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59 태국 치앙마이 하루에 절 14곳 돌기 01 - 왓 람창, 왓 치앙만

좀좀이 2017. 2. 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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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30분에 일어났어요.


"오늘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앙마이 관광을 다 마쳐야 하네."


다음날은 오전에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어요. 치앙마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길은 육로로 하루 걸리는 길. 상당히 긴 여정이 될 거였어요. 다음날 하루 종일 이동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땀을 최대한 안 흘리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쾌적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다음날 아침에 어디 돌아다닐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그렇게 여유로운 아침이 될 리도 없었구요. 보나마나 숙소에서 최대한 뭉쓰고 밍기적거리다 차가 올 때 즈음에야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겠죠.


오늘은 2015년 6월 18일. 다음날 루앙프라방 가는 길에 태국 치앙라이에 있는 왓 롱쿤을 들려서 보기는 하겠지만, 실상 태국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바로 오늘이었어요. 내일 새벽에 무언가 보러 간다는 일은 절대 없을 거에요. 그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아침에 절대 일찍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저는 저를 잘 알았어요. 누가 정신없이 흔들어서 깨우지 않는 이상 아침에 일찍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요.


오늘은 절을 15개 도는 날이구나.


침대에 걸터앉아 지도를 펼쳤어요. 치앙마이에서 가볼 수 있는 절은 오늘 몽땅 다 가보기로 했어요. 성 안에 있는 절은 물론이고 성 외곽에 있는 절도 갈 생각이었어요. 제가 가볼 수 있는 절을 다 세어보니 총 15곳이었어요. 전날 하나라도 더 가서 보았어야 했는데 목걸이 지갑을 잃어버린 줄 알고 급히 숙소로 달려왔다가 이렇게 되었어요. 어마어마한 숫자였어요.


태국어로 절이 '왓'인데, 15곳이니 오늘은 '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왓 '인 날.


내가 이렇게 절을 열심히 다녔던 적이 있던가?


절을 이렇게 하루에 엄청나게 다녀본 적은 없었어요. 그 이전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절에 가 본 횟수를 다 합쳐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군대에서 맛있는 국수와 과일을 인심좋게 팍팍 주시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좋아서 종교활동으로 절에 갔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절에 간 것은 다 합쳐봐야 얼마 안 되요. 법당 안에 들어가서 삼배까지 드린 적은 그보다 더 적구요. 하루에 절을 15곳 간 적? 당연히 없어요.


오늘 하루에 절 15곳 다녀오면 이건 정말 대기록인데?


절 15곳을 하루에 싹 다 가보는 것은 분명히 부담스러운 일. 절 하나당 30분씩 본다고 해도 7.5시간이 걸려요. 절 15곳이 모두 옹기종기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니 이동시간도 있구요. 아무리 제가 불심이 콩가루라 해도 법당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으면 꼭 삼배를 드리고 나와요. 15곳이면 절만 45번 해야 해요. 절 한 곳에서 삼배를 딱 한 번만 한다고 계산했을 때요.


'이거 완전 운이 하늘 끝까지 상승하는 거 아냐? 진짜 태국에서 복권 사면 막 1등 당첨되는 거 아냐?'


그냥 웃음만 나왔어요. 이건 무슨 오체투지야?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에 절 15곳은 너무했어요. 아무리 절 가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이것은 제가 봐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 뿐이었어요. 치앙마이에 이렇게 절이 많다는 것이 한 번 놀랐고, 그 절을 또 바득바득 다 가보겠다는 저의 의지에 또 한 번 놀랐어요. 무슨 불교 방송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나 나올 법한 미션이었어요. 하루에 절 15곳을 가고, 법당 다 들어가보고, 법당에 모셔진 불상 앞에 삼배 드리기. 스스로 너무 황당한 일정이라 꼭 달성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어요.


지도를 보며 동선을 짠 후, 자리에서 밍기적거리다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 10시가 되었어요.


"일단 왓 치앙만부터 갔다 오자."


왓 치앙만은 숙소 근처에 있었어요. 오늘 가야할 절이 하도 많아서 어느 절부터 갈 지 순서를 정할 필요도 없었어요. 일단 보이면 다 들어가야 했어요. 최단거리로 동선을 짰고, 그 길을 걷다가 절이 보이면 무조건 안에 들어가면 되었어요. 표지판에 วัด 이라고 적혀 있기만 하면 일단 안에 들어가보는 것이 오늘 여행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먼저 숙소 근처에 있는 왓 치앙만부터 가기로 했어요. 시작점과 마지막이 같을 경우, 시작점 근처에 있는 것을 나중에 가겠다고 처음에 안 가면 나중에 지쳐서 시작점 근처에 있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로 들어가 쓰러져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숙소 근처 것부터 꼼꼼하게 가는 것은 아주 작정하고 싹 다 돌겠다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굳은 의지의 표상이었어요.


코끼리 가족 부조가 보였어요.



"어? 여기도 절 있네?"


