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20 중국 우루무치 샨시 라오팡 모스크 Shanxi laofang mosque

좀좀이 2016. 8.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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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시장 주변에는 아까 걸어오며 본 것과 마찬가지로 또 시장이 있었어요.



이것은 냄비를 판다는 것일까, 견과류를 판다는 것일까?


커다란 냄비 안에 견과류가 수북히 들어 있었어요. 저것은 한 가족이 퍼먹는다고 해도 다 먹기에는 무리인 양이었어요. 사람 입맛이라는 것이 어렸을 적부터 많이 먹어온 것에 적응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저것을 다 먹으려면 분명히 견과류만 퍼먹어야 했어요. 어떻게 보면 요리 같기도 한데, 이 가게 분위기로 보아서는 절대 요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단순히 냄비만 파는 가게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왜 저렇게 견과류를 채워놓았는지가 의문이었어요. 냄비를 파는 것인지, 요리를 파는 것인지 매우 궁금했지만 일단은 그냥 지나쳐갔어요.


위구르 기름밥


폴로를 팔고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역시나 그냥 폴로는 10위안, 고기를 올리면 20위안이었어요.


위구르인 만두


이제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가는지 식당에서는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어요. 만두를 열심히 빚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어요.



"모스크 또 있네!"


우루무치에 모스크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이쯤 가면 발에 채이는 것이 모스크라 해도 될 지경이었어요. 제가 모스크를 보고 싶어서, 또는 모스크는 내 운명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많아서 모스크를 피해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중국은 종교의 자유를 상당히 많이 보장해주는 나라로 보이기 좋게 생겼어요. 이 모스크는 그냥 지나가 계속 식당가를 걸어갔어요.



삶은 고기를 보는 순간 우루무치에서 일한 적이 있는 친구의 조언이 떠올랐어요. 어떤 음식이 진짜 맛없어서 피해야하냐고 물어보자 그냥 보면 안다고 대답했어요. 저 삶은 고기를 보자 딱 제 입맛에 전혀 안 맞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현지 문화를 위해 저런 것도 먹어보아야 하는게 맞기는 하지만, 아직 위구르 문화를 아주 깊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게다가 저게 진짜 맛없다면 친구도 같이 맛의 지옥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었구요. 저것은 분명 요리로 파는 것일테니 제가 제 돈 내고 먹겠다고 하더라도 친구도 같이 식탁에 앉게 되어 있었어요.


위구르 콩요리


uyghur cuisine


위구르 구운 만두




'여기 유혹 진짜 심하다.'


마음 같아서는 다 먹어보고 싶었어요.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은 거고, 맛없으면 이런 건 맛없다는 남들에게 재미있는 기억이 하나 남아서 좋은 것이었어요. 극악으로 맛없는 것을 아주 종류별로 먹어댈 수록 나의 여행담이 화려해지는 것은 사실. 이것은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실패와 그에 대한 적당히 가공시킨 분노의 표현이 많을 수록 사람들은 재미있어해요. 잘 했다는 영웅담, 성공기 등은 교훈은 줄 지 몰라도 재미는 없어요. 문제는 돈이었어요. 중국이니까 적당히 몇 입 먹고 남겨도 아무 문제가 될 것 없지만 몇 입 먹고 남긴다고 해서 10위안 낼 것을 3위안만 내도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내일도 있고, 카슈가르, 쿠처도 있으니 차근차근 먹어가면 되겠지.'


우루무치 거리


한족들이 신기할 정도로 안 보였어요. 여기가 물건값은 저렴하지만 한족들은 위험하다고 절대 안 간다는 그곳이구나. 기차에서 우루무치 사는 한족들이 국제 대바자르에서 조금만 더 가면 이민족 시장이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거기가 가격은 매우 저렴하지만, 한족들이 거기 가는 일은 없다고 했어요. 그곳이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나 한족들은 무서워서 안 간다고 알려주며 물건 살 거 있으면 거기 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어요. 확실히 물건 가격이 그 까르푸가 있는 광장 및 그 주변보다 저렴했어요.



거리는 매우 평화로웠어요. 여기가 위험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게다가 친구 말대로 중국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친구가, 위구르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제가 말하면 되었어요. 어떻게든 말이 통한다는 것 때문에 더욱 용기가 생겼어요.


