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27 중국 카슈가르 헤이트가흐 모스크 (이드카 모스크)

좀좀이 2016. 8.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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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힘내자! 저 사람보다는 우리가 덜 덥잖아!"


화덕 앞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며 기운을 내었어요. 헤이트가흐 모스크를 향해 계속 걸어갔어요. 조금 걸어가자 나무로 이것저것 만드는 작업장이 나왔어요.


위구르 목공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위구르인 목수 동상이 나왔어요.


카슈가르 목수


'우리가 진짜로 힘이 강해진 것일까?'


양고기는 정력에 좋은 음식. 아랍인들이 힘이 센 이유를 양고기와 대추야자에서 찾기도 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들어오면서 계속 현지 음식을 골라서 먹었어요. 현지 음식이라고 하면 거의 다 양고기가 들어간 음식이었어요. 음식의 양 자체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고칼로리 음식이었어요. 게다가 둘 다 길거리 음식은 먹고 싶으면 먹고 보자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계속 먹고 있었어요. 여기에 더워서 음료수도 계속 마시고 있었구요. 처음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스스로 체력이 쓰레기가 되었다고 느낄 정도였어요. 투르판에서 돌아다닐 때도 체력이 지나치게 약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요. 아무리 일정이 힘들고 덥다고 해도 그것은 제 자신에게 비겁한 변명일 뿐이었어요. 그냥 운동을 안 해서, 그리고 근성이 약해져서 피곤한 것이었어요.


이것은 친구도 마찬가지였어요. 저와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친구 역시 특별히 많이 걸어다닐 일이 없었어요. 저도 여행을 위한 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지만, 친구는 저보다 더 약해졌어요. 축구를 좋아해서 주말에 축구 한 판 하러 다녀와서 바로 일하러 갔다와서 다시 한밤중에 저와 서울 밤거리를 걷던 그 강철 체력이 아니었어요. 친구는 이제 우리가 늙어서 그런 것이라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마치 운동선수가 시합 나가기 전에 훈련을 해서 몸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처참한 성적표를 들고 오는 것 같은 것이었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인간 깜둥이 바베큐를 만드는 햇볕 빼고는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이것은 친구도 마찬가지였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친구는 열심히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힘이 남아도니까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지, 힘이 없다면 사진이고 나발이고 일단 어디 구석에 바퀴벌레처럼 기어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저 역시 열심히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어요. 단지 땀이 줄줄 흘러내려서 불편할 뿐이었어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서 바닥에 털면 땀방울이 탁 튀었어요.


냉정하게 생각했어요. 지금 이 일정은 상하이에서 여기까지 오며 소화해낸 일정 중 가장 힘든 일정이었어요. 거리만 따지고 보면 투르판보다 짧은 거리를 걸었어요. 그러나 상하이에서 투르판 가는 기차는 딱딱한 침대칸. 너무나 편하고 사치스러워서 쪽팔릴 수준으로 왔어요. 기차 안에서 완충된 카메라 배터리처럼 그때 저와 친구의 체력은 완벽히 충전되어 있었어요. 특별히 불편하거나 힘든 것은 전혀 없었어요. 하루 종일 앉아서 놀다가 졸리면 누워서 드러눕는 것밖에 안 했는데 피곤할 건덕지가 없었어요. 그냥 방구석 폐인 놀이를 한 것 뿐이었어요. 그에 비해 이 카슈가르는 17시간 동안 인체 비공학적인 수준을 뛰어넘은 신체 고문적 의자에 앉아서 왔어요.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어요. 잠이 깊게 든다 싶으면 고개가 앞으로 쏠리거나 옆으로 거의 90도로 꺾였고 허리도 아파서 잠에서 깨어나버렸거든요. 맞은편 의자와의 간격도 좁아서 엉덩이를 쭉 잡아뺄 수도 없었어요. 17시간의 고문을 받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이좋게 걷고 있었는데, 둘 다 덥고 목마르니 음료수 사서 마시자고 말한 것 외에 특별히 힘들다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었어요. 이건 분명히 체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였어요.


