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03화

좀좀이 2017. 11. 2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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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03화


 잠을 깊이 잘 수 없었다.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방을 둘러보았다. 이고는 오지 않았다. 진짜 이 도시를 휩쓸고 있는 광기의 희생자가 된 거 아니야?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깊이 잘 수가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이 자유롭게 흘러간다. 아다비아의 하얀 옷자락은 이 도시에 내리는 눈이 되고, 그 눈을 맞으며 쓰러진 사람들 옆을 걸어간다. 발자국 소리는 검은 물방울이 되어 켈라자야 손 위에 떨어진다. 켈라자야가 그 검은 물방울을 하늘로 흩뿌린다. 하늘이 검어지며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그 속에서 가로등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가로등의 흔들리는 빛은 라키사의 입술이 되어 움직인다. 모두가 즐거웠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라키사의 떨리는 목소리는 뜨거운 햇살이 되어 땅으로 내리꽂힌다. 작년 여름, 내가 시험을 통과했음을 확인한 그날. 아다비아는 내 손을 잡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길은 끝없이 늘어나 하늘 끝까지 이어진다. 하늘 위 하얀 구름이 그 길을 타고 내려와 내 앞에서 폭발한다. 눈을 떴다. 아, 잠깐 잠들었구나. 나도 모르는 새에 깜빡 잠들고 꿈을 꾸었다.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꿈. 자유롭게 흘러가는 이야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서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고인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이고 맞구나. 도둑이라면 문을 잠글 필요가 없다. 발자국 소리가 방을 향해 다가온다. 켈라자야가 몸을 일으켰다. 켈라자야도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나보다. 방문이 열리고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고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구나. 진짜 걱정했다.


 "안 자?"

 "자다 깼어요."

 "그러면 어서 자."

 "아니에요. 저 원래 지금 안 자요."

 "나도 안 자."

 "그러면 잠깐만 불 켜도 돼?"

 "응. 켜."


 이고가 어둠 속에서 램프를 찾자 켈라자야가 램프에 바로 불을 붙여주었다. 어둠 속에서 이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매우 피곤해보이지만 사지가 멀쩡하다. 침침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팔 다리 다 멀쩡히 달려있고, 얼굴에 상처도 없어 보인다. 다행이다. 이제 되었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6시다. 밤새도록 뭐하다 이제야 돌아온 거야? 이불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원래 이고 자리니까 이제 비켜줘야지.


 "아냐, 괜찮아. 더 자."

 "너 자야지."

 "이불 있으니까 그거 덮고 자면 돼. 불 좀 피울께. 밖에 춥더라."


 이고가 장작을 몇 개 들고와서 화로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도 켈라자야가 화로에 불을 붙였다. 켈라자야가 있으니 이런 점은 엄청 편하구나. 성냥을 써서 불을 붙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럴 상황이면 켈라자야가 알아서 불을 붙여주니까. 이고는 화로 속 불을 이용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뭐 안 좋은 일 있었나? 이고가 방 안에서 담배를 태우는 일은 정말 거의 없는데.


 "담배 좀 태울께."

 "태워."

 "예. 오빠 하고 싶은대로 해요."


 이고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무슨 일 있었어?"


 내 질문에 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배 연기만 계속 깊이 삼켰다 뱉었다만 반복할 뿐이다. 켈라자야도 이고를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고는 침묵만 지킬 뿐이다. 저 침묵은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다. 별 일 없이 단순히 먼 곳 갔다가 이제야 돌아온 거라면 별 일 없었다고 이야기했겠지. 대체 얼마나 심각한 일이 있길래 저렇게 아무 말 없이 담배만 뻑뻑 태워대는 걸까? 담배 꽁초를 화로 안에 집어던져넣고는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서 불을 붙이고 입에 문다. 또 연기를 깊이 빨아들인다. 나도, 켈라자야도 이고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고는 우리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화로 속 불만 바라보며 담배를 태운다.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침묵으로 정말 심각한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다시 한 번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이고의 침묵이 대답한다. 물어보지 마. 켈라자야는 이럴 때는 또 멀쩡하네. 켈라자야는 무슨 실수를 해도 정신이 불안정하다고 넘어갈 수 있으니 과감히 한 번 더 물어봐도 될 건데. 그렇지만 지금 켈라자야는 너무나 멀쩡해보인다.