нон


위구르 꽈배기


또 모스크가 나왔어요.


烏魯木齊


정면에서 보았을 때에는 입구가 조금 화려한 모스크에 불과했어요. 이미 모스크를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지나치려고 했어요.


"이거 들어가보자! 이거 독특한 모스크다."



정면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측면에서 보자 이 모스크가 매우 특별한 모스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친구 눈에는 그 차이가 안 보였지만 제 눈에는 매우 뚜렷하게 보였어요. 왜냐하면 모스크 담장 안에 중국 전통 기와 건물이 있었거든요. 이런 모스크는 중국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스크. 투르판에서 한 번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기했어요. 지금껏 보아온 모스크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확 와닿았어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모스크 정문 안으로 들어갔어요.


중국 이슬람


이 모스크는 샨시 라오팡 모스크 陕西老坊清真寺 였어요. 이 모스크는 우루무치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모스크로, 1808년 7월 28일에 산서성 회족의 헌금으로 건설되었어요. 이후 신도가 늘어나면서 예배당을 1877년에 다시 지었고, 이때부터 샨시 대모스크 Shaanxi Grand Mosque 라고 부르기 시작했대요. 그리고 1906년부터 이 모스크는 샨시 라오팡 모스크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거 금년도 라마단 일정이다."



2016년 라마단은 6월 6일부터 7월 5일까지였어요. 이것을 외우고 있었던 이유는 바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무슬림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어요. 위구르인들이 이슬람을 상당히 강하게 믿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종교가 민족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되면 종교를 상당히 강하게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위구르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어요. 친구는 관광지에서는 다 먹고 마시고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어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라마단이라 해도 한족 사는 곳에 가면 식사 시간에 먹고 마실 수 있을 거에요. 그러나 그렇게 먹고 마시고 한 후 위구르인들을 만나는 것이 썩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은 뻔했어요. 게다가 날이 건조하고 더웠어요. 허기는 예측과 예방이 가능하지만 갈증은 그게 되지 않아요. 친구는 숨어서 마시면 된다 등등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친구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어요. 친구는 중국에서 꽤 오래 지냈기 때문에 안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친구가 한족들과 어울려 살았지 무슬림들과 어울려 산 것은 아니었거든요. 친구는 이슬람 문화 및 무슬림들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라마단에는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먹고 있는 우리를 보는 것은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였어요.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라마단이 시작되는 6월 6일에는 무조건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벗어나 있도록 여행 일정을 짰어요. 그래서 6월 6일에 라마단이 시작한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여기 안에 들어가봐도 되나?"


관리인이 있나 찾아보았어요. 마침 예배당 맞은편 건물에서 한 할아버지께서 나오셨어요. 우즈베크어로 인사를 드리고 혹시 안에 들어가보아도 되냐고 여쭈어보았어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어요.


'이 할아버지는 한족이신가? 왜 무슬림인데 여기 말이 안 통하지?'


제가 할아버지와 말이 아예 안 통하는 것을 본 친구가 중국어로 안에 들어가보아도 되냐고 여쭈어보았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잠겨 있던 예배당 문을 열어주셨어요.


Shanxi laofang mosque in Urumqi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강렬한 빨간색. 여기에 중국식 단청이 나도 예쁜 색을 갖고 있다고 외치고 있었어요.


중국 우루무치 샨시 라오팡 모스크


벽도 화려한데 바닥을 덮고 있는 카페트 때문에 더욱 화려했어요. 빨간색으로 도배된 모스크 내부를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여기는 빨간색의 아우성 그 자체였어요.


중국 전통 모스크


아치가 있는 하얀 오목한 벽이 메카 방향을 표시하는 미흐라브에요. 이 미흐라브가 있는 벽을 키블라 벽이라고 해요. 무슬림들은 이 키블라 벽 방향으로 예배를 드려요. '미흐라브'와 '키블라' 모두 이슬람에서 예배 방향과 관련이 있는데, '미흐라브를 향해 기도한다'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무슬림들은 키블라 방향으로 나란히 서서 기도를 드리거든요. 만약 미흐라브를 향해 기도한다고 한다면 일렬로 서는 것이 아니라 부채꼴 모양으로 서서 예배를 드려야 하죠. 그리고 사진 오른쪽 지붕 있는 의자처럼 생긴 것은 '민바르'로, 계단 위에 한 사람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요. 이것은 설교단이에요.


