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53 태국 추천 여행지 - 치앙마이 도이수텝 사원 วัดพระธาตุดอยสุเทพ

좀좀이 2017. 1. 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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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돈을 내고 체크인을 했어요. 짐을 되찾고 카운터를 보는데 우표가 붙어 있는 우편물이 하나 있었어요.


"이 우표 저 주면 안 되나요?"

"가져요."


직원이 우표를 잘라주었어요.


태국 우표


절을 세 곳 다녀오니까 운이 마구 상승했나봐! 너무 좋아!


중학교때 '대항해시대2' 라는 게임을 매우 좋아했다. 그 게임에서 운을 올리기 위해서는 꼭 모스크나 성당에 들어가서 기부를 해야 했다. 나야 절대 그 게임에서 기부 따위는 안 했기 때문에 언제나 그런 종교 시설 들어가면 아주 불운이 가득하다는 소리만 들었지만 말이다. 치앙마이 도착하자마자 절 세 곳을 돌았더니 운이 좋아진 것인가? 갑자기 그 게임이 떠올랐다. 게임에서는 치사하게 성금을 내어야만 운이 좋아졌는데 태국 절은 가서 절만 똑바로 해도 운이 좋아졌다. 앞으로 절을 열심히 돌아야지.


태국 우체국에서도 보지 못한 예쁜 우표를 절 세 곳 돌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구했어요. 직원이 봉투에 붙어 있던 우표를 잘라서 주었기 때문에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얻었어요. 기분이 매우 좋았어요. 치앙마이 일정은 시작부터 매우 순탄했어요. 기차는 제 시각에 도착했고, 썽테우도 잘 흥정해서 왔고, 별 생각 없이 불쑥 들어간 식당의 음식도 맛있었고, 버스표와 깐톡쇼 표도 잘 구했어요. 체크인 전에 절 세 곳을 돌았기 때문에 시작부터 글감이 쏟아진다 싶었는데 체크인하면서 태국 우표까지 구했어요. 여행 다니며 운이 이 정도까지 따라준 적이 정말 없었어요. 이것은 내가 태국인들과 달리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정성껏 삼배를 드려서 태국 부처님께서 '오옹, 너는 참 지극정성으로 절을 하는구나' 감동받은 것인가!


내가 나의 운이 어디까지 좋아지나 한 번 시험해보아야겠다!


이슬람권에서는 모스크, 불교권에서는 절 빼면 볼 것이 확 줄어들어요.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는데, 이슬람권에서는 모스크, 불교권에서 절을 잡고 돌아다니면 목적지가 생기니까 보다 힘차게 돌아다닐 수 있어요.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방황인데, 방황하게 되면 정말로 보고 돌아다니는 것은 얼마 없는데 금방 진이 빠져버려요. 목적지가 있어야 많이 돌아다니며 볼 수 있고, 힘은 덜 들어요. 여기는 태국. 불교의 나라. 여행사에서 받아온 지도를 보니 절이 매우 많았어요. 치앙마이에서 오늘을 제외해도 이틀은 머무를 예정이라 결국 하루는 어딘가 새로 목적지를 만들어 돌아다녀야 했어요. 이때 절을 여러 개 돌아다니면 가이드북 보며 억지로 일정을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당장 절 세 곳 가서 우표를 획득하는 횡재가 생겼는데, 절을 최대한 많이 가서 어디까지 운이 좋아지는지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전날 기차에서 야간이동을 했고, 그 잠깐 돌아다니는 것도 더워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공용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어요. 샤워를 하고 나서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어요. 앉으니 눕고 싶었어요. 침대로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바로 루앙프라방 가는 버스표를 구입하기 위해 아케이드 버스터미널로 가야 했어요. 그러나 루앙프라방 가는 버스표는 이미 제 손에 들어와 있었어요. 게다가 체크인 전 치앙마이에 있는 수많은 절 중 세 곳이나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정이 더욱 널널해졌어요. 마음이 여유로웠어요.


"일어나야지. 이러다 오늘 하루 공치겠다."


아직 백주대낮이라 치앙마이 일정 중 가장 큰 일정을 끝낼 수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도이수텝 사원이었어요.


"여기에서 도이수텝 사원 어떻게 가요?"

"도이수텝은 썽테우 타고 가요. 뚝뚝 타고 가면 치앙마이 대학교에서 내려주는데, 거기에서 다시 썽테우 타고 가야 해요."