카슈가르 거리



카슈가르 빵집


street in kashgar



"야, 너 엄청 탔어!"

"너도 시컴둥이 되었어."


친구가 제 팔을 보더니 놀라서 외쳤어요. 서서히 피부가 햇볕에 타서 검어지고 있었기는 했어요. 그런데 카슈가르에서 걸으며 피부가 그 변화가 눈에 바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타고 있었어요. 누런 피부의 한국 오빠는 이제 없어졌어요. 둘 다 사이좋게 잘 구워낸 식빵 색깔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이렇게 피부가 까맣게 타본 적은 예전에 가파도 갔을 때가 마지막이었어요. 서울 햇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시컴둥이 소리 들을 정도로까지 타지는 않거든요.



분위기가 점점 시장 분위기로 바뀌어갔어요.


위구르 꿀


꿀을 파는 가게를 보니 여기가 중앙아시아라는 느낌이 더욱 진하게 들었어요. 한때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여행 가서 선물로 뭐 사오면 좋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꿀'이라고 대답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 지역 꿀 품질이 매우 뛰어난 것도 있지만, 관광산업 및 경공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때라서 선물로 그런 것 밖에 들고 올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어요. 지금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꿀은 유명해요. 이쪽 꿀은 거의 다 산꿀로 꿀벌이 쎄빠지게 모아온 꿀을 홀라당 털어온 것이에요. 꿀맛이 전적으로 꿀벌의 입맛인 꿀이죠. 아마 위구르인들의 꿀도 산꿀이 아닐까 싶었어요. 하지만 이 꿀의 질은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어요. 꿀이 너무 깨끗했거든요. 좋은 꿀이라 하면 오히려 벌도 좀 빠져 있고 애벌레도 좀 빠져 있어서 천연 단백질 보충도 할 수 있게 생겼는데, 이건 너무 깨끗해서 진짜 꿀인지 조금 의심이 갔어요. 더욱이 여기는 중국이니 설탕으로 꿀 비슷하게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구요.


"잠깐만! 나 이것 좀 구경할께."


친구가 이 지역 전통 모자인 돕브를 파는 가게가 나오자 잠깐 구경하게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위구르 전통 모자


친구는 이것저것 써보고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카슈가르 전통 모자


그렇지만 가격이 비싸다고 구입하지는 않고 나왔어요.


가게 근처에는 돕브를 만드는 예쁜 위구르 아가씨 동상이 있었어요.


위구르 미녀


그리고 다른 전통모자를 만드는 위구르인 아저씨 동상도 있었어요.


statue in kashgar


모자 모양을 보니 이것은 유목 민족의 모자였어요. 저것과 비슷한 모자로는 키르기스스탄의 전통 모자가 있어요. 키르기스스탄도 카슈가르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에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키르기스인들이 거주하고 있기도 하구요.


조금 더 걸어가자 드디어 큰 거리가 나왔어요. 그리고 큰 길 너머로 드디어 헤이트가흐 모스크가 보였어요.



길을 건너갈 곳을 찾고 있는데 마침 체리를 팔고 있는 노점상이 보였어요. 저는 체리를 안 좋아하지만, 친구가 체리를 하나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체리 품질이 좋은지 위구르인들이 와서 체리를 구입해가고 있었어요. 선물용으로도 줄 수 있는 정도로 좋은 품질인지 많이 사면 종이 상자에 담아주기도 했어요. 체리를 구입할 생각은 없었고, 단지 친구에게 하나 맛보게 할 생각이었어요. 체리를 구입할지 안 할지는 친구의 몫.


"야, 너 저기 가서 상인한테 이렇게 이야기해봐."

"너 이상한 거 시키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이상한 거 아니니까 그냥 따라해봐. 이상한 거 시켰다가 난리나면 너만 다치겠냐?"


