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4화

좀좀이 2017. 10. 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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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찾아온지 일주일이 되었다. 가게들도 모두 문을 열었고, 거리에 사람들이 예전처럼 활발하게 돌아다닌다. 서점에서 책을 빌려가는 사람들도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끔찍한 한 달이 끝났다. 그래,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어. 물론 매일 귀찮게 서점에 일자리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괜찮다. 에드자로 몰려온 사람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까? 기약없이 여기에 눌러붙어서 살까? 거의 전부 피난온 사람들이니 쉽게 내려가지는 않을 거다. 그 동네에서 발붙이고 살기 어려워서 도망친 것일테니까. 저 사람들은 알아서 살겠지. 에드자에 뿌리내리고 살기는 어려울 거다. 여기가 그렇게 일자리가 넘치는 곳은 아니니까. 전쟁이 나지 않았으니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살 건가? 북쪽으로, 남쪽으로 이주하고,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찾을까?


 거리에 경찰과 군인들은 여전히 많이 배치되어 있다.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에드자로 몰려온 피난민들이 다 해결되기 전까지는 경찰과 군인들이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 좋다. 구걸하는 사람들도 늘어났고, 소매치기들도 늘어났다. 에드자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먹고 살 것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짜증나고 싫다. 제발 그들이 빨리 에드자에서 떠나주었으면 좋겠다. 에드자에 있는다고 답이 생기는 것은 아니잖아. 여기에 저 사람들을 다 수용할만큼 일자리가 많이 생길 리 없다. 사람들이 조금씩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서 많이 다른 곳으로 떠나주었으면 좋겠다. 여기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에드자 대학교가 다시 개교한다면 그때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서점에서 일하며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언젠가 다시 등교할 날이 찾아올 거다. 나한테 지금 학교가 휴교 상태인 것은 축복일까? 만약 정상적으로 등교하고 있고, 진도가 나가고 있었다면 벌써 진도를 못 쫓아가서 헥헥거리고 있었을 거다. 그 한 달 사이에 내 아드라스어와 대륙공통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을 리는 없으니까. 학교 건물을 모두 다시 지은 후에 휴교령이 해제될 거라 했다. 최소한 이번 학기 중에는 절대 휴교령이 해제될 일이 없다. 한 학기 동안 아드라스어와 대륙공통어를 공부하면 지금보다는 그 언어들을 훨씬 더 잘 구사하게 될 거다. 그 다음 학교가 다시 문을 열고, 등교해서 수업에 들어가면 지난 학기처럼 수모를 당할 일은 전혀 없겠지.


 이고가 이번에 전쟁을 얼마나 걱정했는지 매끼 식사때마다 느끼고 있다. 일주일 내내 이고가 사놓은 말린 고기, 말린 과일, 빵만 먹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말린 고기와 말린 과일이 남아 있다. 물론 라키사가 여기에서 식사를 안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라키사 몫까지 나와 이고가 먹어치워야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주일째 먹고 있는데도 남아 있다니 놀랍다. 이고는 이 전쟁으로 인해 식량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이어질 거라 상상했던 거야? 진짜 비극적으로 전쟁이 발생하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찾아왔다면 이고의 준비성에 박수를 쳤을 거다. 그러나 다행히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고, 이고의 준비성은 일주일째 빵과 말린 고기, 말린 과일만 먹어야하는 일로 바뀌었다. 말린 고기와 말린 과일이야 천천히 먹어가도 되기는 하지만 빵은 어떻게든 다 먹어치워야 한다. 그래도 밀가루를 사놓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밀가루를 사놓았다면 나와 이고는 밀가루를 물에 개어서 대충 끓여서 먹어야했을 거다.


