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버스 터미널이네."


휘청거리며 버스 시간표를 보았어요.



이제 여기를 더 돌아다닐 체력도 정신도 없었어요. 어서 빨리 방콕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싶었어요.


"지금 출발하는 표는 없어요. 7시에 있어요."


방콕으로 가는 미니밴은 있었지만 이미 만석이었어요. 그나마 자리가 있는 가장 빠른 것은 7시 출발하는 미니밴이었어요. 7시 미니밴 표를 구입하고 주변을 잠깐 돌아다녀보았어요. 딱히 볼 것이 없었어요. 이 주변에 야시장도 있다고 했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야시장이 제대로 열리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어요.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닫고 있었거든요. 이미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구요. 뭔가 먹을까 했지만 7시까지 시간이 정말 애매하게 남아서 버스 터미널 대합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태국 펫부리 미니밴 정류장


여기 있는 사람들 거의 모두 방콕행 미니밴을 탈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미니밴 표를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7시 출발 미니밴도 매진되었어요.


자리에 앉아서 쉬면서 아유타야 친구와 채팅을 했어요.


"이제 방콕 돌아가."

"펫부리 어땠어?"

"좋았어. 그런데 아유타야보다는 별로였어."

"하하. 아유타야 많이 좋아하는구나."

"응. 펫부리는 유명한 간식 없어?"


한참 있다가 답이 왔어요.


"펫부리는 mor kaeng 이 유명해."

"mor kaeng? 태국어로 어떻게 써?"

"หม้อแกง."


참 빨리도 알려준다!


제가 타고 갈 미니밴은 7시 출발 예정이었어요. 친구가 메시지를 통해 펫부리에서 유명한 간식이 머깽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6시 50분. 딱 10분 남았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며 머깽 파는 곳이 근처에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사람들은 대합실 뒤쪽 가게에 한 번 가보라고 알려주었어요. 부리나케 대합실 뒤쪽에 있는 가게로 갔어요. 가게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여주었어요.



가게 주인이 이거라고 알려주었어요. 하나 달라고 해서 구입했어요.



봉지를 보니 Kanom mor kaeng  Mae Ubon, Mor kaeng snack by miss Ubon 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어요. 이것이 유명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극적으로 펫부리의 유명한 간식인 머깽을 하나 구입했다는 사실에 기뻤어요. 머깽이 든 종이봉투를 들고 다시 허겁지겁 미니밴 탑승 위치로 걸어갔어요. 이제 제가 탈 차례였거든요. 미니밴에 올라타자마자 머깽을 먹을까 하고 호치키스를 손톱으로 벌리고 봉투를 열었어요.


태국 펫부리 간식


"이거 지금 어떻게 먹지?"


차 안에서 저녁 식사 겸 먹으려고 구입하기는 했는데 먹을 방법이 없었어요. 가뜩이나 만차라 자리는 좁았어요. 저 알루미늄으로 만든 사각틀을 뜯어내고 머깽만 곱게 빼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고, 저것이 차 안에서 먹기에는 매우 불편해 보이는 것은 확실했어요. 봉투에 인쇄된 머깽 사진은 카스테라처럼 생겼는데, 카스테라라면 분명히 먹다 목이 엄청나게 메일 것이었어요. 가루도 엄청 많이 떨어질 거구요.


"이따 숙소 돌아가서 먹어야겠다."


다행히 호치키스를 살짝 벌려서 봉투를 열었기 때문에 다시 호치키스 심을 구멍에 맞추어 끼운 후 조여서 봉투를 봉했어요.


밤 8시 35분. 다시 방콕 센추리 플라자 옆에 있는 미니밴 정류장으로 돌아왔어요.



이제 다른 지역으로 가는 미니밴 영업은 다 끝났는지 거칠게 들어오는 미니밴 몇 대 빼면 매우 한산하고 조용했어요.


태국 방콕 미니밴 터미널


"롭부리도 여기에서 타고 갈 수 있구나."



