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87 라오스 비엔티안 왓 씨므앙, 메콩강 야시장

좀좀이 2017. 7. 23. 13:20
728x90

"이제 어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는데..."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되었어요. 지금 동덕대 가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동덕대는 다음날 갈 예정이었어요.


"일단 딸랏싸오 터미널 가보자. 내일 동덕대 가려면 딸랏싸오 터미널 가야 하잖아."


기껏 생각해낸 것이 일단 딸랏싸오 터미널이나 가보는 것이었어요. 어차피 타논 란 쌍을 따라 메콩강 쪽으로 걸어가야 했고, 딸랏싸오는 그 길 근처에 있었어요. 친구도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 가보자고 했어요.


탓 루앙 사원에서 타논 란 쌍을 따라 딸랏싸오로 갔어요. 가는 길에 관광서들을 참 많이 보았어요. 하지만 관공서를 보는 것은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관공서 안에 일일이 들어갈 것도 아니고 건물만 밖에서 보며 지나치는 것이었거든요. 재미없다고 대충 쓱 둘러보며 길을 따라가니 참 지루한 길이었어요. 관공서 건물을 하나씩 자세히 본다면 재미있겠지만, 그 건물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너무 지루한 길이었어요.


오후 5시 46분. 딸랏싸오에 도착했어요.


라오스 딸랏싸오


딸랏싸오 시장에 있는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았어요. 여기는 문을 정말 일찍 닫아서 아침형 인간이 아니면 관광 자체가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삼겹살 구이다!"


라오스 삼겹살 구이


길거리에서 삼겹살을 통으로 구워서 팔고 있었어요.


"우리 저걸로 저녁 해결하자!"


삼겹살을 통으로 팔고 있는 것을 보자 꼭 먹어보고 싶었어요. 삼겹살을 구입해서 친구와 나누어먹었어요. 삼겹살 구이는 삼겹살 구이 맛이었어요. 딱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었어요. 숯불에 구워먹는 삼겹살 맛이었거든요. 라오스 돼지나 한국 돼지나 삼겹살 맛은 똑같았어요.


"우리 왓 씨므앙 갈래?"


딸랏싸오 구경은 금방 끝났어요. 터미널 위치도 확인했어요. 이제 또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가 '왓 씨므앙'이라는 곳을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귀가 솔깃했어요. 왓 씨므앙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왓'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절 같았거든요. 옆에서 '왓 싫어싫어 밧 싫어싫어 모스크 오노' 노래를 불러대던 친구가 '왓'을 가자고 하자 깜짝 놀랐어요. 탓 루앙 가서 앞으로 절에 열심히 가야겠다고 크게 깨우쳤나? 이때 정말로 놀랐어요.


"너가 웬 일로 왓을 가자고 해?"

"싫어? 싫으면 말구."

"아냐, 아냐!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왓 씨므앙이 뭐야?"

"어제 블로그 지인분이 알려주셨잖아. 여기에서 매우 영험한 절이라구."


친구가 왓 씨므앙에 가자고 하자 거기 가자고 했어요. 딸랏싸오 터미널에서 왓 씨므앙을 향해 걸어갔어요. 지도를 보니 딸랏싸오 터미널에서 왓 씨므앙까지 가까워보였어요. 그러나 가깝다고 할 거리는 아니었어요. 초행길이라 길을 찾아가며 가서 빨리 못 걸은 것도 있고, 날이 더워서 금방 피로해지기는 했어요. 그러나 날이 시원하고 길을 잘 안다고 해도 '가깝다'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충분히 걸어갈만한 거리이기는 했지만 걸어가기 싫은 거리 정도 되었어요.


오후 6시 3분. 드디어 왓 씨므앙에 도착했어요.



왓 씨므앙은 라틴 문자로는 Wat Si Muang 이라고 표시하고, 라오어로는 ວັດສີເມືອງ 이에요.


