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7화

좀좀이 2017. 10. 2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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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7화


 다행히 오늘은 별 일 없었다. 정확히는 우리들에게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하루였다. 계속 사건이 터지고 있다. 서점에 오는 손님들의 이야기, 그리고 찻집과 거리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여기저기에서 사람이 터지는 식으로 자살하고 쿠룬나스에게 당한 시체가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시장 쪽과 내성 근처에서 그런 사건이 유독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 몇 명씩 그렇게 죽어간다고 한다. 여기 사람들 다 그렇게 죽어야 이 저주받은 일상이 끝날 건가?


 이고는 책 수거를 하러 나갔다. 오늘은 루즈카 집에 잠시 들렀다 올 거니 저녁은 알아서 챙겨먹으라고 했다. 지금 서점에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 이럴 때 쿠룬나스가 나타나는 거 아니야? 그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된다.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 나 말고도 잡아먹을 놈들 많잖아. 나 같은 것은 죽여봐야 별 의미도 없다구.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 숫자에 하나 더 더해줄 뿐이지. 내가 죽는다고 여기에서 변하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 나 말고 좀 의미있는 놈들을 잡아먹으라구. 그런데 쿠룬나스는 괴물이니 그런 의미 같은 것도 안 따지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 말고 덩치 큰 놈들 잡아먹으라구. 그런 놈들이 먹을 것도 많잖아. 어쨌든 나만, 우리만 아니면 돼.


 시위 진압이 일어난 날은 9월 19일. 전쟁 위기가 끝난 것은 10월 14일. 오늘은 11월 11일. 개학 후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이 과연 며칠이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어제 일어난 일 같고, 또 한편으로는 까마득한 예전에 일어난 일 같다. 전부 찐득찐득하고 거대한 한 덩어리가 되어 내 머리 속에서 굴러다닌다. 어느 때는 갑자기 내 눈앞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어느 때는 기억 너머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시꺼먼 빛을 희미하게 뿜어낸다. 그렇게 머리 속을 마구 휘저으며 여기저기 들러붙는다.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무서운 기억들이 한 번에 몰려오고, 어느 순간 그건 까마득하게 옛날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시각에도 또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겠지? 누가 죽는지 모른다. 쿠룬나스에게 잡아먹히는 놈도 있고, 자살하는 놈도 있겠지.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에도 있었다. 언제나 누군가는 어떤 이유로든 죽어가니까. 단지 죽는 방법이 두 가지 추가된 것 뿐이야. 그러니 이렇게 아직 모두가 '일상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무서워. 쿠룬나스가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르잖아! 그 사람 껍질. 다시 떠오른다. 그 일이 일어난 다음날, 라키사가 그 일을 듣더니 얼굴이 새하얘졌다. 지금은 여기저기에서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들리니 충격이 조금 완화되었으려나? 나는 살고 싶어! 전혀 죽고 싶지 않아!



 저녁으로 국수 한 그릇 먹고 와야겠다. 서점에서 나왔다. 거리에 경찰들이 보인다. 그 외에는 사람이 없다. 어둠 속에 조용히 울리는 발자국 소리. 내 발자국 소리다. 내 발자국 소리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서우면서 동시에 안심이 된다. 저기 경찰이 있으니 갑자기 쿠룬나스가 튀어나오더라도 덜 위험하겠지. 경찰은 우리를 지켜주라고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 경찰 앞을 지나갈 때 목례를 했다. 경찰에게 목례를 하자 경찰이 나를 잡았다.


 "너 어디 가?"

 "식당요."

 "식당에는 왜?"

 "저녁 먹으러요."


 경찰은 나를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훑어보았다. 이봐요, 나는 쿠룬나스 아니라구요. 당신들 낮에 나 못 보았어요? 우리 종종 마주치잖아요. 지금 나를 쿠룬나스라고 의심하는 거에요? 내가 사람을 파먹는다구요?


 "밤에 쓸 데 없이 돌아다니지 마. 쿠룬나스가 돌아다니고 있어."

 "예. 저녁만 먹고 바로 돌아갈 거에요."

 "조심해라. 그건 진짜...어떻게 생겨먹은 괴물인지도 모르겠네. 식당이면 저기?"

 "예."


 경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혼자 유독 밝은 빛을 뿜어내는 집이었다. 저기 맞다. 이 침침한 불빛들 속에서 혼자 밝게 빛나는 집. 입구에서 뿌연 김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바로 저곳이다. 저기 가서 국수만 먹고 서점으로 빨리 돌아갈 거다.


