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7화

좀좀이 2017. 9. 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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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7화


 라키사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서 이 자리를 최대한 빨리 떠야 한다. 여기는 위험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위험한 거다. 위험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타슈갈, 이거 꿈이지?"

 "빨리 가자!"


 라키사의 손을 꽉 움켜쥐고 서점을 향해 달렸다. 달려가다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학교에서 계속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아오르고 있다. 그렇게 한참 달렸다. 숨이 가빠서 더 달리지 못하겠다. 자리에 멈추어섰다. 라키사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상황이 끝나지 않아. 분명 꿈이라면 이렇게 숨이 가쁘고 괴롭지 않겠지. 이것은 현실이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현실이다. 머리 속이 하얗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괜찮아?"


 이제야 내가 라키사의 손을 계속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라키사도 내 손을 꽉 쥐고 있음을 알았다. 라키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만 헐떡일 뿐이었다. 계속 가쁜 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모든 건물에서 갑자기 폭발이 발생하고 화재가 발생하지? 정말 다행이다. 만약 어제처럼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다면 그 폭발과 화재, 혼란에 빠진 인파에 휩쓸려버렸을 거다. 라키사가 나를 잡아당기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어서 가자."

 "어디로?"

 "서점으로."


 라키사가 다른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힘겹게 말했다. 이제 학교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것 같다. 더 달릴 필요는 없을 거다.


 "힘들면 조금 쉬었다 가자. 이제 학교에서 멀어졌어."

 "아니야. 빨리 가자."

 "너 괜찮아?"

 "응."


 라키사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토했다. 토를 하는 순간에도 내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진짜 괜찮아?"

 "응. 가자."


 라키사가 내 손을 놓고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서 입을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도 라키사 손을 꼭 잡고 서점을 향해 걸어갔다. 서점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도 없었으니까. 왜 서점으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서점에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서점에 가면 안전할 거다. 최소한 여기보다는 나을 거다.



 서점에 도착했다. 서점 문을 열었다. 이고는 서점 구석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와 라키사가 서점 안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라며 책을 덮고 나와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너네가 이 시각에 왜 와? 학교 안 갔어? 그리고 둘이 손은 왜 그렇게 꼭 잡고 있어? 둘이 사랑의 도피라도 하냐?"

 "학교...터졌어."

 "뭐?"


 이고가 인상을 찌푸렸다.


 "학교가 폭발했어. 지금 난리났어."

 "야, 무슨 소리야? 너네 학교가 뭔 폭발을 해?"

 "학교 폭발했다구! 지금 불나고 난리났어!"

 "좀 알아듣게 이야기해봐! 너네 학교가 갑자기 왜 폭발을 해?"


 이고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고를 보자 갑자기 마음이 놓였다. 라키사도 그랬나보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와 라키사가 동시에 손을 놓았다. 진짜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학교가 폭발했다고 말해도 이고가 알아듣지를 못한다. 대체 뭐를 더 어떻게 알아듣게 말하라는 거야? 학교가 폭발해서 폭발했다니까! 폭발해서 폭발했다고 말하지, 그러면 폭발한 것을 뭐라고 더 이야기해야 해?


 "이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 2층이 폭발했어. 모든 건물에서. 그리고 화재가 발생했어."

 "뭐? 왜?"

 "몰라. 갑자기 발생한 일이야. 우리도 급히 도망쳐왔어."


 라키사가 이야기하자 이고가 두 눈을 크게 뜨며 황급히 밖으로 나가보았다. 나도 이고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아주 멀리 시꺼먼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큰 화재가 발생한 것이길래 여기에서까지 연기가 보이지? 모든 건물에서 폭발이 발생하고 불이 났으니 여기에서도 연기 정도는 보일 만할 거다. 뭐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지? 왜 터진 거야?


 "타슈갈, 라키사! 너네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응. 다행히."


 이고가 나와 라키사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라키사 얼굴이 창백했다.


 "라키사, 이리 와. 여기 일단 앉아."

 "응? 아, 괜찮아."


 라키사는 아예 넋이 나간 것 같다. 멍하니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이고가 부르자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몸을 살짝 움찔하며 대답했다.


 "여기 와서 일단 앉아. 좀 앉아 있어."

 "응."


 라키사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무리 봐도 충격이 커서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다. 나도 서점 벽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없다.


