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2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공동묘지 Bare Sarajevo -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

좀좀이 2012. 1. 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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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그냥 자기 아쉬운 밤이었어요. 사라예보의 거리를 더 걷고 싶었어요.


"우리 밖에 좀 더 돌아다닐까요?"

"또요?"

"예. 여기는 밤에 마음껏 돌아다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후배는 피곤해했지만 저를 따라 나왔어요.



눈 내리는 3월. 3월 말이라고 해도 크게 탈리지는 않은 이때,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완전 3월의 크리스마스네요.



"올해는 선물 뭘 사지?"

"이거는 어때?"

"이건 너무 비싸잖아."

"하긴...요즘 물가 왜 이렇게 비싼지 몰라."


크리스마스를 앞둔 부부가 자식 선물을 고르면서 가격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모습. 그러나 지금은 3월말. 그래요. 여기는 사라예보. 동화 속 도시에요.



눈이 정말 펑펑 내리고 있었어요. 여기에서 그렇게 처절하고 잔인했던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있냐구요? 단연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정말 외곽으로 나가거나 일부러 그 흔척을 찾지 않는다면...가벼운 마음으로 스쳐지나가듯 본다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그 아픔을 찾을 수 없었어요.



휘날리는 눈발 속에서 우리는 어느 한 모스크를 향해 갔어요.



도망자와 추격자가 등장하는 숨막히는 전개도, 두 연인의 따스한 사랑 이야기도, 모든 이야기의 전개의 배경으로 써도 좋을 풍경 속을 걸어 모스크를 향해 갔어요.



모스크 내부



구석에 있는 묘지



이 아름다운 동화 속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도시 으슥한 곳에서 망자가 걸어 나와 걸으며 다른 유령을 깨우기 시작한다. 망자가 일어나 모두를 깨우는 방울을 울리면 이 도시에 동이 틀 때까지 새로운 세계가 펼쳐 진다.


뭐 이런 엉터리 이야기를 써도 좋을 분위기.


다시 강가로 갔어요.






강가에 도착하자 눈이 그쳤어요.


"어디까지 걸어갈 거에요?"


후배가 물어보았어요. 어디까지 걸어갈지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풍경을 보며 생각없이 걷고 있었어요.


"이제 돌아가요. 내일 9시에 그분 만나기로 했잖아요."

"그래요."


그래서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어요. 그러나 닫힌 가게를 구경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아까 가게를 구경하던 사람들처럼 가게를 구경했어요. 과거 오스만 제국이 번창했을 때 거리는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거리에서 중동에서 맡았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차이점이라면 여기는 매우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 가게 속 물건들은 아랍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제품들이었어요. 그러나 아랍에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아마 여기가 거기보다는 훨씬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이겠죠.



늦은 시각까지 문을 안 닫은 가게가 있었어요. 가게에 들어가 물을 산 후 숙소로 돌아갔어요.



"오빠, 늦었어요!"

밖에서 후배가 소리쳤어요.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았어요. 9시 반. 약속 시간이 9시였는데 너무 늦게 일어났어요. 부리나케 씻고 짐을 꾸려서 숙소에 돈을 지불했어요.


"아까 어떤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 번호로 전화 달라고 했어요."


숙소 직원이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 주었어요. 숙소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어요.


"내가 거기로 갈께요. 조금만 기다려요."


잠시 후. 아저씨께서 우리가 있는 숙소로 오셨어요.

"어제 집에 가서 한국 관광객 2명 만나서 가이드해 줬다고 하니까 아내가 걔네들 횡재했다고 하더라구. 사라예보에서 한국인에게 최고의 가이드를 공짜로 받았다구."

아저씨께서는 우리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한 시간 기다리시게 되었지만 전혀 불쾌해하지 않으셨어요.


"일단 짐을 찾고...어디로 갈 거에요?"


아저씨께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괜찮은 관광지로 모스타르와 메주고리야를 추천해 주셨어요. 메주고리야에 가면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고 성스러운 신심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고, 모스타르는 보스니아에서 정말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하셨어요.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어젯밤부터 펑펑 내렸는데 다행히 길에 쌓이지는 않았어요.


'모스타르도 가고 싶고 메주고리야도 가고 싶고...어디를 가지?'


아저씨께서는 일단 중앙시장을 보러 가자고 하셨어요.



겉으로는 평범한 시장이었어요. 그러나 여기도 보스니아 전쟁 당시 폭격으로 엄청난 희생이 발생했던 곳. 중앙 시장을 본 후, 사라예보에 있는 성화를 보고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갔어요.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사라예보의 유명한 건물 두 개를 보았어요. 하나는 사라예보 포위 (Siege of Sarajevo)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 탱크의 포격을 받아 부서졌던 건물이었고, 하나는 여성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건물이었어요. 아저씨께서는 여성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건물 옆에 남성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건물이 지어질 것이라고 하셨어요.