도이수텝 사원은 치앙마이 시내와 멀리 떨어진 절. 치앙마이에 왔다면 꼭 가보아야할 곳. 여기를 오늘 가서 보면 치앙마이에서 해야할 중요한 것이 모두 끝나는 것이었어요. 애초에 치앙마이 온 목적이 도이수텝 사원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도이수텝 사원 가는 방법은 미리 찾아보았어요. 거기에서도 치앙마이 대학교로 간 후, 거기에서 썽테우를 타고 올라가라고 되어 있었어요.


"썽테우 가격은 얼마에요?"

"아마 600바트 부를 건데 흥정하면 500바트에 갈 수 있을 거에요."


왕복 500바트면 저렴한 가격까지는 아니에요. 1바트가 35원이니까요. 그렇지만 뚝뚝과 달리 썽태우는 소형 트럭을 개조해 만든 운송 수단이라 그 차 하나를 왕복으로 빌린다면 가격이 뚝뚝에 비해 비쌀 수 밖에 없었어요. 한 명이 타든 두 명이 타든 요금은 같구요. 저는 친구와 갈 거라 2명. 1인당 왕복 250바트. 치앙마이 대학교에서 결국 썽태우를 타야 한다면 차라리 숙소 근처에서 500바트 주고 아주 편하게 도이수텝 사원까지 갔다 오는 것이 나았어요.


숙소에서 나왔어요. 썽테우와 뚝뚝이 갑자기 햇갈렸어요. 숙소 근처에 썽테우 하나 서 있다고 직원이 알려주었기 때문에 썽테우가 어디에 서 있나 찾아보았어요. 그때 뚝뚝 기사가 다가와서 제게 어디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도이수텝 사원 (왓 프라탓 도이 수텝 wat phra that doi suthep) 간다고 대답하자 흥정을 하려고 했다. 그때 순간 리셉션 직원이 아니라고 손짓하는 것이 보였어요. 직원은 제가 걱정되어서 나와 있다가 자기 예상대로 엉뚱한 뚝뚝 기사에게 가자 아니라고 알려준 것이었어요. 직원은 제게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했어요. 직원이 손짓한 곳에 썽테우가 보였어요.


참고로 썽테우는 트럭처럼 생긴 것이고, 뚝뚝은 오토바이에 리어카 달아놓은 것처럼 생긴 것이에요.


"왓 프라탓 도이 수텝 왕복 얼마에요?"

"500바트요."

"450바트요."

"안 되요. 거기는 길이 꼬불꼬불 급경사에요."


썽테우 기사가 온몸을 이용해 손짓 발짓하며 도이 수텝 사원 가는 길은 급경사에 꼬불꼬불해서 500바트를 내어야 된다고 말했어요.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어요. 도이 수텝 사원 갈 때 절대 뚝뚝을 타면 안 되는 것이 뚝뚝 출입 금지 때문이 아니라 그 험한 길을 뚝뚝이 기어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뚝뚝을 타면 치앙마이 대학교에서 내려주고, 거기에서 썽테우로 갈아타라고 하는 것이구요.


썽테우 기사에게 도이 수텝 사원은 몇 시에 문을 닫냐고 물어보았어요. 하지만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서로 손짓 발짓 하면서 의사소통을 시도해보았지만 불가능했어요. 그 모습을 본 숙소 직원이 제 쪽으로 다가왔어요.


"무슨 문제 있나요?"

"도이수텝 사원 몇 시에 문 닫는지 알고 싶어서요."


직원은 썽테우 기사에게 도이수텝 사원이 몇 시에 문을 닫냐고 태국어로 물어봐주었어요. 도이수텝 사원은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어요. 오후 7시라면 지금 바로 가면 충분히 다 구경하고 올 수 있는 시각. 오늘 일이 너무 잘 풀려서 너무 희안했어요. 그래도 어쨌든 좋은 것이니 좋았어요. 절 세 곳을 가서 우리나라에서 절 하는 방식으로 절을 정성껏 해서 운이 좋아졌나봐요.


오후 3시 조금 안 되어서 도이수텝 사원에 가기 위해 썽테우에 올라탔어요. 썽테우는 서쪽으로 달려갔어요.


치앙마이 차도


시원하게 도로를 달려서 아까 아저씨가 온몸을 이용해 구불구불하고 급경사라고 설명한 산길로 들어갔어요.






"진짜 뚝뚝은 못 올라올 길이구나."


사진으로는 그 구불구불함과 급경사가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진짜 아저씨 말대로 매우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심했어요. 예전 수학여행때 대관령 넘던 것, 그리고 속리산 갈 때 말티재 올라가던 것이 떠올랐어요. 이 도로는 1935년 고승 ครูบาศรีวิชัย 에 의해 4개월 22일만에 건설되었다고 해요.


