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27 에필로그

좀좀이 2012. 2. 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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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루카 (루아) 공항. 따뜻했어요.

"야, 여긴 덥다!"

"반팔 입어도 되겠다!"

눈발이 휘날리던 동네에서 몰타로 넘어왔더니 진짜 푹푹 찌는 것 같았어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쓰러져 잠들었어요. 몰타로 돌아왔구나...또 힘을 내서 공부해야겠어.


다음날. 분명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무지 덥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보니 추웠어요.

"어이쿠 추워! 밤새 몰타도 영하로 떨어졌나?"

그럴 리가 없죠. 신기한 것은 하룻밤 푹 자고 나니 몸이 다시 몰타 날씨에 적응해 버렸다는 것.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잠시.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귀국하게 되었어요. 진로 문제를 확실히 결정했는데, 그 진로를 위해서는 몰타에서 여유롭게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여행 다녀온지 일주일만에 다시 몰타를 떠나게 되었어요.



그날. 몰타에는 비바람이 몰아쳤어요. 흙빛 몰타여 안녕.


귀국 경로는 꽤 복잡했어요. 먼저 몰타에서 로마로 간 후, 5시간 대기한 뒤에 로마에서 파리행 비행기로 환승. 다음날 오후 5시에 파리에서 도쿄행 비행기로 환승하고 여기서 또 한참 대기하다 인천행 비행기 탑승이었어요.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이 밀려왔어요. 전날 급하게 짐을 싸느라 제대로 사실상 밤을 샜어요. 전날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어요. 담배만 줄창 태웠을 뿐 먹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기내식을 기다렸어요.


"기내식 왜 안 줘!"


기내식은 나오지 않았어요. 땅콩과 음료수만 나오고 끝났어요. 그렇게 도착한 로마 공항.


"밖으로 나갈까?"


짐은 프랑스 파리까지 다 부쳐버렸고 쉥겐 국가에서 쉥겐 국가로 이동한 것이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애매했어요. 그래서 안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어요. 조각피자 하나 먹고 시간을 때우다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을 갔어요.


자정.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어요. 공항에서 밤을 새야 하는데 아시아 노선이 있는 곳에서 밤을 샐 생각이었어요. 한참 돌아다녀서야 겨우 아시아 노선 수속하는 곳에 도착했어요. 샤를 드골 공항은 정말 컸어요. 우리나라 인천공항보다 훨씬 컸어요. 인천도 무지 큰 공항인데 거의 2배는 되는 것 같았어요.


혼자라 잠을 청할 수도 없었어요. 혹시나 짐을 잃어버리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공항 안은 노숙자를 단속하는 경찰이 수시로 돌아다니고, 노숙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검사를 실시했어요. 경찰이 제게는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정말 마음에 들었던 광고.


샤를 드골 공항에 수하물 보관 센터가 있는지 찾아다니고 전철역도 찾아다녔어요.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았어요. 아무리 큰 공항이라지만 돌아다니는데 몇 시간 걸리는 그런 공항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모든 짐을 끌고 다녀야 해서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자판기 없나?"

공항 안을 뒤져보았지만 자판기가 안 보였어요.

"아놔...또 지하철역까지 가야돼?"

아시아 노선 수속하는 청사에서 전철역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어요. 그 거리를 다시 짐을 다 끌고 가야하다니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났어요. 음료수나 하나 마시고 싶었는데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서 음료수를 마시려면 자판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냥 참자."


그러나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짐을 끌고 또 전철역까지 갔어요.

"무슨 공항이 자판기 하나 제대로 없어!"

분명 공항에 수하물 보관 센터도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분명 표지판이 있었어요. 그러나 표지판대로 따라갔는데 수하물 보관 센터 따위는 없었어요.

"수하물 센터는 어디 있는 거야? 그리고 전철은 언제부터 다니는 거야?"