누가 봐도 친구와 저는 일행이고 여행하러 온 사람들이었어요. 친구도 제 말에 바로 납득했어요. 만약 친구에게 이상한 것을 시켰다가 친구가 봉변을 당한다면, 그 봉변은 단순히 친구만 당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같은 일행인 저도 휘말릴 수밖에 없었어요. 즉, 설령 이상한 것을 시킨다 하더라도 별 무리없이 무난히 넘길 수준 안에서만 시킬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상한 것도 아니었구요.


일단 친구가 똑바로 말할 수 있도록 몇 번 말해보도록 한 후, 친구와 같이 체리 파는 아주머니 앞으로 갔어요. 친구가 제가 알려준 말을 그대로 말했어요. 아주머니께서 친구 말에 대답했어요.



"야, 하나 먹어."

"어?"

"아주머니께서 맛봐도 된대. 하나 먹어."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황당해하는 친구에게 체리 한 알을 집어서 손에 쥐어주었어요. 친구는 체리를 먹더니 맛있다면서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가격은 정말로 비쌌어요. 감히 구입을 생각할 가격이 아니었어요. 현지인들이 선물용으로 사가는 체리이니 당연히 비쌀 수 밖에 없었어요. 가공되지 않은 체리를 시어서 싫어하기 때문에 제 입에는 맞지 않았어요. 그래도 분명히 품질이 좋기는 했어요. 한 알만 먹고 가려고 하자 아주머니께서 체리 몇 알을 더 주셨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체리를 건네주고 다 먹으라고 했어요. 친구는 매우 기뻐하면서 체리를 다 먹었어요. 아주머니께서 주신 체리를 다 먹고 나서 친구는 체리를 원래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너 나한테 무슨 말 시킨 거? 왜 공짜로 체리를 집어먹고 아주머니께서 체리를 주셔?"

"여기 말로 '먹어봐도 되요'."

"오! 그러면 그냥 공짜로 먹어볼 수 있어?"

"작은 과일들은 그렇게 말하면 맛볼 수는 있어."

"그러면 수박도 될 건가? 수박 장수한테 가서 그렇게 말하면 수박 그냥 먹을 수 있어?"

"수박은 안 될 걸? 그거 썰어놓고 1콰이에 파는데 설마 먹어보라고 할라구. 그냥 작은 과일들만 그렇게 하면 돼."


친구는 흥분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경제의 주문이 적힌 주문서를 발견한 마법사의 모습이었어요. 이 주문만 알고 있다면 여기 현지인 상인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접근해 과일을 맛볼 수 있었어요. 물론 맛이 있으면 그때 구입하면 되는 것이고, 맛이 별로면 그냥 맛본 것에 의의를 두면 되구요. 어쨌든 우리들을 기준으로 보면 창조경제의 주문이 맞기는 했어요. 최소한 위구르인들이 있는 지역에서는 이 말로 과일을 조금씩 맛볼 수 있으니까요.


"그거 뭐였지? 나한테 다시 알려줘봐."


친구는 계속 그 말을 중얼거리며 연습하고 외우기 시작했어요.


헤이트가흐 모스크로 가기 위해서는 큰 길을 건너가야 하는데, 횡단보도는 없고, 지하 통로만 있었어요.



지하 통로로 내려가니 거기에도 상점들이 있었어요. 상점들에 무언가 볼 것이 있나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없었어요.


"헤이트가흐 모스크다!"


Id Kah mosque


이 모스크! 정말 실제로 보고 싶어했던 모스크였어요. 위구르인과 위구르어에 대한 자료를 처음 접했을 때 보았던 사진이 바로 이 헤이트가흐 모스크 사진이었거든요.



튀르크 언어들을 처음 공부하면서 튀르크 언어들은 어떻게 생긴 언어인가 궁금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볼 때 저 책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저 책이 제가 찾은 첫 번째 위구르어 자료였어요. 노란 모스크와 그 앞에 바글바글 몰려 있는 사람들. 처음 저 사진을 보고 저것이 우루무치에 있는 모스크인줄 알았어요. 그때만 해도 위구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우루무치 외에 다른 도시는 뭐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나중에야 저 모스크가 헤이트가흐 모스크이고, 저것은 카슈가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카슈가르는 우루무치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데다, 비행기표도 상당히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행을 해볼까 마음을 먹었다가 바로 단념하게 만들었어요. 만약 위구르인들의 땅에 가게 된다면 저 모스크를 보는 것이 목표였거든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여행이라면 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계속 미루어왔던 여행이었고, 이번에 카슈가르 오게 되면서 이 모스크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어요.