 방안으로 들어갔다. 한쪽에 장작이 가득 쌓여 있다. 이제 날이 많이 차가워졌다. 밤공기는 너무 차다. 아직 화로에 장작을 때며 잠을 청하지는 않고 있지만 곧 그렇게 잠을 자야 할 거다. 에드자에서 겪는 겨울은 처음이다. 여기는 고향보다 많이 추울까? 고향에서 지낼 때 겨울이 되면 벽난로 근처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밖에서 꽁꽁 얼어있다가 집에 와서 벽난로 앞에 가면 잠이 솔솔 몰려왔다. 책을 보다가 그렇게 쓰러져서 자고 있으면 부모님이 나를 깨워서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라고 하곤 했다. 난로에 집어넣을 잔가지들을 주워오는 것이 이 즈음의 일이었다. 여기에서 보내는 겨울은 그런 포근함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겠지? 이 건물에는 벽난로 자체가 없으니까. 3월에 이 서점에 처음 왔을 때 방과 서점에 화로를 이용해 난방을 했었다. 그때는 하루하루 날이 따스해져갔으니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하루 날이 더 추워져간다. 긴 겨울을 잘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잘 보내지? 월동준비라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막막하다. 두꺼운 이불과 장작. 이것 말고 준비할 것이 더 있을까? 두꺼운 옷이라도 하나 더 사서 껴입고 버텨야할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설마 이고가 얼어죽을 정도로 춥게 지내자고 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얼어죽을 정도면 이고도 얼어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방 한쪽에 잔뜩 쌓인 땔감이 알려주고 있다. 최소한 죽을 일은 없어. 그저 무지무지 괴로울 뿐. 고향에서 지내던 것보다 훨씬 더 괴롭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야. 이번 겨울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다. 설마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괴로운 겨울이겠어? 그렇게 괴로운 겨울이라면 에드자에 있는 거지들은 다 얼어죽겠지.


 이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이 올 때, 상황은 지금보다 많이 좋아져 있을 거다. 이 겨울만 잘 넘기면 된다. 아직은 불안한 기운이 계속 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고, 눈이 내렸다가 녹으면 새싹이 틀 거고, 그때 모든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질 거다. 에드자에 거지들이 급증했으니 자재만 갖추어지면 에드자 대학교 복구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거다. 어쩌면 한겨울에도 쉬지 않고 진행될 수 있다. 이 겨울이 아마 마지막 고난일 거다.


 '올해 기근이 발생하지 않은 건 정말 천만다행이야.'


 만약 올해 농사가 흉작이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흉작이 들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고와 시장에 갔을 때 올해 농사 작황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전쟁 위기 때문에 물가가 잠시 폭등하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는 그렇게까지 가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올해 기근이 발생했다면 에드자는 난리도 아니었겠지? 정말 전쟁이 터졌을 수도 있다.


 '하여간 전부 같은 놈들이야.'


 전쟁이 안 터진 것은 분명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협상이 타결되었고,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다. 난생 처음 겪는 전쟁의 공포. 이야기로만 들었던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무서웠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도 무서웠지만, 어떤 최악의 상상을 하더라도 그것들이 모두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겁이 났다. 이고가 몇 번 겪어본 것처럼 아주 태연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이고가 나와 라키사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고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결국 자기가 외국인이라는 것밖에 없잖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혼란스러운 상황, 서로가 약탈하는 난리 속에서 사람들이 외국인이라고 봐줄까? 그때는 그저 좋을 뿐이었다.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제 살았다고 기뻤다. 그러나 일주일이 흐른 지금. 일주일 내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이 과연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우리들을 생각했다면 전쟁은 왜 일으키려고 했던 거야? 자기들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그런데 그 위기 전이나 후나 그렇게 달라진 것은 없다. 솔직히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강제 교육 정책이 폐지된 것 외에는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성 밖에 양쪽에서 몰려온 피난민들, 군인들이 몰려있다는 것 정도랄까? 그런데 그것은 우리들에게 전혀 좋은 것이 아니다. 결국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협상을 타결짓는 것이라 협상이 타결된 것이겠지? 전쟁한다고 여기로 다 몰려왔다가 협상으로 전쟁을 안 일으키겠다고 했으니까. 어느 쪽이고 다 똑같다. 애초에 전쟁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으니 몰려온 것이겠지. 정의니 자유니 진리니 다 핑계에 불과하구. 전부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을 획득할 꿍꿍이 뿐이었던 거야.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아난 건지 모르겠다. 전쟁 위기에 오들오들 떨던 우리들도, 진짜 그것이 정의, 자유, 진리, 발전 같은 거창한 것을 위한다고 상상하며 에드자로 달려온 사람들도 놀아난 것이겠지.


