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91 라오스 비엔티안 왓따이 국제공항,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그리고 귀국

좀좀이 2017. 7. 3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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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운 포인트까지 깔끔하게 쓰고 가는구나!


스콜이 시원하게 내리고 나니 공기가 맑고 시원해졌어요. 딱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은 공기와 온도였어요.


'그래. 아직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이 있잖아.'


아직 여행이 완벽히 끝난 것이 아니었어요. 이 비행기는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 노이바이 공항에서 환승해야 했어요. 이 당시 저는 노이바이 신공항 건물만 보았어요. 2014년 12월 베트남에 갔을 때 노이바이 신공항은 건물이 완성된 상태였지만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노이 노이바이 신공항을 이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베트남 경유하니 베트남 구경 조금은 하겠네.'


노이바이 공항 면세구역 안에서 돌아다니며 놀겠지만 그래도 거기는 베트남. 게다가 제가 못 가 본 노이바이 신공항의 면세구역이었어요.


그래서 공항에 도착했는데도 우울한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아직 최후의 일정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까 아침에 마음먹은대로 웃으며 라오스와 작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먼저 비엔티안 왓따이 국제공항 국내선 청사를 보러 갔어요.



물이 고인 곳을 피해가며 국내선 청사로 걸어갔어요.



"이건 버스터미널 수준인데?"


라오스 비엔티안 왓따이 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국내선 비행기 시각을 알리는 알림판은 전광판이 아니라 판에 숫자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식이었어요.



그래도 공항이라고 수하물 포장 기계가 있었어요.



왓따이 국제공항 국제선 청사로 돌아갔어요.




국제선 청사도 휑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머물던 곳이 비엔티안 시내 메인 도로라 할 수 있는 타논 란쌍에서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공항이 너무 가까웠어요. 날만 맑고 짐이 별로 없다면 공항까지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였어요. 공항이 시내에서 그렇게 가까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공항 규모가 매우 작았으니까요. 시내 중심가에서 가깝지만 비엔티안에 머무르는 내내 공항이 가깝다는 것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어요. 비행기 자체가 많지 않았거든요. 비엔티안에서 가장 멀리 가는 비행기가 우리나라 인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요.




탑승 수속을 밟았어요. 짐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짐을 일일이 나르고 있었어요.




공항 내부는 딱히 볼 것이 없어서 밖으로 나왔어요.




비가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빛이 참 예뻤어요.


윗층에도 밖으로 나가볼 수 있는 곳이 있었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


공항 내부에 있는 부페는 이렇게 생겼어요.



창밖을 통해 멀리 탓 루앙이 보였어요.



위에서 내려다본 공항 1층은 이렇게 생겼어요.



탑승구는 이렇게 생겼어요.



'라오 항공으로 바뀌어서 씬 입은 스튜어디스 직접 보았으면 좋겠다.'


속으로 베트남 항공이 코드쉐어 되어서 라오 항공으로 바뀌기를 빌었어요.


공항 내부에는 쇼핑센터가 있었어요.



'저 안에는 씬을 입고서 있는 작은 인형이 있을까?'


라오스 전통의상을 입고 서 있는 작은 인형이 하나 있을 법도 한데 보이지 않았어요. 여기라면 혹시 하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갔어요. 당연히 없었어요. 하나쯤 만들만도 한데 왜 없는지 참 미스테리였어요.


저녁 6시 반. 탑승장 문이 열렸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면세점에는 살 만한 것이 없었어요.


밤 7시 30분. 탑승이 시작되었어요. 비행기는 라오 항공으로 바뀌지 않았어요. 베트남 항공이었어요.



"안녕, 라오스! 정말로 좋아해! 잘 있어!"


아침에 마음먹은대로 웃으며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그래요. 제가 가는 길은 '누군가 정말로 가고 싶은 나라'로 가는 길이니까요.



창밖을 보았어요. 이것이 바로 마지막 라오스였어요.


밤 9시 조금 안 되어서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신공항에 도착했어요.



"뭐야? 여기 완전 좋잖아?"




하노이 노이바이 신공항은 왠지 인천공항 같았어요. 예전 공항보다 매우 크고 깔끔했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로 열심히 사는구나!"





