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88 라오스 비엔티안 여행 - 라오스 국립대학교 (동덕대, NUOL)

좀좀이 2017. 7. 2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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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붓다파크 가는 길이 너무 안 좋아."


이제 남은 일정은 붓다파크와 라오스 국립대학교인 동덕대. 붓다파크 가는 길을 찾아보았더니 한결같이 여기는 가는 길이 고약하다고 나와 있었어요.


"너가 결정해. 내일 나는 동덕대만 가면 돼. 나머지 일정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붓다파크 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해."

"내일?"


저는 동덕대만 가면 비엔티안의 모든 일정이 끝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아무 계획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그리고 영어를 아는 라오인 친구 만들기를 위해 라오스 국립대학교만은 꼭 가야 했어요. 딱 거기까지였어요. 그 이상은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솔직히 친구가 숙소에서 남은 시간 잠이나 실컷 자고 떠나자고 해도 좋다고 할 생각이었어요. 진심으로요.


"거기 가지 말까? 거기 역사적인 곳도 아니고 그저 유명한 곳이라 가보는 거잖아."

"그래? 안 가도 아쉬운 거 없겠어?"

"나는 없어. 내일 좋은 식당 가서 밥 먹자."

"그래."


친구가 붓다파크는 생략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과감히 붓다파크를 안 가기로 했어요.


뭐야? 내일 완전 널널하잖아?


동덕대만 갈 거라면 일정이 매우 널널했어요. 친구가 좋은 식당 가서 밥 먹자고 했는데 밥을 쌀알 하나씩 세어가며 먹을 것도 아니구요.


번뇌를 떨쳐내면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진단 말인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평온해지고 정신이 맑아졌어요. 근심이 싹 사라졌거든요. 머리가 너무 맑아져서 잠도 깨었어요. 그래서 새벽 2시 넘어서 잠을 잤어요.


아침 8시가 되자 눈이 저절로 떠졌어요. 더 자고 싶다든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머리는 매우 개운했어요. 단지 허리가 너무 아플 뿐이었어요. 옆으로 메고 다니는 가방의 장점과 단점은 너무 확실했어요. 가장 큰 장점은 일단 안전하다는 것. 옆으로 메고 있기 때문에 항상 자연스럽게 신경을 쓸 수 있었어요. 그리고 가방을 갖고 다니는 것 자체의 장점으로 가방 안에 이것저것 담아놓고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동안 두 손이 매우 자유롭다는 점이 있었어요. 대신 단점은 허리에 가해지는 부담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었어요. 가방에 뭔가 하나 집어넣을 때마다 허리에 가는 무리는 더 심해졌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옆으로 매는 가방끈을 맨 어깨가 위로 올라간다는 점이었어요.


침대에 누워서 쉬다가 11시가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왔어요.



먼저 친구가 가고 싶다고 한 라오 키친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여기 루앙프라방 소시지도 판다."


루앙프라방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루앙프라방 소시지였어요. 그래서 다른 음식들과 함께 루앙프라방 소시지도 주문했어요. 루앙프라방 소시지는 진짜로 직접 만든 수제 소시지라고 39000낍이었어요. 다른 음식들보다 비쌌어요. 소시지가 나왔어요. 양이 매우 적었어요.


"뭐야? 이거 양 완전 적잖아. 완전 초고급 소시지인데?"


포크로 한 조각 찍어서 입에 집어넣었어요.


"윽! 이거 왜 이렇게 시큼하지?"


소시지가 시큼했어요. 고수향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라임즙을 듬뿍 집어넣은 것 같았어요. 이 라임즙 때문에 소시지가 시큼했어요. 신개념 소시지였어요. 새로운 문화였어요.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세지'라는 말에 예상했던 맛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지금까지 먹은 모든 소시지의 맛을 부정하는 맛이었어요. 친구는 이 소시지의  시큼한 맛과 라임향에 전혀 적응을 못했어요. 그래서 저 혼자 다 먹었어요.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드디어 대망의 동덕대로 갈 때가 왔어요.


'대체 동덕대 도서관에는 무슨 책이 있나 좀 보자. 그리고 거기는 그래도 라오스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니까 영어 아는 라오인 대학생들이 좀 많이 있을 거야. 진짜 거기에 한 명 없겠냐.'


전날 연락처를 교환한 라오인 여대생들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할 줄은 알았어요.