19번은 아유타야, 20번은 롭부리행 미니밴 매표소였어요. 친구가 아유타야 갈 때는 기차를 타지 말고 미니밴을 타고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좋다고 이야기해주었었는데, 그 미니밴을 여기에서 탈 수 있었어요. 만약 아유타야 갈 때 기차가 아니라 미니밴을 타고 갔다면 조금 더 여유롭게 아유타야를 관람할 수 있었을까? 관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첫날 보다 많이 쉴 수 있기는 했을 거에요.


"밥 어디에서 먹지?"


태국 음식 쏨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어요. 노점상에서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어요. 일단 밥을 먹기는 해야 했어요. 도저히 배고프고 피곤해서 밥을 먹지 않으면 짜뚜짝 야시장을 갈 수가 없었어요. 하루종일 굶었고, 하루종일 걸었어요. 밥을 먹으며 좀 쉬고 싶었어요. 야시장 가면 뭔가 먹을 것이 또 있기는 하겠지만 분명 사람이 엄청 많을 것이고, 식당 이전에 그 인파들을 뚫고 돌아다닐 체력이 필요했어요.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먹을까 했지만 뭔가 딱히 맛있어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았어요.


"센추리 플라자에 13바트 국수집 있었지!"


센추리 플라자 안에 국수 한 그릇이 13바트인 가게가 있었어요. 여기를 방콕 떠나기 전에 한 번은 가서 먹어보아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지금 가면 딱이겠다고 생각했어요. 딱히 거리에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센추리 플라자는 바로 지척이었거든요. 여기에서 저녁을 먹으면 짜뚜짝 야시장 갈 수 있는 시간도 확보되고 체력도 충전할 수 있고, 나중에 굳이 이 국수집을 가보기 위해 아눗싸와리로 또 와야할 필요도 없어져요.


주린 배를 부여잡고 센추리 플라자 안으로 들어갔어요.


태국 방콕 센추리 플라자


센추리 플라자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그 한 그릇 13바트 국수집으로 들어갔어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확인했어요.



국수류는 13바트였고, 디저트는 20바트였어요. 음료는 15바트였어요.


'국수가 13바트고, 음료가 15바트면 국수 6그릇에 음료 한 잔 해도 93바트 밖에 안 되잖아!'


벽을 보니 여기에서 국수를 많이 먹었다고 국수 그릇을 산처럼 쌓아놓고 찍은 기념사진들이 걸려 있었어요. 혹시 무슨 많이 먹기 미션 같은 것 있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어요. 하루 종일 굶었기 때문에 많이 먹기 미션이 있다고 해도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알지도 못하는 태국어 글자와 보기만 해도 두통 낳는 영어를 두 눈에 쌍심지 켜고 바라보았지만 '많이 먹으면 공짜' 같은 것은 없었어요. 그냥 참 많이 먹었다고 기념사진 촬영해서 벽에 걸어놓은 것 뿐이었어요.


먹은 만큼 돈을 내는 가게인데, 국수 6그릇에 음료 한 잔 마시는 것으로 100바트 안으로 끊을 수 있다니 정말 좋은 가게임은 확실했어요. 양이 얼마나 코에 갖다붙일 정도로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이 국수 저 국수 골고루 맛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아무리 태국 음식 양이 적어서 식당에 가서 2그릇씩 주문해 먹고 있는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이 기회에 여러 종류를 맛보아놓으면 다음 식사에서는 국수가 아닌 것을 시켜볼 수 있어요. 게다가 아무리 양이 적다 해도 6그릇이면 먹은 느낌은 들 거라고 예상했어요. 아무리 한두 젓가락만 준다 하더라도 6그릇이면 그릇 수 때문에 어쨌든 양이 될 테니까요.


국수를 주문해 먹기 시작했어요.


태국 국수



태국 똠얌 국수


예상대로 양은 매우 적었어요. 한 입에 털어넣어도 될 정도였어요. 젓가락으로는 몇 젓가락 나왔지만, 그릇을 입에 대고 후루룩 마셔버린다면 한 입에 다 삼켜버릴 수도 있을 정도였어요. 양이 적으니 먹을 수록 감질났어요. 뭔가 맛있다 싶으면 이미 다 먹어서 또 주문을 해야 했어요. 아예 처음부터 여러 그릇 잔뜩 주문해놓고 먹고 싶었지만 그것은 또 안 되었어요.