 "가봐. 항상 조심하구. 여기는 우리가 지키고 있지만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잖아."

 "예.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 안에는 아무도 없다.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국수를 주문했다. 주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수가 나왔다. 생야채는 안 보이고 국물에 푹 절은 야채 조각 몇 개만 보인다. 혹시 야채가 면 아래에 깔려 있는 건가 면을 뒤집어봤다. 면 아래에 깔려 있는 건더기 따위는 없었다. 겨울이라고 이 따위로 나오는 건가? 그래도 그렇지 이건 면만 건져먹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앞으로 다른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고 싶지만 이 시각에 문 여는 식당이 여기 밖에 없다.


 국수 한 그릇을 깔끔히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만 날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있는 말린 과일과 말린 고기나 주워먹었을 거다. 이고가 전쟁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그것들을 계속 사와서 집에 쌓아놓는 이유가 있었구나. 날이 추워졌다고 식당 음식이 이렇게 형편없어졌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여기요."


 주인 아주머니에게 30마르라를 지불했다.


 "국수 50마르라야."

 "예?"

 "국수값 오른지가 언제인데. 20마르라 더 줘."


 이 거지같은 국수가 이제 50마르라라구? 주머니에서 동전 두 개를 더 꺼내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국수값 왜 올랐어요?"

 "성 밖에 군인들 주둔해 있잖아. 그놈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야할 물자를 계속 뜯어가."


 식당에서 나왔다. 밤공기가 매우 차다. 서점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화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다. 솥에 물을 한 통 부었다. 이고는 오늘 많이 늦네. 설마 돌아오는 길에 쿠룬나스 만나서 잡아먹힌 것은 아니겠지? 나도 따라가겠다고 할 걸 그랬나? 그렇지만 이고가 루즈카 집에 간다는 것은 애인 만나러 간다는 거잖아. 그 자리에 내가 따라가서 뭐 해. 둘이 대화하며 노는 동안 치롤라와 잡담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치롤라와는 이야기 안 하는 것이 나을 거다. 감비르 정도는 아니지만 걔도 딱히 제정신인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이따 이고가 돌아오면 치롤라 소식도 전해주겠지? 그때 켈라자야한테 당한 이후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 이후로 별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얌전히 있지 않을까 싶다. 자살하겠다고 손목 그었다가 켈라자야한테 진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해봤으니 또 자살한다는 말은 못 하겠지.



 책을 봐야 하는데 책을 펼치고 싶지 않다. 책을 펼친다고 그 글자들이 머리 속에 들어올 리도 없구. 진짜 가지가지한다. 이제는 국수값마저 올랐다. 시장에 안 간 지 꽤 되었지만 물가가 이것저것 많이 올랐나보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겨울이 왔기 때문이 아니라 성밖에 주둔한 놈들이 자꾸 물건 일부를 뜯어가서 그런 거라니 어이가 없다. 그 새끼들은 이제 자기들 살던 동네로 좀 기어내려갈 것이지, 왜 여기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거야? 그럴 거면 쿠룬나스 사냥이라도 나서던가. 성 안으로 들어와야 할 것들만 빼앗는 기생충 벌레 새끼들. 쿠룬나스는 그놈들이나 잡아먹을 것이지, 엉뚱한 사람들만 잡아먹고 있어.


 방이 아까보다 따뜻해졌다. 창문을 열었다. 밖은 고요하다.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확 들어온다. 역시나 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시각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원래 없었지. 매우 정상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고요함 어딘가에 쿠룬나스가 돌아다니고 있겠지. 어쩌다 술 취한 사람이 걸어다니던 검은 고요함이 사람을 잡아먹는 쿠룬나스가 돌아다니는 검은 고요함으로 바뀌었다. 창문을 닫고 화로로 가서 솥에 있는 물을 조금 떴다. 찬물과 섞어 화장실로 갔다. 미지근한 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큰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소소한 평화를 원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욕심이 큰 건가?


 서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이고였다.


 "날 진짜 춥네. 대체 얼마나 잔인하게 추워지려고 벌써 이래?"


 이고가 문을 잠그며 궁시렁거렸다. 지게를 내려놓으며 내게 물어보았다.


 "저녁 먹었어?"

 "응. 가게 가서 국수 먹었어."

 "그래?"