오후 3시 24분. 도이수텝 사원에 도착했어요. 입구에는 저처럼 썽테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많은지 썽테우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어요.


태국 치앙마이 교통수단 - 썽테우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제가 타고 온 썽테우는 비탈길에 주차했어요.



도이 수텝 입장료는 30바트였어요.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면 추가 요금을 더 내어야 했어요. 케이블카 요금은 왕복으로 20바트였어요.



"얌전히 케이블카 타고 가야지."


3시 반 즈음에 도착했기 때문에 5시까지 썽테우로 돌아오기로 했어요. 도이수텝은 정말 기대를 많이 하던 곳이라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빨리 올라가기로 했어요. 물론 꼭 그것 때문에만은 아니었어요. 계단을 보니 참 올라가기 싫었어요. 계단이 경사도 급하고 한두 개 기어올라가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이런 계단은 예전 울산바위 707계단, 월악산 올라갈 때 경험해본 것으로 아주 충분했어요. 이 계단은 총 306계단이라고 해요.


표를 구입하고 케이블카를 탔어요.


"뭐야? 이거 그냥 엘리베이터 아냐?"


태국 치앙마이 도이수텝 사원 케이블카


펫부리 케이블카처럼 바깥 풍경 보면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기대했는데 왓 프라탓 도이수텝의 케이블카는 엘리베이터 같았어요. 터널 같은 통로를 딱 엘리베이터처럼 생긴 케이블카를 타고 쭉 올라가는 것이었거든요. 주변을 볼 필요가 없었어요. 주변에 보이는 것은 벽 밖에 없었으니까요. 편하고 쾌적하기는 한데 펫부리처럼 뭔가 야생의 느낌은 없었어요.



"도이수텝 사원이다!"





사원은 입구부터 꽃으로 곱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어요.


"여기 치앙마이 조경하기 좋구나!"


치앙마이


치앙마이 전망


도이 수텝 사원에서 치앙마이를 내려다볼 수 있었어요. 공항도 보였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사각형의 구시가지 모습이 확실히 보인다는 것이었어요. 여기가 치앙마이를 조망하기 좋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왓 프라탓 도이수텝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치앙마이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오는 것도 매우 좋은 장소였어요. 이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기 때문에 치앙마이로부터 재수좋게 선물 하나 더 받는 기분이었어요.



수풀 속에는 불심 충만한 조각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천천히 절을 돌아보았어요.





이쪽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아래쪽으로도 조금 내려가볼 수 있어서 내려가보았어요.



태국 꽃밭

태국 정원


아래쪽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잘 꾸며놓았어요. 그러나 이쪽으로 오는 사람은 오직 저 밖에 없었어요. 덕분에 매우 여유롭게 감상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시간이 무제한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없이 앉아서 감상하지 못하고 다시 위로 올라갔어요.



사원 벽에는 종이 일렬로 죽 매달려 있었어요.



이 종은 종마다 음이 달랐어요. 손으로 살짝 톡 쳐보았는데 살짝 톡 쳐본 것에 비해 소리가 상당히 크게 났어요.


"여기도 이렇게 기왓장을 바치나보구나!"


태국 기왓장


우리나라 절에 가면 기왓장을 절에 기부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여기도 우리나라 절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왓장을 기부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번쩍이는 황금빛 쩨디는 어디 있지? 요일별 불상은?'


여기까지만 해도 도이수텝 사원 자체가 아름답기는 했지만 제가 꿈꾸었던 그 장면은 아니었어요. 저는 일본 NHK 아시아어락기행 태국어 시리즈에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쩨디와 요일별 불상을 보며 치앙마이에 가는 꿈을 키워왔거든요. 치앙마이에 온 목적은 너무 확실했어요. 정확히 그 황금빛 쩨디와 요일별 불상을 보러 온 것이었어요. 절을 일단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제가 찾는 그것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여기로 올라가야 하는 건가?"



이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문이었어요. 이쪽으로 쭉 가면 제가 타고 온 썽테우까지 가 버릴 것이었어요.


"설마 이 위로 올라가라는 건가?"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어요. 표지판을 보니 반드시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고 적혀 있었어요.


'여기 또 엄청 뜨거운 거 아니야?'


