 "나? 당연히 있지!"

 "뭐?"

 "오늘 치롤라랑 같이 놀았잖아!"

 "진짜?"


 이거 놀라운데? 치롤라도 바하르 좋아하나보네.


 "뭐 하면서 놀았는데?"

 "그냥 내성 가서 놀았어."

 "거기 괜찮아?"

 "응. 뭐 딱히 위험할 건 없더라구."

 "가서 뭐했어?"

 "식사하고 차 마시고 거리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구."

 "사귀기로 한 거야?"

 "그건 아니구. 아직은 그냥 서로 만나서 놀고 이야기하고..."


 치롤라랑 꽤 잘 되어가나보다. 그러니 이렇게 싱글벙글이지.


 "오늘 치롤라가 이거 줬어!"


 바하르가 두 손을 쫙 펴서 나를 향해 뻗었다. 갈색 가죽 장갑이다.


 "오, 장갑 멋진데? 너는 치롤라한테 뭐 선물해줬어?"

 "나는 아직...뭐 줄 지 찾아보고 있어."


 이거 치롤라한테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러 왔구만. 진짜 부럽다. 아다비아 관련된 이야기를 할까 했지만 오늘은 그러지 말아야겠다. 바하르가 이렇게 기분좋아하는 모습도 진짜 오랜만인데 괜히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 바하르가 정말 부럽다.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 안 부러우면 남자가 아니지. 자기 좋아하는 여자랑 아주 분위기 좋았나본데 어떻게 안 부러워할 수 있어.


 "너는 누구 좋아하는 애 없어?"

 "나? 글쎄..."

 "너네 서점에 라키사 있잖아. 예전에 아다비아도 있었구. 걔 누구냐? 너네 서점에 오는 애 하나 있잖아."

 "켈라자야?"

 "아, 맞다! 켈라자야. 셋이면 하나 골라서 해봐!"

 "뭘 하나 골라서 해봐?"

 "주변에 여자 있을 때 연애도 해봐야 하는 거 아냐? 뭘 당연한 걸 물어봐? 너 설마 감비르 좋아하냐?"

 "이 미친 새끼야, 내가 감비르를 왜 좋아해!"


 바하르가 낄낄 웃는다. 이 자식,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미친 건 감비르 혼자 미쳤지, 나까지 미친 건 아니다. 어디서 토나오는 소리 하고 있어.


 "너는 셋 중 누가 젤 좋아?"

 "셋 중에서?"

 "응. 셋 중에서 한 명이랑 사귈 수 있으면."

 "별로..."

 "와, 너 눈 너무 높다!"

 "눈이 높기는 뭐가 높아?"

 "너 진짜 주변에 있을 때 한 명 사귀어. 나중에 주변에 여자 없으면 사귀고 싶어도 답 없다니까."


 이거 치롤라한테 장갑 받았다고 완전 콧대가 달나라까지 치솟았구만. 그래, 오늘은 마음껏 좋아해라. 좋아하던 여자한테 선물 받았으니 얼마나 신날까? 나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여자한테 선물 받아본 적이 있나? 좋아하는 여자가...있는지나 모르겠다. 좋아하는 여자가 딱히 없어서 다행인가? 있었다면 미치도록 부러웠을텐데. 아다비아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애였고, 지금은 쿠룬나스지. 라키사는 이상하게 뭔가 완벽히 안 맞는 것들이 있고...켈라자야는 아예 논외지. 걔는 정신 자체가 정상이 아니잖아.


 "아다비아 어때? 아다비아가 너 많이 좋아하는 거 같던데. 걔 에드자 돌아왔다면서? 아다비아랑 잘 해보는 거 어때?"

 "아다비아? 글쎄..."


 아직 말 안 하는 것이 좋겠지? 아무리 바하르와 친하다 해도 바하르에게는 '아다비아'라는 인간보다 '쿠룬나스'라는 것이 더 확 와닿을 거다. 내일 가서 아다비아 상태를 본 후에 말할지 말지 결정하는 게 낫겠다.


 "희안하네. 분명히 그때 너 준다고 펜 구입했는데..."

 "몰라. 나한테 안 줬어. 내 핑계 대고 다른 남자한테 줬나보지."


