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무계획이 계획 (2008)

무계획이 계획 - 04 (2008.08.08)

좀좀이 2011. 11. 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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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 이 사실 하나로 강릉 여행이 어땠는지 확실히 설명된다.


강릉에 도착했어요. 둘 다 피로에 절어 있었어요. 날은 엄청나게 뜨거웠어요. 가만히 서 있는데도 땀이 좍좍 났어요. 계획 없이 왔기 때문에 당연히 길도 모르고 정보도 없었어요. 강릉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면 오직 하나 - 경포대 해수욕장 뿐이었어요.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경포대로 갔어요. 경포대 해수욕장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거기에서 저렴한 민박에 들어가 짐을 풀고 쉴 생각이었어요.


"망했다..."

그래요. 이때는 성수기. 어마어마하게 더운데다 방학이라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어요. 저렴한 방이 있을리 만무한 상황. 그때 우리 예산으로는 1박 5만원이었는데 경포대에서 방을 빌리려면 1박 10만원.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어요. 저야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산이 벗어나도 괜찮았지만 친구는 학생이라 딱 정해진 예산 안에서 여행을 끝내야 했어요.


"어쩌지?"

사이좋게 경포대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한숨만 내쉬었어요.

"미녀는 많네."

"응. 미녀는 많다."

"우리 바다 들어갈까?"

그러나 짐이 다 있었어요. 더욱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에 바닷물에 푹 담가진 옷을 입고 택시를 잡는 것도 그랬어요.

"바다가 코앞인데..."

빨리 숙소를 잡아야했지만 너무 피곤하고 허탈해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그래서 한 시간 동안 둘이 잡담을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이것은 이 여행 최악의 오점이야. 정말 아무 준비하지 않고 여행한 것을 이때 뼈저리게 후회했어요.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어요.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면 그냥 부산에서 1박 했을 거에요.


"방이나 빨리 잡자."

움직이기 싫었지만 움직여야 했어요. 택시를 잡고 다시 강릉 시내로 돌아와 허름한 모텔에 5만원을 내고 들어갔어요. 모텔까지 가며 알게 된 확실한 것은 이 동네에서 가볼만한 곳은 전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이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어요. 우리 같은 배낭여행객에게는 매우 불편한 도시. 그리고 특별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도 없었어요. 오죽헌, 초당두부집 모두 크게 가고 싶지 않았어요.


모텔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빨면 금방 마르는 옷들을 빨고 나와보니 먼저 샤워한 친구는 아예 뻗어버렸어요. 원래는 샤워하고 간단히 빨래를 한 후 강릉 시내를 돌아다닐 계획이었지만 친구는 그 사이에 잠들어 버렸어요.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에라 모르겠다."

저도 같이 잤어요.


눈을 떴을 때, 방은 어두컴컴했어요. 그래서 다시 잤어요. 잘 자고 있는데 드디어 친구가 일어나 저를 깨웠어요.

"야,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옷을 대충 챙겨입고 어슬렁 어슬렁 기어 나왔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을 연 식당이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 돌아다니다 24시간 하는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했어요.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었어요. 베이징 올림픽 기간이라고 유리컵을 기념으로 주었어요. 예쁘기는 했지만 유리컵이라 별로 관심은 없었어요. 유리컵을 대충 가방에 쑤셔넣고 햄버거를 다 먹은 후 밖으로 기어나왔어요.

"야, 맥주 한 잔 할까?"

"그러자. 여기까지 왔는데 가볍게 한 잔 해야지."

술집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거리에는 간간이 차만 달릴 뿐, 아무도 안 보였어요.

"이건 제주시보다 심한데?"

"그러게...여기 큰 도시 맞아? 시청이나 제원보다도 못한데?"

둘이서 별 말 없이 돌아다니다 술집에 들어갔어요. 안주 가격과 맥주 가격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나를 분노케한 그 안주.


"오오~안주 잘 나오는데? 건배!"

일단 오늘이야 그냥 피곤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술을 한 모금 들이마셨어요.

"으잉?"

소세지 한 조각을 집어먹었어요.

"으잉?"

스파게티를 집어먹었어요.

"으잉?"


아놔 진짜...


"야, 이게 강원도의 맛이냐?"

"아놔, 강릉에서 맥xxx 햄버거가 제일 맛있네."

둘 다 참다참다 분노해 버렸어요. 아놔...이게 진짜 진정한 강원도의 맛. 진짜 먹는데 열불이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진짜 대분노해서 그때 그 안주 사진을 찍어놓았어요.


맥주...물을 대체 얼마나 타 놓았는지 처음 나올 때부터 거품이 거의 없었어요. 이게 보리차에 소주 타놓은 건지 맥주인지 분간도 안 될 정도로 톡 쏘는 탄산이 없었어요. 당연히 맥주에서 나는 알코올의 맛 따위는 애시당초 없었음.

스파게티...색은 예쁜데 진짜 아무 맛 없음. 무취무미의 스파게티. 진짜 아무리 발로 만들어도 이거보다는 나을 듯 싶었어요. 최소한 케찹 맛이라도 나야 하는데 그냥 아무 맛이 없었어요. 편의점에서 파는 냉동 스파게티 돌려먹어도 이거 보다는 맛있을 듯. 아니, 라면 스파게티를 그냥 뽀개서 그 액상 스프 찍어먹는게 훨씬 맛있을 듯 했어요.

소세지...이건 진짜 이해 불가의 음식. 술집에서 자체 제작한 소세지도 아니고 어차피 사오는 소세지, 그냥 대충 굽거나 볶기만 하면 되는 음식이에요. 이건 뭐 실패고 나발이고가 존재할 수 없는 음식. 그런데 소세지조차 무취무미. 진짜 이건 뭐 설명이 안 되네요.


강원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은 다 깨졌어요. 무취무미의 안주들...아 진짜 강원도의 힘이네요.


물론 그때 저희가 간 곳이 엉망인 곳이었겠죠. 절대 강원도, 강릉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저때 기분이 딱 저랬어요.


"야, 당장 강릉 떠나자!"

너무 화가 나서 친구에게 외쳤어요.

"응, 바로 떠나게! 이게 안주냐? 세상에...그냥 대충 볶아서 주면 되는 소세지가 아무 맛 없게 만드는 것도 기술이다!"

일단 당장 동이 트고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 강릉을 떠나기로 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어디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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