왓 씨므앙은 1563년에 지어진 절이지만, 1828년 태국 시암 군대의 침략때 파괴되었어요. 이후 1915년에 복구되었어요. 이 절은 과거 라오스의 애니미즘과 상좌부 불교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 절이라고 해요. 전설에 따르면 1563년 이 절이 지어질 때, 이 절의 중심 기둥을 세웠는데 그 기둥이 위치에서 낮아지고 부서졌어요. 사람들은 이것이 화가 난 귀신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씨 므앙'이라는 젊은 임산부가 화가 난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자원해 건물의 중심 기둥이 위치한 구덩이로 몸을 던져 희생했대요. 이 중심 기둥은 왓 씨므앙 주변에 갑자기 생겨난 마을의 중심부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 절은 비엔티안의 '어머니 사원'으로 추앙받는대요.


라오인들은 여기에서 무언가를 약속이나 맹세하면서 소원을 빌고 돌아간 후에 그 약속을 지킨다면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대요.


왓 씨므앙 경내로 들어갔어요.






대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왓 씨므앙


대법전은 방 2개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불당 안에는 스님이 한 분 계셨어요. 사람들이 스님께 가서 소원을 말하면 스님이 축복을 빌어주고 있었어요.


불상에 삼배를 드렸어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어요. 오늘 일정이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었는데도 체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체력 소모가 심한 이유는 딱 두 가지 때문이었어요. 허리 통증과 더위. 이 둘이 체력을 빠르게 갉아먹어대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절하는 식으로 일어났다 앉았다 절을 하자 스님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어요. 오체투지하듯 온몸을 던졌어요. 몸에 힘이 없다보니 머리를 땅에 있는 힘껏 찧어대었어요. 그렇게 삼배를 드리며 역시나 여행이 무사히 끝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중앙에 모셔진 불상은 모양이 라오스에서 본 불상들과 많이 달랐어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크메르 양식 불상이 아닐까 추측했어요.


다른 방으로 갔어요.


"여기도 불상 있네!"



라오스 사람들이 여기에서도 절을 하고 있었어요.



딱 삼배만 하고 싶었지만 여기에서도 라오스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으니 저도 따라서 삼배를 드렸어요. 또 바닥에 머리를 쾅쾅 찧어대었어요. 이마가 아팠어요.


'이러다 이마에 굳은살 박혀서 돌아가는 거 아니야?'


절에서 부드럽게 이마를 땅에 댄 적이 거의 없었어요. 허리통증과 더위 때문에 풀썩 주저앉아 머리를 쾅 찧으며 절을 해대고 있었어요. 진짜 이러다가 오체투지하는 티베트 사람들처럼 이마에 굳은 살이 박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는 제가 절을 하는 것을 보며 낄낄 웃었어요. 삼배를 하고 이마가 얼얼해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자 친구가 뭘 그렇게 과격하게 머리를 쾅쾅 찧어대냐고 말했어요. 저도 머리 쾅 안 박고 싶었어요. 제 마음과 상관없이 몸이 머리를 땅에 쾅 박아버릴 뿐이었어요.


다시 처음 들어간 방으로 돌아갔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영험한 절 - 왓 씨므앙


라오스 사람들은 이 돌에 절을 하고 계속 들어보았어요. 소원을 빌면서 저 돌에 절을 하고 나서 저 돌을 들어보고 잘 들리면 부처님께서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 것 같았어요.


Wat Si Muang in Vientiane


대법당에서 나와 왓 씨므앙 경내를 둘러보았어요.




라오인 여성 석상과 요일별 불상이 나란히 서 있었어요.



"저 돌무더기는 뭔데 사람들이 절하지?"


돌무더기가 있고, 온갖 불상이 모셔져 있었어요. 돌무더기를 보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라오스인들이 돌무더기 앞에서 신발을 벗고 안쪽으로 들어가 절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신발을 벗고 일단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건 뭐냐?"



보고 웃었어요. 코끼리야 이해해요. 코끼리는 신성한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뜬금없이 얼룩말 인형이 있었어요. 얼룩말 인형 옆의 불상은 두 불상이 합체했어요. 머리가 없는 불상과 머리만 있는 불상이 합체해서 새로운 불상 1기가 되었어요. 불완전한 둘이 합쳐서 하나의 완전한 불상이 된 것까지는 좋았어요. 단지 머리가 몸에 비해 지나치게 작고 목을 움추린 것처럼 보여서 재미있게 생겼을 뿐이었어요. 게다가 이 불상 표정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여기에서도 삼배를 드렸어요.


'무슨 절 하나에서 절을 아홉 번이나 해. 이러다 이마에 혹 생기겠네.'