 "국수값 올랐더라. 이제 50마르라래."

 "왜?"

 "성 밖에 주둔한 놈들이 성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을 자꾸 빼앗아간대."

 "쓰레기 같은 놈들."


 이고는 지게에 실려 있던 책을 들고 계산대로 왔다.


 "별 일 없었어?"

 "별 일이랄 것까지야."


 별 일 있었으면 여기로 돌아오지도 못했겠지. 그렇지만 꼭 그게 목숨이 위험한 일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잖아.


 "루즈카는 뭐래?"

 "별 거 없었어."


 치롤라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날 이후 잘 지내고 있을 건가? 바하르한테 그 자살 소동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요즘 바하르 신경 매우 날카롭고 예민한데다 피로에 절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굳이 그 일까지 이야기해서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치롤라는?"

 "치롤라? 걔도 딱히...그때 한 번 혼난 후에는 얌전히 있는다고 하더라구. 방에 틀여박혀서 나오지를 않는대."

 "이제 사고는 치지 않겠지?"

 "그때 그렇게 당했는데 또 사고치려구. 그래도 안정 찾으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하긴...그때 진짜 죽을 뻔 했으니까."

 "루즈카만 고생이지."


 치롤라를 억지로 데리고 있어야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여기 상황도 좋지 않은데 차라리 티타카스로 돌려보내는 게 나을텐데.


 "티타카스로 돌려보내면 안 돼?"


 이고는 비웃는 것인지 어이가 없는 것인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그 꼴로 고향 내려가면 사람들이 참 좋아하겠다. 그 이전에 그 상태로 어떻게 내려보내? 루즈카가 걔 데려가라고? 루즈카도 여기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뭔 수로 티타카스까지 갔다와?"


 루즈카는 바빠서 치롤라를 티타카스로 데려가지 못한다는 거야? 그러면 내가 대신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티타카스까지 갔다 오는 것이 힘들기야 하겠지만 치롤라를 여기에서 지내게 하는 것보다야 내가 걔를 티타카스로 데려다주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 물론 루즈카 대신 가는 것이니 경비는 받을 거다. 이러면 치롤라를 티타카스로 데려간 후, 티타카스 구경도 하고 돈은 돈대로 받으면 되니 나쁘지는 않다. 이 미친 도시에 머무르고 있는 것보다 티타카스까지 치롤라를 데리고 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그러면 내가 데려갔다 올까?"

 "네가?"

 "치롤라 상태가 정말 안 좋으면 내가 데리고 내려갔다 오면 되잖아."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네가 치롤라를 뭔 수로 감당하려고 그래?"

 "가는 도중에 치롤라가 무슨 사고 치겠어?"

 "치롤라가 안 내려가겠대. 여기에서 반드시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깨우치고 세상을 뒤엎겠다고 한댄다. 그런데 걔 강제로 끌고 내려갈 수 있어?"

 "걔가 안 내려가겠대?"

 "그래. 그래서 루즈카도 어쩌지 못하는 거야. 자기 일도 있지만, 치롤라가 안 내려가겠다고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해?"


 할 말이 없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렇게 똑바로 말해줄 것이지. 치롤라도 사람 엄청 피곤하게 만드는구나.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깨우치고 싶으면 얌전히 티타카스에 있는 고향집으로 내려가서 깨우치면 될 일이지, 왜 남의 집에서 걱정을 끼치며 그러고 있는 거야? 켈라자야에게 제대로 혼나봤으니 한동안 얌전히 지내겠지만 루즈카는 치롤라가 계속 신경쓰일 거다. 나야 바하르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정도지만, 루즈카는 치롤라를 여기로 데려온 당사자잖아.


 "어서 잠이나 자자. 피곤하다."

 "응."


 방으로 들어갔다. 이고는 화로에 불을 붙인 후 자기 자리에 드러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도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생각하든 좋은 것은 떠오르지 않으니까. 그러나 자꾸 이것저것 떠오른다. 감비르는 진짜 미쳐서 이제 답이 없는 걸까? 켈라자야는 이 추운 밤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키사는 눈물을 흘리며 제발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지기를 빌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다비아는 아무 일 없겠지? 루즈카는 치롤라 때문에 진짜 심란하겠다. 바하르는 이 추운 밤에 쉬지도 못하고 순찰을 돌아야한다며 욕하고 있겠지. 망할 성 밖에 주둔한 군대는 다 꺼져줬으면 좋겠다. 눈을 떴을 때 시험 통과한 다음날 아침이었으면...이 모든 것이 다 그 밤의 악몽에 불과하다면 좋겠다.