 아침에 라키사와 학교를 갔다. 라키사가 쿠키 두 개를 주었고, 그 쿠키를 먹으며 학교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패를 갈라 싸우고 있었다. 멀찍이 서서 라키사와 학생들이 싸우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키사가 2층 건물 창 틈으로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가리키며 내 손을 잡고 빨리 도망가자고 했다. 갑자기 모든 건물 2층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이 발생했고, 순식간에 화재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폭발이 발생했고, 그 직후 바로 화재가 발생했다. 그래, 순식간에 폭발이 발생했고, 그 바로 다음에 화재가 발생했다. 폭발이 발생했고, 화재가 발생했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폭발이 발생했고, 불이 났다. 학교는 폭발했고, 불이 났다. 경찰과 군인들이 학교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나와 라키사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열심히 달렸다. 숨이 가빠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할 때까지 달렸다. 달렸다. 달렸다. 자리에 멈추어서서 숨을 헐떡일 때, 라키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토했다.


 이고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나와 라키사를 계속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다. 서점에서 저 멀리 학교에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큰 화재가 발생했나보다.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라키사는 계속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쨌든 멀쩡히 잘 피해서 서점으로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나도, 라키사도 다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라키사에게 다가갔다.


 "라키사, 괜찮아?"

 "응?"


 갑자기 라키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 괜찮아? 아까 다친 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라키사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계속 눈물을 흘렸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지만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아, 아까 라키사가 토하고 손수건으로 입 닦았지! 방으로 들어가서 수건을 한 장 들고 나와 라키사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너 진짜 어디 다친 거 아냐?"

 "안 다쳤어."


 라키사가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라키사, 오늘은 여기서 조금 쉬다가 안정 좀 되면 집으로 돌아가."

 "아니야. 오늘도 일 해야지."

 "그러지 마.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오늘은 쉬어."

 "아냐. 괜찮아. 당연히 일해야지."

 "무리하지 마."

 "정말 괜찮아! 오늘 꼭 일할께! 괜찮다구!"


 이고는 라키사에게 오늘 하루 쉬라고 권했다. 그러자 라키사가 단호히 오늘도 꼭 일하고 퇴근하겠다고 소리쳤다. 이고는 라키사를 안쓰럽다는 듯 가만히 쳐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키사가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지? 아무리 봐도 라키사는 오늘 일을 할 상태가 아니다. 지금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대체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으면 지금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겠어? 도저히 일할 상태가 아닌데 계속 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나도 답답하다.


 "나 여기에서 꼭 일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오늘도 일할 거야! 이고, 알았지? 나 오늘 여기에서 일할 거야. 일하고 돌아갈 거야."

 "알았어. 너 좋을대로 해. 그리고 너 자를 일 없으니 걱정 말구."


 라키사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대체 라키사는 왜 오늘 꼭 서점에서 일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거야? 오늘 하루 일하지 않는다고 이고가 라키사를 쫓아낼 리도 없는데. 그리고 이고에게 자기가 괜찮다고, 오늘 꼭 일하겠다고 소리칠 필요 없잖아? 오히려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라키사가 더더욱 지금 정상이 아닌 것 같다. 평소의 라키사라면 절대 저러지 않을텐데.



 이고는 대출 카드를 챙기기 시작했다.


 "너네 둘은 오늘 여기 안에 있어. 책 수거는 나 혼자 다녀올테니까."

 "아니야. 내가 갈께. 오늘 내가 가야하지 않아?"

 "라키사, 너 내 말 안 들을 거야? 오늘은 책 수거 나 혼자 다녀오겠다고. 애처럼 고집부리지 마! 이건 명령이야!"


 이고가 짜증을 버럭 내었다. 라키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이고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고는 대출 카드가 들어 있는 나무곽을 품에 집어넣고 지게를 짊어메었다.


 "라키사, 나 너 안 쫓아내. 쓸 데 없는 걱정하지 마. 이 서점에 아무 일 없을 거니까 내 말 좀 들어. 내 말 안 듣는 거야말로 여기서 쫓겨나는 제일 빠른 길이니까!"

 "알았어."


 라키사가 기가 죽어서 어깨를 축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고가 서점에서 나갔다. 라키사는 다시 수건으로 눈물을 계속 닦아내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안으로 들어가서 물을 한 컵 떠왔다.