맨발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아까 해보았기 때문에 조금 긴장이 되었어요. 가만히 서 있으면 발바닥이 화상 입을 정도로 햇볕에 달구어져서 바닥이 뜨거워졌거든요. 그러나 어쩔 수 없었어요. 신발을 벗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이 위로 올라갈 수 없었어요. 예의와 공중도덕 안 지키기로 악명 높은 중국인 관광객들조차 여기에서 얌전히 신발을 벗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신발을 벗고 계단 위로 올라갔어요.


태국 치앙마이 추천 여행지 - 도이수텝 사원


"이거야!"


바로 기쁨과 감동에 겨워 소리쳤어요. 눈이 심봉사 심청을 다시 만난 것처럼 번쩍 뜨였어요. 2006년 처음 아시아어락기행을 보고 여기는 꼭 보고 싶다고 항상 꿈꾸어왔어요. 태국에는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 않았지만 바로 이 도이수텝 사원의 황금 쩨디만큼은 꼭 보고 싶었어요. 만약 이 쩨디가 방콕에 있었다면 애저녁에 방콕 여행을 갔을 거에요. 이 쩨디가 하필 방콕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치앙마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가기 힘들 것 같아서 태국 여행을 계속 안 가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Wat Phra That Doi Suthep in Chiang Mai


이것 하나만 보러 치앙마이 왔다고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


왓 프라 탓 도이 수텝. วัดพระธาตุดอยสุเทพ. Wat Phra That Doi Suthep. 정말로 굉장했어요.


사실 여기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왔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보다 훨씬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조금 하긴 했어요. 이것을 계몽사 학습그림사회를 보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면 그런 제 환상과 벗어나 실망할 수 있다는 근심에서 많이 자유로웠을 거에요. 문제는 이것에 대한 환상을 일본 방송을 통해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일본인들이 방송 영상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히게 예쁘게 잘 찍어요. 특히 여행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더욱 그래요. 여행, 관광 분야에서는 정말로 격차가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이쪽 분야가 상당히 발전한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미화해서 실제 보는 것보다 차라리 방송 보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경우도 왕왕 발생하거든요. 일본 출처의 여행 정보가 갖는 문제점은 역설적으로 여기에 있어요. 워낙 미화를 잘 해서 정말 사람 혹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면 사진, 방송 보면서 환상이나 키울껄 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는 것이에요. 그에 비해 참 투박한 우리나라 출처의 것들은 보고 갑자기 마구 꿈속의 나라가 펼쳐지는 일은 없지만 대신 덜 미화되었기 때문에 보다 사실적이에요. 왓 프라 탓 도이 수텝에 대한 환상을 일본이 제작한 영상을 통해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영상보다 훨씬 못한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조금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어요. 그 영상보다도 훨씬 더 굉장했어요.


가운데에는 황금빛 쩨디가 있었고, 담장 쪽에는 불단이 있었어요.



"이거 그 영상에서 보았던 요일별 불상이잖아!"



2006년과 2015년이 동시에 보였어요. 고시원 방에서 옆방의 소음과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외풍에 시달리며 컴퓨터로 보았던 그 아시아어락기행 태국어 시리즈. 그 영상에 나왔던 요일별 불상이 바로 눈 앞에 있었어요. 여기에서 저는 2006년의 저를 만났어요. 2006년의 제가 '도이수텝 사원, 그거 순전히 일본인들의 영상 조작질 아니야?'라고 물어보았고, 2015년의 제가 '아니, 그 영상보다도 훨씬 굉장해'라고 대답해주었어요.


"바닥 별로 안 뜨겁네?"


맨발로 사원 내부를 돌아다니는데 발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 매우 어색하고 이상하면서 나쁘지 않았어요.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갈 때만 해도 계단도 뜨뜻한데 위는 오죽 뜨뜻할까 싶었어요. 위에 올라가서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거리 장단에 맞추어 병신탈춤 한바탕 추고 달려내려오는 것 아닌가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바닥이 뜨겁지 않고 미지근했어요. 만약 이 바닥이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기분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에요.


'이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 바닥이 식은 거 아냐?'


분명히 여기도 바닥이 매우 뜨거워야 정상. 하지만 바닥은 미지근했어요. 나름 세워본 가설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돌아다니며 바닥의 열을 발바닥으로 흡수하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바닥의 열을 사람들이 맨발바닥으로 조금씩 흡수해서 바닥이 절절 끓지 않고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 아닐가 생각해보았어요. 맨발로 안을 돌아다니니 서로 발을 밟을 일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래서 그런지 바닥이 더럽지 않았어요.



"여기는 중국인들도 좋게 돌아다니네!"