'확 저 사진들처럼 나도 그릇 산처럼 쌓아봐?'


한 그릇이 워낙 적다보니 사진 속 사람들처럼 그릇을 수북히 쌓아놓는 것도 하면 될 것 같았어요. 가뜩이나 '맛있다'고 하려고 하면 어느새 다 먹어버려서 또 주문해야 하니 계속 감질만 날 뿐이었어요. 먹는 것도 쉬지 않고 계속 먹어야 배도 부르고 만족감도 오는데, 이것은 몇 입 먹고 사람 불러서 주문하고 국수 나오기 기다리고, 국수 나오면 또 몇 입만에 다 끝나버려서 또 사람 불러서 주문하고 기다려야 하니 참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참자. 이거 많이 먹어봐야 다 내가 돈 내야 한다.'


무슨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이 먹어봐야 전부 제가 한 그릇에 13바트씩 계산해서 돈을 내야 했어요. 10그릇 먹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10그릇 먹으면 국수값만 130바트였어요. 국수 종류가 무슨 10종류 되는 것도 아니었고, 결국은 몇 종류를 무한 반복해서 주문해 먹어야 하는 건데 배고프다고 마구 시켜먹다보면 국수값이 무시 못하게 나올 것이었어요. 그렇게 여기에서 성질대로 마구 먹어치워대기 보다는 원래 계획대로 100바트 안에서 저녁 식사비를 끊고, 또 배가 고파지만 그때 뭔가 다른 것을 사먹는 것이 훨씬 나았어요.


다행히 국물까지 싹싹 다 먹으니 허기가 지워지고 배가 슬슬 차기 시작했어요. 확실히 이 식당은 적당히 싸고 배부르게 먹기에는 매우 좋은 곳이었어요. 국수 중 똠얌 국수가 가장 맛있었어요. 제가 먹은 6그릇 중 똠얌 국수만 3그릇이었어요. 배에서 허기가 지워지자 몸에 힘이 다시 조금 생겨났어요. 음식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식당에서 나왔어요.


태국 방콕 맛집 - 13바트 국수 가게


식당에서 나와 금요일 짜뚜짝 야시장으로 갔어요.


"사람 엄청 많네!"


짜뚜짝 시장은 처음이었지만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가는 곳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거든요.


짜뚜짝 야시장


방콕 짜뚜짝


방콕 관광 명소 짜뚜짝


태국 방콕


금요일 짜뚜짝 야시장


태국 배낭 여행


"여기 완전 홍대 길거리 좌판 같은 분위기인데?"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우리나라 서울 홍대 거리 같은 분위기였어요. 무언가 태국 전통적인 느낌이 확 날 줄 알았는데 그냥 사람 많은 금요일 저녁 홍대 분위기에 가까웠어요.


ตลาดนัดจตุจักร


"돌아가야겠다."


슬슬 지하철 막차를 걱정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일찍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매우 현명한 판단으로 여겨졌어요.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돈이 많이 나올 뿐더러 어떤 교통 체증을 겪어야할지 알 수 없었어요. 어차피 여기 분위기가 홍대 길거리 좌판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 이상 더 이상 딱히 재미를 느낄 수 없었어요. 게다가 허리가 시큰거리며 아팠구요. 길가에 주저앉아 통증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리다 통증이 가라앉자 일어나서 전철역을 향해 걸어갔어요.



태국 길거리 음식




전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후아람퐁역으로 돌아오니 밤 11시였어요.


태국 후아람퐁역 야경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까 구입한 머깽을 꺼냈어요.


หม้อแกง


"이거 진짜 맛있는 거구나! 하나 더 사올걸..."