 아다비아한테 펜을 받은 적이 없다. 나한테 실컷 자랑만 했지. 그때 다른 남자를 좋아했든가, 아니면 자기가 2개 사고 싶은데 이유 없이 2개 사면 쪽팔리니까 내 핑계 대든가 했을 거다. 이제 그 펜이야 어찌 되었든 상관도 없다. 얼굴이 흉측한 여자 장님. 그게 지금 아다비아다. 아다비아가 펜을 잡고 글을 쓸 일 자체가 앞으로 영원히 없을 거다. 눈이 보여야 뭘 쓰든 말든 하지.


 "너 그렇게 우물쭈물하다가는 주변 여자들 다 없어져."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애를 억지로 좋아할 수도 없잖아."

 "너 라키사랑도 잘 지내잖아."

 "라키사?"

 "그래!"

 "몰라. 걔는 감비르 좋아하지 않나?"

 "걔가? 야, 어떤 미친년이 감비르를 좋아해? 그 꼬라지 한 거 봐라. 멀쩡한 여자면 다 도망가지."


 그건 그렇다. 단순히 여장 문제가 아니잖아. 여장은 감비르의 문제에서 정말 극히 일부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거지. 남자면 남자고 여자면 여자지, 자기가 뭔 남자이자 여자라는 거야? 혼자 그따위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그 생각을 강요하려고 한다. 물론 자기야 그게 강요가 아니라 진리를 널리 알리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 개소리를 듣고 좋다고 할 여자가 세상에 하나라도 있을까? 그건 저주술로도 불가능할 거다.


 바하르와 이야기를 나누다 서점으로 돌아왔다.


 "왔냐?"

 "어."

 "어여 자. 내일 아다비아 문병 가야하잖아."

 "응."

 "정신만 차리면 어찌 될 거야. 정신 차리는 것만 신경쓰자."

 "어."

 "지금은 네가 아다비아랑 제일 친하잖아. 네가 어찌 생각하든...그렇게 매일 서점 와서 너 공부 도와주는 거 쉬운 일 이냐."

 "알아."

 "너한테 아다비아 인생 책임지라는 소리 아냐. 걔 인생은 걔가 책임져야지. 너는 그저 걔 정신차리게 노력만 하면 돼. 그 이상 할 필요도 없구."

 "그래도 아까는 너 말 심했어."

 "그건 미안하다. 나도 답답해서...알잖냐. 어쨌든 루즈카도 그 일에 얽혀버린 거. 뭐, 잘 풀어나가야지."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했다. 오늘도 켈라자야는 이른 새벽에 서점에 왔다. 켈라자야는 내게 다가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라키사가 보면 또 오해하겠네.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내가 해명해도 들을 생각도 안 하는데. 켈라자야는 라키사의 반응에 신경이 전혀 안 쓰이나? 오해받아서 즐거울 사람은 없을텐데. 모르겠다. 얘야 제정신이 아니니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감도 못 잡겠다.


 "우물가에 사람 죽어있더라."

 "우물가에?"

 "쿠룬나스 짓이던데? 가죽과 옷만 있었어."


 켈라자야는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거 보고 아무렇지도 않나? 내가 봤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여기서 사람들 변사체로 발견되는 것이 일상이라지만 실제 그 변사체를 본 적이 많지는 않다. 보면 또 놀라겠지. 전에 처음 보았을 때처럼 또 토가 나오고 죽도록 무서울지는 모르겠다. 한 번 겪어보았으니 덜 무서우려나? 그래도 이렇게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할 거다.


 "너 그거 보고 안 무서웠어?"

 "딱히...그냥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어."


 켈라자야 얼굴을 쳐다보았다. 켈라자야는 오히려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내가 뭐 잘못된 거야?"

 "아니. 그냥 너무 덤덤하게 이야기해서."

 "그러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거야 뭐...너 좋은대로 이야기하면 되기는 하는데..."

 "그런데?"

 "보통은 그런 거 보면 무서워하지 않나?"

 "나는 안 무서워. 나랑 관계없잖아. 이미 죽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구."


 아무리 생각해도 얘는 그냥 다른 것이 아니다.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알 수가 없지만 나와 아예 다른 세상에서 온 것만은 분명하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극도의 이기주의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보통은 누가 그렇게 죽어 있다면 조금이라도 놀라는 것이 정상 아닌가?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얘는 이토록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할 수 있을까?