 "너네들 안 자?"

 "괜찮아."

 "내일 또 졸리다고 사이좋게 꾸벅꾸벅 졸지 말구. 특히 너, 타슈갈, 너는 내일 일해야 하잖아."

 "조금 일찍 일어난 거 뿐이야."

 "뭐가 조금 일찍이야? 많이 일찍 일어났으면서."


 이고는 담배 꽁초를 화로 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리고 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고가 두 대 연속으로 태우는 거야 많이 본 모습이다. 침묵 때문에 분명히 매우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한 거지, 담배를 연속으로 두 대 태웠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평소에도 종종 두 대 연속으로 태워대었으니까. 그렇지만 담배 세 대를 쉬지 않고 태워대는 건 처음 본다. 저 행동 자체가 이야기하고 있다. 뭔가 끔찍한 일을 겪었다. 직접 겪었든, 멀찍이서 보았든, 어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든 간에 말이다. 그렇지만 말해주지 않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루즈카 관련된 일인가? 루즈카가 나쁜 일을 직접 당했을 것 같지는 않구. 루즈카라면 켈라자야를 가볍게 제압할 정도로 실력이 엄청난 저주술사잖아. 아무리 어디선가 숨어서 사람들을 죽여대는 놈들이라도 루즈카를 건드릴 생각은 차마 못하겠지. 그 이전에 루즈카와 관련된 일이라면 아무리 이고라도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갈갈이 날뛰어도 백 번은 날뛰었겠지. 블랑쉬블르 관련된 일인가? 블랑쉬블르는 아드라스인이잖아. 딱히 누가 블랑쉬블르를 건드릴 거 같지는 않다. 외국인인데. 전에 켈라자야와 블랑쉬블르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면 블랑쉬블르도 호락호락한 인간은 아니다. 블랑쉬블르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면 이고가 저런 반응을 보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동안 찌그닥거린 것이 있는데 저건 너무 침착하다. 솔직히 나라도 블랑쉬블르에게 매우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한다면 냉정하게 있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맨날 짓궂은 장난만 치고 진지한 생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우리들'이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잖아.


 이고는 담배 꽁초를 화로 속에 집어던져넣고는 이불을 가져와 뒤집어썼다. 화로에 불을 피워서 방이 조금 따스해졌다. 이제 자면 언제 일어나려고 그러지? 오후쯤에나 일어날 건가? 아침에 서점 문을 열 때 이고를 깨워서 자리로 가서 자라고 해야겠다. 켈라자야가 램프의 불을 껐다. 방 안이 다시 깜깜해졌다. 이고의 숨소리가 들린다. 끊임없는 한숨 소리.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몇 초간 참다 푹 내뱉는다. 계속 그렇게 한숨을 내쉰다. 우리에게 말 못 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고가 돌아왔으니 마음 놓고 자도 되는데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저렇게 계속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마음이 놓일 리가 없지. 심란한 것은 아까나 지금이나 똑같다. 단지 이고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머리 속이 혼란스럽지 않을 뿐이다. 켈라자야도 두 눈을 뜨고 있다. 쟤도 참 심란한가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심란하지 않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지. 이 시간이 너무 싫다. 어제부터 왜 이렇게 나쁜 일만 계속 일어나는걸까?


 켈라자야에게 잘 잤냐고 물어보고 싶다. 켈라자야가 잘 잤는지 못 잤는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보나마나 잘 자지 못했겠지. 이고의 한숨 소리가 듣기 싫을 뿐이다. 저 한숨 소리 한 번이 매우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한 번 말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한숨 소리가 정말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계속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미칠 것 같다. 저 소리에 신경을 끄기 위해 켈라자야에게 잘 잤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다. 차라리 이럴 때 발작하라구. 지금이라면 내가 너한테 뺨 서른 번이라도 맞아줄 수 있다. 저 한숨 소리 듣는 것보다 네가 발작을 일으켜 나한테 덤벼드는 게 훨씬 나으니까. 네가 발작하며 나한테 덤벼들면 화가 나기는 하지만 걱정할 건 없잖아. 또 얘가 미쳐서 발작하는구나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니까. 그런데 왜 정작 이럴 때는 아주 멀쩡한 건데? 켈라자야가 나를 바라본다. 혹시 짐작가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나도 켈라자야를 바라본다. 낸들 아냐? 나야말로 너한테 물어보고 싶다. 뭐 짐작가는 거 있어? 이고 갑자기 왜 저래?