'동덕대는 우리나라의 서울대 같은 대학교니까 기초적인 영어는 할 줄 알겠지.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수준은 그렇게 낮지 않았잖아?'


심장 좌심실이 불안한 기운을 대동맥으로 뿜어내고 있었어요. 무언가 놀라움의 끝을 경신할 것 같은 불안감이 손가락 끝 모세혈관 말초신경까지 전해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 국립도서관 가는 것도 아니고 이 나라에서 최고 좋은 대학교를 가는 것이니까요. 대학교 가는 학생들이라면 그래도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는 끝까지 다 읽었겠죠.


친구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온몸의 모세혈관 말초신경까지 전해지는 이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어요. 만약 동덕대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제 남은 목표는 절망이었어요. 무조건 어떻게든 목표를 이루어야 했어요. 정 안 되면 쪽팔림 무릎쓰고 '도를 믿으십니까'처럼 눈에 띄는 학생들 다 잡고 하나씩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를 말해볼 작정이었어요.



딸랏싸오 터미널로 가는데 건물 공사 현장이 보였어요. 나무 장대를 이어서 묶고 그 위에 발판을 올려놓았어요.


오후 1시 20분. 딸랏 싸오에 도착했어요.



"저거 뭐 굽는 거냐?"


시장 길을 천천히 구경하며 터미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때 석쇠 위에 뭔가 굽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붉고 길고 굽은 것은 소시지. 이거야 아까 점심에 먹은 것과 별 차이 없을 거에요. 그 옆의 것이 뭔가 신기한 모양이었어요.



"개구리 굽는다!"


소시지 옆에 있는 거무튀튀한 풀색의 둥근 것 두 개는 바로 개구리였어요. 하나는 배가 아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하나는 부풀다 배가 터졌는지 뱃가죽이 찢어져 있었어요.


이걸 좋은 징조라고 받아들여야하나, 나쁜 징조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심란했어요. 라오스의 식문화를 제대로 본 것은 분명 운이 좋은 것이에요. 하지만 개구리를 석쇠 위에 올려놓고 구워 먹는 것을 처음 보아서 충격이 조금 있었어요.


석쇠 위에서 굽고 있는 개구리를 본 것이 행운일지 불운일지 곰곰히 생각하며 걷다보니 딸랏싸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딸랏싸오 터미널


매표소는 이렇게 생겼어요.


라오스 딸랏싸오 버스터미널 매표소


농카이와 우돈타니 가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었어요.


비엔티안 - 농카이 버스 시간표


비엔티안 - 우돈타니 버스 시간표


콘깬 가는 버스는 하루 두 대였어요.


비엔티안 - 콘깬 버스 시간표


동덕대에 가기 위해서는 29번 버스를 타야 했어요. 버스 시간표를 보니 29번 버스는 거의 10분마다 한 대씩 있었어요. 라틴 문자로 DONGDOK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라오스 딸랏싸오 버스 시간표


버스를 타러 승차장으로 갔어요.



얼마 기다리지 않아 곧 29번 버스가 왔어요. 버스를 탔어요.




버스가 출발했어요.


'영어 할 줄 아는 대학생 한 명과 연락처 교환하고 한국 가서 라오어 공부하다 모르는 거 물어볼 수 있겠지? 그래도 이 나라의 서울대인데 전부 영어 어느 정도씩은 알겠지. 중학교 교과서 봤잖아?'


버스 바퀴가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심장도 더 세게 뛰어 1mmHg 씩 혈압이 상승했어요.


'그래, 이 나라는 영어 쓸 일이 별로 없어서 우리나라처럼 영어에 목매다는 것이 아닐 거야. 베트남어 공부를 꾸준히 열심히 할 걸 그랬나? 베트남어 아는 라오인 찾았으면 진작에 라오어 공부하다 모르는 거 물어볼 수 있는 친구 하나 사귀었을까?'


그래도 결국 동덕대는 갔을 거에요. 왜냐하면 라오어로 된 책이 수도인 비엔티안에서조차 너무 안 보여서 대체 이 나라는 무슨 책이 있나 확인해야만겠다고 굳게 다짐했거든요. 이제 책을 구입할지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책이 존재하느냐의 문제였어요. 존재하지만 책을 워낙 조금 인쇄해서 대학도서관 정도에만 들어가 있는 건지, 정말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어요.