아무리 공항을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어요. 계속 돌아다니자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일단 앉아서 5시까지 쉬기로 했어요. 4시부터는 첫 비행기 때문에 수속 창구가 다시 열려요. 그때라면 사람들도 돌아다니기 시작할테고, 그러면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새벽 4시. 첫 비행기 때문에 수속 창구가 열렸어요. 사람들이 하나 둘 수속 창구로 가기 시작했어요. 한 시간만 더 버티기로 했어요. 솔직히 새벽 5시를 기준으로 잡은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전철 첫차가 5시쯤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여기는 프랑스. 그러나 5시쯤부터는 첫차가 다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직까지는 한가한 공항 청사를 뒤로 하고 전철역으로 갔어요. 전철역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였어요.

"실례합니다."

"예."

"수하물 보관 센터는 어디에 있나요?"

그분께서는 샤를 드골 공항에 있기는 있는데 보관료가 너무 비싸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6시에 있는 전철을 타고 북역 (Gare du Nord)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북역에도 수하물 보관 센터가 있는데 거기가 훨씬 저렴하다고 알려 주셨어요.


6시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고 하기엔 공항이 커서 조금 남았고 조금 남았다고 하기엔 꽤 많이 남아 있었어요. 전철역은 추웠기 때문에 일단 1층 도착 게이트로로 갔어요.


흑인들 우루루


제가 간 곳은 아프리카에서 온 비행기 도착 게이트였어요. 전광판을 보니 별별 아프리카 도시에서 비행기가 들어오고 있었어요. 아침 일찍부터 흑인들이 꽤 많이 있었어요. 아프리카 특유의 의상을 입은 흑인들을 구경하다 전철을 타러 다시 전철역으로 돌아갔어요.


전철을 타고 북역으로 갔어요. 북역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가장 모퉁이에 있는 수하물 보관 센터를 찾아갔어요.


"이거 까다로운데?"

하필 전날 비행기 테러를 계획한 알카에다 조직원이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떴어요. 뭔가 귀찮은 일 생기는 것 아닌가 생각은 했지만 이것은 그것과 상관 없는 것이었어요. 무슨 비행기 탑승하는 것도 아닌데 짐 검사 완전 꼼꼼하게 하고 몸수색도 꼼꼼히 했어요. x-ray 검사는 기본이고 허리띠도 풀러야 했어요. 정말 테러 걱정은 엄청 하는 것 같았어요.


노트북 가방만 빼고 나머지 짐은 전부 큰 캐비넷에 집어넣었어요. 노트북도 집어넣을까 했지만 안 들어갔어요. 그래서 노트북이 든 가방을 옆에 메고 밖으로 나왔어요.



방향은 없었어요. 그냥 무턱대고 걸었어요. 뭔가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어요. 더욱이 북역 근처는 와 본 적이 없었어요. 한 가지 목적지가 있다면 헌책방.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 있는 큰 헌책방에 가서 책 좀 구입하는 것이었어요.



라파예트 갤러리.


예. 라파예트 갤러리에요. 뭐하는 곳인지는 몰라요. 그냥 간판에 '갤러리 라파예트'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라파예트 갤러리.



왠지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못 들어간 성당.



이 간판 왠지 마음에 들었어요. 달밤에 빵 굽는 사람이라...뭔가 있어 보였어요. 하지만 저는 절대 밤에 빵은 안 구워요. 밤에 빵을 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제가 밤에 굽고 싶은 것은 고기. 밤에 구워야하는 것은 무조건 고기.


다시 온 파리. 그러나 그때 왔을 때 정말 아주 일부분만 보고 갔어요. 물론 이번도 마찬가지가 될 거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파리에 와서 느끼는 것은 뭔가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에요. 지금까지 여행을 다닌 곳들과 도시의 건물들이 뿜어내는 느낌이 너무 달랐어요. 뭐랄까...꼬불꼬불한 느낌이 있달까...말로 표현하기 참 힘든 무언가 독특한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었어요. 확실한 것은 비엔나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이것 역시 뭔지 모르는데 그냥 왠지 있어보여서 찍은 건물이에요.