 "너 살던 곳에서는 사람 죽는 일 많았어?"

 "나 살던 곳?"

 "응."

 "많았어."

 "너 직접 봤어?"

 "많이."


 치르치나가 그렇게 미친 동네인가? 그런데 그 정도로 미쳐돌아가는 동네라면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산이 많고 길이 불편한 동네라 해도 말이다. 게다가 에드자에 치르치나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치르치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 사람들이 다 켈라자야처럼 행동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나고 소문이 돌았을 거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도 모두 우리들처럼 사람이 죽으면 공포에 질렸다.


 "너 있던 곳은 어떤 곳이었어?"

 "아주 나쁜 곳."

 "여기보다 더?"

 "여기는 천국이야."

 "여기가? 맨날 사람들 죽어나가는데?"

 "그게 왜 이상해?"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구!"

 "그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러면 너 있던 곳은 어땠는데?"

 "매일 살인이 벌어지는 곳. 죽이고, 죽이는 곳. 하루도 빠짐없이."

 "너도?"


 켈라자야는 대답하지 않고 엷게 미소만 지었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울 것 같은 눈이었다.


 "왜 그렇게 나한테 궁금한 것이 많아?"

 "그냥."

 "우리는 서로 좋아하니까?"


 뭔 또 서로 좋아하니까야. 지난번에 친구로써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한 거니 오해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친구로써'를 빼면 그걸 알아도 놀란다구.


 "지금 여기가 나쁜 거야? 여기는 천국 아니었어?"

 "여긴 미친 곳이야. 맨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다 미쳐가잖아."

 "내게 여기는 천국이야. 나는 여기 있을 자격이 있을까?"

 "너? 뭔 자격이 필요해? 여기 있으면 있는 거지."


 켈라자야는 무릎에 턱을 괴고 화로 속 불을 쳐다보았다. 언제쯤 켈라자야가 자기 과거를 시원하게 이야기해줄까? 매우 안 좋은 곳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내가 치르치나에 대해 들은 것, 그리고 만나본 치르치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켈라자야는 치르치나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치르치나였던 뭔가 많이 이상한 곳에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살인이 벌어지고, 먹을 것도 없고 미움과 증오만 가득한 곳. 거기까지밖에 모르겠다. 그런 곳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거기는 말 그대로 지옥 아니야? 설마 저승에서 이승으로 기어나왔다는 건가? 하지만 얘는 정신만 이상한 거지, 멀쩡한 사람이잖아.


 "나 들어가서 잘께."


 켈라자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켈라자야, 너 혹시 쿠룬나스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쿠룬나스?"

 "응."

 "아다비아 때문에?"

 "응."


 켈라자야는 곰곰히 무언가 생각하는지 눈동자를 왼쪽 위로 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 자연적으로 좋아질 거니까."

 "그냥 놔두라고?"

 "내가 알기로는 그래."

 "다른 거 더 없어?"

 "나중에 생각나거나 또 듣는 거 있으면 알려줄께. 지금은 그거 뿐이야."


 오늘 가서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나? 이게 그냥 아픈 거라면 어서 나으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쿠룬나스이니 뭘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감도 못 잡겠다. 켈라자야 말대로라면 가만히 옆에서 보고 있는 것이 제일 나은 건데...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뭐?"

 "너, 나 좋아해?"


 켈라자야가 내 두 눈을 응시하며 물어보았다.


 "응. 친구로써 너 좋아해."

 "나도 너 좋아해!"


 켈라자야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켈라자야는 활짝 웃어보이며 손을 흔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해가 될 거 같으면서 안 된다. 그동안 정말 미움만 받았던 건가?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친구로써 좋아한다는 말을 왜 저렇게 좋아하지? 그런 말을 하고 듣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건데. 친구가 친구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건데, 켈라자야에게는 그게 아닌가보다.



 라키사가 서점으로 들어왔다. 라키사와는 여전히 서먹하다. 혼자서 계속 나와 켈라자야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 망상까지나 안 갔으면 다행이지. 혼자 나와 켈라자야가 서로 사귀는 관계라고 상상 속에서 일을 벌려놓은 거 아니야? 언젠가 오해가 풀릴 날이 있겠지. 이제는 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나도 방법이 없다. 라키사 혼자 알아서 오해를 푸는 수밖에.