드디어 동덕대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동덕대로 갔어요.


드디어 동덕대에 와버렸구나.


마지막 한 장의 카드. 여기서마저 나쁜 패가 뜬다면 꿈도 희망도 없어. 아니지, 이것은 카드로 비유할 수 없어. 그냥 복권이야. 전재산을 다 걸고 즉석복권을 샀고, 한 장 한 장 긁고 있어. 이제 마지막 한 장이야. 이것조차 당첨이 안 된다면 모든 것을 다 날리고 서울역을 배회하겠지. 만약 여기에서조차 답이 없다는 결과를 받아든다면 웃을래. 나의 정신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웃음으로 쏟아져 나올 테니까.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세로 웃어버릴꺼야.


동덕대. 정식 명칭은 라오스 국립 대학교. 라오어로는 ມະຫາວິທະຍາໄລແຫ່ງຊາດ 마하위타야라이행쌋. 줄여서 ມ.ຊ. 영어로는 National University of Laos, 약자로는 NUOL. 이제 마지막 복권을 긁어야만 하는 시간이었어요. 좌심실은 끊임없이 불길한 예감을 대동맥으로 뿜어내고 있었어요. 말초신경이 저려왔어요. 나는 이 마지막 한 장 남은 복권을 꼭 긁어보아야 할까? 지금이라도 얌전히 29번 버스 타고 비엔티안 시내로 돌아가면 안 될까? 확인 안 하고 모르는 채로 영원히 그곳에는 분명히 라오어로 된 책이 많았을 거야,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라오어판도 있었을 거야 망상이나 즐기면 안 돼? 알면 라오스에 대한 나의 호감을 싸그리 불싸질러버릴 거 닮아.


과장이 아니라 진짜 이런 심정이었어요.


"저거 학생식당인가?"



음식을 파는 가게도 있고 매점도 있고 좌석도 엄청나게 많은 것이 영락없는 학생식당이었어요. 하늘은 흐렸지만 습하고 더웠어요. 일단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쉬기로 했어요.


"여기 가격은 괜찮은데?"


주스를 쪽쪽 빨아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학생들이 보였어요.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말았어요.


'그래도 '도를 아십니까'처럼 온갖 학생 다 잡고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하는 건 좀 아니잖아?'


머리를 굴렸어요.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두 유 노우 잉글리시'를 최대한 적게 말할 수 있을까?


도서관부터 가자!


도서관은 그래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오겠지? 도서관이라면 영어를 잘 아는 라오인 대학생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도서관은 어디지?


일단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어? 쟤네들 영어로 된 교재 들고 간다! 쟤들한테 물어봐야겠다."


도서관이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어요. 학교는 만만하게 볼 크기가 아니었어요.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아야만 했어요. 그때 마침 대학생 한 무리가 보였어요.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영어로 된 책과 프린트물이었어요. 컴퓨터 쪽 같았어요.


"익스큐즈미."


학생들이 웃었어요.


"Where is a library?"


학생들은 서로 '네가 영어 할 줄 알잖아'하면서 대답을 미루는 모습이었어요. 학생들이 영어를 일단 아는 것 같기는 했어요. 대표로 한 학생이 반 걸음 앞으로 나왔어요.


"Where is a library?"

"Sorry?"


얘들 들고 있는 것 분명히 영어로 된 원서야. 프린트물도 다 영어야. 라오어, 태국어 그딴 거 없어. 깔끔하게 영어야. 그런데 지금 Where is a library 를 못 알아들어서 Sorry? 이래. 순간 두뇌가 편마암으로 변하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역암도, 사암도, 셰일도, 응회암도, 현무암도, 화강암도 아니었어요. 돌이 되고 다시 고온과 고압으로 형질이 달라진 변성암으로 두뇌가 바뀌었어요.


정말 아찔했지만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어요.


'얘들이 내 영어 발음이 너무 구려서 못 알아듣나?'


저도 알아요. 제 외국어 발음 핵폐기물이고 듣기 실력도 썩 좋지 않아요. 게다가 동남아시아는 동남아시아 특유의 발음이 있어요. '나랑 장난하나?'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어요. 세상에 못 알아들을 것이 따로 있지 'where is a library'를 못 알아듣지? 이건 아무리 발음 개떡 핵폐기물처럼 발음해도 못 알아듣고 자시고 할 발음 자체가 없는 건데? 그래도 제 발음이 너무 썩어서 못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말했어요.