2014년 12월에 베트남에 왔었고, 이날은 2015년 6월 27일이니 얼추 반년 지나갔어요. 그 사이에 새로운 기념품이 많이 생겼어요. 12월에 왔을 때 못 보았던 기념품이 많았어요.




진짜 베트남이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고, 계속 돈을 벌기 위해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것이 보였어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있다가 베트남 노이바이 공항 면세점에 오니 구입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이건 단순히 경공업이 발전한 나라라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공항이 깔끔하고 무료 와이파이도 제공해주고 가게도 예쁘게 잘 구성해 놓아서 물건을 사고 싶게 만들어놓았어요. 게다가 베트남에 온 사람들이 커피 사가는 것을 알고 인스턴트 커피도 몇 종류 판매하고 있었어요. 경유하는 사람들 모두 여기에서 커피를 하나씩 사가고 있었어요.






저는 4달러를 내고 커피, 2달러를 내고 냉장고 자석을 구입했어요.


기념품점을 구경하고 있는데 라오스에서 비행기에서 내려 경유하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G7커피를 구입하려고 했어요.


"G7 커피는 우리나라에 많이 수입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니까 다른 커피 사세요."


이 당시 이미 G7 커피는 우리나라에 충분히 많이 풀렸어요. 베트남에서 구입한 G7이나 우리나라에서 구입한 G7이나 맛과 향은 똑같았어요. 우리나라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인스턴트 커피가 많이 있는데 굳이 이제 우리나라에서 흔하디 흔한 G7 커피를 살 필요는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G7 빼고 다른 커피 아무 거나 구입하시라고 알려드렸어요. 공항에서 판매중인 인스턴트 커피 중 진짜로 G7 만 빼고 나머지 전부 우리나라에 아직 들어와 있지 않았어요.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베트남어라고는 '신 짜오' (안녕하세요), '깜 언' (고맙습니다) 밖에 기억나지 않았어요. 베트남어로 숫자도 말하고 얼마냐고 물어보고도 싶고, '안녕히계세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라오스어만 떠오를 뿐이었어요. 하지만 자꾸 베트남어를 듣다보니 하나하나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음수대도 설치되어 있어!"


노이바이 공항의 시설에 깜짝 놀랐어요. 예전 몰타에서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 파리 경유해서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릴 때가 떠올랐어요. 비록 2010년 일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세계적인 선진국이라는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에는 음수대가 없었어요. 우리나라 인천 공항에도 음수대가 있었는데요. 그때 목마른데 음수대가 없어서 지독한 갈증에 시달리다 비행기를 탔었어요. 그래서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깨끗한 음수대가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공항 한쪽에는 각 항공사의 스튜어디스 입간판이 서 있었어요. 가장 왼쪽에는 빨간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항공 승무원이, 가장 왼쪽에는 파란 씬을 입고 있는 라오 항공 승무원이 서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아주 굴욕적으로 승무원 입간판 대신 사각형 판때기 하나 덜렁 서 있었어요.



"아놔, 메르스 걸려서 퇴출당했나!"


메르스로 한국이 시끄러울 때였어요. 한국에 연락하면 온통 메르스 이야기였고, 한국 뉴스를 보면 온통 메르스 뉴스였어요. 진짜 메르스로 시끄러우니까 입간판도 메르스 걸렸다고 격리시켜버린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어요.


원래 제가 타고 갈 비행기는 밤 11시 45분 출발 예정이었어요. 그러나 1시간 지연되었어요. 예전 노이바이 공항이었다면 꽤 괴롭고 심심했을 것이었어요. 그것은 예전 이야기. 이제 심심하지 않았어요. 남은 시간 느긋하게 면세점 실컷 구경하고 인천공항보다 더 빵빵한 와이파이를 이용해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되었거든요.


페이스북을 접속했어요. 도서관에서 만났던 세 명과는 연락이 안 될 줄 알았는데 페이스북에 접속했더니 둘이 있어서 채팅을 시도했는데 채팅을 할 수 있었어요. 버스에서 만난 라오스인도 보낸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주었고, 일본어로 만난 라오스인과도 대화를 나누었어요. 일본어로 만난 라오인 친구와도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정말로 영어를 잘 했어요.


자정을 넘겨서 비행기에 탑승했어요. 이제 2015년 6월 28일이었어요.