 "어제 병문안 잘 다녀왔어?"

 "응."

 "아다비아 상태 어때?"

 "나쁘지 않았어."

 "아다비아가 뭐래?"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어. 손만 잡아주고 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아다비아한테 가봐야지. 라키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때보다 많이 좋아졌나보다. 켈라자야 말대로 그냥 있으면 알아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가? 원래대로 돌아온 후 어떻게 살아갈지는 그때 생각하면 되겠지. 장님이라고 굶어죽으라는 법은 없잖아. 라키사와 더 이야기할 것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말을 해도 라키사는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겠지. 라키사에게 다녀오겠다고 짧게 인사를 하고 가게에서 나왔다.


 '뭐라도 사서 가야하나?'


 사탕이라도 사갈까? 일단 오늘 상태를 보고 다음에 뭔가 사가는 것이 나을 건가? 라키사에게 뭐 사서 갔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 마른 꽃이라도 한 송이 구입해서 가야하나? 일단 오늘은 빈 손으로 가자. 아다비아 상태 좀 보고 괜찮으면 다음에 맛난 것 사서 찾아가야지. 그래도 괜찮을 거야. 많이 좋아진 거 같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면 돼. 다 천천히 생각하자구. 나 혼자 서두른다고 더 좋아질 것도 없잖아.


 마음이 무거우면서 한편으로는 묘하게 기쁘다. 이것은 아다비아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아다비아는 아다비아야. 눈이 멀었어도, 얼굴이 흉측해졌어도 아다비아야.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그래도 기다리고 기다리다보면 결국 좋아질 거다. 다시 눈을 뜨지는 못하겠지. 얼굴의 흉터도 없어질 리 없을 거다. 그래도 그 환한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해. 어떻게 하다보면 예전의 자신감 넘치는 아다비아의 모습이 돌아올 거야. 설마 눈 멀고도 나보다 더 뛰어난 거 아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다비아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몰라. 그렇지만 지금까지 한없이 위로 솟구쳐올라가던 애야. 한 번 무섭게 추락했다고 다시 못 올라갈 리 없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성공할 거다. 그게 아다비아니까. 분명히 계속 좋아질 거야.


 루즈카 집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렸다. 그때와 똑같이 몸에 착 달라붙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초록색 원피스를 걸치고 양쪽 손목에 중지 손가락 길이만한 화려한 은빛 팔찌를 차고 있는 루즈카가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들어와."


 그때와 똑같다. 달라진 점이라면 블랑쉬블르가 안 보인다는 것 뿐. 아다비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걸어오는 동안 풀지 못한 난제. 오늘 아다비아를 보고 뭐라고 말해줘야할까? 뭐가 뭔자도 모르면서 힘내라고 말할 수도 없구.


 "감비르가 와 있어."

 "감비르요?"


 무슨 소리야? 감비르가 여기를 왜 찾아와?


 "라키사한테 들었대. 지금 아다비아가 있는 방에 있어."

 "아다비아 어디 있어요?"

 "2층."


 빨리 가봐야 한다. 감비르 그새끼 미친 놈이다. 뭔 짓을 할 지 모른다.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문을 활짝 열었다.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감비르. 이 새끼 작정하고 왔다. 여자 옷을 걸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복장을 하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지고 보이지 않는 두 눈을 부릅뜬 아다비아. 아다비아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온다. 괴로운지 몸부림치며 계속 컥컥거린다. 길다란 소매를 몸에 한 바퀴 감아서 묶어놓고 몸을 침대에 묶어놓아서 몸을 비틀고 움츠렸다 폈다 하지만 침대에 계속 고정되어 있다. 마구 발버둥치지만 침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다. 얼굴에 핏발이 섰다. 입술을 이로 꽉 깨물었다. 피가 흘러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 새끼야!"


 감비르 등을 발로 있는 힘껏 걷어찼다. 감비르가 앞으로 날아갔다. 물병을 잡아들고 감비르 머리를 내리쳤다. 감비르가 머리를 감싼 채 몸을 돌리려 하자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걷어찼다. 머리채를 움켜쥐고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찍어버리려고 할 때였다.


 "너희들 뭐하는 거야!"


