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49 태국 배낭 여행 - 방콕 카오산 로드, 프라쑤멘 요새

좀좀이 2017. 1. 1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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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다는 절을 돌아볼까? 카오산 로드를 가볼까?


왓 아룬까지 왔기 때문에 카오산 로드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후아람퐁역에서 카오산 로드까지 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왓 아룬에서는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올라가면 카오산 로드까지 쉽게 갈 수 있었어요. 방콕에 있는 다른 중요하다고 하는 절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카오산 로드 가는 것이 더 쉬운 길이었어요. 배만 타고 가면 되었으니까요.


카오산 로드만 가기 위해 거기를 가는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거기가 어떤 분위기일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거기에 다른 무언가 볼 것이 있어서 그것을 보러 갔다가 곁다리로 보는 것이라면 몰라도 카오산 로드만 보러 가는 것은 제게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태국 관광 산업을 조사하러 온 것도 아니었고, 거기가 보나마나 이태원 비슷한 분위기일 거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쪽에 볼 것이 뭐가 있나 찾아보았어요. 프라쑤멘 요새와 왓 차나쏭크람이 있었어요. 프라쑤멘 요새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어요. 배삯은 15바트였어요.


15바트를 내고 배를 탔어요.


방콕 짜오프라야강


배 안에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어요.


태국 방콕 수상 보트


'새벽 사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왓 아룬.



보수 공사가 끝난다면 훨씬 아름답겠지? 태국 동전에도 나오는 사원인데, 내게 왓 아룬은 태국 문화재 보수 작업 현장을 직접 관람하고 공덕을 쌓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던 물과 음료수를 얻어마신 곳으로 기억될 거야. 왓 아룬에 대한 소감을 물어본다면 '음료수를 얻어마셔서 좋았습니다' 라고 대답할 거야. 정말 그것이 솔직한 감상이거든. 보수 공사 현장만 보았는데 '왓 아룬은 아름다운 사원이었습니다'라고 거짓말하는 것도 그렇잖아.



수상 보트 노선이 있었는데, 전부 태국어였어요. 흥미로운 것은 이 수상 보트에 나와 있는 곳은 전부 절이라는 것이었어요. วัด '왓' 이라고 적힌 것은 무조건 절이라고 보면 되요. 저 단어 뜻이 바로 절이거든요. 그냥 저 모양만 기억해도 태국 여행 할 때 도움이 매우 많이 되요. 뭔지 몰라도 일단 '절'이라는 것은 알 수 있으니까요. 제대로 글자를 다 외우기는 힘들지만 그냥 '그림'처럼 기억을 한다면 표지판 및 설명 볼 때 유용하게 잘 써먹을 수 있어요.


배가 출발했어요.


Chao Phraya River


"저것도 절인가?"


시리랏 의학 박물관


알고 보니 저것은 절이 아니라 พิพิธภัณฑ์ศิริราชพิมุขสถาน 라는 곳이었어요. 가이드북에는 '시리랏 박물관'으로 나오고, 영어로는 SIRIRAJ MUSEUM & SIRIRAJ BIMUKSTHAN MUSEUM 라고 하는 곳이에요. 저곳은 친한 동생이 제게 꼭 가보라고 강력 추천했던 곳이었어요. 상당히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전시물로 꽤 유명한 박물관이라고 해요. 여행을 가기 전 동생에게 저곳을 추천받고 한 번 가볼까 했지만 방콕 와서 방콕 관광에 대한 모든 의욕을 상실해서 그냥 배에서 외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나갔어요.


Phra Pin Klao Bridge


쁘라 삔 클라오 다리 สะพานสมเด็จพระปิ่นเกล้า 가 나왔어요. 이 다리는 1971년 8월 4일에 착공되어서 1973년 9월 24일에 완공되었대요. 총 길이는 658 미터라고 해요.



오후 3시 10분. 드디어 내려야할 보트 선착장에 다다랐어요.