 '바하르는 죽을 맛이겠다.'


 나야 공포에 떨던 것으로 대충 끝났지만 바하르는 아직도 동원령이 풀리지 않아서 순찰 근무를 서고 있다. 바하르가 시위대를 보고 '폭도'라고 욕해댔던 것이 이해된다. 그 망할 시위대 놈들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강제 교육 정책이 폐지되어서 달라진 것이 대체 뭔데? 에드자 대학교가 다시 문을 열기를 했어, 상황이 아주 좋아지기를 했어? 상황은 결국 바닥을 찍었고, 학교는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다. 시위대 망할 쓰레기들 때문에 학교는 폐교되었지. 이것이 자기들의 노력 때문에 좋아진 거라 주장한다면 그 입을 꿰메버려야할 거다. 진짜 그 시위만 없었다면 학교가 폐교될 일도 없었을 거고, 바하르는 동원령 때문에 지금까지 순찰 근무에 동원되어야 하지도 않았을 거다.


 '교훈이라면 교훈일까?'


 앞으로 다시는 그런 멍청한 시위는 일어나지 않겠지? 진압이 잔인하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한동안 시위를 일으킬 생각은 하지 못할 거다. 게다가 그 시위로 인해 극도의 공포까지 겪어보았으니 그게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인지 다 깨달았을 거다. 결국 모두가 피해자다. 그렇게 인식론 강제 교육이 싫었다면 그 잘난 저주술 좀 어떻게 체계적으로 만들고 발전시킬 것이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떼쓰면 다 되는 줄 알아. 어린애도 떼쓰면 돌아오는 건 매질이구만.


 '어쨌든 다 좋아질 거야.'


 어렵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어쨌든 다 좋아질 거야. 가장 나쁜 상황을 겪었잖아? 더 나빠질 것도 없을 거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협상을 뒤엎고 여기로 쳐들어올 일은 없을 거다. 모두가 가만히 있으면, 자기 할 거나 열심히 하고 있다보면 다 좋아질 거다. 여자인 치롤라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두들겨패가며 진압한 경찰과 군인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 일 없다면 그들이 죄 없는 사람을 그렇게 패는 일은 없겠지. 여자를 그렇게 팼다는 사실에 어이없고 분노가 치밀어오르기는 하지만 치롤라도 시위에서 곱게 구호나 외쳐대지는 않았겠지.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갔다. 켈라자야가 문 옆에 서 있다.


 "담배 태울 거야?"

 "응."


 담배를 입에 물었다. 켈라자야가 담배를 쳐다보았다. 담배 끝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10마르라 줘?"

 "아니. 괜찮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가득 꼈다. 공기도 따뜻하다.


 "비 오려나봐."

 "응. 나는 비오는 것이 좋아."