문제는 헤이트가흐 모스크가 유료라는 것이었어요. 친구는 이런 곳에 돈을 내고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헤이트가흐 모스크'가 유명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 안에 얼마나 볼 것이 많은지는 몰랐어요. 주변에 앉아서 쉴 만한 카페가 있으면 친구에게 앉아서 조금 쉬라고 하고 혼자 들어갔다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카페도 보이지 않았어요. 들어가지 않자니 너무 아쉬웠어요. 게다가 다음날 향비묘 역시 유료인 곳이라 안 들어갈 예정이었어요. 카슈가르 와서 거리만 걷다가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는 돈 내고 이런 곳에 들어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어요. 친구가 정말 너무 힘들어서 쉬자고 하고 있다면 친구에게 어디 그늘에 가서 앉아서 쉬고 있으라고 한 후 혼자 다녀오면 되는데 친구는 오히려 힘이 남아돌고 있었어요. 여기가 중요한 곳이니 이것은 반드시 돈을 내고서라도 들어가야한다고 설득을 하면 좋은데 저 역시 이 모스크가 유명한 것만 알지 왜 꼭 안에 들어가야하는지 설명할 능력이 없었어요.


헤이트가흐 모스크 Hëytgah Meschiti 는 '이드카 모스크'라고 써놓은 글이 많아요. 왜냐하면 영어로 Id Kah Mosque 거든요. '헤이트가흐' 는 '축제 장소'이라는 뜻으로, 페르시아어원의 차용어에요. 이란어로는 '이드 가흐' 인데, '이드'는 축제, '가흐'는 장소를 의미해요. 이 모스크는 건축가 Saqsiz Mirza 의 지휘 아래 1442년에 지어졌고, 동시에 2만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중국 최대 모스크에요. 이곳은 위구르인들에게 매우 상징성이 강한 곳이라서 역사적 사건도 여러 번 일어난 곳이에요. 가장 최근의 역사적 사건이라면 '주마 타히르' Juma Tahir 라는 중국 이슬람 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친중국 성향의 이맘이 2014년 7월 이드 알 피트르 기간에 위구르 독립운동가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이에요. 2014년 7월 알 피트르 축제 기간에 중국 경찰이 위구르인 일가족 5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위구르인 폭동이 발생했어요. 이 폭동으로 중국 경찰은 위구르인 12명을 총살했고, 이 폭동으로 인해 비공식적으로는 백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2014년 7월 30일 수요일 오전 6시 58분, 이 모스크에서 아침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려던 주마 타히르는 예배당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했어요.


이것만으로 친구에게 들어가자고 할 수는 없었어요. 입장료가 20위안이었어요. 20위안이면 다른 지역에서 음식이 2개. 이 당시 환율이 180원 조금 안 되었으니 1명당 우리나라 돈으로 3600원 정도였어요. 사실 이 돈을 내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돈이 아깝기는 했어요. 저도 돈 내고 모스크 들어가려고 하면 돈이 아까운데, 친구는 오죽할까 싶었어요. 더욱이 친구가 다른 지역, 다른 문화권의 모스크를 많이 보아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모스크를 재미있게 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요.


제일 좋은 것은 제가 친구몫까지 돈을 내고 들어가자고 하는 것. 이러면 제가 사비 털어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니 친구도 불만은 없을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번 여행 경비에서 40위안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작은 돈이 아니었어요.


"여기서 두 손 모아서 합장하며 사진 찍는 애들 있겠지?"

"그거 하지 마라. 그거 여기서 하면 진짜 멍청이 인증이다."

"안 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고?"

"아니라니까! 그런데 이슬람 애들은 아예 합장 안 해?"