"저것이 프라쑤멘 요새구나."



그렇습니다. 저것이 프라쑤멘 요새입니다. 태국어로는 ป้อมพระสุเมรุ 뻠 쁘라쑤멘 이라고 합니다.


프라쑤멘 요새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시커매지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까 왓 아룬을 구경할 때만 해도 날이 매우 화창했는데 점점 더 구름이 늘어나고 그 빛이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프라쑤멘 요새 자체가 딱히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 곳이 아니기도 했지만요. 일부러 노력해서 찾아올만한 곳은 아니었어요. 카오산 로드에서 가까운 짜오프라야강 보트 선착장이라는 점이 없었다면 아마 딱히 알려지지도 않았을 거에요. 프라쑤멘 요새가 별 인상없었던 것에 반해 점점 시커매지는 구름은 매우 신경쓰였어요. 아침만 해도 햇볕이 폭우처럼 쏟아져서 오늘 비가 올 거라 전혀 예상을 못 했거든요. 그런 하늘을 보며 나왔기 때문에 당연히 우산은 들고 나오지 않았어요. 지금 하늘은 바로 비가 한 번 쏟아져도 될 하늘이었어요.


ป้อมพระสุเมร


프라쑤멘 요새 근처에 하천이 있었어요.



"여기는 왜 이렇게 더럽냐."


태국 방콕에서 하천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곳곳에 운하가 많이 있거든요. 제가 머무르던 숙소 근처에도 운하가 있어서 매일 아침 후아람퐁역으로 가면서 운하를 건너야 했고, 숙소로 돌아올 때 역시 운하를 건너가야 했어요. 아무리 태국 방콕 하천과 운하에 흐르는 물이 더럽다 해도 이렇게 쓰레기가 둥둥 떠다닐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참 카오산 로드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어요. 이렇게 더러운 하천을 보니 카오산 로드가 확실히 가까워졌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저거 뭐야? 악어인가?"


태국 도마뱀


다행히도 악어는 아니었어요. 아주 거대한 도마뱀이었어요. 몸통이 1m는 족히 되어 보였지만 어쨌든 도마뱀이었어요.


악어보다 덜 위험하지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잖아!


저것도 사람을 공격할 수 있을텐데, 악어처럼 사람을 아주 죽이지 않는다 정도지 공격당하면 아프기는 할 거에요. 단순히 아픈 문제가 아니라 재수없으면 동물 입 속에 있던 세균들이 몸 속으로 들어와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어요. 저 덩치를 보니 충분히 사람을 공격할 수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악어만큼이나 위험한 것이었어요. 저것이 길 위를 배회하고 돌아다니면 정말 무서울 거에요.


구글 지도를 보며 왓 차나 쏭크람 쪽으로 걸어갔어요.


"저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잖아!"


카오산 로드가 가까워지는데 대형 버스 여러 대가 길가에 멈추어섰고, 버스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우루루 내렸어요.


'카오산 로드도 이제 중국인들한테 먹혀버리는 건가?'


카오산 로드는 방콕으로 오는 외국인 배낭여행객들이 몰리는 곳. 중국인들이 방콕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을 방콕 왕궁에서 목격했는데, 이제 여기까지 번지는 건가? 만약 여기까지 중국인 단체가 휩쓸면 가관일 것 같은데. 여행자들 모두 중국인 단체 관광객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어하니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여기에서도 왓 프라깨우에서 보았던 중국인 떼거지에 밀려난 서양인 여행객의 황망한 표정을 구경할 수 있게 되는 건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구경하며 길을 걷다보니 람부뜨리 거리에 도착했어요.


방콕 람부뜨리 거리


길거리에 서점이 하나 보였어요. 어떤 책을 팔고 있나 살펴보았어요.


"lonely planet phrasebook lao 있다!"