속으로 궁시렁거리기는 했지만 라오스 사람들이 절을 하는 곳에서는 '제발 여행 무사히 잘 끝내게 해주세요'라고 빌면서 꼬박꼬박 절을 했어요.



절 옆에 문이 있어서 밖으로 나왔어요.


"이거 씨싸왕웡 동상이다!"


라오스 씨싸왕웡 왕 동상


라오스 마지막 왕인 씨싸왕웡 왕의 동상이었어요. 씨싸왕웡 왕은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된 후 비밀수용소로 끌려갔어요. 하지만 이 동상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어요. 보통 공산화가 되면 이전 정권과 관련된 것은 열심히 파괴하기 마련인데 이 동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이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에 해당해요. 동구권이 민주화되면서 레닌과 공산 독재자 동상을 끌어내리던 장면을 떠올리면 이 동상이 라오스 비엔티안에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특이한 경우인지 와닿을 거에요.


저녁 6시 49분. 왓 씨므앙에서 나왔어요.


"이제 슬슬 야시장 갈까?"


이제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야시장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가면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요. 날이 어두워져서 절을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구요.


왓 씨므앙에서 야시장 가는 길은 단순했어요. 지도를 확인하며 걸을 필요도 없었어요.


"혹시 저기서 네가 찾는 그 불단에 놓는 인형 팔지 않을까?"


거리에 세우는 불단 및 불단에 올리는 막뱅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보였어요.


"저기서?"

"응."


그래, 물어본다고 입이 닳냐.



설마 저기에서 팔까 싶었지만 일단 들어갔어요. 말이 안 통해서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왓 씨므앙 진짜 영험한 절이구나!


드디어 구입했어요. 비록 씬을 입고 일어서 있는 라오스 여성 인형이 아니라 가지런히 다리를 모아 무릎꿇고 앉아 있는 인형이기는 했지만 괜찮았어요. 아니,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이것 절대 못 구할 줄 알았거든요. 사람들이 죄다 시장 가보라고 해서 태국, 라오스 와서 시장을 몇 곳을 갔는데 시장에 이것을 파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것은 절대 못 구한다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왓 씨므앙 가서 절하자마자 구했어요.


"야, 왓 씨므앙 진짜 영험해! 인형이 바로 구해졌어!"

"저기에서는 팔 거 같더라."


친구가 어깨를 으쓱했어요. 친구가 고마웠어요. 친구가 한 번 들려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사진이나 한 장 찍고 지나칠 것이었거든요. 이것도 부처님 행운 포인트 사용인가? 왓 씨므앙에서 막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 팍팍 모아서 이 인형을 구할 수 있었던 건가? 아무리 힘들고 속으로 궁시렁거리기는 했지만 온몸을 던져 머리 쾅쾅 찧어가며 절을 열심히 해서 부처님께서 나의 근성을 인정해준 건가!


길을 따라가는데 절이 하나 또 나왔어요.



"저거 들어가볼래?"

"진짜?"


친구가 싫어할 거 같아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먼저 저 절에 들어가보지 않겠냐고 말했어요. 깜짝 놀라서 좋다고 하고 절 정문으로 달려갔어요. 아쉽게도 법당 문은 잠겨 있었어요. 이 절은 New Pilar City Temple 이라고 해요. 라오어로는 ປະຫວັດການກໍ່ສ້າງຫໍຫລັກເມືອງວຽງຈັນ 라고 해요. 친구가 절 하나 더 들어가준다고 해서 매우 신났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많이 아쉬웠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인형을 구했으니까요. 일단 난제 하나는 풀렸어요.


이제 정말로 어두워졌어요.


라오스 밤거리


불단이 나오자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밤 8시. 야시장에 도착했어요.



야시장 근처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어요.



야시장에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루앙프라방 야시장에 비해 한국인들이 적었어요. 루앙프라방 야시장은 완전 동대문 시장이었어요. 그러나 여기는 한국인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는 점이 매우 재미있었어요. 아마 비엔티안은 하루 후딱 보고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었어요. 어제, 오늘 - 이렇게 이틀간 돌아다녀보니 중요한 곳만 둘러본다면 하루면 충분한 도시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야시장에 왜 한국인들이 적었는지 그것만으로는 완벽히 설명이 되지 않았어요. 어쨌든 들어오는 수가 많으면 비엔티안에서 1박을 할 경우 여기로 오는 사람들도 많아야 정상이니까요.