 "물 좀 마셔."

 "아니야. 정말 괜찮아."


 아까 토했었지? 물 마시고 싶지 않겠구나. 물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타슈갈, 이 서점까지 그렇게 되지 않겠지?"

 "여기는 별 일 없을 거야. 누가 이런 서점에 신경쓰겠어."

 "고양이...혹시 모르잖아."

 "고양이?"

 "그 타버린 고양이..."

 "그럴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나 정말 꼭 여기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라키사의 눈물이 멈추었다. 다행이다. 라키사가 조금 안정을 찾은 것 같다. 지금은 라키사와 나눌 이야기가 없다. 내 머리속이 혼란과 혼돈 그 자체다. 어쩌면 아주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을 수도 있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일어난 일이 모두 일목요연하게, 시간순으로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한 내 생각이 없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다. 혼란스러워서 없다. 감정도 생각도 판단도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뒤죽박죽이다. 어떤 말을 입 밖으로 내놓아도 오늘 아까 그 혼란스러운 악몽 같은 상황과 관련된 말 외에 나올 것이 없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고가 돌아왔고, 책을 정리했다. 그러나 필요한 말 외에는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라키사가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라키사는 나와 이고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너도 오늘은 일찍 자. 너도 많이 놀랐을 텐데."

 "아니야. 아까는 많이 놀랐지만 지금은 괜찮아."

 "지금 도시 전체가 완전히 뒤집어진 것 닮아! 아까 책 수거하러 돌아다니는데 모두가 키란 대학교 화재 이야기만 하더라."

 "어...그래?"

 "웃어넘길 일이 아닌 거 닮다. 이런 초대형 사건은 전쟁 종료 이후에 단 한 번도 없었을 걸?"

 "아...아마 그럴 거야."


 에드자 사람들 모두 놀랐을 거다. 어쩌면 마딜 공화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 소식을 들으면 깜짝 놀랄 수도 있다. 키란 대학교 안에 있는 모든 건물 2층에서 폭발이 발생하고 불이 났으니까. 건물 하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 상당히 희안한 일이라 할텐데, 모든 건물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 건물들 전체를 동시에 폭파시켜? 게다가 모든 건물 입구는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교육 반대파가 꽉 막고 있었는데 무슨 수로 안으로 들어가? 이건 분명히 저주술이다. 그런데 이렇게 광범위하고 위력적인 저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건물 강의실 하나를 불태우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건물 2층을 다 폭파시키고 불이 나도록 한 거다. 아무리 뛰어난 저주술사라도 이건 무리일 거다.


 "그러니 어서 자. 학교 건물이 홀라당 불타기는 했겠지만 너는 내일 학교 가봐야 하잖아."

 "학교 건물이 다 불타버렸을 건데 가서 뭐해?"

 "혹시 아냐? 천막 치고 수업할지."


 이고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은 불타버렸지만 교수만 살아있다면 수업은 할 수 있다. 설마 학생들에게 학교 건물 다시 지으라고 시키지는 않겠지? 어쨌든 내일 학교에 가보기는 해야겠다.



 오늘도 라키사가 서점으로 찾아왔다. 다행히 라키사의 얼굴은 어제 서점에 있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어제 집에서 잘 쉬었어?"

 "응."

 "학교 가자."


 아무 말 없이 걸었다. 할 말이 없다.


 "학교 괜찮겠지?"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래도 천막 치면 수업은 할 수 있잖아."

 "응."

 "오늘부터 천막에서 수업 들어야 하나?"


 라키사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학교 건물이 하루 이틀에 다시 지어질 리는 없을텐데 겨울에는 어쩌지? 그 차가운 바람 맞아가며 천막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나? 엄청 추울 거다. 수업을 듣는지 고문을 당하는지 분간을 못하겠지. 그래도 학교가 의지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수업을 할 거다. 정 안 된다면 그나마 남은 잔해 속에서 수업을 할 거다. 건물이 없다고 수업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니까.


 "겨울에 우리 둘 다 수업 듣다가 얼어죽는 거 아니야?"

 "내가 이불 챙겨올께!"

 "너랑 같이 뒤집어쓰자구?"

 "그건 좀 그렇지? 너도 너 이불 챙겨서 와."