베트남 항공


짐을 선반에 싣고 자리에 앉으니 0시 37분이었어요.



이제 진짜로 귀국하는구나.


아무리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라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돌아가기 싫었어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어요. 이 비행기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떴는데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이고, 또 다시 거의 한 달간의 일정이 시작되는 거야. 그러나 다 끝나버렸어요. 입영하는 날 훈련소 입구를 통과해버렸을 때 그 체념과 포기, 될 되로 되라는 심정. 딱 그 기분이었어요.


비행기 좌석은 2-4-2 좌석이었어요. 각 좌석마다 모니터가 있었어요. 뭐가 나오나 리모컨을 눌러보았어요. 오직 비디오 하나만 나왔어요.


이륙하는 것을 보았다.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달이 떠 있고, 그 아래에 구름이 살짝 껴 있는데 진짜 판타지 영화에서 특수 효과로 만들어내는 그 밤풍경이었다. 달빛을 위로 되뿜어내는 구름. 그 아래 보이는 지상의 불빛. 창밖을 계속 지켜보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잠깐 눈을 감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비행기는 최고 고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태국어 교재나 볼까 하고 교재를 꺼냈지만 책을 펼치기 정말 싫었다. 그저 우울할 뿐이었다. '누구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한국이고, 그 한국을 이렇게 자유롭게 가는 나는 축복받은 존재'라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패배자라는 느낌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 달 여행을 했지만 이것으로는 내 욕구를 채워줄 수 없구나. 게다가 이번에는 뭔가 되려고 할 때마다 다른 나라로 떠났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체념 상태에 빠져 있던 다른 여행들에서의 귀국시 심정과도 달랐다. 당장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기내식이 나왔어요. 빵을 하나 더 달라고 하자 빵을 하나 더 주어서 빵을 두 개 먹었어요. 기내식은 지금까지 먹어본 기내식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맛있었어요. 하지만 너무 야심한 시각에 나온 기내식이어서 그런지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자는 사람도 여럿이었어요.


기내식을 다 먹자 바로 불을 꺼주었어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창밖의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아주 맑은 날 고향 하늘에서 보던 그 하늘만큼 별이 빛나고 있었어요.


'내부의 빛을 막고 밖을 보면 별이 더 많이 보일 건가?'


비록 기내 전등을 소등했다 해도 모두 소등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불빛이 기내에 남아 유리창에 반사되고 있었어요. 이 불빛을 가리면 유리에서 반사되는 불빛이 없으니 별이 조금 더 많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음에는 얼굴을 유리창에 달라붙였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기내의 빛을 다 가릴 수는 없었어요.


'담요를 뒤집어쓸까?'


누군가 본다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뭐 그러면 어때. 아니, 볼 사람도 없어. 지금 모두 다 골아떨어져 있거든.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유리창에 얼둘을 들이대었어요.


"은하수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바라본 하늘. 소리 없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은하수. 밤에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은하수 옆을 날아가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 상상으로만 존재할 뿐 단 한 번도 그런 하늘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미친놈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그 상상했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바다에 고기가 많으면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별 반 어둠 반' 이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 그게 뭔지 정말 확실히 보았다. 말로 어떻게 묘사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밤하늘을 외우기 위해 계속 바라보았다. 바닥에 옅게 깔린 구름. 그 구름 너머로 보이는 지상의 별들.


'그렇게 열심히 절이란 절은 다 들어가서 절을 한 보람이 있었던 건가!'


이것은 이별 선물인 걸까.


처음 수강신청 망해서 인도네시아어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던 그 순간부터, 친한 동생이 같이 태국어 공부하자고 했을 때부터, 그리고 태국어 공부하다 그 옆동네 '라오스'라는 나라가 궁금해졌을 때부터 이 순간까지 장장 13년 동안 진행되어 온 이야기. 그 이야기의 마침표가 바로 이 여행이었고, 그 이야기의 엔딩은 바로 지금 이 비행기 창밖에 보이는 은하수. 이 13년간 이어져온 너무나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와 작별하며 받은 선물이었다.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누군가 깨워서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이었어요. 아, 하지 지난 지 이제 열흘이지. 해가 일찍 뜰 때구나. 잠깐 눈 감는다는 것이 완벽히 골아떨어져서 동이 트는 장면은 보지 못했어요. 잠이 덜 깨기는 했지만 습관적으로 소지품을 확인했어요.