제가 챙겨온 라오어 교재는 한국어로 되어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포켓 회화책은 아니었어요. 이것은 포켓 회화책이라 들고 다니기 매우 편하게 생겼어요. 가장 먼저 성조 설명을 찾아보았어요. 라오어 성조에 대한 제각기 다른 설명에 제대로 학을 떼었거든요. 이 책에서는 라오어 성조를 어떻게 설명해놓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어요. 한국에서 라오인에게 성조를 배운 적이 한 번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맞는지 이상한 것인지 아주 대충 파악할 수 있었어요. 성조 부분을 보니 제가 라오인에게 배운 성조와 거의 비슷했어요. 성조 갯수는 6개였어요. 6성조 맞았어요.


"이거 구입해야겠다."


내용이 어쨌든 일단 성조가 제가 라오인에게 배운 것과 거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책에 대한 신뢰가 생겼어요.


"싸왓디 크랍. 니 타오 라이 크랍?"

"투 헌드레드 피프티."


얼마냐고 태국어로 물어보자 250바트를 불렀어요.


"능 러이 하 씹."

"투 헌드레드."


저는 150바트를 불렀어요. 그러자 가게 주인이 200바트를 불렀어요. 가게 주인은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저는 가게 주인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태국어로 이야기했어요. 성조가 틀렸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제 말을 알아서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태국인 가게 주인이 친절하게 영어로 대답해주는데 무조건 엉터리 태국어로 이야기한 이유는 예전 베트남인 친구가 베트남에서 흥정하는 법을 알려주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어떻게든 아는 현지어 다 동원해서 이야기해야 상인이 그래도 이 사람은 이 지역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라고 판단해 가격을 보다 일반 가격에 가깝게 부른다고 알려주었거든요.


"능 러이 하 씹, 다이 마이?"

"노. 디스 이즈 뉴."


주인은 제가 들고 있는 책이 새 책이라고 안 된다고 했어요.


어? 그러면 헌 책 찾아내면 150에 해주겠다는 거야?


150바트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불러본 가격이었어요. 그런데 가게 주인이 제가 고른 책을 처음에는 250바트 불렀다가 200바트까지 깎아주며 이것은 새 책이니 그 이하는 안 되겠다고 했어요. 혹시 다른 것이 있나 찾아보았어요. 마침 이 lonely planet phrasebook lao 아래에 똑같은 책이 하나 더 있었어요. 차이점이라면 제가 들고 있는 것은 비닐 포장이 된 것이고, 아래에 있던 것은 비닐포장이 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이건 새 것, 이것은 오래된 것. 150바트."

"160바트."


비닐 봉지가 씌워진 것은 새것이고, 이것은 비닐 봉지가 안 씌워진 것이니 헌 것이라고 말하며 150바트에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가게 주인은 160바트를 불렀어요. 가게 주인에게 160바트를 주었어요.


'여기는 대체 정가가 얼마야?'


베트남에서는 흥정할 때 상인이 부른 가격에서 50~70% 정도 가격이 적당한 가격이었어요. 현지인 친구들도 그렇고, 여행 후기도 그렇고 대충 이 수준이 적정 가격이라고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태국은 흥정에서 감이 전혀 오지 않았어요. 태국인 친구들은 10%만 깎으면 된다고 하고, 여행 후기를 보면 1/4까지 깎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어요. 가게 주인이 처음 부른 가격은 250바트. 제가 구입한 가격은 160바트. 새 책과 헌 책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단언컨데 제가 헌 책 가격을 물어보았어도 똑같이 처음에는 250바트 불렀을 거에요. 비닐 포장이 되어 있냐 아니냐 차이 뿐이었거든요. 160바트면 가게 주인이 처음 부른 가격의 2/3 가격. 이 책의 원래 가격은 진짜 60바트 정도 밖에 안 하는 건가?