 "왜? 같이 뒤집어쓰면 더 따뜻하지 않을까?"

 "야!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건 심하잖아!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라키사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라키사의 귀가 빨개졌다. 얘는 무슨 농담을 이렇게 진심으로 받아들여? 내가 아무리 성적이 가장 좋지 않은 학생이라 해도 이 정도까지 무식하지는 않다. 이불을 같이 뒤집어쓰는 거야 당연히 연인들끼리나 하는 일이지. 아다비아와 감비르가 있었다면 라키사는 아다비아와 이불을 같이 뒤집어쓰고 나는 감비르와 이불을 같이 뒤집어썼겠지? 완전 대조되었을 거다. 우등생 두 명이 사이좋게 담요를 뒤집어쓰고, 꼴통 두 명이 사이좋게 담요를 뒤집어쓰고...생각만 해도 웃기다.



 학교에 가까워지자 까맣게 불타버린 학교 건물이 보였다. 정문 앞에 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고, 주변에는 경찰과 군인이 쫙 깔려 있다. 애들은 왜 학교에 안 들어가고 정문 앞에 모여 있는 거야? 라키사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야?"

 "오늘부로 에드자 대학교는 폐교령이 내려졌어. 이게 말이 돼?"


 마침 같은 전공 학생이 보여서 물어보자 폐교령이 내려졌다고 알려주었다. 말도 안 돼! 학교 건물 모두 불타버리기는 했지만 무슨 무기한 폐교령이야? 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벽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라키사와 벽보를 보러 갔다. 벽보에는 아주 간단한 문장 하나만 아주 굵고 큼지막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에드자 대학교 1115년 9월 10일부로 폐교.' 믿을 수 없다. 대체 왜 폐교야? 이거 잘못 적힌 거 아니지? 휴교도 아니고 폐교다. 아예 '에드자 대학교'라는 학교 자체가 없어진 거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더 이상 우리는 학생이 아닌 거야? 아무 대책없이 무턱대고 폐교를 하는 정부의 처사를 전혀 이해 못하겠다. 아무리 벽보를 살펴보아도 적혀 있는 것이라고는 '에드자 대학교 1115년 9월 10일부로 폐교'라는 말 뿐이다. 폐교를 할 거면 학생들 구제해줄 대책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저께, 어제 일이 심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누가 주먹으로 있는 힘껏 얼굴을 갈긴 느낌이다. 아찔하다.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라키사의 얼굴이 어제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정문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서로 너희 때문이라며 격하게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경찰과 군인들이 근방에 있어서 섣불리 폭력은 못 쓰고 있다. 서로를 두들겨패고 싶지만 꾹 참는 것이 보인다. 나는 저 둘 다 패버리고 싶다. 패는 것으로 성이 안 찬다. 도끼로 대가리를 다 찍어버리고 싶다. 이제 대체 어쩌라는 거야? 인식론 수업이 그렇게 듣기 싫었으면 안 들었으면 될 거 아냐! 인식론 수업이 그렇게 좋았으면 입 다물고 얌전히 처들었으면 될 거 아냐! 시위하는 무리 중에는 교수들도 있었다. 그래, 너희들도 이제 일자리가 없지. 벌레 같은 놈들. 학생들이 싸우고 있으면 말리는 시늉이라도 했었어야 할 거 아냐!


 "가자."

 "어?"

 "가자구."


 라키사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말없이 뒤돌아섰다. 아무리 여기 이 벽보 앞에서 멍하니 서 있어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에드자 대학교는 폐교되었다. 건물은 싸그리 불타버렸다. 다 끝났다. 라키사와 서점을 향해 걸어갔다. 학교에서 멀어지자 라키사는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떡해!"

 "라키사!"

 "나 이제 어떡해! 나 고향 돌아가기 싫어! 이제 잘 될 줄 알았단 말이야!"


 라키사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라키사는 묄른 출신이지. 고향에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가면 너무나 뻔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집에서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서 애낳고 평생 집안일하고 애를 키우다가 늙어죽어야만 한다고. 내 인생, 내 즐거움 따위는 하나도 없는 그런 새까만 어둠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서점에서 일하는 돈을 모아서 에드자에 어떻게든 정착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지금은 친척집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으니 나보다도 훨씬 빨리 고향집 부모님 귀에 이 소식이 전해질 거다. 어쩌면 친척이 라키사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묄른은 내 고향 인파사보다 에드자에서 훨씬 가까운 곳이니 소식도 금방 전해지겠지.


