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13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좀좀이 2011. 12. 3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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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올라타 Rough Guides 유럽편을 펼쳤어요. 루마니아어는 슬라브어와는 전혀 달라요. 다른 발칸 유럽은 전부 슬라브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해서 조금만 보면 책자에 나온 몇 마디 쯤은 금방 외울 수 있었는데 루마니아어는 그렇지 않았어요. 루마니아어는 라틴어족에 속해요. 알파벳도 몇 개는 읽는 법이 햇갈리는데 단어도 전혀 달랐어요. 아무리 외우려 해도 원래 알고 있던 외국어들과는 꽤 많이 달라서 '고맙습니다' 하나 외우고 포기했어요. '고맙습니다'는 루마니아어로 '물츄네스크' Mulţunesc 라고 써요. T에 꼬리가 달려있는 것이 포인트.


루마니아어 공부는 포기하고 동유럽 6개국 가이드를 보았어요. 역시 암울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내용 중 좋은 내용이 하나도 없었어요. 온통 사기,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내용이었어요. 사진조차도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사진 뿐이었어요. 더욱 굴욕인 것은 수도인 부쿠레슈티 항목의 절반 이상이 흑백 (정확히는 적백) 이라는 것이었어요. 페이지를 세어 보니 컬러는 5장 정도였고 적백인 페이지는 10장 정도였어요. 이건 완벽한 굴욕.


"하...정말 가야 하나..."


버스로만 여행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사실 버스로만 여행하는 목적 이전에 더 큰 목표가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절대 숙소에서 잠을 자지 않기. 소피아에서 숙소를 잡았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어요. 그러면 소피아를 하루 더 보고 오후 4시에 베오그라드행 버스를 타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어요. 굳이 가고 싶지도 않은 루마니아를 갈 필요도 없었고, 원하는 대로 버스 이동으로 소피아에서 베오그라드까지 갈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 행위는 '숙박은 최소한으로 한다'는 저의 대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쿠레슈티행 버스에 올라탄 것이었어요.


알바니아에 엔베르 호자가 있다면 루마니아에는 니콜라예 차우셰스쿠가 있어요. 누가 더 쓰레기고 막장이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니콜라예 차우셰스쿠가 압도적으로 막장이고 쓰레기에요. '4개월, 3주, 그리고 이틀'이라는 영화를 보면 얼마나 이 지도자가 쓰레기였는지 얼핏 엿볼 수 있어요. 영화에서 불법 낙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차우셰스쿠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의무적으로 3명의 자녀를 가지게 하고, 낙태를 금지시켰기 때문이에요. 국민들 사이에 일부러 비밀 경찰이 많이 풀려 있다는 헛소문을 퍼트려 국민들이 서로 절대 못 믿게 만들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 인민궁전을 건설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 여기 다 쓰지 못할 정도로 차우셰스쿠의 악랄한 짓은 엄청나게 많아요. 그리고 그 결과는 약식 재판과 총살. 총살 장면은 지금도 유투브에서 볼 수 있어요. 단, 성인 인증을 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가 여행 가이드에서 정말 별 볼 일 없는 도시처럼 다루어지는 이유도 바로 차우셰스쿠 때문. 차우셰스쿠가 평양 따라한다고 오래된 건물을 마구 부수는 바람에 아주 삭막하고 볼 것 없는 도시가 되어버렸어요.


여행을 시작하기 전, 인터넷으로 루마니아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어요. 그러나 나오는 것은 인신매매, 소매치기, 사기꾼, 집시가 득시글거린다는 것 뿐이었어요. 아무리 봐도 정말 가고 싶지 않은 나라였어요.


정신 없이 잠을 자는데 허리가 아팠어요. 버스 안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중간에서 다 내렸는지 버스 안에 승객은 다섯 명 정도만 남아 있었어요.


"에라...모르겠다!"


뒷자리로 가서 좌석 팔걸이를 들고 버스에 누웠어요. 누웠다기 보다는 널부러졌다는 표현이 맞을 거에요. 의자에 누우니 머리가 사정 없이 흔들려서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허리는 안 아팠어요.


그렇게 의자에 널부러져서 잠을 자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저를 깨우더니 버스가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고 했어요. 버스는 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길가에 우리를 내려주었어요.


"아우토가라는 어디지?"


부쿠레슈티의 아우토가라를 찾는 것이 문제였어요.


"아...맞다! 여기 현지화 없지!"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반. 현지화인 레이가 한 푼도 없었어요. 참고로 루마니아 현지화는 레우. 1은 레우이고, 2부터는 레이에요. 레우보다 작은 단위로는 바니가 있어요. 문제는 루마니아 레이가 한 푼도 없다는 것. 무언가 사 먹는 것은 고사하고 전철조차 탈 수 없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걸었어요.



늦었다! 빨리 뛰어!


저 표지판은 지각할까 말까 아슬아슬한 상황의 학생들을 그려놓은 것 같았어요.



다른 지역에서 본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부쿠레슈티의 교회.



루마니아식 무덤. 딱 봐도 다른 지역의 무덤과는 많이 달랐어요.



루마니아식 교회. 이 교회 이름은 라두 보더 (Radu Vodă) 교회에요.



교회의 입구에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이 교회에 기도 드리러 오고 가고 있었어요.


라두 보더 교회를 보고 아우토가르를 찾아 다녔어요. 부쿠레슈티에는 아우토가르가 곳곳에 있다고 했는데 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가이드 두 권에 나와 있는 지도 모두 정말 중요한 아우토가르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어요. 아우토가르를 못 찾아서 지도를 펼치면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었어요.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어요. 사실 버스가 아우토가르에 제대로 내려 주었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어요. 문제는 버스가 이상한 길거리에 우리를 떨구어주는 바람에 생긴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겨우 아우토가르를 찾기는 했어요. 말이 아우토가르이지 버스회사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이었어요. 우리가 찾은 아우토가르는 듬보비차 (Dâmboviţa)강을 따라 서쪽으로 가는 길 근처에 있었어요.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부쿠레슈티에서 유명한 건물들을 여러 개 볼 수 있어요. 하여간 아우토가르를 찾기는 했는데 전부 문을 닫았어요.


결국 우리가 흘러 흘러 간 곳은 가라 데 노르드 (Gara de Nord). 부쿠레슈티 북역까지 흘러왔어요.


"그냥 기차 탈까."


가라 데 노르드 앞에도 아우토가르가 있다고 했어요. 주위를 돌아다녀보니 버스 회사 사무실이 몇 개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전부 베오그라드 가는 버스는 없다고 했어요. 결국 기차 당첨.


"도대체 아침부터 얼마나 걸은 거지?"


부쿠레슈티는 정말 커요. 부쿠레슈티 지도가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책 2페이지를 잡아먹고 있었어요. 우리가 내린 곳은 지하철 2호선 Tineretului 역과 Eroii Revolutiei 역 사이였어요. 진짜 말도 안 되게 많이 걸었어요. 최소 5km 는 걸었어요. 이건 정말 적게 잡은 거였어요.


"이제 관광이나 하죠."


기차역 수하물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역에서 나왔어요. 제대로 돌아다니기도 전에 벌써 슬슬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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