 켈라자야는 비오는 것이 좋다고 하며 하늘을 계속 바라본다. 정말 신기한 애야. 치르치나 사람들은 다 켈라자야 같을까? 얘는 미친 척을 하는 건지, 진짜 미친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합의가 타결되었다고 발표된 날, 켈라자야는 자기도 서점에서 살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말이 좋아 물어본 거지, 떼를 썼다. 그러나 이고가 그것만은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한 방에서 지내면 그보다 불편한 것은 없어.' 이고가 이렇게 이유를 말하자 켈라자야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게 왜 불편하냐고 되물어보았다. 이걸 대답해줘야 아나? 이고는 부부도 아니고 남매도 아닌 남녀가 방 하나에 뒤섞여서 살면 정말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너는 여자이니 당장 너만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줘야 하는데 서점에 있는 방에 그럴 공간이 없다고 설명해주었다. 켈라자야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지만 '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니 알았어요. 그런가 보죠' 라고 이야기하고 서점에서 나갔다. 그 후로 매일 아침 일찍 서점에 와서 방에서 잠깐 자면 안 되겠냐고 물어본다. 이고가 낮에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것은 매일 허락해준다. 그렇게 잠을 자다가 느지막히 일어나서 혼자 밥을 먹으러 나갔다 와서 또 서점에 돌아와서 책 보고 논다. 서점 문 닫을 시각이 되면 그제서야 서점에서 나가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켈라자야는 잿빛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나보다. 그렇게 비가 좋으면 저주술로 비가 내리게 만들면 안 되나? 딱 자기 머리 위에만 내리도록 말이야. 그러면 이렇게 계속 하늘을 쳐다보면서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릴 필요 없잖아. 혹시 그런 건 너무 어려운 저주술이라 못 쓰는 건가?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땅으로 툭 떨어졌다. 연달아 굵은 빗방울이 땅에 부딪히면서 투두둑 소리를 낸다. 땅이 금방 젖었다. 비릿한 흙냄새가 거리에 서 있는 모든 것을 감싸안았다.


 "너 진짜 비오는 것이 좋아?"

 "응. 나는 이거 너무 좋아해."

 "왜? 비오면 옷도 젖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나쁘지 않아?"

 "아니. 아름다워. 모두가 더러워지잖아."

 "뭐?"

 "모두가 똑같이 더러워지잖아. 너무 아름다워."


 켈라자야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모두가 똑같이 더러워져서 비오는 날이 좋다구? 그리고 그게 아름답다구? 하여간 얘는 이상한 애다. 정상이라면 매일 아침 일찍 서점으로 찾아와서 잠을 자겠다는 소리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나 말이야, 빨간 비도 본 적 있다!"

 "빨간 비?"

 "응! 진짜 빨간 비."

 "치르치나에는 그런 비도 내려?"


 치르치나에 빨간 비가 내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얘는 조금 이상한 애니까 비 속에서 자기만의 환상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일 거다.


 "나 어렸을 적에 본 적 있어. 사람들을 높은 곳에 매달아놔. 그리고 그것을 터쳐. 그러면 팍 터지면서 빨간 비가 내려."

 "사람을 매달아놓고 터친다구?"

 "응. 여기는 그런 거 안 해?"

 "여기? 그런 것을 할 리가 없잖아!"

 "진짜? 여기는 사람을 그렇게 안 죽여?"

 "절대로!"


 에드자 와서 공개처형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공개적으로 처형을 집행한다면 교수형이나 참수형으로 죄인을 죽일 거다. 몸을 터쳐 죽인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를 켈라자야한테 처음 들어보았다. 켈라자야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친 상태로 머리를 살짝 삐딱하게 틀었다.


 "네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응! 왜 사람을 매달아놓고 터쳐서 죽여?"

 "그게 이상한 거야?"

 "매우! 진짜 이상한 거야!"

 "아...그렇구나."


 켈라자야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바닥 위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렇게 손을 뻗은 상태로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뭐해? 비 다 맞잖아!"


 켈라자야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길 한복판으로 걸어나갔다.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더니 입을 쩌억 벌린다. 두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바라본다. 쟤 대체 왜 저러지? 빗줄기가 굵어졌다. 비는 켈라자야를 순식간에 흠뻑 적셨다. 쟤를 서점 안으로 데려와야할 것 같다. 하지만 섣불리 그렇게 손을 잡고 안쪽으로 끌고오지 못하겠다. 켈라자야 얼굴로도 비가 계속 떨어진다. 눈으로 비가 들어갈 때마다 눈을 깜빡인다. 그때마다 눈물처럼 눈에서 빗물이 흘러내린다. 입으로 들어간 빗물은 계속 삼킨다. 저건 켈라자야 나름의 저주술 수련 방법이라도 되는 건가?