"안 해. 그거 원래 인도 것인데 불교 전파되면서 같이 넘어간 거야. 여기는 이슬람권이라 합장 안 해."


친구가 모스크를 보자 합장하며 인사하는 것에 대해 말을 꺼내었어요. 이것을 가지고 친구와 모스크 앞에서 잡담을 나누었어요. 한국인은 인도를 보고 아랍인 및 튀르크인, 페르시아인들에게 합장을 하고, 서양인들은 동남아시아를 보고 한국인들에게 합장을 해요. 합장 그 자체에는 나쁜 의미가 전혀 없어요. 물론 약간의 종교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요. 불교의 전파와 함께 인도의 합장 인사가 같이 넘어와서 우리들은 합장에 대해 불교식 인사라 여기는 경향이 강해요.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무지하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하지도 않는 합장을 하며 인사한다고 오판하기 일쑤에요.


합장을 가지고 잡담을 나누는데 모스크로 들어가는 위구르인이 보였어요.


"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만 따라와. 알았지?"

"왜?"

"저기 안에 들어가보자."

"저거 유료잖아. 나는 들어가기 싫어."

"그러니까 아무 말 말고 나만 따라오라구."


친구에게 뒤따라오라고 하고 태연하게 먼저 들어갔어요. 저는 셔츠에 검은색 긴 면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친구가 반바지라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일단 둘 다 남자니까 일단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어요. 아마 내부에 예배당이 하나 있을텐데, 그 건물 안까지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보고 나오면 충분했어요. 누가 보아도 여행온 사람 티가 너무나 많이 났지만, 일단 아닌 척 태연히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만약 걸리면 그때 우즈베크어로 이야기를 잘 해볼 생각이었어요. 저와 친구만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기껏해야 우즈베크어로 흥정을 시도해보는 것 정도일텐데, 기도하러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묻어서 들어가면 대충은 보겠다 싶었어요.


친구에게 카메라를 안 보이게 하라고 한 후 입구를 통과했어요.


"여기서 사진 빨리 찍어."



이 모스크에도 예배당 건물이 있다고 하지만, 이 모스크가 2만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그리고 이 모스크가 다른 모스크와 달리 특별한 모스크인 이유는 바로 노천 모스크라는 점이었어요. 건물 내부 예배 공간 주변이 자작나무로 둘러싸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야외에서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예배당이 미어터져서 밖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밖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어요.


위구르 카슈가르 이드카 모스크 민바르


이렇게 민바르도 야외에 설치되어 있었어요. 사실 최대 2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모스크라면 어떻게든 밖에서 그 예배당이 보이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동일 면적일 경우 모스크가 수용 인원이 훨씬 많이 나온다 해도 2만 명이면 적은 수가 아니거든요. 이 정도 인원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이라면 설령 높이를 매우 낮게 지었다 하더라도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건물이 보여야 했어요.



일단 입구에서 확실히 벗어나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위구르인이 저와 친구를 불렀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우즈베크어로 인사했어요. 위구르인은 입구쪽으로 오라고 손가락으로 가르켰어요. 그래서 우즈베크어로 알았다고 대답했어요.


'이제 돈 내야 하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가는 곳을 몰래 들어왔으니 왠지 돈을 내라고 할 것 같았어요. 돈을 내라고 하면 우즈베크어로 흥정을 해볼 생각이었어요.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제 뒤를 따라왔어요. 모스크 입구로 왔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발걸음 속도를 올렸어요. 친구에게 무조건 저를 빨리 따라오라고 하고 빠르게 걸어서 모스크를 빠져나왔어요.


"야, 이거 어떻게 된 거?"

"뭐 어떻게 돼? 돈 안 내고 봤잖아. 빨리 벗어나자."

"그런 거야?"