烏魯木齊 回族 清真寺



회족 모스크


모스크 내부를 찬찬히 구경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이 건물이 바로 방금 들어갔다 나온 샨시 라오팡 모스크. 얼핏 보면 오래된 건물로만 보이지, 모스크로는 절대 안 보이는 건물이었어요.


"저거 당구대 아니야?"


모스크에서 나와 조금 걷자마자 거리에 당구대가 놓여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떤 당구를 치지?'


당구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남자들이 흔히 친다는 당구인 4구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치는 게임이고, 3쿠션 게임은 외국에서도 쳐요. 외국에서 가장 많이 본 당구는 포켓볼인데, 포켓볼도 종류가 여러가지에요. 공을 집어넣는 구멍이 있으면 뭉뚱그려서 일단 '포켓볼'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사용하는 공의 갯수와 룰에 따라 여러가지 게임이 있거든요.



이거 스누커 치는 건가?


스누커는 우리나라에서 정말 보기 힘든 당구 게임이에요. 스누커 역시 우리나라식 분류에 의하면 포켓볼에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포켓볼과는 공 자체가 달라요. 당구대 위에 빨간 공이 무수히 많고, 구멍에 집어넣는 게임 방법으로 보아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것이 스누커였어요. 스누커는 저 역시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요. 그저 여행다니며 몇 번 사람들이 치는 것을 본 것이 전부에요.


이제 진짜 홍산공원을 갈 때. 친구의 바이두 지도를 보니 골목을 통해 가는 것이 거리가 더 짧았어요.



길거리에서는 망고와 수박을 팔고 있었어요.



"저 모스크는 왜 저렇게 폐허지?"


중공에 차별받는 위구르인


조금 전 보고 나온 샨시 라오팡 모스크와는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었어요. 동네 자체도 허름한데, 모스크는 아예 버려진 건물처럼 생겼어요. 사람들이 샨시 라오팡 모스크로 가서 이 모스크는 버려진 건가? 이때까지만 해도 위구르 모스크와 회족 모스크를 구분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모스크는 버리고 샨시 라오팡 모스크로 가서 예배를 드리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야 위구르 모스크와 회족 모스크의 차이를 알게 되었어요. 물론 두 모스크가 확실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에요. 두 모스크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저 역시 '회족 모스크'와 '위구르 모스크'를 거의 구분하지 못해요. 단지 샨시 라오팡 모스크처럼 중국 전통 건물처럼 생긴 모스크는 회족 모스크였어요. 중국에 있는 모스크를 보고 이것이 위구르 모스크인지 회족 모스크인지 바로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중국 전통 기와 건물 같이 생긴 모스크는 회족 모스크에요.


투르판과 우루무치에서 중국 전통 건물처럼 생긴 모스크에서는 우즈베크어가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어요. 마치 중앙아시아에서 튀르크 언어를 잘 못하고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튀르크인 같은 경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게 아니었어요. 회족 모스크라 회족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우즈베크어가 잘 통하지 않은 것이었어요. 회족들은 위구르어를 잘 못하거든요. 회족은 원나라 시절 색목인들인데, 명나라가 건국되며 명나라가 통혼정책으로 인종적으로 한족에 동화시켜버렸어요. 종교의 개종까지 강요하지는 않아서 오늘날까지 이슬람을 믿고 있지만, '이슬람을 믿는 한족'이라 보아도 거의 무방해요. 회족이 쓰는 언어는 당연히 중국어에요. 과거에는 이 중국어를 아랍 문자를 차용해서 만든 문자인 '샤오얼징'을 이용해 표기했지만, 지금은 그냥 한자를 사용하고 있어요.



모스크 명판이 붙어 있어서 읽어보았어요. 이 모스크는 쾬치 메헬레 모스크였어요. 정식 명칭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루무치시 텐샨지구 쾬치 마을 모스크'였어요. 위구르어를 전사하면 Urumchi sheher tiyanshan rayoni konchi mehelle meschiti 였고, 중국어로는 乌鲁木齐市天山坤其买力清真寺 였어요. 여기도 위구르인들 마을은 '마할라'라고 부르고 있었어요.



