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오늘의 잡담

오늘의 잡담 - 격심한 두통

좀좀이 2017. 7. 1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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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좀좀이의 고향 순례


이른 아침, 강서구에 갔다가 이왕 강서구 간 김에 매해 한 번씩 가곤 하는 그곳을 가기로 했다.



좀좀이의 고향 01


여기가 '좀좀이의 고향 01' 인 이유는 여기에서 살 때 처음으로 인터넷에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집에 인터넷 설치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 올라와서야 '인터넷'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았다.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소설은 2부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여기에서 1.5부에 해당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그 뒤 군대를 갔지.


원래는 여기만 갔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날, 매해 하던 것처럼 이왕 여기 왔으니 캔맥주나 한 캔 마시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향 탈출에 성공해 서울 생활을 시작한 곳이라 나름 내게 의미있는 곳이라 1년에 한 번 가서 건물을 보며 캔맥주 한 캔 마시고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캔맥주를 마신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시간 오래 걸리더라도 얌전히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괜히 예전처럼 발산역까지 걸어가보자고 생각했다. 원래 강서구를 올 계획이 아니라 가방 속에 책도 많았는데 푹푹 찌는 더위 속에 발산역까지 걸어가려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맥주캔 하나 마셨다고 술기운은 올라오지, 땀은 비오듯 뚝뚝 떨어지지, 가방은 가방대로 무겁지, 구두는 구두대로 아직 길들지 않아서 발가락 아프지...게다가 새벽에 한 시간 정도 걸어서 땀을 한 번 쫙 뺀 상태라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다시 걸으려니 정말 힘들었다. 결국 발산역 옆 편의점에 앉아서 음료수 마시며 쉬다가 정신을 차리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대학교때처럼 아주 곤하게 잠들었다. 그러다 본능적으로 눈을 딱 떴더니 종로3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침 지인에게 보냈던 '좀좀이의 고향에 왔어요'라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뇌가 반쯤 꺼진 상태로 대답하며 종로3가역에서 나왔다. 원래는 좀좀이의 고향2를 가려고 나온 거였는데 너무 귀찮았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러나 다시 종로3가역으로 들어가면 요금이 나가기 때문에 조금 걸어가서 106/108번 버스 타고 가기로 했다.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좀좀이의 고향2 로 가는 273번도 이 정류장에서 정차해!


그래서 의정부로 바로 돌아갈지 좀좀이의 고향2로 돌아갈지 운에 맡기기로 했다. 273이 오면 좀좀이의 고향2로 가고, 106/108이 오면 의정부로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것은 운명인가. 273이 왔다.


그래서 운명에 따라 간 좀좀이의 고향2.



좀좀이의 고향 02


내가 살았던 방도 보이고, 중국 여행 같이 간 친구가 살았던 방도 보인다.


여기가 어찌 보면 진정한 '좀좀이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지낼 때 인터넷 카페에 심심해서 '나의 외국어 방랑기'라는 것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용한 문체가 바로 지금 이 좀좀이 블로그에서 기본으로 사용하는 '해요체' 다. 그 전까지는 나도 '해요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외국어 방랑기'를 연재하면서 '해요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문체가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참고로 '나의 외국어 방랑기'는 내 자랑이 아니라 내 실패담 모음집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으로 나왔고, 저것을 보여주면 거의 전부 인연에 문제가 생겨서 자체적으로 영구 봉인. 만약 저것이 성공담 모음집이었다면 '방랑기'가 아니라 '정복기'라고 했겠지. 그런데 이상하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 참 많더라. 보고 같이 웃자고 쓴 거였는데 하도 삐딱하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 많아서 웬만해서는 절대 공개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블로그에 '나의 외국어 방랑기'에 수록된 이야기가 토막토막 숨어있기는 하다.


저기에서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1부에 해당하는 파트를 완결짓기도 했고, '해요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나의 외국어 방랑기' 집필도 했기 때문에 좀좀이의 고향2.


이렇게 돌아다니고 120번 버스 타고 미아사거리 간 후 108번 버스 타고 의정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너무 깊게 자다가 의정부역을 지나치고 2정거장 더 가서 가능역에서 내려서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쓰러지는 줄 알았다. 이제 외투는 벗고 다녀야 하나. 외투 벗으면 외투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것들 다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해서 매우 불편한데...


02


친구가 어제 서울 올라왔다가 오늘 내려갔다.


친구가 약속이 취소되어서 서울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하길래 잠깐 보자고 했다. 고향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이 친구가 서울 와야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이나 한 번 볼 생각이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광화문에서 만난 후 바로 김포공항으로 가자고 했다. 광화문에서 김포공항까지 같이 가고 김포공항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2시간 정도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얼굴만 보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외국 여행 간 지인분의 블로그를 본 순간 뭔가 딱 떠올랐다.