"Library. I want to go to library."

"What?"


중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의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순간. 저는 중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배웠어요. 중학교 1학년때 도서관은 'library'라고 배웠고, 그 이후 항상 영어로 도서관은 제게 library 였어요. 엘.아이.비.알.에이.알.와이. 라이브러리! 수능 똑바로 치고 정시로 대학교 갔어요. 이건 제가 수백번은 말한 단어였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서관'을 'library'로 말했을 때 이상한 뜻으로 전해진 적이 없었어요. 이것은 우리나라 중학교 1학년 애들도 아는 단어. 어디 갔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게 피씨방을 갔든 어디를 갔든 대답은 스쿨 아니면 라이브러리니까요. 그런데 지금 library 를 몰라서 'What?' 이라고 되묻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내가 공부한 영어 전체가, 내가 치루고 받은 수능 영어 점수가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어요. 우선순위 기초 영단어 책 붙잡고 영어 단어를 다시 처음부터 외우고 아이 엠 톰, 아이 엠 제인부터 다시 봐야하나 진지하게 고민될 지경이었어요.


그래, 이 동네에서는 library 를 '라이브러리'라고 안 하나 봐.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친구에게 스마트폰을 달라고 해서 알파벳 철자를 혼신의 힘을 다해 조심스럽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입력해서 보여주었어요.


library


대학생들이 계속 뭔지 감도 못 잡았어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설마 입력을 잘못 했나 철자를 다시 확인해 보았어요. 엘.아이.비.알.에이.알.와이!


"야, 이거 도서관 철자 맞지?"


이 상황이 너무 믿기지 않아서 친구에게 혹시 제가 철자 잘못 입력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친구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자를 꼼꼼히 한 글자씩 읽으며 확인했어요. 맞았어요. library, 도서관! 라이브러리! 친구도 제가 입력한 철자를 확인하고는 정신이 나노분자급으로 부서져버렸어요. 친구의 입과 코에서 이산화탄소가 쏟아져나오는 게 아니라 나노입자급으로 가루가 된 정신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어요.


'이건 이제 도서관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껏 공부해온 영어가 맞나 확인하는 문제다. 나 진짜 '도서관'이 '라이브러리'라는 건 안다구!'


인터넷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구글 검색창에 library 입력을 하고 엔터를 눌렀어요. 인터넷 패킷 문제가 아니었어요. 나의 과거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문제였어요. '이미지'를 눌렀어요. 도서관 사진이 좌르륵 떴어요. 책이 가득한 공간. 진짜 이 그림 보고도 모르면 답 없는 거다. 이 동네라고 where is library 라고 하는 게 아니라 where is bibliothèque 라고 하는 거 아니겠지? 설마 그래도 이렇게 도서관 사진이 그득한데 사진 보고 눈치 채겠지.


학생들이 친구의 스마트폰 창에 뜬 도서관 사진과 'library'를 보며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마침 다른 대학생 2명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스마트폰으로 도서관 사진들과 library를 보던 학생들이 그 두 학생도 불렀어요.


야! 너네 지금 뭘 말하는 거야!


이 나라에서 서점을 오지게 찾아다녔기 때문에 라오어로 서점이 뭔지는 이제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라오어로 서점은 ຮ້ານຂາຍປຶ້ມ '한 카이 쁨' 이라고 해요. 얘들이 사진을 보고 말하는 것은 도서관이 아니라 '한 카이 쁨'...서점이었어요!


자기들끼리 계속 '한 카이 쁨'을 이야기하며 토론을 하더니 길을 알려주었어요. 웃으며 '컵 짜이'라고 인사하고 그 학생들이 알려준 방향이 아니라 저와 친구가 원래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어요.


그 대학생들과 거리가 충분히 멀어지자 제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아, 이건 진짜 심한데?"

"응. 이건..."

"어떻게 '라이브러리'를 모르냐? 사진까지 봐도 몰라!"

"진짜 영어를 그렇게 못할 수도 있나?"