야시장을 느긋하게 둘러보았어요.







"여기서 염주 사야겠다."



라오스는 불심이 깊은 나라. 그러니 왠지 효력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염주는 5천낍이었어요. 가격이 매우 저렴했어요. 돌을 깎아 만든 것이라 매우 무거웠어요. 염주를 하나 구입했어요.



물건은 거의 다 중국제였고, 질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어요. 여기에서도 왜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와서 메이드 인 차이나를 구입하며 신토불이 애국심 자랑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판매중인 중국제보다 질이 확실히 떨어졌거든요. 비엔티안이 아무리 라오스 수도라지만 이 현상에서 벗어난 곳은 아니었어요.



"불상 판다!"


불상을 파는 가게가 나왔어요.


라오스 불상


라오스 호신불


라오스 불상을 구입했어요. 가격은 15000낍이었어요.



향초와 작은 절구도 팔고 있었어요.


"여기도 이거 파네?"



펼치면 종이로 만든 입체 모형이 등장하는 카드를 판매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베트남에서도 판매하는 것이었어요. 탓 루앙, 빠뚜싸이는 베트남에서 안 팔고 있었지만 범선 같은 것은 베트남에서도 판매주인 것이었어요. 나무 두꺼비랑 이 펼치면 입체 모형이 나오는 카드는 동남아시아 공통으로 파는 기념품이었어요.


야시장에는 기념품 뿐만 아니라 의류, 향수 같은 것도 팔고 있었어요. 관광객만을 상대하는 야시장도 아니고, 현지인들을 위한 야시장도 아닌 매우 애매한 분위기였어요. 동대문 야시장이 보다 관광지화되고 도매시장 느낌이 확 사라진다면 이곳과 느낌이 매우 비슷할 거에요.




시장 안에도 불단이 있었어요.



그림도 판매하고 있었어요.



"서점이다!"



시장에 서점이 있었어요. 어떤 책이 있나 보았어요. 라오어로 된 책이 이것저것 있었어요. 어찌 된 것이 건물에 있는 서점보다 여기에 라오어로 된 책이 더 많아 보였어요. 혹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그것은 아예 몰랐어요. 그건 이 땅에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책임이 확실했어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라오어판이 없다는 대답을 들은 후 책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었어요. 라오스 동화책과 라오스 시장에서 파는 것들을 정리해놓은 책을 골랐어요. 이 책들이 아주 완벽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목표 달성했어'라고 자위할 수준은 되었어요.


"얼마에요?"

"26만낍."

"음...26만낍 없어요."


제가 26만낍이 없다고 하자 서점 주인이 말했어요.


"당신 돈 있잖아요."

"예, 돈 있어요. 그러나 낍은 없어요. 달러만 있어요. 달러로 지불할 수 있어요?"

"32달러."


순간 머리 속에서 계산기를 찍어보았어요. 이 당시 1달러를 라오스 낍으로 환전하면 8100낍이었어요. 32달러면 259200낍. 손해보는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오히려 800낍 이득이었어요. 800낍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는 했지만 어쨌든 제게는 이득이었어요. 그래서 32달러 내고 책을 구입했어요.


왓 씨므앙 정말로 영험하구나!


그동안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 모아놓은 거에 영험하다는 왓 씨므앙 가서 또 절을 하니 영원히 안 풀릴 것 같은 난제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엔티안 오자마자 왓 씨므앙부터 가야 했어! 설마 친구가 갑자기 제 계획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왓 씨므앙에 가자고 제안한 것 역시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가 작동한 건가? 이 나라 와서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는 아주 감 잡을 수 없게 제멋대로 사용처리되고 있었어요. 친구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친구의 제안 역시 그런 것 중 하나 아닐까 하고 추측했어요.



남자옷은 멋없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사진으로 찍어봐야 예쁘게 안 나오는 것은 여기라고 다를 것 없었어요. 그에 비해 여자옷은 확실히 예쁘고 화려하고 사진으로 찍으면 사진도 괜찮게 나왔어요.