 새벽이 찾아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벽부터 창문을 거칠게 두드린다. 아직 방 안은 어두침침하다.


 "새벽부터 뭐야?"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어두움이 아직 찐득하게 남아 있는 창밖. 찻집 왼쪽에 사람들이 무언가를 에워싸고 서서 웅성거린다. 이고도 보인다.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거야? 뭔 대단한 것이 있다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고 있다. 저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매우 나쁜 일이다. 서점에서 나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이고, 무슨 일이야?"


 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에워싼 것이 뭔지 보려고 사람들을 밀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거 뭐야?"


 경찰 두 명의 시체. 머리와 팔, 다리만 있다. 몸통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피만 흥건할 뿐. 경찰의 제복도, 경찰 육체와 장기, 뼈도 없다. 그 모든 것이 없고 그 자리에 피만 고여있을 뿐이다. 저 경찰들! 내가 쿠룬나스에게 잡아먹힌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 근처에 있던 경찰들이다! 경찰들이 당한 거야?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제 누구를 믿어야하는 거야? 경찰마저 당해버렸는데 우리를 이제 누가 지켜주지? 누가 경찰을 공격한 거야? 설마 그 저주술 예찬론자들? 그 시위 일으켰던 그놈들 짓인가? 경찰을 공격할 놈들이라면 분명히 그놈들이다. 그래도 어떻게 둘을 이렇게 처참하게 죽일 수 있지? 이건 저주술사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의 소행이다. 이 미친 도시는 어디까지 나빠지고 어디까지 미쳐가려는 거야!


 "비켜! 비키라구!"


 경찰 두 명이 달려왔다. 한 명은 바하르였다. 둘 다 인상을 무섭게 쓰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경찰이 습격당한 일이니 더욱 놀라고 화났을 거다. 이 도시에서 누군가 경찰을 습격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에드자에 온 이후, 경찰이 습격당한 일은 이것이 아마 처음일 거다. 경찰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 경찰을 공격해 죽인 거다. 이건 절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단순히 경찰 두 명이 죽은 일이 아니라, 대놓고 이 나라를 공격한 거다. 바하르와 경찰은 사람들을 거칠게 밀며 경찰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이거 어떤 새끼 짓이야!"


 경찰은 소리질렀다. 바하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손으로 가렸다. 바하르도 엄청나게 놀라고, 그만큼 화가 치솟았고, 그만큼 겁이 났나보다. 바하르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인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시체를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지금껏 경찰을 건드리는 자들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아니다. 경찰도 위험하다. 대체 경찰을 노린 놈들은 누굴까? 경찰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야 많을 거다. 하지만 미워하는 것과 이렇게 죽이는 것은 다른 것이다. 경찰을 미워하는 사람들 중 이렇게 경찰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대체 누구지? 그는 분명히 지금 이 도시 안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다. 그리고 겁에 질린 우리 모두를 비웃고 있겠지. 어쩌면 우리 바로 뒤에서 우리 모두를 죽일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어!


 이것은 심각한 일이다. 전에 쿠룬나스에게 당한 사람 시체를 발견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나는 누구를 믿어야하지? 경찰도 이제는 공격 대상이 되었다. 위험한 일이 생겨서 경찰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그것이 안전을 전혀 담보해주지 않는다. 루즈카 정도나 되어야 이 도시에서 마음 놓고 지낼 수 있을까? 누가 죽였는지 모른다. 왜 죽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경찰 두 명이 한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경찰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에 의해 공격을 당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 경찰 두 명을 죽인 자의 눈에는 경찰이나 나나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거다.


 "너 가서 다른 경찰들도 데려와. 시신 수습해야지."


 경찰이 바하르에게 다른 경찰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바하르는 계속 입을 손으로 막고 시체들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꿈쩍할 생각을 안 한다. 경찰은 손바닥으로 바하르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소리질렀다.


 "정신 안 차려! 빨리 가서 다른 경찰들 데려와! 시신 수습해야 할 거 아냐!"

 "아...예!"


 바하르는 사람들을 몸으로 들이받듯이 밀치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우리도 들어가자."