"그런데 쟤들 책이랑 프린트는 또 다 영어로만 되어 있어! 저 책 대체 어떻게 보냐? 검은 건 글자고 흰 건 여백이라고? 저거 노려보면 막 알아서 자동적으로 머리 속에 라오어로 쏙쏙 들어와? 부처님 파워야?"


library를 모르던 대학생들이 영어로 된 원서와 프린트물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10배였어요. 이쯤 가면 이 나라에 무슨 책이 있나 문제가 아니었어요. 대체 뭘 어떻게 배우나의 문제였어요. 진짜 organization 을 물어본 것도 아니고 construction 을 물어본 것도 아니에요. library! 더 놀라운 건 도서관 사진을 봐도 몰라! 진심으로 내가 동덕대가 아니라 무슨 중학교에 잘못 온 것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했다. 버스 기사가 엉뚱한 데에서 내리라고 했다든가, 동덕대가 참 큰데 내가 실수로 동덕대 부속 중학교 같은 데에 온 것 아닐까. 하지만 그 교표! 그거 동덕대 맞아! 동덕대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그 교표 많이 봐서 어떻게 생긴지 안단 말이야!


둘이 사이좋게 휘청휘청 걸어갔어요.



"이거 도서관 맞는데..."


라오어로 ຫໍສະໝຸດກາງມ.ຊ , 불어로 Bibliothèque Centrale de l'UNL, 영어로 NUOL Central Library 라고 적혀 있었어요. 불어로 보나 영어로 보나 라오스 국립 대학교 중앙도서관 맞았어요.


"아으, 저기도 library 아주 또박또박 적혀 있네!"


문이 굳게 잠겨 있었어요.


"라오스에서 도서관은 멸망했고, 멸종했어. 라이브러리!"


다행히 교직원처럼 보이는 라오스 사람이 보였어요. 그분께 중앙도서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다행히 library 를 알았어요. 교직원은 이 건물은 문을 닫았고 다른 곳에 새로운 중앙 도서관이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아까 그 학생들이 알려준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어요.


알려준 방향으로 가다 강의실 건물이 보였고, 내부도 볼 수 있었어요.


"저거다!"



건물 입구에 라오어, 불어, 영어로 '라오스 국립대학교 중앙도서관'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어요. 직원분께 혹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지 여쭈어보자 마음껏 둘러보라고 허락해주셨어요. '컵 짜이 라이라이'라 말하며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한 후 도서관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뭐지? 시설 꽤 괜찮은데?"


도서 검색 컴퓨터도 멀쩡히 잘 작동하고 있었어요. 이게 더 놀라웠어요. 아까 그 학생들은 library 도 모르던데 도서관은 현대적이었어요.







"도서관이 멀쩡하니 더 이해가 안 되네. 책은 대체 뭐 있지?"


서고로 들어갔어요.



어떤 책이 있는지 살펴보았어요.




"이 대학교 학생들 영어 원서 볼 수 있어?"


도서관에 의외로 영어 원서가 많이 있었어요. 영어 원서 출판년도를 확인했어요. 꽤 괜찮은 책이었어요. 도서 상태도 괜찮았어요. 아까 그 library 사건이 오버랩되었어요. 말이 좋아 도서관이지 텅 비어 있을 줄 알았어요. 낡은 책 몇 권 굴러다니는 수준 아닐까 했어요. 그런데 도서관 건물도, 도서 상태도 현대적이었어요. 도서관만 놓고 보면 아주 괜찮았어요. 이 책을 볼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 지 정말로 많이 궁금해졌어요.





놀라운 것은 영어 원서보다 태국어 원서가 양이 많이 적었다는 것이었어요. 태국어 원서는 딱 봐도 출판된 지 오래된 책들이었어요. 방콕에서 태국 서점도 가보았기 때문에 태국 책 인쇄 수준은 대충 알고 있었어요. 양에서 영어 원서가 태국어 원서보다 많다는 것은 꽤 놀라운 사실이었어요. 라오스 사람들이 라오어와 태국어가 비슷해서 태국어 원서를 그럭저럭 볼 수 있다고 말했거든요. 영어는 아까 library 사건 있었고, 그 이전에 라오스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렇다면 도서관에 태국어 원서가 영어 원서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야 정상인데 영어 원서가 태국어 원서보다 훨씬 많았어요.


라오어로 된 책은 정말 별로 없었어요.


도서관에는 한국어 교재가 3권 있었어요.



도서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도서관 밖으로 나왔어요.


웃었어요.


그냥 웃었어요.