 "라키사, 걱정마. 어떻게든 될 거야."

 "뭐가 어떻게 돼? 학교 폐교해 버렸잖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와 라키사를 쳐다본다. 아침부터 여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옆에서 어떻게 달래야할 줄 몰라하고 있으니 궁금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을 거다. 제발 그냥 지나가 주세요. 지금 정말 심각해요. 당신들 호기심에 한가롭게 대답해줄 상황이 아니에요. 나도 낙향하고 라키사도 낙향하게 생겼단 말이에요. 당신들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니 이 심정 모르죠? 기껏 칠흑같은 어둠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그나마 빛이 희미하게 빛나는 에드자에 왔더니 망할 그 수렁으로 꺼지래요. 이해되세요? 자기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패싸움 벌이고, 뜬금없이 학교 건물들이 폭파하고 불타버렸어요. 믿겨지세요? 이런 내 잘못 하나 없는데 황당한 일들로 인해 학교가 폐교되었다는 것이 당연한가요?


 "라키사, 진정해. 서점에서 계속 일하면서 기다리면 되잖아."

 "너 바보야? 폐교했는데 뭘 더 기다려!"

 "너라면 다른 학교 시험쳐서 다시 들어갈 수도 있잖아."

 "다른 학교 어디? 여기에 에드자 대학교랑 중앙학문연구소 말고 어디가 더 있는데?"


 라키사가 엉엉 울면서 소리쳤다. 라키사를 진정시켜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진정시켜야 하지? 솔직히 이 일은 나도 크게 충격받았다. 라키사만 고향으로 끌려가게 생긴 것이 아니다. 나도 당장 고향으로 끌려갈 상황이다. 서점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어떻게 푼돈 모아가며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나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다. 서점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일할 수 있는 막일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나 심란하다. 나도 내 문제로 답을 못 찾아 미치겠는데 무슨 수로 라키사를 진정시켜? 라키사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자체가 없는데! 그래도 지금 어떻게든 달래야 한다. 울음을 일단 멈추게 하고 서점으로 데려가야 한다.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며 수근거리면서 지나가고 있다. 이런 것은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라키사, 괜찮을 거야. 일단 서점으로 돌아가자. 서점 가서 다시 생각해보자. 응?"

 "거기 돌아가면 답이 나와?"

 "그러면 서점 안 갈 거야? 일 안 하면 서점에서도 쫓겨날텐데? 일단 서점 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우리 같이 생각해보자. 응? 지금 사람들 다 우리 쳐다보고 있잖아. 서점 가서 같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정 울고 싶으면 서점에서 울어. 알았지? 어서 일어나."


 라키사를 억지로 일으켜세웠다. 서점으로 돌아가는 내내 라키사는 흐느꼈다. 라키사도 나 못지 않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구나.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엄청나게 많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이 황당한 일들. 이제 개학한지 불과 열흘이다. 그 열흘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다. 라짐 마이슈프 이 썩을 놈은 왜 인식론 같은 책은 집필한 거야? 그리고 그것을 강제로 배우게 명령한 정부는 무슨 꿍꿍이인거야? 돌아버리겠다.



 라키사에게 계속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서점으로 돌아왔다.


 "라키사, 너 왜 울어!"


 서점 안으로 들어오자 이고가 나와 라키사를 쳐다보더니 흐느끼고 있는 라키사를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학교가 폐교되었어."

 "뭐? 휴교도 아니고 폐교?"

 "응."

 "말도 안 돼...폐교라니 무슨 폐교야?"


 이고는 어이없어서 말을 더 하지 못했다. 당사자가 아닌 이고도 에드자 대학교가 폐교당했다는 말이 이렇게 놀라는데 당사자인 나와 라키사 심정이야 당연히 엉망진창이지. 게다가 나는 라키사 진정시키면서 오느라 머리도 마음도 더 엉망진창이다. 어디 드러누워서 잠이나 자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악몽이고, 환각일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한숨 자고 나면 이고가 나를 흔들어 깨울 거다. 그리고 말하겠지. 방학인데 일어나서 씻고 나가서 좀 돌아다니라구.