시장 구경을 마치고 전날 돌아갔던 길과 다른 길로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저거 출판사인가?"



뭔가 인쇄소처럼 생긴 가게가 있었어요. 문에는 Mak Anh Publishing 이라고 적혀 있었고, 간판에는 Makanh Bookshop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일단 들어가보았어요.


"여기도 서점은 서점이네."


라오어로 된 책이 있었어요. 그렇게 마음에 드는 책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거 라오스 교과서 아니야?"


친구가 저를 불렀어요. 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책을 확인했어요. 라오스의 라오어 교과서였어요. 종류가 꽤 많았어요.


"너 라오어 교과서 다 있어?"

"아니. 초등학교만 있어."

"이건?"

"이거 중학교 것 같은데?"


초등학교 것은 다 있었어요. 중학교 것은 없었어요.


'중학교 것도 다 살까?'


제게 초등학교 라오어 교과서를 선물해주신 분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라오어 교과서를 열심히 보아야 해요. 그렇지만 이것을 과연 언제 다 볼 지는 저 스스로도 의문이었어요. 막연히 한 1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라오스 중학교 교과서? 저 책을 펼쳐볼 일이 있기는 할까? 라오어는 고립어에요. 동사 변화 같은 것은 아예 없어요. 그래서 사전만 있으면 될 것 같죠? 동사 변화가 없다면 기본적인 문장 구조만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사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해석이 되거든요. 인도네시아어처럼요. 하지만 절대 아니에요. 왜냐하면 라오어, 태국어는 띄어쓰기가 없어요. 단어를 하나씩 찾아가며 읽고 싶지만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그게 참 어려워요. 중국어를 공부해보신 분이라면 병음으로 표기하는데 띄어쓰기 없이 좌르륵 다 붙여놓았다고 생각하시면 그럭저럭 비슷해요. 일본어를 공부해본 분이라면 전부 띄어쓰기 없이 히라가나로 좌르륵 다 붙여서 썼다고 생각하면 또 그럭저럭 비슷해요. 일본어를 띄어쓰기 없이 히라가나로만 쫙 적어놓으면 읽는데 상당히 짜증나요.


지금 교과서 보는 속도라면 중학교 것 보려면 10년 후에나 가능할 것 같았어요. 망설여졌어요. 지금 구입한 중학교 교과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라오스가 교과서를 무조건 바꿀 거에요. 그렇다면 있는 것부터 다 읽고 그 다음에 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자! 언제 라오스 또 오겠어?"


중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라오어 교과서를 구입했어요. 책 5권에 11만 5천낍이었어요.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로 돌아오니 밤 9시 50분이었어요.



'오늘 왜 이렇게 운이 좋지? 이건 너무 강운인데?'


한국이었으면 복권이라도 샀을 거에요. 오늘 일정을 생각해보면 너무 운이 좋았어요. 국립박물관에서는 카메라 돈 안 내었지, 비엔티엔 중앙 도서관에서는 라오스 여대생 3명과 연락처 교환했지, 탓 루앙까지 가는 뚝뚝도 흥정 엄청 빨리 끝내어서 탓 루앙 구경 무난하게 잘 했지, 왓 씨므앙에서 야시장 가는 길에 그렇게 구하고 싶던 인형도 구했지, 시장에서 원하던 책도 구했지, 마지막으로 생각지도 못한 서점 발견해서 중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라오스 교과서도 구했어요. 이 정도 강운인 날이라면 뒤로 자빠져도 돈다발 위에 자빠질 날.


'내 인생에 이렇게 운이 따라주는 날도 있구나!'


과연 내일도 이런 강운이 따라주는 날이 될 건가? 내일도 절부터 간 후에 일정을 시작해야 하나?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미신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친구가 비과학적이 되어가는 저를 보며 혀를 끌끌 찼어요. 하지만 워낙 이것이 그럴싸했기 때문에 딱히 반박은 하지 않았어요.


"우리 이제 절 안 가도 돼. 이건 이제 부처님이 우리 보고 절 그만 와도 된다고 하시는 징조야. 아니, 그만 오래. 이제 포인트도 세이브 안 되어서 다 줄줄 새어나오니까 막 제멋대로 행운 터지고 있잖아."


친구가 과학적인 분석을 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