2017년 6월 28일 아침 6시 57분. 비행기가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어요.



비행기를 내리려는데 앞 사람은 입국카드를 들고 있었어요.


'왜 나한테는 입국카드를 안 주었지?'


입국카드를 써야하는데 내가 자고 있어서 못 받은 것인지 아니면 안 써도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작년 베트남에서 귀국할 때에는 입국카드를 안 썼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여기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내가 불법입국이라고 추방될 확률 0%. 필요하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후딱 작성하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가면 되요.


비행기에서 내려서 전철을 타는데 사람이 매우 많이 줄을 서 있었어요. 제일 구석은 사람이 그나마 없어서 그쪽에 줄을 섰어요. 딱 내 바로 뒷사람까지 탔어요.


입국심사대로 갔는데 한국인은 입국카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나와 있었어요. 입국심사대에 거의 1등으로 도착해서 바로 입국심사를 받았어요.


"도장 찍어주세요."

"예."


입국심사는 30초 채 걸리지 않았어요. 여권을 기계에 띡 찍고 도장 쾅. 끝. 작년 겨울에 베트남에서 귀국할 때에는 라오스인들이 입국심사를 받고 있었어요. 이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라오스를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의미없는 노력이었어요.



짐을 찾기 위해 섰어요. 7박 35일 여행때 이스탄불 공항이 생각났어요. 그때도 이번과 비슷했어요. 입국심사 빨리 받으려고 가는데 남들은 비자받으러 다 가버리는 바람에 혼자 줄 없는 입국심사대로 가서 하이패스 달고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통과했어요. 컨베이어 벨트에 짐이 하나 둘 늘어가고 사람들도 하나 둘 늘어가는데 제 짐은 나오지 않았어요. 이건 7박 35일 여행때와 달랐어요. 그때는 짐을 찾을 때까지 그 누구도 짐을 찾으러 오지 않았고, 다른 컨베이어 벨트 옆에는 짐만 나오고 사람들은 오지 않아서 짐이 잔뜩 쌓여 있었어요.


비행기에는 저처럼 비엔티엔에서 하노이 경유로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짐은 늦게 나왔어요.


짐을 찾고 나서 입국 게이트를 통과했어요. 입국게이트에서 나와 천장을 한 번 바라보았어요. 저 벽 너머는 승리자들의 공간이고 내가 서 있는 이 입국게이트는 패배자의 공간. 매번 여행을 마치고 느끼는 그 감정. 이번에는 더 심했어요. 분명 누군가에게는 이 입국 게이트가 승리자의 공간으로 느껴지겠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라잖냐."


제 자신에게 조용히 말했어요.


출국장으로 올라가보고 싶지 않았어요. 거기 가면 출국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울 것이고, 당장 비행기표를 사서 떠나고 싶은 마음에 더욱 슬퍼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공항 와이파이는 베트남 노이바이 신공항보다 못했어요.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의정부행 버스를 타러 갔어요.



9시20분 버스를 탔어요. 의정부 직행에 11000원이었어요.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이 모든 것이 꿈이고 눈을 떴을 때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이기를 바랬어요. 그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었어요. 그저 지나치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우울한 기분이 들려고 하면 그때마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은 나라에, 그렇게 노력해야만 겨우 올 수 있는 나라에 온 거야'라고 마음 속으로 되뇌일 뿐이었어요.


버스 안에서 계속 이번 여행은 7박 35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것이 2절이라면 다음 번에는 어느 나라로 어학 연수를 떠나게 되는 건가? 생각해볼수록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정말 그런 순환물이라면 얼마나 멋지고 좋을까!


아침 10시 20분. 의정부역에 도착했어요.


의정부역


이제 자취방에 돌아가야할 때. 한국의 공기는 매우 선선했어요. 메르스 때문에 난리고 더워서 난리라는데 모든 것이 단 하나도 와닿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전혀 피부에 와닿지 않았어요. 바로 옆을 지나가는 사람도,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도 더위에 힘들어하고 메르스를 무서워하는데 그 감정과 생각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넜어요. 의정부역을 건너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캐리어를 끌고 걸어갔어요.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부탁하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는 순간 기분이 묘했어요. 수미쌍관일까요.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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