 그러고보면 라키사는 정말 운이 좋은 것 아닐까? 물론 라키사도 라키사 나름대로 괴로운 일을 많이 겪었을 거다. 그러나 이 서점 안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심각하고 골치아픈 일은 절묘하게 피해가는 것 같다. 전에 켈라자야와 감비르가 제대로 충돌했을 때도 라키사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만약 그때 라키사가 있었다면 어제처럼 감비르를 무턱대고 감싸고 돌지는 못했을 거다. 오늘도 그렇다. 밤새도록 이고가 서점에 안 돌아왔다는 것 자체를 나와 켈라자야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모르겠지. 이고가 새벽 6시에 돌아와서는 여기 이 방 안에서 담배를 세 대 연달아 태웠다는 것도 모를 거구. 이래서 라키사에게 다가갈 수 없는 걸까? 이런 경험의 차이 때문에 점점 나와 라키사 사이에 벽이 두꺼워지고 높아지는 걸까? 라키사에게 다가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날이 전보다 벽이 더 높아졌다는 것만 느껴질 뿐이다. 라키사도 라키사 나름대로 나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나 라키사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와 마찬가지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벽이 얼마나 더 높아졌는지만 확인하는 것 뿐 아닐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할 때가 되었을 거다. 이고의 숨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잠들었나보다. 깨워야할까? 켈라자야를 바라봤다. 켈라자야가 고개를 저었다. 알아, 이고 간신히 잠들었는데 지금 잠을 깨우면 또 계속 한숨만 푹푹 내쉬며 또 잠을 못 자겠지. 이고 없어도 오늘 하루 정도는 서점이 아무 일 없이 돌아갈 수 있어.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걸어서 물통에 물을 떴다.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오늘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쁜 일이 생기기 않기를.


 방에 물통을 갖다 놓고 다시 나와서 서점 문을 열었다. 켈라자야가 방에서 나와 화로에 불을 붙였다. 켈라자야와 둘이서 서점을 보고 있으려니 참 어색하다. 얘야 그냥 놔둬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원래부터 서점에서 일하지도 않았잖아. 혼자서 책을 보든 졸든 시간 잘 보낼 거다. 책을 펼쳤다. 언제 다시 개교할지 모르지만 열심히 봐놔야한다. 그래야 다시 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 수업을 잘 쫓아가지. 책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온다. 그러고보면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왔던 때가 있었나? 있었다. 아다비아가 내 공부를 도와줄 때. 그때는 책 내용이 머리 속으로 쏙쏙 잘 들어왔다. 아다비아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설마 켈라자야처럼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새하얀 옷을 입고 밤거리를 배회하면 어디서든 눈에 확 띄일 거다. 아다비아는 분명히 잘 지내고 있을 거다. 돌아와서 바빠서 서점에 못 놀러오는 거겠지. 조금 한가해지면 다시 서점으로 놀러올 거다. 그리고 한껏 자기 자랑을 하겠지. 내가 너 정말 멋지다고 하면 매우 기뻐할 거다. 걔는 대체 어디까지 위로 올라갈까? 걔는 라키사보다 운이 더 좋은 거겠지? 라키사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나랑 똑같이 여기에서 일하고 있잖아. 학교는 문 닫아서 갈 곳도 없구.



 서점 안으로 누가 들어온다.


 '아, 망할...저 새끼는 눈치없이 이럴 때 오네.'


 게첸이었다. 이건 또 어디에서 밤새도록 술을 처마시고 오는 거야? 서점에 들어오자마자 술냄새가 코를 찌른다. 저 술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린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지독한 향수 냄새도 같이 콧구멍 속을 쑤셔댄다. 술 냄새에 향수 냄새에 미치겠네. 저놈 때문에 창문 열고 환기시켜야겠다. 진짜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켈라자야도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저게 손님만 아니었으면 발로 걷어차서라도 쫓아냈을 거다.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 아침부터 서점에 찾아온 거야? 그리고 또 이런 역겨운 상황에 라키사는 없다. 라키사는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여기 책 반납이요."