 이고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래, 서점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벗어나야겠다. 지난번 쿠룬나스에게 당한 시체를 보았을 때처럼 구토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속이 좋지는 않다. 그리고 그때보다 더 심란하고 무섭다. 이제는 진짜로 믿을 사람이 없다. 경찰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 이 도시는 미쳤어. 이 도시는 위험해. 더 문제는 이 도시를 벗어나서 어디를 가야 안전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고향으로 내려간다 해서 안전할까? 아예 확 다른 나라로 떠나면 조금 안전해질까?


 "진짜 미쳐가네."

 "우리 여기 떠나야하는 거 아냐?"

 "그냥 이 나라가 다 미쳤는데 어디로 가?"

 "외국으로 뜨면 되잖아."

 "외국 가면 뭐 달라지냐? 뭐 먹고 살아? 여기서 죽으나 외국 가서 굶어죽으나 그게 그건데 어디로 가!"


 너는 남아드라스 공화국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진짜 문제는 나와 라키사지. 나와 라키사는 이 나라를 벗어나서 어디로 가? 그래도 굶어죽는 것이 나으니까 확 도망칠까? 그게 이렇게 공포에 질려서 사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 최소한 겁에 질려서 벌벌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야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렇다고 이딴 곳에서 어떻게 가만히 있어!"

 "어디 가도 마찬가지라구! 그 전에 다른 나라는 어떻게 갈래? 다른 나라들이 길 건너 찻집이냐?"


 그러고보니 그렇다. 그래, 다른 나라 간다고 치자. 그런데 그 가는 길에 내가 안전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멀리 길을 떠나는 동안 공격받을 수도 있다. 다른 곳 사정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곳도 그렇게 괜찮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은 이 미친 도시 안에 갇혀서 그저 이 상황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래야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매일 내가 제발 내일도 살아있기를 비는 것 뿐이야?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잖아! 쿠룬나스가, 미친 저주술사 눈에 내가 안 띄기만 바래야한다니...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감비르 말대로 저주술이나 수련했어야 했나? 저주술을 수련해서 최소한 켈라자야만큼 강해졌다면 이렇게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떨기만 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랬다면 이 미친 상황이 덜 무섭게 느껴졌을까?


 서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켈라자야였다. 켈라자야는 나와 이고가 서점에서 나와 있는 것을 보더니 가볍게 인사만 하고 방에 들어가서 자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켈라자야가 지나간 길에 진한 장미향이 남았다. 오늘따라 갑자기 왜 향수를 몸에 잔뜩 뿌린 거야? 독하기는 하지만 향기롭기는 하네. 얘는 이런 향수는 어디에서 구한 거야? 켈라자야가 남긴 장미향이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준다. 그나저나 켈라자야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알아서 저렇게 태연한 걸까, 아니면 애초에 제정신이 아니라 저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경찰이 죽었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건가?



 라키사는 점심 즈음에야 서점으로 왔다. 라키사는 서점에 오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내게 바짝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 경찰 죽었다는 이야기 들었어?"

 "응. 아침에 봤어."

 "진짜? 쿠룬나스에게 당했다면서!"

 "쿠룬나스?"

 "응! 에드자 대학교 근처에서 경찰 두 명이 쿠룬나스한테 당했대. 가죽과 옷만 남은 상태로 발견되었다던데?"

 "뭐!"


 라키사가 이야기한 경찰이 살해당한 사건은 내가 아침에 목격한 사건 현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이 서점 대각선 맞은편에 몸통 대신 피만 가득 고인 경찰 시체 2구를 보았다구. 그건 쿠룬나스에게 살해당한 시체가 아니야! 쿠룬나스에게 당한 시체는 내가 직접 봤다. 정말로 옷과 가죽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본 시체는 절대 그런 시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밤새 경찰이 최소 4명 살해당했다는 거야?


 "그거 진짜야?"

 "응. 왜? 내가 거짓말한다고 의심하는 거야?"


 라키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쏘아보았다.


 "그게 아니라 이 근처에서 경찰 시체 2구 발견되었어."

 "진짜? 너 봤어?"

 "응. 새벽에 시끄러워서 나가봤더니..."

 "쿠룬나스?"

 "아니...그때..."

 "그때라니?"

 "그...네가 켈라자야를 처음 봤을 때 찻집 맞은편 그 개 시체처럼..."


 라키사가 입을 막으며 경악했다. 경악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고 미친 거지.


 "누가 그런 거야?"

 "몰라. 저주술사 짓 아닐까?"