 켈라자야는 온몸이 흠뻑 젖어서야 다시 지붕 아래로 돌아왔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너 감기 걸리겠어!"

 "나 괜찮은데?"

 "아, 빨리 안으로 들어가! 아주 흠뻑 젖어가지구."


 켈라자야를 잡아끌고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라키사와 이고가 비에 흠뻑 젖은 켈라자야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켈라자야,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렇게 비에 흠뻑 젖었어?"

 "아무 일 없었는데요? 비는 너무 아름다워요."


 이고가 물어보자 켈라자야는 왜 그런 것을 물어보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혼자 길 한복판으로 나가서 비 뒤집어썼어."


 수건을 갖고 나오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야, 너는 그렇다고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어?"

 "그러면 어떻게 해? 자기가 비가 좋다고 길가로 걸어나가서 비 맞는데."

 "타슈갈, 그래도 켈라자야가 저렇게 비에 흠뻑 젖을 때까지 그냥 놔둔 건 아닌 것 같아."


 이고와 라키사가 내게 왜 켈라자야를 비 흠뻑 맞도록 방치했냐고 한 소리 한다. 하지만 자기가 맞고 싶어서 거리로 뛰쳐나간 것을 어떻게 해? 방에서 수건을 갖고 나와 켈라자야에게 건네주었다. 켈라자야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그걸로 머리 닦아. 너 지금 흠뻑 젖었잖아."

 "나 괜찮은데?"

 "어서 닦아. 너 감기 걸려. 날도 추운데."


 켈라자야는 마지못해 수건을 받아들더니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자, 되었지?"


 내가 수건으로 물기 좀 닦아내라고 한 것이 영 못마땅한가보다. 수건을 내게 휙 건네주었다. 수건을 받아서 방으로 들어가 다시 널어놓았다.


 "이제 옷도 말려야 해? 그래야 속이 편하겠어?"


 방에 수건을 널고 나오자 켈라자야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짜증내는 거지? 비는 자기가 맞고 싶어서 맞았고, 나는 지금 감기 걸릴까봐 수건을 갖다주고 물기를 닦으라고 한 거다. 지금 비에 온몸이 흠뻑 젖은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 켈라자야다. 이 날씨에 비에 흠뻑 젖으면 감기 걸린다.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이상한 거야? 이고와 라키사도 켈라자야의 반응에 조금 놀랐는지 나와 켈라자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응. 진짜 감기걸린다니까?"

 "알았어! 하면 되잖아!"


 켈라자야는 짜증이 제대로 났는지 성큼성큼 걸어서 서점 밖으로 나갔다.


 "야, 왜 또 나가?"


 켈라자야는 밖으로 나가더니 지붕 아래에서 아무 말 없이 자기 몸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방금 전까지 물이 뚝뚝 떨어지던 옷이 보송보송하게 말랐다.


 "오빠가 서점 안에서는 절대 저주술 쓰지 말라고 했어!"

 "지금 저주술로 옷 다 말린 거야?"

 "그래! 왜? 막 혼내고 싶니? 잘못했다고 나 때리고 싶어?"

 "아니야! 그런 말이 왜 나와?"


 켈라자야는 서점 안으로 휙 들어갔다. 진짜 저건 미쳤어. 대체 왜 저렇게 나한테 화내는 거야? 일반인의 생각이 안 통하는 건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오히려 무신경하게 가만히 있어야 화를 낼 상황 아니야? 켈라자야는 이고 옆에 가서 앉았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고는 아무 말 없이 책장만 넘길 뿐이다. 졸고 있는 켈라자야를 깨워서 안에 들어가서 자라고 할 법도 한데 그냥 놔둔다. 마음 같아서는 켈라자야를 깨워 방에 들어가서 편히 누워서 자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아까 수건을 건네주었을 때처럼 또 짜증을 낼 것 같다.