 책 세 권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책장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놈이 책장 어딘가에 토사물을 뭍혀놓았을 수도 있으니까. 일부러 보란듯이 한 장씩 넘기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나도 안다. 손님 앞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실상 모욕을 주는 거다. 이건 일부러 하는 거다. 여기 말고 다른 서점 가라고 쫓아내기 위해 이렇게 책장을 한 장씩 넘겨가며 혹시나 침이라도 한 방울 튀겨놓았을까 살펴본다. 이놈이 올 때마다 이러고 있는데도 이놈은 꿋꿋하게 여기로 온다. 켈라자야는 대놓고 게첸을 노려본다. 손님만 아니었다면 켈라자야와 힘을 합쳐 이 망할 잡것을 무찔렀을 거다. 게첸은 켈라자야를 보더니 애써 고개를 돌리며 그 눈빛을 외면한다.


 게첸은 내가 책장을 한 장씩 천천히 넘겨가며 확인하는 모습을 보더니 책장으로 갔다. 이 썩을 자식아, 책 빌리지 말고 그냥 좀 꺼져! 다음에 또 오려고 책 또 빌려가네. 뒤뚱거리는 건지 휘청거리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걸음으로 걸어다니며 책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저놈이 책을 뽑아서 여기 오는 순간부터 또 헛소리가 시작되겠지. 책을 두 권 뽑아서 계산대로 왔다.


 "4주므아요."


 원래는 한 권에 1주므아씩 해서 2주므아다. 하지만 일부러 두 배 불렀다. 제발 다른 곳 가라고 일부러 두 배씩 불러대고 있는데 이놈은 그 돈을 군말없이 꼬박꼬박 다 낸다. 이해가 안 되는 놈이다. 그렇게 돈이 많나? 중앙학문연구소에서 일한다면 주변에 책 빌려보는 사람들 꽤 있을텐데. 이게 덤탱이를 제대로 씌운다는 것쯤은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눈치를 채도 벌써 채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 이번에도 4주므아를 아무 말 없이 지불했다. 이래도 상관없다. 이고도 내가 이러는 것을 알고 있다.


 "어젯밤에 감비르씨와 만났어요."

 "예."


 일부러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야, 진짜 너는 눈치 없냐? 이렇게 응대하면 좀 꺼지라는 의미잖아. 눈치껏 사라지면 안 돼? 책 안 빌려가도 돼. 너 같은 놈은 이고도 안 받아도 된다고 했어. 아니, 좀 쫓아내래. 그런데 대체 여기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놨냐? 왜 자꾸 찾아와!


 "감비르씨 너무 멋져요. 어떻게 그런 황홀한 꿈을 꿀 수 있죠?"

 "예."

 "감비르씨가 꿈을 꾸자마자 당신한테 달려가서 이야기했다면서요?"

 "예."

 "정말 부러워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감비르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요?"

 "열심히 사세요."


 부럽기는 뭐가 부럽다는 거야? 어제 켈라자야한테 따귀맞고 열이 머리 끝까지 올라있는 상태에서 그 개꿈 이야기 듣고 두 배로 화났구만.


 "당신은 왜 진정한 진리와 자유를 깨닫는 것을 거부하나요?"

 "그딴 건 아저씨나 실컷 깨달으세요. 저는 관심없어요."

 "저는 불가능해요."

 "그러면 나한테 강요하지 말구요."

 "저는 이미 늦어버렸어요. 하지만 당신은 아직 여유가 있잖아요."


 뭐가 여유가 있어? 내가 서점에서 맨날 빈들빈들 놀고 있는 걸로 보이나? 물론 항상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내 할 것들이 있다.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대는 거야? 하여간 이 새끼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저주받고 괴로운 줄 알아요. 네놈이 몸에 떡칠한 그 향수값이 아마 내 한 달 월급 정도는 할텐데.


 "아저씨 입으로 늦어버렸다면 그건 진정한 진리도 자유도 아니네요."

 "왜죠?"

 "감비르가 하는 게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는 진정한 저주술이래메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랬죠? 그런데 나이가 뭔 상관이에요?"

 "단지 나이 때문이 아니에요."

 "그러면요?"


 게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 의미없는 한숨이다. 변명거리를 찾는 한숨이지.


 "나는 지금 있는 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그거랑 뭔 상관이에요?"