친구가 펫부리의 유명한 과자라고 소개해준 머깽을 먹어보니 친구가 왜 이것을 꼭 먹어보라고 소개해주었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겉보기는 카스테라처럼 생겼지만 카스테라와는 많이 달랐어요. 속은 촉촉하다 못해 축축했고, 매우 부드러웠어요. 이가 없어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어요. 만약 이것을 미니밴 안에서 먹겠다고 들었다면 엄청 낭패를 보았을 거에요. 너무 부드러워서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거든요. 맛은 진한 빠다코코넛 맛이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이것을 하나만 사온 것이 매우 아쉬웠어요. 보관만 잘 할 수 있다면 여러 개 사서 한국 돌아갈 때 들고 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머깽을 먹으며 오늘 여행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여행 일정을 정리하면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아까 그 문제의 동굴 사원 표지판이 나왔어요. 특별히 필요한 사진은 아니었기 때문에 카메라 및 컴퓨터 용량 확보를 위해 지울 생각이었어요. 순간 아까 그 문제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매우 궁금해졌어요. 이 사진 안에 분명히 오늘 왜 모두가 진실을 말해주었는데 정작 가려고 했던 동굴 사원을 가지 못했는지 답이 있을 것이었어요.


태국어 글자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태국어 교재를 꺼냈어요.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태국어 교재에 나와 있는 글자와 비교하며 글자를 읽었어요.


ถ้ำเขาย้อย 땀 카오 여이


사진에는 '땀 카오여이' 라고 적혀 있었어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카오여이 동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어요. 뭔가 매우 이상했어요. 땀 카오여이는 제가 본 곳이 맞았어요. 그런데 이 동굴 사원에는 표지판에 그려진 그 장면이 없었어요. 오기가 생겼어요. 뭐가 잘못되었길래 모두가 속이지 않았는데 속은 것 같은 결과가 나왔는지 꼭 알아내고 싶었어요. 이것을 안 알아내면 오늘 도저히 잠을 못 잘 거였어요. 한참 인터넷을 뒤지니 제가 원래 가려고 했던 동굴 사원 사진에 태국어로 ถ้ำเขาหลวง 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였어요. 이것을 태국어 교재에 나와 있는 글자와 비교해가며 더듬더듬 읽어보았어요. 이것은 '땀 카오 루앙'이었어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카오루앙 동굴'이었어요. ถ้ำเขาหลวง 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어요.


"아우, 거지 같은 표지판!"


모든 것이 밝혀졌어요. 직원은 제가 보여준 사진에 적힌 글자를 그대로 읽어주었을 뿐이고, 할아버지도 글자를 읽고 그 글자가 의미하는 곳으로 저를 데려다주었어요. 그 누구도 저를 속이지 않았어요. 저를 속인 것은 바로 그 망할 표지판이었어요. 표지판의 사진은 카오루앙 동굴이었는데, 표지판에 적혀 있는 것은 카오여이 동굴이었어요. 게다가 이 표지판이 낡아서 사진은 썩 잘 보이지 않았고 글자만 잘 보였어요. 동굴 사진에 '땀 카오 여이'라고 적혀 있으니 저를 거기로 데려다준 것이었어요. 웃긴 것은 아무리 보아도 표지판의 사진은 카오루앙 동굴이 맞다는 것이었어요. 사진이 잘 보이고 안 보이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엉뚱한 사진에 카오여이 동굴이라고 적어놓은 것 자체가 문제였어요.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카오루앙 동굴은 카오왕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카오여이 동굴은 카오왕에서 진짜로 10km 떨어져 있었어요. 저 역시 태국어 글자를 잘 몰랐고, 동굴 이름 또한 제대로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게 그것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두 동굴은 아예 다른 동굴이었어요.


스콜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방콕을 다 뿌리째 뽑아 강에 던져버리려고 작정한 것처럼 빗소리가 무섭게 울려퍼졌어요.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태국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펫부리를 돌아다니며 태국어를 몰라 매우 불편했어요. 글자만 제대로 읽을 수 있었어도 길을 그렇게 많이 헤메지는 않았을 거에요. 글자도 다 모르고 여행다니는 것은 이번이 처음. 지금까지 글자를 몰라서 불편함을 겪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여행할 때도 글자는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글자 몰라서 헤메는 일은 없었어요. 그러나 이번은 글자를 다 못 외웠기 때문에 글자를 몰라서 겪는 불편함을 계속 겪어야 했어요. 특히 오늘 펫부리에서 그 불편함이 아주 컸어요. 만약 글자만 제대로 알았다면 지도가 썩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구 헤메지는 않았을 거에요.