 어떻게 하루가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라키사는 퇴근 시간이 되자 힘없이 서점을 나섰다.


 "너는 괜찮냐?"

 "몰라. 그나저나 라키사가 저렇게 충격받아서..."


 이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고도 답답할 거다. 라키사가 저렇게 크게 상심한 것에 대해서는 이고라고 마땅히 방법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고가 라키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봐야 서점 근무 시간을 늘려주는 것 정도일 거다. 그런데 라키사 근무 시간이 늘어나면 이고 월급이 줄어든다. 이고도 당연히 한계가 있겠지.


 "아, 아까 너한테 편지 왔더라."

 "어떤 편지?"

 "아다비아가 보냈던데?"


 이고가 편지 봉투를 건네주었다. 글씨체를 보니 아다비아가 쓴 것 맞다.


 "얘는 왜 주소를 안 적었지? 이러면 답장 어떻게 보내라구."

 "너한테 답장 받기 싫은가 보다."

 "이러고서 나중에 분명히 왜 답장 안 보냈냐고 뭐라고 할 거야. 자기가 주소 안 써놓은 것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편지 봉투를 뜯었다. 편지지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편지지에 향수를 뿌렸나보다. 뭘 이렇게 정성껏 편지지에 향수까지 뿌렸어? 그럴 시간에 보내는 사람 주소나 적을 것이지. 그래도 아다비아가 편지를 보내주었다니 참 좋다. 아다비아는 정말 운도 좋고 실력도 좋구나. 중앙학문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 간 것은 운도 따라준 것이겠지만, 거기에서 연구원으로 그렇게 빨리 올라간 것은 아다비아가 실력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나와 라키사가 겪은 이 황당한 일련의 사건들을 전혀 겪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참 부럽다. 한편으로는 라키사가 참 불쌍하다. 아다비아는 열심히 노력한 만큼 훌륭한 대가를 성취해가는데 라키사는 아다비아 못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지만 받게 된 결과가 에드자 대학교 폐교다. 아, 학교 불타는 장면 목격한 것도 있네.



 타슈갈에게.

 잘 지내지? 방학이라고 매일 늦잠만 자면서 시간 보내고 있는 것 아니야? 공부는 잘 되어 가? 내가 없으니 공부하기 많이 힘들지? 내가 옆에 있어주면서 너 공부하게 도와주어야 네가 공부를 할텐데. 아침마다 서점에 찾아가서 너 깨우고 책을 보게 만들어서 하루 종일 같이 공부했다면 지금쯤 너도 이번 학기 진도는 한 번 다 볼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없으니 너는 보나마나 분명히 공부 안 하고 있겠지? 그러니까 내가 있을 때 더 열심히 하지 그랬어. 나한테 더 알려달라고 먼저 이야기하고 말이야.

 여기 생활은 너무 좋아! 귀족이 된 것 같아. 방에 들어가면 새하얗고 푹신한 침대가 있어. 내가 방을 치울 필요도 없어. 매일 아주머니들이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시거든. 가끔은 방을 너무 어지르고 나가서 부끄러울 때도 있어. 매일 교육이 끝나고 방에 돌아오면 푹신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침대에 누우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다니까? 목욕도 매일 할 수 있어. 여기에 목욕탕이 있는데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어. 게다가 목욕탕에 고급 비누도 항상 비치되어 있어! 나 정말 이거 보고 감동했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목욕을 하고 나면 내가 장미꽃의 요정이 된 것 같아. 식사도 너무 훌륭하다? 매일 푸짐한 야채와 고기가 나와. 원하는 만큼 떠먹어도 된대. 이것 뿐만이 아니야. 너와 같이 갔던 카페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케이크도 매끼 후식으로 나와. 이렇게 훌륭한 식사가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제공돼. 너도 여기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너랑 같이 왔으면 너무 신나고 좋았을텐데! 그러니까 진작에 나한테 공부 알려달라고 했었어야지. 그랬다면 너도 연구보조원이 되고 나랑 같이 연구원이 되어서 여기 같이 올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언젠가는 너와 이 기쁨을 같이 누려볼 날이 있지 않을까? 내가 많이 많이 성공한다면 말이야.