왓 치앙만 근처에 왓 람창 wat lam chang วัดล่ามช้าง 이라는 절이 있었어요.


"오늘 시작은 여기부터로군."


wat lam chang in chiang mai


왓 람창 안에 들어갔어요.



절 안에는 하얀 쩨디가 있었어요.


태국 치앙마이 쩨디


이 절 안에도 오래된 유적처럼 보이는 탑의 기단이 있었어요.


치앙마이 불교 사원 - 왓 람창


이 건물은 우보솟과 허 뜨라이였어요. 둘이 한 건물로 되어 있었어요.


"법당 문 열렸나?"


법당 안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밀어보았어요. 문은 잠겨 있었어요.


왓 람창 위한


"몇 시인데 아직 법당 문을 안 열었지?"


법당 문은 전부 잠겨 있었어요. 우보솟도, 위한도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았어요.



왓 람창을 쓰윽 둘러보았어요.


วัดล่ามช้าง


무성한 덩쿨 속에 코끼리상이 있었어요.



"이제 왓 치앙만 가야지."


왓 치앙만은 왓 람창 바로 건너편에 있었어요.


"여기는 절이 정말 다닥다닥 붙어 있네."


무슨 이슬람 국가 가서 모스크 찾는 것처럼 조금만 둘러보면 절이 등장했어요.


'이 절들이 다 무너지고 폐허가 된다면 여기도 아유타야처럼 될 건가?'


아유타야에서 절터를 아주 질리게 보았어요.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절터를 하나씩 사진으로 찍었지만, 나중에는 너무 많아서 포기했어요. 아유타야가 버마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지 않았다면 딱 지금 이 치앙마이 모습이었겠지? 그리고 만약 치앙마이 성 내부가 폐허가 된다면 그 모습은 아유타야와 아주 비슷하겠지? 둘을 엮어서 생각하니 윤회의 수레바퀴 같았어요.



전날 밤에 와서 보았던 것과 이렇게 아침에 보는 것의 느낌이 확실히 달랐어요. 밤에 왔을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절 같아서 그냥 돌아갔어요. 그러나 아침에 오니 규모가 있고 중요한 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치앙마이 절 - 왓 치앙만


왓 치앙만 Wat Chiang Man วัดเชียงมัน 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1296년에 세워졌어요. 멩라이 왕이 란나 왕조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후, 새로운 수도로 치앙마이를 건설하면서 가장 먼저 만든 사원이 바로 왓 치앙만이에요. 이 절에서 치앙마이가 완성될 때까지 멩라이 왕이 거주했대요. 오른쪽 건물이 바로 위한이었어요.


"오늘도 진짜 햇살 뜨겁네."



10시 40분인데 벌써 매우 더웠어요.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햇볕이 따가웠어요. 동자승 석상 중 하나는 그늘에 있었지만, 하나는 햇볕을 그대로 맞고 있었어요. 햇볕 맞는 동자상은 그늘에 있는 동자상이 엄청나게 부러울 거에요. 부러운 정도가 아니라 열받았을 거에요. 손으로 만져보니 그늘에 있는 동자승 석상은 시원한데 양달에 있는 동자상 석상은 제대로 열받아서 아주 뜨거웠어요.


"위한 들어가야겠다."


여기는 위한 문이 열려 있었어요. 여기는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가야 했어요.


"이거 장난 아니겠는데?"


계단은 이미 햇볕에 의해 아주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어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기 때문에 맨발로 이 뜨거운 계단을 기어올라가야 했어요.



너무 뜨거웠고, 그렇다고 안 올라갈 수도 없었어요. 발바닥이 계단에 닿자마자 심장이 짜릿했어요. 전립선에 자극이 쫙 갔어요. 전기가 정수리까지 하이패스 달고 달리는 자동차마냥 거침없이 쭉 올라갔어요. 무조건 후다닥 올라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앗 뜨거워!'라는 소리를 지를 새도 없었어요. 그 소리 지를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늘이 진 입구까지 올라가야 했어요. 체면이고 예의고 나발이고 후다닥 달려올라갔지만 발바닥이 상당히 뜨거웠어요.


왓 치앙만 대법당



삼배를 드리고 불단 사진을 찍었어요. 불단 앞에는 무릎을 꿇으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어요.


วัดเชียงมัน


이 위한은 1920년대에 유명한 스님이었던 Khru Ba Srivichai 가 개보수한 건물로, 치앙마이에서 가장 오래된 위한 건물이에요. 이 불상 들 중 탁발 그릇을 들고 서 있는 불상은 1465년에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탁발 그릇을 들고 서 있는 불상이 4기 있어서 어떤 것이 1465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적힌 불상인지 알 수 없었어요.


절당 한켠에는 요일별 불상이 있었어요. 그 중 이 토요일 불상이 가장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어요.



"이제 다시 내려가야지."


이제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 슬리퍼를 신어야 했어요. 내려갈 때 또 그 불구덩이 같은 계단을 맨발로 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아까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이 되었어요. 숨을 크게 들이마셨어요. 멀리 분수를 바라보았어요. 이번에는 제 슬리퍼 위치를 바라보았어요.