왓 프라깨우와 달리 여기에 온 중국인들은 기본적인 예의도 잘 지키고, 서로 배려도 해주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중국인 맞나 싶었어요. 태국 방콕 왓 프라깨우에서 보았던 아비규환의 현장을 만들어대던 중국인들과 아예 다른 중국인인 건가? 방콕으로는 저질 중국인들이 가고, 치앙마이로는 좋은 중국인들이 오는 건가? 사진 찍는 것을 가만히 기다려주고 피해가는 중국인들을 본 것은 여기가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중국인 특징 중 하나인 양산 쓰고 돌아다니기 신공도 안 쓰고 있었어요. 이런 중국인들이라면 아무리 많이 몰려다닌다 해도 피해받고 짜증날 것이 없었어요.


이건 치앙마이 부처님의 힘인가, 좋은 중국인들만 치앙마이 와서 그런 건가?


중국인들이 많기는 했지만 아주 상식적으로, 그리고 경건한 분위기를 파괴하지 않고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했어요.


'그런데 방콕 왓 프라깨우가 더 중요한 절인데?'


방콕 부처님은 힘이 좀 약하신가? 인삼이라도 달여서 드셔야 하나?


여기 중국인 관광객들은 이렇게 지금껏 보아온 중국인들과 달리 왜 매우 상식적인지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그러고보니 왓 프라깨우에서도 에메랄드 불상 있는 법당 안에서는 기본 질서는 지켰지!'


중국도 불교를 믿는 나라. 중국인들이 믿는 종교는 도교이지만, 어쨌든 불교에 대해 아는 나라에요. 그래서 최소한 절 안에서는 난리를 피우지 않는 건가? 가만히 보니 불상에 절을 하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어요. 태국인들이 중국인들이 여기에서 난리피우지 못하게 통제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서 그렇게 얌전히 다니는 것 같았어요.


순간 나에게 빙의하려고 그분이 나를 향해 오시는 소리를 살짝 들었다.


황금빛 쩨디와 요일별 불상은 제 예상보다 훨씬 굉장해서 감탄할 수 밖에 없었고, 중국인들도 기본적인 예의를 잘 지키며 돌아다녔기 때문에 매우 평화로웠어요. 게다가 상당히 경건한 분위기가 확실히 느껴졌어요. 머리가 제대로 달린 사람이라면 여기에서는 시끄럽게 굴면 안 되고, 서로를 배려하며 얌전히 구경하며 다녀야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게 만들 정도의 분위기였어요.




계속 감탄하며 절 안을 돌아다녔어요.



"저기에 동전 붙이면 동전 붙나?"



사람들이 우둘투둘한 석판 위에 동전을 붙이고 있었어요.




곳곳에서 이렇게 불상에 기도드리는 사람을 볼 수 있었어요.


"어? 요일별 불상 앞에 작은 요일별 불상이 또 있네?"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부처님은 화요일 출생인 사람들을 위한 불상이에요. 그 앞에는 작은 요일별 불상이 쭈루룩 놓여 있었어요.



구경을 마치고 아래로 내려왔어요.




입구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벗고 간 신발이 놓여 있었어요.



"이제 썽테우로 돌아가야겠지?"


아래로 내려가는 문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어요.



"아니야! 나 한 번 더 보고 가야겠어!"


이렇게 한 번만 보고 갈 수는 없었어요. 이 굉장한 것을 딱 한 번 보고 돌아가자니 너무 아쉬웠어요. 2006년에 보고 2015년에 왔으니 10년 만에 보는 것이었고, 그 10년간의 환상보다 더 한 실상이었어요. 오매불망 기대하던 그것이 예상보다 더 뛰어났는데, 이렇게 한 번만 보고 갈 수는 없었어요. 여기는 이제 올 수 없어요. 500바트가 적은 돈이 아니고, 치앙마이 일정이 도이수텝을 또 올 정도까지로 널널하지는 않았어요. 이대로 가면 다시 한 번 올라가서 보고 올 걸 후회할 것이 분명했어요.


다시 신발을 벗고 위로 올라갔어요.



가만히 서서 황금빛 쩨디를 쳐다보았어요. 조금이라도 더 선명히 기억하려구요. 뇌세포에 열 번을 새기고, 백 번을 새겨서 절대 잊지 않으려구요. 계속 쩨디를 바라보았어요.


"이제 가야겠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이제 썽테우 기사와 약속한 시간이 거의 다 되었거든요.




"불교에서는 욕심을 버리라고 하는데 여기 오니까 도이 수텝 사원 더 보고 싶다는 욕심만 더 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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