 "설마...아무리 저주술사라 해도 그건..."


 다행이다. 라키사는 오늘 서점에 늦게 오는 바람에 그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만약 직접 봤다면 또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겠지. 나라고 괜찮은 건 아니다. 나도 미칠 것 같아. 이 상황 자체가 견디기 어렵다. 그 장면만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린다.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경찰이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 '그래도 경찰이 우리를 지켜주겠지'라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며 홍수처럼 쏟아져오는 공포. 그렇지만 어떻게 해? 이 무서움을 라키사에게 보여줄 수 없잖아. 라키사가 내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면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을텐데. 그리고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전에 개가 그렇게 죽는 모습을 보고 사람도 그렇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줄곧 해왔었다. 쿠룬나스에게 당한 사람의 시체를 보았을 때 기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상상이 진짜로 현실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지. 동물들이 이상하게 죽어나가던 그 기괴한 장면들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이번 경찰이 그렇게 죽은 현장을 보고 그 잔혹성 자체에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당했다는 사실이 무서운 거지.


 "대체 누가 이러는 걸까?"

 "몰라. 미쳐도 단단히 미친 놈일 거야."

 "너무해. 그런다고 얻는 것이 뭐가 있다구!"


 그래, 이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런데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는 대체 뭐야? 정부가 미워서? 그럴 거라면 여기에서 그러지 말고 내성에 들어가서 저지르라구! 높은 사람을 죽여야지, 일반인들 죽여서 뭐하게?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은 수백명이 죽어도 달라질 거 없어! 우리가 죽으면 그 자리를 밖에 있는 피난민들이 들어와 채울 거고, 우리가 죽은 만큼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겠지. 그렇게 죽음의 의미는 단지 우리의 소멸로 끝날 뿐인데 왜 우리를 죽이려 드는 거야?


 "아, 나 오다가 감비르 만났어."

 "감비르?"

 "응."


 라키사는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감비르가 정신이 돌아와서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나? 하긴, 자기도 그게 도저히 맨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으면 되는 줄 아나. 무슨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 차이가 사회적인 것이야? 그리고 뭔 동물을 보고도 흥분할 수 있어야 해? 편견이 가득한 차별이란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듣고 세뇌된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도 분명히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 거다.


 "걔 막 헛소리하지 않아? 옷도 이상하게 입고."

 "옷은...여자옷 입고 있었어. 화장도 진하게 하구."

 "그거 이상하지 않아?"

 "걔는 그게 좋은가 보던데? 자기가 좋으면 된 거잖아."

 "응?"


 귀를 의심했다. 아냐, 이상한 소리를 안 해서 단순히 옷차림만 보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래도 남자가 여자옷을 입고 화장 진하게 다닌다니 아주 이상하잖아!


 "아...별 말 안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지는 않았어."

 "무슨 이야기했는데?"

 "그냥 남자와 여자는 사회적인 구분이라는 이야기? 그런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하구."

 "너한테도?"

 "너 감비르 만났었어?"

 "응! 아, 걔 완전 미쳤어! 그냥 돌아버렸다니까! 막 이상하지 않아?"


 라키사는 내 반응에 별 반응이 없다. 너무나 뻔한 반응을 보는 표정이랄까?


 "아주 틀린 거 같지는 않던데?"

 "뭐?"

 "아무래도 '여자'라는 이유로 제약받는 건 많으니까. 그런 제약을 뛰어넘자는 건 나쁜 말이 아니잖아."

 "그래도 그런..."


 감비르가 라키사한테는 그 '수간에 대한 편견이 가득찬 차별'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남자와 여자가 사회적 구분에 불과하다는 말도 충격이었지만, 저 말만큼은 어떻게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진짜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놈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결론을 내렸다. 역겹게 여자 흉내내는 것부터 참 견디기 어려웠지만, 저 말은 취향 문제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화장 떡칠하고 여자 옷 입고 여자 흉내내는 거 토나오잖아!"

 "그건 걔가 좋아서 그러는 거잖아. 그런 건 개인 취향이니 넘어가주면 되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자기 말로는 보다 중성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던데? 아마 그래서 그렇게 화장 떡칠하고 억지로 여자 흉내내는 거 아닐까? 어떻게 해도 여자가 못 되는 거 아니까."

 "그런가?"

 "나는 그랬어. 적응하려면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자기가 좋다잖아. 딱히 강요하는 것도 아니구."