 "거기에 얽매여 있어요."

 "그러면 때려치시든가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싫으면 때려치시든가, 뭐가 문제에요?"

 "나는 당신과 달라요. 나에게는 나만의 사정이 있어요."

 "좋으면 하는 거고 싫으면 때려치는 거지, 뭐가 문제에요?"

 "이 나이 먹고 거기에서 나와서 뭐 먹고 사나요?"

 "그러면 굶어죽어보시든가요. 그러면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할께요. 정부에서 거지들한테 빵도 주는데 뭘 굶어죽는다는 거에요?"

 "당신은 아직 진정한 진리와 자유를 몰라요."

 "그러면 아저씨는 알아요?"


 게첸이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모르면서 누구한테 아네 모르네 헛소리야? 내가 안다고 하면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분간이나 할 수 있어? 뭘 알아야 분간하지. 자기 입으로 자기도 모른다고 해놓고 뭘 누구한테 아네 모르네 지껄이고 앉아있어.


 "나는 이미 늦었어요. 나의 영혼만은 지켜내고 있지만 이미 육체는 잃어버렸어요."

 "그러면 되찾으세요."

 "방법을 알아요?"

 "거기에서 일해서 잃어버렸으면 거기 때려치시라니까요?"

 "나는 지금 내 생활을 유지해야 해요. 이건 내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수준이에요."

 "아저씨 몸에 떡칠한 향수랑 인간의 존엄성이 뭔 상관인데요?"

 "이 향기는 나에게 안정과 행복을 가져오니까요."

 "그러니까 그 향수는 몸에 떡칠해야겠고, 그 돈은 벌어야겠고, 거기서 일하기는 죽어도 싫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면 뭔데요? 그리 괴로우시면 향수를 안 뿌리고 그 일을 때려치면 되잖아요."


 내가 게첸을 이래서 싫어한다. 그러니까 지금 누리는 호사는 다 누리고 싶은데 중앙학문연구소에서 일하기는 싫다는 거잖아. 그러면서 무슨 진정한 진리와 자유 타령이야? 네놈 머리 속에 있는 진정한 진리와 자유는 네놈 몸뚱아리에서 향기가 저절로 뿜어져나오는 세상인 거냐? 이런 이야기를 왜 아침부터 듣고 따지며 말씨름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 인간의 생각은 사람 속을 아주 박박 긁어놓는다.


 "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어요."

 "예."


 희망을 갖든 말든 내 알 바냐? 너는 이러며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 한다. 그런데 내가 왜 네놈의 괴로움을 받아줘야 하는데? 내가 무슨 쓰레기통이냐? 나는 뭐 여기에서 일하는 것이 내 인생의 꿈인줄 알아? 돈만 있으면 당장 이 빌어먹을 마딜 땅에서 떠났다구. 돈이 없으니까 여기서 한 푼 두 푼 모아가는 거지.


 "감비르씨는 분명히 이 세상을 바꿀 거에요."

 "아, 남자고 여자고 인간이고 짐승이고 뒤엉키는 그 세계요? 진짜 퍽이나 진정한 진리네요. 그게 사람 새끼에요?"

 "당신은 그 아름다움을 몰라요."

 "그러면 아저씨도 여장하고 되도 않는 여자 흉내 내시든가요."

 "나는 그럴 수 없어요."

 "왜요? 또 지금 그 생활 수준 유지해야 하니까요?"


 게첸은 고개를 숙였다. 이 새끼가 차라리 감비르랑 똑같이 여장하고 되도 않는 여자 흉내를 내고 있다면 차라리 덜 기분나쁠 거다. 이 새끼가 진짜 싫은 건 자기는 할 생각도 없으면서 남이 하니까 박수만 짝짝 쳐준다는 거다. 이 썩어빠진 새끼가 안 하는 이유야 뻔하지. 자기가 봐도 그건 비정상이거든. 그냥 미친 거야. 이 새끼가 지금 원하는 것은 돈이 끝없이 쏟아지는 항아리가 갖고 싶은 거지, 감비르가 말하는 진정한 진리니 자유니 하는 거에는 전혀 관심 없어. 감비르를 이용해서 자기가 왕이 되고 싶은 거다. 그거 뿐이다. 진짜 감비르를 응원하고 그 뜻에 동의한다면 너도 똑같이 해야지.