와! 프랭땅 백화점!


그냥 갈 대로 가자는 식으로 걷고 있었어요. 노트르담 성당 방향으로 대충 걷다가 센 강이 나오면 그때부터 방향을 잡고 헌책방에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프랭땅 백화점에 왔어요.


불어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는 종종 프랑스 - 특히 파리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RER 발음하기. 이거 발음이 쉽지가 않아요. '에헤흐'하고 좀 비슷한데 달라요. 하여간 발음하기 고약해요. 그 다음에 기억나는 게 바로 이 프랭땅 백화점. 몇몇 유명 백화점 세일 및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그 중 기억나는 것은 이제 프랭땅 백화점 밖에 없어요. 우리말로 하면 '봄 백화점'.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이 백화점의 특징이 매우 인상적이어서가 아니라 불어 기초 단어 중 하나인 'printemps' 때문이었어요. 익숙한 단어이다보니 백화점 이름도 그냥 기억에 남은 경우에요.


프랑스에 간다면 한 번 쯤 그 앞을 지나가보고 싶었어요. 파리 자체에 대한 환상? 글쎄요...그거라면 이미 지난 7박 35일 여행에서 해결이 되었어요. 이렇게 거리를 걸으며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수업 시간때 들은 것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왜 에쎈쎄페 (SNCF, 프랑스 철도청), 에헤흐 (RER, 국철) 같은 것을 고생해가며 외워야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외운 것들을 실제 보고 이용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것들 중 하나가 바로 프랭땅 백화점.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이런 곳에 도착했어요.





이렇게 생긴 건물이에요. 이 건물이 뭔지는 큰 관심 없었어요. 사실 이런 것보다 모스크가 나와야 진짜 크게 관심이 생겼을 거에요. 이런 건물이 유럽에 있는 건 고정관념으로든 일반상식으로든 뭐든 이상할 게 없어요.



드디어 콩코드 광장에 도착했어요. 여기서 노트르담 성당 가는 길은 아주 쉬워요. 단지 거리가 조금 뿐이에요. 멀리 보이는 에펠탑. 이번에는 에펠탑에 가볼까?



아까 그 건물과 여기는 정말 가까운 거리.


"개선문을 간 다음 에펠탑을 가고, 거기서 콩코드 광장으로 돌아오자!"


'파리'라고 하면 유명한 것이 많아요. 루브르 박물관도 있고, 몽마르트 언덕도 있고 에펠탑도 있고 이것 저것 많이 있어요. 이렇게 파리에서 유명한 것 중 참 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샹젤리제 거리'. 왜 이 거리가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왠지 머리 속에서 '샹젤리제 거리'라고 하면 아름답고 화려하고 우아한 거리였어요. 프랑스 가서 몽마르트는 안 가더라도 샹젤리제 거리는 한 번 꼭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샹젤리제 거리는 콩코드 광장과 개선문 사이에 있는 거리.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개선문까지 갔다 와서 노트르담 성당 보고 헌책방 가도 시간이 충분할 것 같았어요.




샤를 드골 동상도 보였어요.



"이 길 왜 이렇게 안 끝나지?"

분명 콩코드 광장에서 보았을 때 개선문은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개선문이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았어요. 내가 힘들어서 보폭도 줄어들고 속도도 줄어들었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혼자인데다 빨리 개선문에 가겠다고 성큼성큼 매우 빨리 걷고 있었어요. 그리고 은근히 평지를 걷는 것보다 힘들었어요.

"왜 이렇게 힘들지?"

뒤를 돌아보았어요. 분명 힘들 이유가 없었어요. 앞을 보았어요.

"음..."

길은 미묘한 오르막길. 경사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분명 오르막이었어요. 이러니 평지를 걷는 것보다 힘들지...


"힘내자!"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걸어왔어요. 그래서 무조건 앞으로 걸어갔어요.