 라키사도 잘 지내지? 여기로 떠나기 전날 라키사와 논쟁했던 것은 아직도 마음에 조금 걸려. 아무리 그것이 세상의 진리라지만 그것을 갑자기 들으면 충격이 클 테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거 듣고 엄청나게 놀랐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그런 논리가 전개되어서 진리로 다다르는지 배우고 나서 얼마나 황홀하고 행복했는지 몰라. 그때는 나도 그것을 배우고 이해하고 받아들인지 얼마 안 된 때라서 그것을 너와 라키사에게 잘 설명하지 못했어. 하지만 지금은 완벽히 그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었어. 교육이 끝나고 돌아가게 되면 네게 천천히 다시 이야기해줄께. 너도 분명히 내가 겪었던 것처럼 황홀하고 기쁜 감정을 느끼게 될 거야! 진리라는 것이 인간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으로 다다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짜릿하고 굉장한지 몰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들만 할 수 있다는 저주술과 달라. 너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 이 아름다움을 네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매일 고민하곤 해.

 교육 내용은 매우 어렵지만 매일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밤 늦게까지 배운 것을 보고 또 보며 복습중이야. 그렇게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해야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답고 황홀한 기쁨들을 너 역시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라키사에게도. 여기 교육받으러 온 연구원과 연구보조원들 중 내가 제일 열심히 한다? 나즈 레님께서도 나차럼 커다란 열정을 갖고 극한으로 열심히 하면서 머리까지 뛰어난 연구원은 처음이라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종종 말씀하셔. 그리고 내게 거는 기대가 정말 크다고 하시면서 나를 자주 격려해주셔.

 가끔 학교도 그립고, 너랑 같이 공부하던 서점도 그립고, 라키사와 같이 걷던 길거리도 그리워.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꼭 성공해서 돌아갈께. 웃으면서 너 앞에 나타날 거야. 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랄 정도로 멋있어질거야. 너도 내가 없다고 공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고 있어! 그래야 나중에 돌아가서 네가 도와달라고 하면 잠깐이라도 시간내서 도와주지. 학교 낙제하면 끝이잖아?

 타슈갈, 나중에 에드자 돌아가면 우리 꼭 만나자. 그때까지 잘 지내! 라키사에게도 내 안부 전해주고.

 아다비아가.


 아다비아는 뮈젤 가서 매우 잘 지내고 있구나. 여기 돌아와서 오히려 적응 못하는 거 아니야? 저런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에드자에도 얼마 없을텐데. 아다비아는 거기서도 분명히 잘 지내고 잘 할 거다. 머리도 좋고 열심히 하고...솔직히 완벽하잖아? 그 정도도 완벽해 보였는데 그것보다 더 완벽해져간다니 거기에서도 모두에게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겠지? 물론 이상하게 말을 하는 버릇만 버린다면 말이다. 평소에 이 편지처럼 말하면 얼마나 좋아?


 이 편지에 답장을 못한다는 것이 어쩌면 축복이다. 불과 열흘 동안의 이야기. 저주술을 미개하고 잘못된 것이며 마법이 진리라 주장하는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을 강제로 배우게 된 것부터 시작해서 그것에 대한 학생들의 싸움, 그리고 학교 모든 건물에서 일어난 폭발과 화재, 마지막으로 오늘 있었던 폐교령까지. 이 열흘간의 이야기를 아다비아에게 전할 수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다비아가 보내는 사람 주소를 써서 내게 편지를 보냈다면 나 역시 어쨌든 아다비아에게 답장을 썼을 것이다. 답장을 쓰기 위해 펼친 종이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지 거짓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미치도록 고민했을 거다. 아마 솔직하게 써서 보내기는 했겠지. 그리고 나서 괜한 이야기를 했나 또 고민했을 거구.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다비아가 자기 주소를 안 적어서 보냈으니 나도 답장을 보낼 방법이 없다. 차라리 잘 되었다. 지금은 일단 충격을 진정시키고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다비아가 매일 내게 편지를 써서 부쳤을 리는 없을 거다. 아다비아가 편지를 또 부쳐서 내게 도착한다면, 그때 감정과 판단과 생각이 곤죽이 되어 서로 구분해낼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 보다 차분하게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이 편지는 절대 라키사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겠다. 라키사가 이 편지를 보면 지금 자기 상황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아다비아의 상황에 더욱 크게 상처받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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