 "나는 감비르씨가 세상을 바꾸는 것을 옆에서 응원할 거에요."

 "아, 박수만 짝짝 치고 왕이 되시겠다, 그거죠?"

 "아니에요. 나는 그런 것에 관심없어요. 순수함을 원할 뿐이에요."

 "향수를 떡칠하는 순수함요?"

 "아니요, 모두가 마음껏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요.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진정한 진리와 평등을 깨달아야 해요. 편견이 가득한 차별을 깨부수어야 하구요."

 "나라면 그 향수부터 안 사겠네요."

 "언젠가는 나와 감비르씨를 이해할 날이 올 거에요."

 "그건 생지옥이네요."


 게첸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고는 책을 챙겨서 나갔다. 책을 빼앗고 면상에 4주므아를 던져버리고 싶다. 켈라자야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활짝 웃는다.



 "너 멋져."

 "뭐가 또 멋져?"

 "저 새끼가 제일 악질이야."

 "뭐가 제일 악질이라는 건데?"

 "반드시 죽여야할 새끼."


 얘는 또 뭔 반드시 죽여야할 새끼라는 거야? 네가 사람을 왜 죽여? 내가 한 마디 하려고 하자 바로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싫다면 안 죽여."


 내가 상관없다고 하면 죽이겠다는 거야? 너는 그냥 좀 평범해지면 안 될까?


 "켈라자야, 평범해지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나? 평범한데?"

 "너 안 평범해."

 "왜? 어째서?"

 "평범한 사람은 진심을 담아서 죽이겠다는 말은 안한다구!"


 켈라자야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이 말이 이해가 안 되나?


 "너는 왜 그렇게 나한테 요구하는 것이 많아?"

 "뭐가?"

 "항상 이래라 저래라 하잖아."

 "뭘 이래라 저래라야?"

 "밖에 나갈 때면 외투 걸치라고 하고, 밖에 서 있으면 안에 들어오라고 하고, 서점에서 자려고 하면 방에 들어가서 이불 덮고 자라고 하구..."

 "그게 뭘 이래라 저래라 한 거야? 그건 당연한 거잖아."

 "그게 당연한 거야?" 왜?"


 이건 또 어떻게 대답해줘야하지? 당연한 거 아니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왜 그게 당연한 거냐고 물어보니 참 당황스럽다.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냥 정말 어이없을 뿐이다. 이런 질문은 어린애들도 안 하는 질문 아닌가?


 "그야 너를 위해주니까 그러는 거잖아."

 "나를 왜 위해줘?"

 "너를 좋아하니까! 너는 내 친구잖아."


 순간 켈라자야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인 거 아니야? 친구니까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싫어하면 그게 친구야? 원수지. 켈라자야는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말해줘."

 "뭐를?"

 "방금 한 말..."


 그게 뭐 어려운 거라구.


 "너는 내 친구야. 그래서 나는 너를 좋아해. 됐냐?"


 켈라자야 귀 끝까지 새빨개졌다. 사실 나도 이 말을 다시 하려니 상당히 뻘쭘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라는 말을 하고 친구가 되는 일은 거의 없잖아. 게다가 친구한테 나는 너와 친구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은 더더욱 할 일이 없구.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하고 얼굴이 상기될 것까지는 없잖아. 무슨 사랑하고 사귀자고 고백한 것도 아니구. 켈라자야의 반응 때문에 내가 더 민망하다.


 "안녕."


 라키사가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역시 무표정한 얼굴이다. 언제부터 라키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점에 오기 시작했을까? 분명히 개학했을 때만 해도 밝은 얼굴로 서점에 오곤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웃으며 서점으로 들어오는 것이 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그래도 라키사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라키사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활짝 웃는 라키사는 정말로 예쁘다. 라키사가 다시 웃을 수 있다면 감비르의 생각에 영혼없는 박수라도 쳐주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라키사가 웃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그런 영혼없는 박수를 쳐준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아니, 나만 더러워질 뿐이다. 게첸을 닮아가겠지.


 라키사는 켈라자야를 쳐다보았다. 켈라자야는 여전히 귀끝까지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뭔가 알았다는 듯 조용히 나와 켈라자야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라키사, 화로 가까이로 와."

 "아니, 괜찮아."