드디어 샹젤리제 거리를 다 걷고 개선문에 도착했어요. 정말 별 거 없었어요.


"이제 어떻하지?"

개선문 바로 옆이 에펠탑일줄 알았는데 에펠탑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요. 분명 한참 걸어가야 했어요. 뒤를 돌아보았어요.



얼마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정말 먼 길. 지금 지도를 보니 1km가 넘는 길이었네요. 그러면 그렇지...에펠탑은 과감히 포기하고 다시 콩코드 광장을 향해 걸었어요.



"어휴...겨우 다 왔네!"



에펠탑이 매우 가까워 보였어요. 이건 아마 전날 눈이나 비가 내려서 그런 거일 거에요. 개선문이 저 정도였는데 에펠탑이라고 가까울 리 없었어요. 에펠탑까지는 정말 걷기 싫었어요.



아무리 봐도 가까워보이는 개선문. 그러나 절대 가깝지 않아요. 샹젤리제 거리는 절대 다시 안 걸을 거에요. 별로 볼 것도 없는데 길기는 엄청나게 길어요. 왠지 개선문이 '멍청이 하나 오늘도 걸렸네'라고 하며 키득키득 웃는 것 같았어요.


이제부터는 노트르담 성당으로 가는 길.





정말 추웠어요.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계속 저렸어요. 피가 잘 안 통해서 그런지 얼얼했어요.



보기엔 뭔가 운치 있는 듯 하지만 현실은 진창길. 신발에 모래 들러붙고 신발도 문제가 있는지 양말이 축축해졌어요. 모자는 괜찮았는데 신발은 너무 싸다 싶더니 불량품이었나봐요.



"너희들은 이 날씨에 목욕하고 싶냐?"

진짜 비둘기는 답이 없는 거 같아요. 이 날씨에 목욕할 생각을 하다니요. 대체 지방이 얼마나 많이 껴 있으면 한겨울에 목욕하고 있을까요? 온수라면 말도 안해요. 저 물 분명 엄청 찬 물이에요.



루브르 박물관까지 걸어왔어요. 들어갈 수는 있었는데 이건 확실한 시간 낭비. 들어가면 진짜 달리듯 후딱 보고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보는 거라면 지난번에 했어요. 모나리자도 보았고 승리의 니케도 보았어요. 그짓을 두 번 하는 건 돈 낭비에 시간 낭비에요. 하지만 한가하게 루브르를 볼 시간은 없었어요. 피라미드 사진만 찍고 다시 길을 재촉했어요.



다리를 건너 드디어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는 곳까지 왔어요.


"노트르담을 먼저 들어갈까? 아니면 헌책방부터 갔다 올까?"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저는 일단 헌책방에서 책을 후딱 산 다음 노트르담을 보고 북역에 가서 짐을 찾아 샤를 드골 공항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헌책방으로 갔어요.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판단 실수였어요. 헌책방에서 한 시간 넘게 머무는 바람에 시간이 애매해졌고 노트르담 성당 앞에 줄은 무섭게 늘어나 있었어요.


"북역까지 다시 걸어가?"


그러나 다리가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전철을 타고 북역으로 간 후 짐을 찾고 바로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전철을 탔어요. 이번에도 노트르담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노트르담 성당 안에 들어가서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는 것은 또 무기한 미루어졌어요.



전철을 타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길. 정말 피곤했어요.



제 옆에 저처럼 널부러진 짐들. 생각해보니 이틀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공항에서 멍하니 대기하고 있어야 했고, 오전 내내 파리를 걸어다녔어요. 안 피곤한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어요.


공항으로 돌아와 수속을 했어요. 저는 백팩과 검은 가방은 들고 탈 생각이었어요.


"짐 하나만 부치실 건가요?"

"예."