 루즈카가 뛰어올라왔다. 아다비아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린다.


 "감비르, 너 당장 나가!"

 "예, 오늘은 그냥 갑니다."

 "다시는 여기 얼씬도 하지 마!"


 감비르는 루즈카와 아다비아, 그리고 나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뒤통수를 문질러대면서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예, 기대하세요. 조금만 더 수련하면 당신보다 훨씬 강해질테니까요. 어차피 당신 별 거 아니잖아? 내 스승에 비하면 당신 따위는 벌레만도 못한 거라구."


 저놈 대가리를 침대 모서리에 찍어버려야 했다. 루즈카가 조금만 늦게 왔었어야 했어. 감비르는 방문 쪽으로 걸어가다 루즈카 바로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더러운 오물 쓰레기 새끼 데리고 잘 놀아보세요. 이 변절자 아줌마야."

 "네 스승이 누군지는 몰라도 실력은 알겠어. 보나마나 개차반이겠지."

 "과연 그 말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하네요. 온몸이 찢어지면 그때서야 후회하려나? 이왕이면 아줌마 남편 옆에서 말이야."

 "데려와봐. 이왕이면 내가 죽일 수 있는 꼴이었으면 좋겠네."


 감비르가 방을 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렸다.


 "죽여줘! 그냥 죽여! 제발!"

 "아다비아!"

 "이제 어떻게 살아! 내 꼴 우습지? 신나지? 그냥 죽여! 죽이란 말이야!"


 지옥이다.


 아다비아의 절규. 이것이 지옥이다.


 "보지마! 죽여! 제발 죽여달라구!"


 이것은 지옥에서 울려오는 소리다.


 "타슈갈, 속 시원해? 내가 이러니 아주 벌레같지? 그냥 죽여! 나 쓰레기야. 더럽다고! 왜, 더 구경하고 싶어? 그래, 봐! 이 쓰레기 토사물 맘껏 감상하라구!"


 독기 가득한 아다비아의 분노와 원성. 그 하나하나가 모두 칼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아다비아의 간절한 진심이 완벽히 와닿았다. 제발 나를 죽여줘. 네가 뭔데 나를 살려버렸어? 눈물이 흘렀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았다. 지옥이야. 이게 바로 지옥이야. 나는 분명히 많이 좋아졌을 거라 믿었다. 좋아진 것은 얼굴의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 뿐이었다. 나는 현실에서 나쁜 정도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다비아의 절규는 지옥에서 올라오는 소리였다. 지금 뭐라고 해야 해?


 루즈카가 아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다비아는 계속 몸을 비틀어대며 소리지르며 운다. 루즈카는 아다비아의 이마에 손을 얹더니 천천히 턱까지 쓸어내렸다. 아다비아가 조용해졌다.


 "타슈갈, 오늘은 그냥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예."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지금 재웠으니 이따 저녁 즈음 일어날 거야. 그때 되면 많이 가라앉았겠지. 이따 다시 올래?"

 "아니요. 나중에 올께요."

 "알았어. 이따 내가 잘 달래볼께."

 "고맙습니다."


 루즈카 집에서 나왔다. 답답하다. 미치겠다. 그리고 분노가 치솟는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서 돈이 얼마 있나 꺼내보았다. 시장으로 갔다. 대장간으로 갔다. 단검을 사서 품에 집어넣었다. 아다비아를 죽이려 했지?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로 죽여버린다. 나는 죽일 만한 놈을 죽이는 거야. 진짜로 모가지를 따버릴 거야. 아주 내장을 다 긁어내버릴 거다. 칼을 갖고 다닌다고 이상할 거 없다. 이럴 때 여태까지 칼을 들고 다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지. 하여간 또 아다비아를 죽이려 든다면 내가 먼저 죽여버릴 거다.



 서점으로 돌아왔다. 켈라자야는 방 안에서 자고 있겠지. 이고가 보이지 않는다. 블랑쉬블르 집에 갔나? 마침 잘 되었다. 라키사 혼자 있다.


 "라키사, 이야기 좀 하자."

 "응?"

 "너지?"

 "뭐가?"


 라키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뭐긴 뭐야?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네가 감비르한테 말했잖아!"

 "아..."

 "맞아?"

 "응."

 "왜 말했냐?"

 "친구니까..."