 라키사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켈라자야를 번갈아본다.


 "둘이 잘 어울린다."

 "뭐가?"

 "그렇게 앉아 있는 거 잘 어울린다구."


 얘 지금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진짜 그런 거 아니라구! 내가 해명을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켈라자야가 고개를 들고 라키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아니야. 축하해. 진심으로."


 미치겠네. 뭐가 고맙고 뭘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거야?


 "라키사, 그런 거 아니야!"

 "아니, 너희 둘 잘 어울려."

 "아니라구!"


 켈라자야가 다시 한 마디 말했다.


 "나 좋아한대."

 "친구로써 좋아한다구!"


 켈라자야한테 소리쳤다. 켈라자야는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친구로써 좋아한다는 것이 그렇게 오해를 받을 말이야? 그게 그토록 이상한 소리야? 친구면 당연히 좋아해야하는 거잖아. 친구라는 놈이 막 미워하고 볼 때마다 으르렁거리고 증오해야 해? 나는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켈라자야는 이렇게 한없이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하고, 라키사는 내가 켈라자야한테 마치 사랑 고백이라도 한 것 마냥 여기는 거야?


 "그러지 않아도 돼. 너희 둘 처음부터 잘 어울렸어."


 라키사 기분 매우 안 좋다. 태연한 척 하지만 느껴진다. 이것도 눈치 못 채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라키사, 진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친구로써 좋아한다고 말한 거 뿐이라고."

 "일부러 숨길 필요 없어. 둘이 잘 해봐."


 돌아버리겠다. 켈라자야는 계속 오해만 키우고 있고, 라키사는 그 말만 듣는다.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면 친구인데 막 미워한다고 해야 하냐?"


 라키사는 고개를 켈라자야쪽으로 돌렸다. 그 행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주 뚜렷하게 잘 들렸다. 저거 봐. 켈라자야 저렇게 수줍어하며 좋아하잖아. 저거 어떻게 설명할 건데? 너 내가 서점 들어오기 직전에 사귀자고 고백했지? 그렇지 않으면 쟤가 왜 저래? 어차피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었잖아. 구차하게 변명할 필요 없어. 너희가 사귄다고 해도 나 하나도 화 안 나니까 솔직하게 말해. 너 지금 그러는 것이 더 화나.


 "라키사, 진짜라구! 켈라자야가 나한테 왜 자기 위해주냐고 해서 친구라 그러는 거라고 한 거 뿐이야! 친구니까 좋아해서 위해준다고. 그게 왜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켈라자야, 내 말이 틀렸어?"

 "아니."


 라키사는 나를 흘겨보았다. 왜 라키사와는 관계가 더 가까워지지 않고 계속 이렇게 엉키기만 할까? 켈라자야도 내 말이 맞다고 하잖아. 그러니 이제 내 말 좀 믿어!


 "뭐 되었어. 어쨌든 너희 둘은 잘 어울리니까."


 라키사가 성질이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주술 책이 꽂힌 책장으로 갔다. 괜히 이 책 저 책 뽑아서 책장을 휘리릭 넘겨본다. 쟤는 왜 내 말을 안 믿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말했잖아. 켈라자야도 내 말이 맞다고 했잖아. 그러면 네가 오해했다고 인정하면 끝날 문제 아니야? 왜 자꾸 내 말을 안 들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감비르를 싫어하고 매몰차게 대해서 그런 거야? 그거 때문이야? 그거도 내가 이야기 몇 번을 해? 나는 단순히 걔가 여장하고 여자 흉내내서 싫어하는 게 아니라구! 걔는 자기의 그 이상한 생각을 나한테 강요해댄단 말이야! 너는 내가 감비르처럼 여장하고 되도 않는 여자 흉내내면서 '나는 여자이자 남자야'라고 지껄이고 다녔으면 좋겠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쐬도 가슴을 꽉 막은 주먹만한 돌덩어리가 쓸려가지 않는다. 라키사하고는 정말 인연이 아닌가? 나는 라키사와 어떻게든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런데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안좋아지는 것 같다. 기껏 같이 놀러나가니까 망할 자식이 사방팔방에 피튀기며 자살을 했다. 서로 가까워지려고 하니 감비르가 나타나서 나한테 미친짓 같이 하자고 꼬셔댄다. 더 웃긴 건 감비르가 라키사한테는 그런 자기 속 미친 생각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거다. 나한테는 별별 사람이라면 감히 하지도 못할 소리를 다 늘어놓고서는 말이다. 진짜 감비르랑 켈라자야가 한 판 붙으려고 했을 때 라키사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어. 왜 하필 그날 딱 맞추어서 아프냐.