"윽!"


후다닥 달려내려왔어요. 슬리퍼를 신었어요.


"아, 뜨거!"


슬리퍼를 신는 순간 제자리를 뱅뱅 돌았어요. 법당에 들어가서 삼배를 드리고 법당 내부를 구경하는 사이 슬리퍼도 계단처럼 뜨겁게 달구어져버렸어요. 머리털이 쭈뼛쭈뼛 섰어요. 그 사이에 슬리퍼를 이렇게 뜨겁게 달구어버리다니 지독한 태국 치앙마이의 햇볕이었어요. 제 자리를 몇 바퀴 뱅뱅 돌자 슬리퍼 바닥의 열기가 조금 적응이 되어 똑바로 설 수 있었어요.


"부처님께서 내 건강을 챙겨주시네."


두한족열이랬어요. 발이 뜨거워야 건강해진다고 하는데 슬리퍼를 신는 순간 발바닥에서 허리까지 열이 쫙 올라오는 기분이었어요. 정신이 아주 번쩍 들었어요. 전립선이 매우 건강해졌어요. 10시 반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햇볕이 강하다니 정말 놀라웠어요. 오늘 일정이 절대 쉽지 않은 일정이니 부처님께서 이 계획을 갸륵히 여기시여 저의 건강을 마구 챙겨주셨어요.


"앞으로 진짜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앞으로 가야할 절에서 또 이렇게 건강해지는 것을 당해야 할 생각을 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했어요.


Wat chiang man in Chiang Mai


이것이 바로 제가 방금 들어간 오래된 위한이에요. 그 옆에는 작은 위한이 있었어요.



작은 위한 안으로 들어갔어요.


왓 치앙만 불상


삼배를 드렸어요.


'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지?'


우리나라에서 하듯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삼배를 드리는데 태국인들이 저를 쳐다보았어요. 매우 신기하다는 듯 저를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한 명만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법당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저를 바라보았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삼배를 드린 후, 철창을 둘러쳐서 보호중인 불상을 보러 앞으로 다가갔어요.


태국 치앙마이 왓 치앙만 보물


이 두 불상 중 오른쪽은 프라 씰라 Phra Sila 불상으로,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거쳐 전래된 것이래요. 무려 2500년 전에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해요. 이 불상의 모습이 비를 불러오는 힘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건기의 끝인 4월 송크란 축제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대요.


이 프라 씰라 부처 옆에는 새까맣게 보이는 작은 불상이 하나 있었어요.


"크리스탈 부처는 어디 있다는 거지?"


가이드북에 크리스탈 부처가 모셔져 있다고 나왔는데 얼핏 보아서는 왼쪽이 크리스탈 부처라는 것이 확 와닿지 않았어요. 혹시 다른 진짜 크리스탈 부처가 있다 불상을 한 바퀴 돌아보았어요.



"이게 크리스탈 불상이구나!"


태국 치앙마이 크리스탈 불상 프라 쌔땅 카마니 Phra Sae Tang Khamani


불상의 측면으로 가자 이것이 크리스탈 불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 불상의 이름은 프라 쌔땅 카마니 Phra Sae Tang Khamani 에요. 이 불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8세기 Hariphunchai 왕국의 Chama Thewi 여왕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대요. 13세기 멩라이 왕이 하리푼차이 왕국을 정복하고 파괴했을 때, 이 불상은 파괴되지 않았대요. 그래서 이 불상이 재앙을 막아주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대요.


프라 씰라 불상 및 프라 쌔땅 카마니 불상을 본 후, 쩨디를 보러 갔어요.


태국 치앙마이 왓 치앙만 Chang Lom 쩨디


이 쩨디 역시 상당히 오래된 쩨디에요. 이 쩨디의 공식 명칭은 창 롬 쩨디 Chang Lom Chedi 인데, 그냥 '코끼리 탑'이라고도 해요. 이 쩨디는 회색 기단부에 코끼리 15마리가 조각되어 있어요. 그래서 코끼리 15마리가 쩨디를 받치는 형상이에요. 이 쩨디는 란나 양식과 싱할라 양식이 섞인 쩨디라고 해요. 이 코끼리 15마리가 탑을 받치는 형식의 쩨디는 왓 치앙만의 특징 중 하나에요.




"저 건물은 뭐지?"



조그만 연못 한가운데에 조그마한 건물이 있었어요.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일주사가 떠오르는 모습이었어요.


"저것도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원래는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입구로 이어지는 다리가 단절되어 있었어요.


절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절에는 법고가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절에 가면 법고를 커다란 북 하나만 배치시켜놓는데, 여기는 큰 북 하나에 작은 북 세 개가 있었어요.


"이제 다음 절 가야지. 아주 힘이 넘쳐!"


발바닥이 뜨거운 태양에 달구어진 계단으로 맛사지 받으니 아주 힘이 넘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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