예전 통신상태가 참 좋지 않던 외국에서 체류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시간'과 관련된 경험이 유독 많았다. 시차가 아니다. 시간이다.


예를 들어서, 전화통화를 하는데 미묘하게 1~2초 딜레이가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말을 잘 듣고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가면 말이 막 엉키곤 했다. 초반에는 정상적인 대화인데, 나중에는 서로 싸우듯 말꼬리 막 자르고 있었다. 웃긴 것은 둘 다 상대방의 말을 매우 잘 듣고 있다는 점. 정상적으로 전화통화하는데 통신상태 불량으로 생기는 그 미묘한 딜레이로 인해 대화가 엉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이런 경험을 뭔가 재미있는 소재로 발전시킬 수 없을까 곰곰히 고민했다.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2명 이상이 공동창작하는 소재로 어떻게 키워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의정부 종점 지하철이 들어와 사람들이 내린 후 그 차에 타서 자리에 앉았다.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다른 철로로 인천행 전철이 들어왔고, 그 전철로 옮겨탔다.


전철을 옮겨탄 후, 이 아이디어를 다른 친구와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진부하지는 않고 재미는 있겠다고 했다. 둘 다 이야기했다.


'그거 쓰려면 머리 엄청 아프겠다.'


광화문역 가서 친구를 만나 김포공항 가는 전철에 타서부터 이 소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도 흥미를 보였다.


밴드를 결성하는 것처럼 팀을 짜서 파트를 나누어서 집필. 즉, 주인공은 2명.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주인공 2명의 이야기를 집필하는 작가 2명을 중재하는 중재자 1명까지 해서 셋이 팀을 구성한다면 좋겠지만 한 명 더 구하기 어려우니 둘이서 팀을 짜서 이 소재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이러면 창작 방식에서는 일단 독특해. 릴레이 소설과는 다르다. 작가가 배역을 맡아 그 부분을 집필하는 거니까.


문제는 각종 설정과 스토리. '시간'을 소재로 다루면 머리 아파지는 부분이 많은데, 공동 창작이다보니 신경쓸 것이 더 많았다.


원래 나는 소설 쓸 때 전체 스토리, 전체 설정을 아주 타이트하게 짜놓고 시작하지 않는다. 전부 아주 대략적으로만 세워놓은 후, 글을 쓰면서 구체화시켜가는 편. 특히 장편을 쓸 경우, 처음에는 쓰고 싶은대로, 생각 흘러가는대로 자유롭게 쓰다가 점점 그 범위를 좁혀가고 구체화시켜간다. 처음부터 설정과 스토리를 자세히 짜놓으면 그거 짜다가 지치기 마련이고, 너무 짜여져 있는 곳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어서 처음 계획한 스토리와 설정이 마음에 안 들으면 글을 접기 쉬워진다. 혼자 쓸 때야 이래도 별 상관은 없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느슨한 편을 좋아한다.


이건 혼자 쓸 때는 별 문제가 없는 취향이자 스타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같이 쓸 때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 둘이 생각하는 설정, 스토리가 다르면 글은 필연적으로 파국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파국이란 완결내지 못하고 중단. 더욱이 이건 주인공이 2명. 각자 주인공 하나씩 맡아서 쓰는 것이다보니 스토리와 설정을 꽤 디테일하게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공항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둘 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견을 말했다. 나의 첫 구상과는 엄청나게 많이 달라졌고 발전했다. 하지만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서 각자 기획을 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주 구체적으로 글에 대한 기획을 해보려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게다가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신경써야할 것이 너무 많았다.


사실 '시간차' 그 자체는 매우 진부한 주제다. 하지만 이 '시간차'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진부하지 않을 수 있다.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자만 '현재'와 '미래'의 관계가 어떻느냐에 따라 진부해질 수도 있고 진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토리를 밝은 쪽으로 써볼 수도 있는데, 그건 아마 둘 다 글을 쓸 때 밝은 스토리를 쓰는 쪽이 아니다보니 스토리는 필연적으로 좀 어둡고 무거운 스토리로 갈 거 같다.


스토리는 어떻게 하고, 각종 설정은 어떻게 할 지 고민하다보니 나중에는 머리 혈관이 아프다고 느꼈다. 에어컨을 켜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머리가 정말 아팠다.


이 소재로 글을 꼭 완결짓고 싶다.


그런데 여행기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소설에, 이 소설까지 더해지면 글 연재하는 것만 3개다. 이거 어떻게 감당해내지...?!!!!! 근성으로 해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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