 켈라자야가 따라나왔다. 내가 입에 담배를 물자 손가락으로 담배 끝을 가볍게 건드렸다. 얘의 말과 반응 때문에 라키사가 오해했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지만 켈라자야가 딱히 잘못 행동한 건 없잖아. 켈라자야가 그 상황에서 뭐라고 말했어도 라키사는 오해했을 거다. 켈라자야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안 꼬이는 게 없구나. 그냥 다 꼬인다. 제대로 풀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다비아는 갈 수록 더더욱 위로 올라가 멀어지고, 라키사는 갈 수록 나와의 벽이 높아져만 간다. 친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담배를 다 태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라키사는 여전히 저주술 책이 꽂힌 책장 앞에 서서 책장을 하나씩 넘기며 책을 읽고 있다. 켈라자야는 난로 옆에 앉아서 불만 바라보고 있다. 이고는 아직도 자는지 서점 안에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라키사와 이야기해봐야 말다툼만 하겠지. 라키사와 감정이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켈라자야도 그 모습을 보고 오고가는 말을 듣고 기분이 확 상할 거다. 지금은 얌전히 켈라자야 옆에서 불이나 쬐고 있는 것이 낫겠다. 나중에 라키사와 단 둘이 있을 때 다시 잘 이야기해야지. 물론 라키사가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왠지 나중에도 라키사는 오해를 전혀 안 풀 거 같다.


 그러고보면 아다비아는 자기 생각 및 마음과 다른 말을 내뱉을 때가 종종 있었지만 이런 오해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 오해가 있었다면 아다비아가 시험을 치를 때까지 내 공부를 꾸준히 도와주지도 않았겠지. 아다비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기분이 상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 말을 정확히 했음에도 의미 전달이 제대로 안 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라키사와는 도대체 왜 이럴까? 대체 라키사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라키사에게 정확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의미 전달 그 자체야 똑바로 되고 있을 거다. 라키사가 그 의미에 자기 멋대로 새로운 속내용을 붙여서 내용 자체를 바꾸어버리니 문제인 거지.


 켈라자야 옆으로 가서 앉았다. 켈라자야는 조용히 불만 바라볼 뿐이다. 라키사는 설마 지금 이 모습조차 자기 멋대로 판단하며 오해하는 거 아니야? 지금 이렇게 켈라자야와 나란히 앉아 불을 쬐고 있는 것은 어제도, 그저께도, 그그저께도 계속된 행동이다.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이고가 화로를 들고 나와 불을 피우기 시작한 이후 쭉 이래왔으니까. 지금 이 평상시 하던 행동조차 오해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지금 라키사 옆으로 가서 정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었다고, 단지 왜 자기를 위해주냐는 말에 친구로써 좋아하기 때문에 위해주는 것 뿐이라 말한 것에 불과하다고 몇 번이고 외쳐대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행동이다.



 이고가 물통을 들고 방에서 나와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보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켈라자야를 쳐다보았다. 너 혹시 뭐 짐작가는 거 있어? 켈라자야라면 밤에 열심히 이 도시를 싸돌아다니니 뭐 짐작할만한 뭔가 있지 않을까? 켈라자야도 '너 혹시 뭐 크게 잘못했어?'라고 물어보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쳐다본다.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라키사는 계속 내게서 등을 돌리고 책장만 넘기고 있다. 라키사는 이고가 오늘 새벽 6시에야 서점에 돌아온 것을 아예 모르지? 그걸 지금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나? 알든 모르든 별 상관도 없는 것일텐데. 라키사에게 직접 이야기할 필요 없이 이따 라키사 앞에서 이고에게 왜 오늘 새벽 6시에야 서점에 돌아왔냐고 물어보면 될 거다.


 이고가 방에서 나왔다.


 "너희들, 지금 나랑 루즈카 집에 같이 가자."

 "지금? 거기 왜?"

 "어서 나와."


 이고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서점 창문을 전부 잠근 후 서점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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