이쪽으로 와서 라오어 포켓 회화책을 구한 것은 중요한 소득이었어요. 당장 라오스 갈 날이 며칠 안 남았거든요. 라오스는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게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도 없고, 태국처럼 관광대국도 아니니 영어가 잘 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야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겠지만, 라오스에서 영어가 통하는 곳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 뻔했어요. 게다가 저는 서점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관광지에서 한 번은 벗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루앙프라방에서 제가 찾는 책을 다 찾는다면 한 번으로 끝나겠지만, 만약 루앙프라방에서 다 못 찾는다면 비엔티안에서 또 서점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라오어 포켓 회화책은 매우 유용한 소득이 될 것이었어요. 그 이전에 제대로 된 성조 설명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돈 내고 구입할만 했구요.


Rambuttri Alley in Bangkok



거리를 쓱 둘러보면서 왓 차나 쏭크람을 향해 걸어갔어요.




오후 4시 10분. 왓 차나 쏭크람에 도착했어요.


Wat Chana Songkhram Bangkok


번쩍! 꽈르릉!


천둥 번개가 쳤어요.


집중할 수 없어.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이건 집중이 안 돼. 공사중인 것까지는 좋아. 문을 닫는 분위기인 것도 좋아. 그런데 저 먹구름, 거기에 방금 친 천둥 번개는 이겨낼 수 없어. 여기에서 비 내리면 나는 망해. 우산 안 들고 나왔고, 비를 파할 방법도 마땅찮아. 게다가 카오산 로드에서 후아람퐁역은 교통도 나쁘고 거리도 멀어. 지금 빗방울이 떨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왓 차나 쏭크람에 왔는데 절은 공사중이었고, 문 닫는 분위기. 거기다 천둥 번개까지 치자 절 구경에 아예 집중할 수 없었어요. 머리가 복잡해졌어요. 하늘은 깜깜했어요. 이제 곧 비가 쏟아질텐데 후아람퐁역까지 어떻게 돌아가야하지? 지금 바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버스를 타고 돌아갈텐데, 여기에서 후아람퐁역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어요.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지금 곧 내릴 비는 짤짤짤 내릴 비가 아니었어요. 이것은 분명히 무섭게 퍼부을 것이었어요. 오직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이것은 스콜일 것이고, 그렇다면 아주 오래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법당 안은 보고 가기로 결심했어요.


카오산 로드 왓 차나 쏭크람


절을 대충 빨리 둘러보았어요.







절을 나와 카오산 로드로 향했어요.



오후 4시 반. 카오산 로드에 도착했어요.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


내 이럴 줄 알았다.


딱 이태원이었어요. 태국의 이태원이라고 하면 될 거에요. 정신줄 놓고 술 마시고 흥청망청 놀려고 오는 사람들이야 좋아하겠지만,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 거리를 샅샅이 뒤져보고 굴러다녀보고 할 필요가 없었어요. 한 마디로 관광객들 모이는 유흥가. 외국인들 모여서 노는 곳. 뭐 그 정도였어요. 애초에 볼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진짜로 볼 가치가 없는 곳이었어요.


카오산 로드 경찰서


경찰서가 있었어요. 여기는 경찰이 밤에 일이 많을 거에요. 그리고 여기 경찰들은 꽤 피곤할 거에요.




드디어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비를 피해 건물 아래로 들어갔어요.


'여기 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보며 한숨만 푹 내쉬었어요. 이럴 줄 알았어요. 이럴 줄 뻔히 아는데도 기어온 제가 한심했어요. 여기는 정말 어지간하면 안 오려고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왔어요. 그리고 너무나 뻔한 결과를 받아들였어요. 아니, 제 예상 속에 이런 갑작스러운 폭우는 없었어요. 제 예상보다 더 나쁜 결과였어요.