'태국어 글자 반드시 외우고 만다!'


태국어 글자를 반드시 다 외우고야 말겠다고 결심했어요.


여행 기록을 정리하면서 오늘 사용한 돈을 계산해보니 오늘 돈을 꽤 많이 사용했어요. 롭부리는 아무래도 포기하고 얌전히 방콕 시내나 돌아다니든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문제는 돈은 많이 쓰는데 결과가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어요. 태국 여행에서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은데, 정작 인도네시아에 비해 여행에 대한 만족도가 너무 떨어졌어요. 일단 방콕을 벗어나야 좀 만족스러운데 일정과 경로를 잘못 잡아놓아서 방콕을 벗어날 때마다 돈이 왕창왕창 깨졌어요. 아유타야 출신 친구와 만난다고 약속을 잡았다가 방콕에 상당히 오래 머무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방콕에서 벗어나려면 당일치기 왕복으로 다녀와야 했어요. 방콕이 만족스럽다면 그나마 괜찮겠는데, 방콕 자체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솔직히 방콕에서는 뭐가 태국같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음식 사먹을 때마다 돈만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아유타야, 펫부리에서는 그래도 음식이 맛있었고 사람들도 친절해서 좋았어요. 게다가 이 도시들은 음식도 방콕처럼 무식하게 일단 많이 만들어놓고 쌓아놓은 후 두고두고 팔지는 않았어요. 물론 저 두 도시도 음식을 만들어서 쌓아놓고 팔기는 했지만 그 양이 적었어요. 방콕에 오래 머물도록 일정을 짠 것이 이번 여행 최대의 패착이었어요.


'만약 다시 태국 온다면 방콕은 그냥 지나칠 거다.'


이것도 태국의 한 모습이겠지만, 방콕의 모습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관광지와 유흥가만 계속 돌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술과 유흥을 좋아한다면 재미있는 도시겠지만, 둘 다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이 도시는 참 재미없었어요. 서울 명동, 홍대, 신촌을 돌아다니는 것과 느낌이 비슷했어요. 사람들이 방콕에 왜 가는지 이해는 되지만, 그것이 제가 좋아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어요. 애초에 그 이유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렇게 방콕에 오래 머무를 필요도 없었구요.


여행 기록을 다 정리한 후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창밖에서는 여전히 스콜이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속리산 법주사 보여주면 좋아하지 않을 건가?'


태국 와서 절을 보며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경주 석굴암을 보여줄 게 아니라 속리산 법주사를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법주사 팔상전, 법주사 청동 불상 보여주면 반응이 꽤 좋을 것 같았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암이 과학적이라고 매우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나라 것들은 다 비과학적으로 지어졌다는 말인가? 석굴암도 과학적으로 지어졌겠지만, 다른 나라 절과 유적들도 과학적으로 지어진 것은 매한가지에요. 다른 나라 유적들은 무슨 초능력으로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는 것도 아니구요. 거대한 불상을 만들려면 당연히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지어야 해요. 안 그러면 하중 못 이겨서 무너져버리니까요. 이 나라는 거대한 불상이 참 많은데, 그렇다면 진짜 규모가 되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관촉사 은진미륵도 좋을 거에요. '우리는 돌을 통째로 깎아서 이렇게 큰 불상을 만들었어요!' 라고 자랑하면 이들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길 거에요. 우리나라 불상은 대부분 화강암 재질의 석불인데, 화강암이 조각하기 상당히 어려운 돌이라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처럼 세밀하게 조각한 불상이 없어요. 그러므로 아예 규모로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입상은 그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멀리서부터 큰 모습이 보이니 상당히 인상깊을텐데요.


우리나라 절 중 어떤 절을 보여주어야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감탄할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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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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