그 수밖에 없었어요. 웃었어요. 이것들이 다 믿겨지시나요? 이것들 모두 과장 하나 안 보탠 사실이었어요.


친구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알겠다고 하고 도서관 앞에 멍하니 서 있었어요. 이 일들 모두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미 겪은 '사실'이에요. 이대로 -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만 하면 되요. 그런데 이 일이 지금 사실인지 환상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었어요. 즉, 나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꿈이고, 깨어나면 6월 26일 아침 8시 숙소 침대 위에 내가 누워 있는 것 아닐까.


'영어를 아는 대학생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친구가 된다? 그냥 이 땅에서는 불가능한가 보다.'


체념하며 친구가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이제 이 대학교 안에 있는 '서점'이라는 시설을 보고 비엔티안 시내에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더 돌아다닐 이유 자체가 없었어요.


도서관에서 남학생 한 명이 나왔어요. 무슨 책을 보나 바라보았어요.


어?


저 책!


희망이 있어!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뜨였어요. 자고 있는데 누가 방의 불을 켠 것처럼 빛이 팍 들어왔어요. 두 눈에 힘을 주고 남학생이 들고 있는 책을 다시 한 번 보았어요. 본능적으로 직감했어요.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나와 자기 갈 길 가려는 남학생에게 달려갔어요.


대학생 앞에 딱 멈추어 섰어요. 대학생이 저를 바라보았어요.


0.1초


0.2초


0.3초


0.4초


0.5초 - 될까?


0.6초 - 정말로 될까?


0.7초 - 정말?


0.8초 - 가능할까?


0.9초 - 몰라.


1.0초 - 에라, 모르겠다!


1초간의 망설임. 결국 내뱉어버렸어요!


내가 이 순간을 위해 공부한 거다! 바로 이 순간! 10년이 넘는 기다림을 담아서! 혼을 실어서!


"아노, 스미마셍!"


남학생이 놀라며 저를 쳐다보았어요.


"아나타, 니홍고오 벵쿄시마스카?"

"아, 하이! 아나타와 니혼진데스카?"

"이이에! 와따시와 캉코쿠진데스!"


남학생은 제가 일본어로 말을 걸자 밝게 웃으며 일본어로 대답했어요.


그래요. 그 일본 국기가 그려진 버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메시지였어요. 내가 일본어를 공부해서 이렇게 써먹다니! 이것은 기적이었어요. 영어로 라오인 친구를 만드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도 못한, 그리고 뜬금없이 일본어로 라오인 대학생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일본어 공부를 안 한 지 10년도 넘었어요. 사실 일본어 거의 다 까먹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말 버벅거리는 것을 '아, 소우데스네', '소우데스까', '아, 하이!'로 적당히 가리며 라오스 사람과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다행히 이 대학생도 일본어가 아주 유창하지는 않았어요.


"아나타, 에이고가 데키마스카?"

"하이, 데키마스."


영어 알아? 마침 친구가 나왔어요.


"야, 찾았어! 일본어도 알고 영어도 알아!"


친구의 눈이 둥그래졌어요. 처음에는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표정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그 대학생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자 놀랐어요. 대학생과 연락처를 교환했어요. 제가 서점에 간다고 하자 정확히 길을 알려주었어요. 이 대학생은 서점과 도서관을 정확히 구분했어요. 정말로 진짜 라오스 국립대학교 대학생이었어요. 게다가 한국도 좋아하고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고 했어요. 진짜 완전 퍼펙트 그 자체였어요. 제가 찾던 최고의 친구 조건에 100% 부합했어요. 영어를 잘 하고,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어 공부를 하는 대학생. 이래야 저도 걔가 한국어 알려달라고 할 때 알려주며 균형이 맞죠.


일본어를 통해 만난 대학생과 헤어진 후 서점을 향해 걸어갔어요.




학교 안에 기숙사도 있다고 팻말이 서 있었어요.



서점에 도착했어요.



이것이 대학교 구내 서점 전체에요.


어떤 책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영어책 많네?"


아까 library 사건이 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태국어로 된 책도 판매하고 있었어요.



서점을 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발걸음이 매우 가벼웠어요. 극적으로, 아주 기적적으로 마지막 목표까지 다 이루었어요. 이런 식으로 행운이 대박으로 터질 줄은 몰랐어요.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라오스 여행 목적 중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시원하게 해결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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