 친구라...아, 친구를 죽이려고 하는 친구? 그것도 친구를 증오에 가득 차서 죽이는 친구!


 "감비르 그 새끼, 오늘 아다비아 죽이려 했어."

 "설마..."

 "그러면 루즈카도 병신이냐?"


 라키사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이거 예상 못했어?


 "대체 왜 감비르한테 말했어?"

 "친구라서..."

 "내가 말했지! 그새끼 미쳤다고!"

 "몰랐어."


 모르기는 뭘 몰라?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


 "너 감비르랑 사귀기라도 하냐?"

 "뭐?"

 "왜 그렇게 감비르 감싸고 돌아?"

 "아냐! 걔도 우리 친구잖아!"

 "내 말은 아주 개같이 들으면서 걔 말은 참 잘 듣는다?"

 "무슨 말이야?"

 "내가 그새끼 미쳤다고 몇 번을 말해? 그새끼 지금 정상 아니라구! 네가 알던 감비르 아니야! 대체 왜 그래? 왜 내 말은 그렇게 다 안 듣는 거야!"

 "아니야! 나, 너 말도 들어!"

 "그러면 이건 뭔데? 왜 그렇게 감비르 감싸고 도는데?"

 "나는 그저 세상이 더 다양해지면 평화로워질 거라 믿었어."


 이 망할 다양성. 그래, 감비르 그 새끼가 미쳐돌아서 아다비아를 저주술로 죽이려고 하는 것도 다양성이지. 너무 다양하네! 아주 친구를 증오에 가득차서 죽이려 드는 것도 친구라는 이 망할 썩어빠진 다양성!


 "아다비아를 죽이는 것도 그 잘난 다양성이냐!"

 "아니야! 감비르도 우리 친구잖아. 그럴 줄 몰랐어!"

 "뭘 몰라? 내가 몇 번을 말해? 그새끼 미쳤다구! 저주술이니 진리니 개같은 소리 떠들어댄다고 내가 너한테 몇 번을 말했어? 야, 남자면 남자고 여자면 여자지, 뭐가 남자이고 여자란 거야? 동물한테 성욕을 느끼는 것도 다양성이라 존중해야 한다니 그게 사람 새끼야?"


 라키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을 뿐이다.


 "몰라? 왜? 말하기 싫냐? 고개 돌리면 다 사라지냐? 똑바로 봐!"


 라키사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진짜 왜 내 말은 그렇게 안 듣냐? 내가 같은 소리를 몇 번 처해야 들을래? 이제 속 시원해? 아다비아 죽을 뻔 하니까? 감비르가 죽여주기를 바랬냐?"

 "아니야! 정말 아니라구!"

 "그러면 왜! 왜 그새끼한테 말했어!"

 "친구니까..."

 "그새끼 미쳤다고! 너 알던 감비르 아니라구! 바하르 불러와? 이고 부를까? 켈라자야 깨워? 너한테 뭔 짓을 했는지 몰라도 죄다 그새끼 미쳤다는데 왜 너만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어. 생각이 짧았어. 나는 그저..."

 "그저 뭐?"

 "아니야."


 라키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뭐. 뭐? 뭐!


 "그저 뭐? 뭐! 너 아냐? 너 이제 살인자 새끼야!"


 순간 라키사가 고개를 치켜들더니 두 눈을 아주 커다랗게 쫙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

 "못 들었냐? 너 이제 살인자 새끼라구! 왜, 이번에도 모르는 일이었다고 하게? 넌 감비르한테 아다비아 죽여달라고 빈 거라고! 알아? 내 말은 아주 개같이 여기고 네 멋대로 한 게 이거야! 손에 피뭍혀야 살인자냐? 아다비아 죽이라고 감비르 보낸 게 너잖아! 이 살인자 새끼야!"


 라키사 눈동자가 한겨울 오한이 일어난 것처럼 바르르 흔들렸다.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졌다. 잠시 그렇게 멍하니 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었다. 내 자리에 켈라자야가 누워있다. 이고 자리로 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오늘은 내가 쉬는 날이니 드러누워도 상관없다. 감비르 이새끼, 정말로 미쳤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품 속의 칼을 만졌다. 이 미친 새끼, 한 번만 더 내 친구들 건드리려고 했다가는 내가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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