'여기가 왜 좋다고 하는 거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별로 볼 것도 없고 그저 관광객과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만 많을 뿐이었다. 밤의 카오산 로드는 다르다고 하는데 다르기는 개뿔이었다. 밤이 되면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노점상 같은 게 더 늘어나겠지. 술 퍼마시고 일탈을 즐기는 인간들이 많이 보일 거고. 그냥 다양한 국가에서 온 개인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화인류학과 관련된 내용인데,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선을 긋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에게 훨씬 솔직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해. 예를 들어서 한 집단 내부의 비밀은 낯선 타인에게 절대 누설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 집단 소속원 각각은 낯선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훨씬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거야. 여행 가서 다른 여행자들 만나서 노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것은 아마 이런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해.


사람마다 취향을 존중해주어야지. 하지만 나는 여행 와서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여행을 가서 일탈을 꿈꾼다고 하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차이점이라면 나에게 일상은 관광객들을 질리도록 보는 것이었다는 것이지. 내 고향에서도, 서울에서도 관광객이라면 매우 많이 봐왔어. 혼자서 도시에서 타향 생활 한 지 10년이 넘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전혀 새롭지 않아.


예전에 읽었던 글 중 상당히 인상깊게 읽은 글이 있어. 배낭여행자들은 자신들이 현지인과 현지문화에 대해 보다 잘 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진짜 그러냐는 글이었어. 그들의 생각과 달리 현실은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이 같은 여행자들과만 어울리며 서로 공유한 정보로만 다니고, 현지어를 모르기 때문에 영어를 아는 현지인들과만 제한적인 교류를 하는데, 그나마도 관광업 종사자라는 것이었지. 나 역시 유명 관광지 출신이기 때문에 이 내용에 매우 크게 공감했어. 혼자 다니니 보다 자유분방하게 잘 다닐 것 같지? 선이 아닌 구역으로 눈을 넓혀 보면 그 구역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매우 힘들어. 선을 벗어나는 것은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되지만, 권을 벗어나는 것은 용기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


카오산 로드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얼마나 공식적인 관광 경로에서 자유로울까? 그리고 동남아시아 - 그 중에서도 태국 방콕에서 유독 잡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는 나 역시 방콕에서는 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태국의 역사에 대해 깊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태국어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관광지가 아닌 어딘가를 따로 갈 일도 없다보니 쓸 데 없는 잡생각만 많아지나봐. 이럴 줄 알았다면 태국어 글자라도 확실히 떼고 오는 것이었는데.


폭우가 그쳤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민주기념탑 쪽으로 가면 아마 버스가 있을 거라고 했어요.


태국 방콕 민주기념탑


민주기념탑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에서 후아람퐁역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왓 프라깨우로 간 후, 거기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한바탕 스콜이 내린 거리. 태국인들이 거리에서 보드 게임을 즐기고 있었어요. 병따개로 체스 두는 것 같았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6.5바트를 내고 47번 버스를 타고 왓 프라깨우로 가서 내렸어요. 여기에서 6.5바트를 내고 53번 버스를 탔어요. 버스를 타고 쭉 갔어요. 그냥 평범한 동네였어요. 종점에 도착하자 운전기사가 다른 53번을 타라고 했어요. 버스를 옮겨탔어요. 표를 보여주자 요금을 또 내지 않았어요.


9시가 채 되기 전에 숙소에 도착했어요. 부모님께 태국 여행을 잘 하고 있다고 간단히 메일을 써서 보냈어요. 메일을 보낸 후 한국 뉴스를 보았어요. 메르스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어요. 뉴스를 보면서 이러다 귀국일 미루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지인들과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지인들이 한결같이 지금 한국은 MERS 때문에 난리도 아닌데 너는 정말 때를 잘 맞추어 외국 나간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뉴스를 보고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슨 중세 흑사병 창궐 같은 분위기였어요.


노트북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 누웠어요.