 뭐? 강요를 안 해? 무슨 말이지?


 "너한테 막 같이 저주술 수련하자고 이야기 안 해?"

 "응. 나한테는 딱히 그런 말 없었어."


 이 새끼, 나한테는 무슨 너무 많이 깨우쳐버렸네 어쩌네 하면서 같이 저주술 수련을 하자느니 투쟁을 하자느니 말해놓고는 라키사한테는 그런 이야기 안 했네. 그러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 감비르도 라키사에게는 저주술 수련이니 하는 소리 하기 그랬을 거다. 나야 한 학기 넘게 계속 라키사와 같이 일하고 공부하며 많이 친해졌지만 감비르는 라키사와 친하게 지낸 것이 학기초 잠깐이었을 거니까.


 "걔가 옷입고 화장하고 그런 거에 너무 뭐라고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오히려 걔는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그런가?"

 "응. 내 생각에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 극단으로 가버릴 거 같아. 그렇잖아? 모두가 감비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할텐데."

 "그러면 걔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라는 거야?"

 "나는 그것이 좋다고 생각해. 감비르는 지금 속으로 많이 외로울 거야."


 라키사의 반응도 충격적이다. 어떻게 감비르의 그런 모습과 태도에 이렇게 담담할 수 있지? 그냥 담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태도는 오히려 감비르를 옹호해주는 거 아니야? 하지만 라키사는 멀쩡하고 열심히 사는 애니까 라키사의 반응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 감비르가 말한 그 이야기 속 남자와 여자의 구분에 대해 사회적 차별을 떠올려서 보다 공감하는 것일 거야.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감비르는 정상이 아니다.


 "너는 감비르가 그러는 거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나도 어색하기는 하지만...나는 세상이 더 다양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그러면 감비르가 그러는 게 괜찮다구?"

 "나는 그런 여자 흉내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건 뭔 소리지? 자기 일 아니라고 막 이야기하는 건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그놈과 대체 누가 어울려준다는 거야? 나도 친구니까 그때 참고 그나마 그 이야기들을 들어준 거지, 친구가 아니었다면 바로 꺼지라고 했을 거다. 아니면 내가 도망갔거나. 저놈 그냥 놔두면 모두가 상대하려 들지 않을걸? 저건 외관만 저런 것이 아니라 진짜 정신이 미친 놈이다.


 "라키사,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뭐?"


 라키사가 나를 바라보았다.


 "너, 만약에 감비르 같은 애가 너한테 사귀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나? 절대 싫어. 미쳤냐? 내가 왜 그런 애랑 사귀어?"


 라키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야, 조금 전까지는 감비르가 그러는 거 괜찮다면서? 그렇게 말한 건 너잖아. 세상이 더 다양해지는 것이 좋다고, 그런 여자 흉내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거 같다고 말한 건 내가 아냐. 바로 너지. 그런데 이 반응은 뭐지? 그러니까 나만 아니면 된다는 거야? 라키사와 감비르에 대해 더 이야기하기 싫다. 허탈하다. 감비르에 대해 라키사와 지금까지 나눈 모든 이야기가 허무한 아무말 대잔치였구나. 라키사는 아주 모욕스러운 말을 들은 듯 나를 째려보더니 몸을 홱 돌려서 자기 자리로 가서 책을 펼쳤다. 내 질문이 너무 충격적이었나? 그런데 사실이잖아. 결국은 엄청 싫다는 거 아니야. 단지 그게 내 일만 아니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거 아니야? 진짜 그렇게 옹호할 거라면 이렇게 화를 낼 이유가 없지. 그렇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애를 옹호하고 싶다면 당연히 자기한테 사귀자고 했을 때 받아줄 수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내 질문이 그렇게 모욕스럽게 느껴졌다면 애초에 옹호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지. 라키사와 감비르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다.



 또 하루가 끝나간다. 라키사는 하루 종일 눈에 힘을 주고 책을 읽다 돌아갔다. 이 상황에서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나? 가끔은 눈을 비비고, 머리를 박박 긁어대며 책을 노려듯이 보며 읽어나갔다. 그것이 이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교는 휴교중이고, 사람들은 이유없이 괴상한 형태로 죽어나가고 있는데. 라키사는 이 상황을 잊기 위해 책에 그렇게 집중하는 걸까? 공부로 도망치려 해봐야 도망칠 수 없는 것이 지금 이 현실인데.