 빗소리가 작아져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안 들린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구름 사이로 햇볕이 스며나오고 있다. 비릿한 흙냄새 가득한 상쾌한 공기가 얼굴을 어루어만진다.


 "나 왔어! 모두 다 잘 지냈어?"


 문을 시원하게 열고 들어온 사람은 블랑쉬블르였다.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블랑쉬블르, 잘 지냈어요?"

 "어머, 역시 너는 이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야 항상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지! 너는 잘 지냈어? 폐교령 철회되고 휴교령으로 바뀌었다면서?"

 "예. 학교 건물이 다 지어져야 다시 열린대요."

 "그래도 그게 어디야? 학교 건물이야 언젠가 다 짓지 않겠어?"


 블랑쉬블르가 웃으며 말했다. 블랑쉬블르 말이 맞다. 언젠가는 학교 건물이 다 복구될 테고, 그때 학교는 다시 문을 열겠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몇 년 안에는 다시 문을 열겠지.


 "전쟁 안 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도 이번에는 진짜 전쟁나는 줄 알았어. 너희들 모두 내 집으로 피신오라고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니까? 그런데 이고가 잘 보호해줄 것 같아서 나는 집에 있었어."

 "블랑쉬블르도 많이 무서웠어요?"

 "전쟁은 끔찍하니까. 라키사, 너는 안 무서웠어?"

 "저도 많이 무서웠어요."


 블랑쉬블르는 정말로 그때 무서워했을까? 블랑쉬블르는 라키사에게 자기도 무서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이 진심일까 조금 궁금하다. 치롤라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였던 그 반응. 물론 전쟁을 무서워하기는 했을 거다. 그러나 나와 라키사가 공포에 빠졌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무서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것 - 이것만큼은 우리와 같을 거다.


 "이고, 나 안 반가워?"

 "응. 안 반가워."

 "왜?"

 "또 무엇 때문에 사람 성가시게 하려구 왔어?"

 "내가 성가시게 하다니? 오늘은 그냥 놀러온 거야!"

 "그러면 잘 놀다 가."


 이고는 시선을 다시 책으로 돌렸다.


 "너 자꾸 이러면 나 확 타슈갈한테 가버린다?"

 "응. 제발 좀 가라. 나 귀찮게 하지 말구."

 "어? 진짜야? 너 나중에 질투하는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질투를 해? 루즈카가 내 애인인 거 몰라서 물어보냐?"


 블랑쉬블르가 갑자기 내게 달려와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타슈갈, 이 누나랑 확 사귈래? 너 여자친구 없잖아. 우리 뜨겁게 연애할까?"

 "아, 저 놀라게 하지 마세요!"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라키사는 무표정하게 나와 블랑쉬블르를 바라보고 있다. 블랑쉬블르가 내 팔을 잡은 채로 라키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라키사, 너 내가 타슈갈에게 이렇게 장난친다고 삐지는 거 아니지?"

 "제가요? 아니에요! 절대로요! 저랑 타슈갈 아무 사이 아니라구요!"

 "진짜? 그런데 왜 그렇게 과장되게 반응해? 뭔가 수상한데?"

 "아니에요!"


 라키사가 고개를 살짝 아래로 떨구었다. 라키사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블랑쉬블르는 아무 말 없이 가볍게 미소만 짓더니 내 팔을 놓고 이고를 향해 다가갔다.


 "이고, 얘 뭐야? 너 설마 바람피우는 거야?"

 "얘? 아니야."

 "그러면 뭐야? 왜 너 옆에 바짝 달라붙어서 졸고 있어?"


 그때 켈라자야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나?"

 "예. 당신 누구세요?"

 "나는 블랑쉬블르야. 이고와 매우 친한 친구야. 너는 누구니?"