정면에서 보니 버려진 모스크는 아닌 것 같았어요. 이것은 유리창을 보면 알 수 있었어요. 버려진 건물이라면 유리창이 저렇게 깨끗하고 멀쩡하게 남아 있을 리가 없었거든요.


모스크 앞을 지나 계속 걸어갔어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높은 담벼락이 나왔고, 그 담벼락에는 안내문과 그림,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중국의 민족말살정책


과연 저 중국 56개 민족 모두 중국을 좋아할까? 위구르어로 '석류 열매처럼 연합하자!'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석류 열매는 획일화되어 있지. 사실 이런 포스터가 잘 보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위구르인들이 한족과 중국 정부를 싫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었어요.



이 그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막연히 느끼고 있었어요. 당연히 이 그림 역시 의도가 있는 그림이었어요.



불법 종교 행위 26가지를 적어놓은 공고였어요. 이 공고 아래를 보면 중국 정부가 끔찍하게 싫어하고 불법으로 정한 종교 행위들이 그림으로 나와 있었어요. 대부분이 이슬람이었고, 그 다음이 불교와 관련된 그림이었어요. 기독교를 그린 그림도 하나 있었어요. 이슬람, 불교는 민족 탄압 및 강제 동화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어요. 그림 내용을 보면 분명히 안 좋은 종교 활동 그림들도 있지만, 이것을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저의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뻔했어요.


중국의 판타지


중국 공산당의 야욕


이런 그림이 매달린 벽을 따라가다보니 초등학교 정문이 나왔어요. 하교하는 학생들이 보였어요. 딱 보니 위구르인 아이들이었어요. 이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왠지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다가가 교과서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이들은 제 우즈베크어를 알아듣지 못했어요. 친구가 중국어로 물어보았어요. 아이들이 중국어로 문방구를 가 보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때 갑자기 위구르인 청년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에게 다가왔어요. 친구와 위구르인은 중국어로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위구르인 청년 표정이 상당히 험악해서 친구가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제가 우즈베크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위구르인 청년에게 우리는 한국인이고, 위구르어 교과서 판매하는 곳을 물어보려고 한 거라고 말하자 문방구에 가서 물어보라고 말했어요.


"빨리 나가자!"


친구는 순간 겁먹고 화가 나서 짜증을 확 내었어요. 친구도 위구르인들이 한족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어요. 그러나 '위구르인들 위험하다', '한족들이 위구르인은 차별한다' 정도만 소문처럼 들어서 알 뿐이었어요. 사실 소문 속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가히 무법천지라 해도 될 정도였어요. 폭탄이 터지고, 칼로 찌르고, 에이즈 감염된 피가 담긴 주사바늘로 찌르고, 강도와 소매치기가 득시글거린다는 소문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친구는 중국어만 알고 있으니 그 공포가 더했을 거에요. 외국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시비가 걸릴 뻔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던 제게 이것은 그다지 놀랄 거리조차 아니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친구에게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어요. 저와 달리 친구에게 이 거리는 이제 상당히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어요. 친구가 지금껏 보아오고 살아온 중국은 한족이 지배하는 한족의 중국이었고, 여기는 중국이 강점중인 위구르인들의 땅이었어요. 그러나 친구의 머리 속에 이곳은 아직 그냥 중국이었어요.


아이들과 위구르인 청년이 알려준 문방구로 갔어요. 당연히 교과서가 없었어요.


'그냥 카슈가르 가서 알아봐야겠다.'


다음날 일정이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찾으러 더 돌아다니려면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친구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는 시장에 가서 팔찌 구입 정도였어요. 그 외에 친구가 하고 싶은 것은 쉬는 것 외에 전혀 없었어요. 그러나 더 이상 우루무치에서 교과서를 찾아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여기에서는 더 뒤져봐야 소득은 없고 힘만 빠질 것 같았어요. 위구르인 비율이 더 높은 카슈가르 가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게다가 카슈가르는 2박 3일 일정이었고, 여기 또한 일정이랄 것이 전혀 없는 상태였어요.



큰 길로 나오자마자 허름하고 낡은 위구르인들의 마할라 풍경에서 갑자기 번화한 대도시 풍경으로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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