방콕에서의 마지막 밤. 방콕에 정이 가는 것은 아닌데 막상 떠날 날이 바로 다음날로 다가오자 무언가 아쉬움이 찾아왔다. 아눗싸와리 쪽을 조금 더 잘 둘러보고 싶은데 그걸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기차가 늦게 있어서 돌아다닐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야간 이동이라 땀이 너무 많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방콕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냥 대도시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방콕 일정을 최대한 줄이고 아유타야에서 머물다 수코타이로 올라가도록 일정을 짤 거다. 그 이전에 인도네시아 일정을 늘렸겠지.


그래봐야 바뀌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바뀔 것은 아마 없을 거에요. 아유타야가 그렇게 좋고, 방콕이 이렇게 참 별로일 줄 몰랐으니까요. 그 이전에 어차피 태국어를 잘 모르니 설령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해도 이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는 방콕에서 계속 반복될 거에요. 한국에서 글자를 외우고 태국어를 공부하려고 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태국어를 공부하다 라오어를 공부하다 왔다갔다 하다가 이도 저도 안 된 것 -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은 라오어 공부에 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태국어부터 하자고 했기 때문에 방향 못 잡고 우왕좌왕한 것이 문제였어요.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차피 근본적 문제는 그대로 안고 시작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또 똑같은 문제에 빠질 수 밖에 없었어요.


치앙마이는 대체 어떤 곳일까?


예전부터 치앙마이가 아름답다는 말은 들었어요. 제가 그렇게 가보고 싶어했던 도이 수텝 사원이 있는 곳이 바로 치앙마이였어요. 태국 북부의 장미라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래요. 하지만 이번에 faii가 치앙마이에 중국인이 많다고 알려주었고, 지도를 보니 중국 영사관까지 있었어요. 게다가 치앙마이라면 중국-태국 국경에서 아주 먼 곳도 아니었어요.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바글대어서 가자마자 떠나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 끔찍한 상상이었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어요.


'치앙마이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잘 넘어가야 하는데...'


치앙마이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무엇보다도 라오스로 들어가는 일정이었어요. 치앙마이에서 버스를 타고 훼이싸이 국경을 통해 라오스로 입국해야 하는데, 이 길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했어요. 방콕에서 라오스를 들어간다면 농카이를 통해 들어가면 되지만, 그러면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비엔티안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치앙마이도 보고 동선도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 북쪽 치앙콩 - 훼이싸이 국경으로 넘어가기로 했어요. 라오스로 금요일에 넘어갈 예정인데 제발 계획대로 2015년 6월 19일 금요일에 버스 타고 치앙콩 - 훼이싸이 국경을 통과해 루앙프라방으로 무사히 잘 들어가기를 바랬어요. 여기에서 일정이 꼬이면 8일 일정으로 계획한 라오스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었거든요. 어차피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안만 갈 계획이기는 했지만 라오스는 시간을 많이 두고 보고 싶었어요. 결정적으로 라오스에서는 어떻게든 현지인 친구를 하나라도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래야 한국 돌아가서 라오어가 공부하고 싶을 때 라오어를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확실히 글자를 조금 외우니 여행이 많이 편해지고 있었어요. 아직 제대로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니 버스 타는 것도 많이 편해졌고, 거리에서 보이는 표지판과 이정표 보는 것도 많이 편해졌어요. 진작 하루 날 잡아서 싹 외울 걸 왜 안 외웠나 후회되었어요. 태국 여행 중이니 태국어 글자를 확실히 외우기 좋은 환경이었는데요. 게다가 태국어 글자와 라오어 글자가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만약 하나만 똑바로 다 외운다면 그 다음 것을 외울 때 쉽게 외울 수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었어요. 비슷하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니까요. 하나를 확실히 끝낸 후 다른 것을 시작하면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둘 다 미숙한 상태에서는 한단지보가 되기 딱 좋아요. 그간 마음은 라오어에 가 있고 눈은 태국어에 가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니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했는데, 태국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정해졌어요.


'태국어 글자를 어떻게든 다 외우고야 만다.'


야간 기차에서 반드시 태국어 글자를 공부하기로 굳게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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