 "내 이름은 켈라자야. 18살. 치르치나 출신."


 켈라자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블랑쉬블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블랑쉬블르도 지지 않고 켈라자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둘은 무엇 때문에 처음부터 저렇게 눈싸움을 하며 기선 제압을 하려고 드는 거야? 미친놈끼리 만나서 누가 더 미쳤는지 대결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켈라자야는 계속 블랑쉬블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걸음을 옮겨 블랑쉬블르 바로 앞에 똑바로 섰다.


 "당신 행복하죠?"

 "너는 불행하지?"

 "맞아요. 저는 불행해요."

 "내 대답은 뭘까?"


 순간 켈라자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블랑쉬블르는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서 있다.


 "나, 당신 죽여도 되요?"

 "할 수 있겠어?"

 "예."

 "그러면 해봐. 지금 당장."


 블랑쉬블르가 켈라자야의 오른손을 움켜쥐더니 가슴에 갖다대었다. 블랑쉬블르는 켈라자야가 저주술사라는 것 모르지? 켈라자야는 일반인이 아니야. 쟤 미친 애라구!


 "블랑쉬블르, 그만해! 켈라자야 진짜로 저주술사야!"

 "타슈갈, 걱정마. 자, 할 수 있으면 해봐."

 "당신, 나 믿어요?"

 "너 정말 말이 많구나?"

 "당신도...아픈 사람."


 켈라자야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얘 대체 뭐라는 거니?"


 블랑쉬블르가 켈라자야를 안아주었다. 역시 광인끼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 건가? 왜 이런 일이 발생했고 이렇게 전개되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켈라자야가 저주술을 사용하지 않고 둘이 문제를 잘 해결했으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왜 켈라자야가 처음 보는 블랑쉬블르에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냈는지 모르겠다.


 "나도 너무 아파요! 가슴이 쓰라려요!"


 켈라자야는 블랑쉬블르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짜 죽일 듯 달려들더니 갑자기 태도가 싹 변했다. 블랑쉬블르는 켈라자야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계속 달래고 있다. 켈라자야의 울음이 쉽게 그치지 않는다. 켈라자야야 원래 미친 애니까 그렇다 치지만, 블랑쉬블르의 태도는 내가 지금껏 알던 블랑쉬블르가 맞나 싶었다. 장난이나 쳐대며 인생 참 가볍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분위기로 켈라자야를 제압하지? 켈라자야가 진짜 저주술사라는 것 확인하게 되면 이 일이 얼마나 위험했던 일인지 깨닫고 깔깔 웃는 거 아냐?


 "아, 불쌍한 것. 진정해."


 블랑쉬블르가 저렇게 부드러운 모습도 보여줄 줄 알았어? 치롤라 이야기에 대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반응하더만 얘한테는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이지? 블랑쉬블르는 치롤라가 그냥 못마땅했던 걸까? 아니면 켈라자야는 허세만 부릴 줄 아는 애라고 생각했던 걸까? 허세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불쌍한 애라고 여겨서 그렇게 과감하게 대응했던 건가?


 "나 이제부터 언니라고 불러도 되요?"

 "응. 그래. 그렇게 해."

 "나 너무 기뻐요! 오빠도 생겼고 언니도 생겼어요."

 "그렇게 좋아?"

 "네. 정말로 오빠도 갖고 싶었고 언니도 갖고 싶었어요."


 켈라자야가 고개를 들고 블랑쉬블르를 바라보았다. 블랑쉬블르는 켈라자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길래..."

 "나 맨날 매맞고 미움만 받았어요. 뭐든 다 잘못하면 내가 재수없고 잘못한 거랬어요."

 "아냐, 아냐. 이 언니는 너를 믿어."

 "왜 이제야 나타났어요! 오빠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나 얼마나 아팠는데!"