친구가 깔깔 웃었어요. 저도 깔깔 웃었어요. 배운 것 이렇게라도 써먹어야지. 둘 다 기분이 매우 좋아졌어요. 친구는 저를 보며 계속 이 지역 언어와 문화, 그리고 이슬람에 대해 좀 이야기해주고 알려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래서 간단하게 인사하는 방법 같은 것을 알려주었어요. 친구가 현지인들의 언어와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공부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었어요. 친구는 위구르인들의 문화를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이것저것 계속 물어보고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들으면 한족들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점이 비슷한지도 설명해 주었어요. 그래서 대화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서로에게 매우 유익했어요. 이 시간이 제게는 친구 덕분에 중국 여행 실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친구는 이 지역을 더욱 잘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거든요.



이제 갈 곳은 신화서점. 큰 길을 따라 바로 가도 되지만 골목길로 들어가서 골목길을 구경하다 가기로 했어요.



이 옷은 무슬림들이 입는 의상이에요. 저 터번 같은 모자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서도 두 손을 합장하며 인사한다고 착각을 많이 해요.




친구는 거리에서 수박을 잘라서 1위안에 파는 것을 보자 하나 먹었어요. 저는 특별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먹지 않았어요.


카슈가르 골목길



카슈가르 수박


위구르인 거리



대충 신화서점 방향으로 방향만 맞추고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작은 서점이 하나 나왔어요.


"너 저기 들어가볼 거 아니야?"

"응. 한 번 들어가보자."


친구와 서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녕하세요."

"어서 오거라."

"혹시 위구르어 교과서 있어요?"

"위구르어 교과서? 그거 저기 있을 거야."


서점 주인 아저씨께서는 제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책 몇 권을 보여주셨어요. 아저씨께서 보여주신 책은 전부 처음 글자를 익히는 책이었어요.


"다른 것 없나요?"

"몇 학년 교과서?"

"처음부터 6학년까지요."

"잠깐 있어봐라."


아저씨께서는 서점 창고로 가시더니 책 두 권을 들고 나오셨어요.



이거다!


이것이 바로 제가 그렇게 찾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어 교과서였어요. 왼쪽이 1학년 애들이 글자를 익히기 위해 보는 교과서인 '엘립베' 였고, 오른쪽이 6학년 2학기 위구르어 교과서인 '틸-애대비야트' 였어요. 우리말로 하면 '엘립베' 는 '한글' 쯤 될 거고, '틸-애대비야트'는 '말과 문학' 정도 되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지금 위구르 민족의 말과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위구르어 교과서들을 구하고 있어요. 혹시 다른 학년 것은 없나요?"

"다른 학년 것은 없어. 이것만 있어."


구하기는 구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이것이 하나는 1학년 1학기, 하나는 6학년 2학기. 즉 초등학교 과정의 끝과 끝이었어요. 원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어 교과서 6학년 2학기는 솔직히 진짜 어려워요. 이것은 제가 어찌 비벼볼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 것이었어요. 책장을 몇 장 넘겨보는데 지문 길이에서부터 이미 엄청난 압박감이 전해져 왔어요. 1학년 1학기만 보고 바로 6학년 2학기로 넘어가는 것은 아무리 우즈베크어를 알고 있다고 해도 무리였어요.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를 다른 언어로 분류하는 것에는 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더욱이 정확한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구하고 있는 것이지, 대충 때려맞추려고 구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이 책을 결제하기 위해 계산대로 갔어요.


"그 책은 그냥 네가 갖거라."

"예?"


점원 아가씨도,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점원 아가씨가 주인 아저씨께 진짜 그냥 줄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주인 아저씨께서는 제가 한국인인데 자신들의 말을 할 줄 아는데다 자신들의 말과 문화를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씀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깜짝 놀라고 기뻐서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어요.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서점에서 나왔어요.


"너 왜 돈 안 내?"

"저 아저씨께서 내가 한국인인데 자기들 말과 문화 공부한다고 기특하다면서 그냥 주셨어."

"진짜? 완전 대박이네! 너 이제 교과서 다 구한 거야?"

"아니. 이거 1학년 1학기랑 6학년 2학기야. 가운데 것 구해야돼."

"그럼 신화서점으로 가자. 거기 가면 다른 것들 있겠지."


친구와 신화서점 카슈가르 지점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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