 켈라자야는 해질녘이 되자 또 서점에서 빠져나갔다. 켈라자야가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라키사는 켈라자야에게 자기랑 같이 살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나도 내심 둘이 같이 살기를 바랬다. 켈라자야는 저주술사이니 라키사와 같이 살면 라키사도 더 안전하겠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밤마다 어디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구. 설령 켈라자야가 이 만행을 저지르는 놈보다 더 강해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다 쳐도, 밤마다 돌아다닌다면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켈라자야가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 아닌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바하르 말에 의하면 켈라자야는 실력이 꽤 뛰어난 저주술사랬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치롤라를 그렇게 간단히 제압하고 죽이려 들었던 것을 보면 확실히 강하다. 그러니 더욱 의심받기 좋다. 켈라자야는 라키사가 불편한가? 아니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어서 거부한 걸까? 어쨌든 켈라자야는 라키사의 제안에 정말로 기뻤는지 활짝 웃으며 라키사에게 너는 나를 정말 친구로 여기나보다고 좋아하며 라키사 품에 달려들어 라키사를 꼭 안기는 했지만 정작 라키사의 제안은 거절했다. 낮에 서점에서 자는 것이 더 좋다는 이유였다.


 바하르는 오늘 못 오겠지. 바하르도 정신이 없을 거다. 그놈은 지금 충격이 장난 아니겠지. 단순히 동원령이 언제 끝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경찰'이라는 직위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데 밤마다 순찰을 다녀야 하니까. 이건 분명히 저주술사가 한 짓이다. 아마 바하르보다 훨씬 뛰어난 저주술사 아닐까? 바하르도 순찰다닐 때 꽤 많이 무섭겠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경찰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잖아.


 진짜 이 망할 에드자를 어떻게 탈출하지? 아니, 정확히 이 망할 마딜 공화국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할까?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셀베티아 왕국으로 넘어가서 뭐하면서 돈을 벌지? 공사장에 가서 나무라도 나를까? 그런데 그런 일자리가 있을지나 모르겠다. 무턱대고 넘어가서 일을 구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 공사장 가서 일한다고 치자. 그 다음에는? 평생 공사장에서 잡부로 일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거기에서 공사장 잡부로 일하며 돈을 얼마나 잘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다시 뭘 해야 하지? 결국은 마딜 땅으로 돌아와서 장사나 해야할까? 그러면 결국 여기로 돌아온다는 거잖아.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망할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을 열었다. 거리에는 아직 푸르스름한 어둠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다. 물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아무 일 없는 것 같다. 이 길을 걷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다니.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어제 경찰들처럼 죽을 수 있으니까.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미친놈이 활개치고 있지 않겠지? 거리에 경찰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우물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길었다. 차가운 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머리가 깨지게 아프다. 머리가 수축되는 것 같다. 평소같았으면 머리를 쥐어싸고 아프다고 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우물쭈물거리다 미친놈 저주술사가 나타나 나를 노리면 어떡해? 아니면 쿠룬나스에게 내가 발견되거나. 얼마 전 우물에서 쿠룬나스에게 당한 사람의 시체를 봤었잖아. 머리카락과 얼굴에 비누를 바르고 벅벅 문질러댄 후 다시 물을 끼얹었다. 또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머리통이 쪼그라들 것 같다. 그래도 한가하게 그런 느낌을 음미할 시간이 없다. 다시 한 번 물을 끼얹으며 머리를 박박 문질러 비눗기를 제거하고 세수를 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닦아낸 후, 물통에 물을 길었다. 어서 가야한다. 이 시각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빨리 그나마 안전한 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점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물통에 물을 부었다. 이제서야 머리가 시려워서 괴롭다. 화로에 불을 피우고 그 열기를 머리에 쬐고 싶다. 너무 춥다. 모자를 뒤집어썼다. 이 시린 기운이 어서 가셨으면 좋겠다. 이 망할 상황도 끝나고, 이 거지같은 추위도 끝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 11월의 중간도 안 지나갔으니 추위는 더 심해질 거고, 추위가 심해지는 만큼 상황도 더 안 좋아지려나? 그런데 여기서 더 안 좋아질 수가 있을까? 이제는 경찰까지도 공격당해 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성 밖에 있는 군인놈들이나 다 잡아먹을 것이지. 국수값이나 올려놓고 성 안에서 쿠룬나스가 판치든 저주술사가 판치든 신경도 안 쓰는 나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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