 켈라자야는 진짜로 서러웠는지 펑펑 울어대었다. 블랑쉬블르는 그런 켈라자야를 꼬옥 안아주었다. 진짜 켈라자야는 정체가 뭘까? 어떻게 저렇게 이고와 블랑쉬블르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만나자마자 바로 친해질 수야 있지만 저렇게까지 엉엉 울면서 호의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고야 그렇다 쳐도, 블랑쉬블르한테는 아주 조금 전에 살벌하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잖아. 내 기준으로 켈라자야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면 안 되는 건가? 그런데 내 생각과 판단이 이상한 것은 아니잖아. 이건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 들면 나까지 미쳐버리겠다. 둘이서 뭘 하든 일단 나가서 담배나 하나 태워야겠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우체부가 서점을 향해 오고 있다.


 "안녕하세요."

 "응. 여기 서점에 온 편지 받아라."

 "예, 감사합니다."


 우체부가 편지 한 통을 건네주고 지나갔다. 담배에 불을 붙여서 입에 물고 편지 봉투를 보았다.


 "이거 아다비아가 보낸 편지다!"


 서점 주소와 내 이름만 적힌 편지 봉투. 글씨를 보니 아다비아가 보낸 편지다. 품 속에 집어넣었다. 이건 라키사가 보게 해서는 안 돼. 전에 아다비아가 편지에 뮈젤에서의 생활 너무 행복하고 좋다고 잔뜩 써서 보냈지. 여기 상황은 아주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이제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라키사가 아다비아의 편지를 보면 매우 속상해할거다. 편지에 보나마나 뮈젤에서 생활 좋다고 써놓았을 거니까. 이런 것은 나 혼자 보는 게 낫다. 아다비아가 라키사와 함께 보라고 보낸 편지도 아니구.



 오늘도 조용히 일과가 끝났다. 이고와 저녁을 먹은 후 품 속에 있던 편지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편지 봉투를 뜯고 편지를 꺼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종이 냄새만 난다. 향수 펑펑 쓰다가 다 써버린 거 아냐? 편지를 펼쳤다.


 타슈갈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 너한테서 편지를 받고 싶지만 주소를 알려줄 수 없어. 너 라키사랑 둘이 행복한 시간 보내고 있는 거 아니야?

 나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 네가 나를 봐줄까? 나를 향해 활짝 웃어줄까?

 아마 아닐 거야.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 미안해. 나 욕심이 너무 많았던 걸까. 꼭 돌아가고 싶어.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네 기억 속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다비아가.


 이 편지 뭐야? 얘 무슨 일을 겪은 거야? 여기 일은 아다비아가 알 수가 없을 거다. 게다가 나와 라키사는 사귀고 있는 사이도 아니구. 멀리 가버렸다고?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구?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얘 진짜 안 좋은 일 겪은 거 아니야? 지금 당장 뮈젤로 가봐야하는 거 아냐? 그런데 뮈젤 어디에 아다비아가 있는지 모른다. 주소가 없으니 이 편지만 들고 찾아다닐 수도 없다. 힘내라고 답장을 써주고 싶지만 답장을 쓴 후 어디로 보내?


 이거 라키사에게 보여줘야하나? 분명히 아다비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바하르한테 물어볼까? 바하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아니야. 여기저기 이 편지 내용을 떠들고 다니면 별로 좋지 않을 거야. 아다비아에게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편지를 내게 보냈을 리가 없지. 얘는 왜 사람 걱정되게 이런 편지에 주소도 쓰지 않고 보낸 거야? 당장 짐을 싸서 뮈젤로 달려가고 싶다. 주소만 적혀 있었다면 바로 달려갔을 거다. 이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잖아. 제발 별 일 아니기를. 뮈젤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이라면 좋겠다. 제발. 진심으로. 나중에 이유를 듣고 나서 뭘 그런 걸로 그렇게 심각하게 편지를 썼냐고 웃을 수 있는 일이었으면...아마 그럴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구. 그래도 내게 편지를 쓸 정신이 있다는 것은 아주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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