'모스타르랑 메주고리야 둘 다 볼 수는 없을까?'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신심'이라는 말 때문에 메주고리야에 가 보고 싶었어요. 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에요. 그러나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라면 집 주변은 교회 십자가에 포위되어 있고 거리에서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외치며 옷 소매 잡는 전도사들 만나기 일쑤에요. 그런 믿음과 다른 유럽의 독실하고 깊은 신심을 한 번 보고 싶었어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 시간표를 보았어요. 메주고리야로 가는 버스편은 별로 없었어요. 크로아티아로 바로 넘어가기는 그렇고 메주고리야로 가자니 교통이 너무 안 좋아서 얌전히 모스타르로 간 후, 모스타르에서 크로아티아로 넘어가기로 했어요.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표를 구입하고 나니 시간이 꽤 많이 남았어요.


"이 정도 시간이면 한 곳은 더 볼 수 있겠는데...다른 곳 하나 더 볼래요? 한 곳은 공동 묘지인데 가면 내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느낄 수 있어요. 다른 한 곳은 여기 주민들이 여름에 쉬러 잘 가는 공원이구요."

"공동 묘지 보고 싶어요."


전날, 아저씨의 가이드를 받으며 사라예보 시내를 돌아다닐 때 내전의 참상을 전시해 놓은 곳도 몇 곳 보았어요. 그 비극을 잊지 말고 다시 겪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기 위해 일부러 잘 보이는 곳 곳곳에 내전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전시물이 배치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동 사라예보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충분히 그 비극을 볼 수 있었지만 확실히 느끼고 제 여행에 대한 기억 속에 각인시키고 싶었어요.


아저씨의 도움으로 버스 터미널에 공짜로 짐을 맡기고 택시에 올라탔어요.


"여기는 정치 제도가 매우 재미있어요. 무슬림계랑 크로아티아계랑 세르비아계가 돌아가면서 대통령직을 맡고 있어요. 여기가 겨울 올림픽이 열린 도시라는 것은 알죠? 문화적으로도 매우 크게 발전한 곳이에요. 게다가 미국 대사관도 이제 설치될 거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크게 주목받는 곳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는 이미 크게 주목받고 있는 도시에요."

"그런데 데이턴 협정을 깨려는 움직임은 없나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고3 2학기, 만화책을 빌리러 갔는데 TV에서 만화같은 장면이 계속 나오고 있었어요. 9.11 테러였어요. 덕분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툭하면 문명의 충돌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196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42호,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1993년 오슬로 협정 만큼 데이턴 협정도 많이 들었어요. 시험때만 되면 달달달 외워야했던 레파토리 중 하나였어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데이턴 협정 이후 안정을 찾았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뉴스를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데이턴 협정을 깨트리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했어요. 보스니아 전쟁과 관련된 것을 조금만 보면 데이턴 협정을 안 깨트리는 게 신기하다고 느낄 지경이에요.


"그건 강제로 체결시킨 거잖아요. 감히 협정을 깨려는 엄두를 못 내요."


짧고 명쾌한 설명이었어요.


보스니아 내전 상흔


"헐..."



공동 묘지는 종교, 민족 별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어요.



Bare Sarajevo


"헐..."


추모관도 있었어요.



아래는 추모관 벽에 그려진 벽화에요. 긴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어요. 사라예보에 하얀 눈이 쌓였어요. 내전의 상처가 눈으로 지워질 수 있을까요? 제 또래라면 분명 내전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거에요. 그 기억은 내일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꺼내어 다시 보는 것을 잊은 걸까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조차 불가능했어요.




저 뒤의 산을 뒤덮은 집 만큼 내전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 있어요.

















원래부터 여기는 공동묘지였는데 보스니아 내전 당시 희생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면서 공동묘지가 엄청나게 커진 거라고 하셨어요. 둘러보는 내내 '헐...'이라는 말 외엔 그 어떤 말도 나오지도, 떠오르지도 않았어요.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어요. 아저씨께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드린 후 모스타르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창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어요.


구시가지는 분명 아이들을 위한 동화 속 세계였어요. 그러나 거기에서 한 발만 나오면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전혀 공존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세계가 한 곳에 존재하고 있는 곳이 사라예보였어요. 제 기억 속에도 단 하루의 시간 동안 공존할 수 없는 두 느낌이 꽈배기처럼 얽혀 있었어요. 머리 속 얽힌 두 느낌을 풀기 위해 버스 의자에 몸을 기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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