갑자기 꽤 높아보이는 직원이 제게 오더니 짐 하나를 공짜로 부쳐주겠다고 했어요. 그 이유는 비행기에 짐을 하나밖에 못 들고 타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저는 무게 초과를 피하기 위해 노트북 가방과 짐 2개를 들고 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전날 비행기 테러를 준비중인 알카에다 조직원이 체포되었고, 프랑스와 미국 정부는 비행기에 짐은 한 개만 들고 타도록 규정을 바꾸어 버렸대요. 즉 저는 짐을 3개 들고 타는데 그러면 아예 출국 게이트 통과도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이 조치는 매우 갑작스럽게 내려졌기 때문에 항공사에서 특별히 짐을 더 부쳐준다는 것이었어요. 직원은 제 백팩을 부쳐주겠다고 했고, 저는 좋다고 백팩을 부쳤어요. 왜냐하면 백팩에 책을 우겨넣어서 꽤 많이 무거웠거든요.


검은 가방과 노트북 가방을 들고 출국 게이트로 갔어요. 경찰은 저를 제지했어요. 문제는 검은 가방. 이건 들고 탈 수 없다고 했어요. 다시 가서 부치고 오라고 했어요. 저는 씨익 웃었어요. 왜 안 된다는 건데?


당연히 경찰과 싸우지 않았어요. 검은 가방 속에는 옷가지 몇 벌과 양말만 들어 있었어요. 가방 양쪽 끝을 두 팔로 눌러 출국 게이트 앞 가방 크기 재는 통에 집어넣었어요. 경찰은 웃으면서 저를 통과시켜 주었어요.



면세점은 크게 볼 것도, 살 것도 없었어요. 피곤해서 탑승 게이트 앞에 가서 의자에 앉았어요. 잠이 밀려왔어요. 노트북 가방을 꼬옥 끌어안고 두 눈을 감았어요.


두 눈을 떴을 때, 저와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헉! 몇 시지?"

시계를 보았어요. 탑승 시각이 10분 지난 후였어요. 정신없이 탑승 게이트로 뛰었어요. 다행히 아직 탑승 게이트는 닫히지 않았어요.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탄 줄 알았는데 저보다 더 늦게 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제가 가장 늦게 탄 사람 5등 안에는 들었을 거에요.


비행기에서 정신없이 잤어요. 기내식 먹고 자고 기내식 먹고 자고...도쿄 공항에 도착해 내리자마자 항공사 직원들이 제게 환승 손님이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잠깐 나갔다 올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환승 게이트를 통과해 수속을 다시 밟고 탑승 게이트 쪽으로 갔어요.


"담배나 한 대 태워야겠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갑을 꺼냈어요. 담배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담배를 어디 두었더라...으악!"


담배는 모두 제 백팩 속에 들어 있었어요. 망했어요. 그 담배 한 갑을 꺼내기 위해 백팩을 다시 찾을 수도 없었어요. 다행히 수중에는 엔화가 조금 있었어요. 공항 가게에 가서 담배를 사고 과자와 물을 샀어요.


인천행 비행기까지 또 한참 대기해야 했어요. 피곤한데 잠은 자면 안 되고 할 것은 없었어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백팩 속에 있었어요. 인터넷 안 되는 노트북으로는 마땅히 할 게 없었어요.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싶었지만 책은 모두 백팩 속에...그래서 담배만 줄창 태웠어요. 담배를 실컷 태우고 과자와 물을 먹은 후 공항 안을 돌아다니다가 앉아 있다가 졸다가 공항 안을 다시 돌아다니며 잠을 깨다가...정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발악했어요.


"아...목말라."

자판기에서 파는 가격이나 가게에서 파는 가격이나 똑같았어요. 그래서 자판기에서 생수를 뽑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어요.

"응?"

남아 있는 일본 엔화는 전부 동전밖에 없었어요. 동전을 세어 보니 생수 값보다 10엔 부족했어요. 주머니를 깨끗이 털어 보았어요. 10엔이 더 나오지 않았어요. 시간을 거슬러가며 지출을 확인해 보았어요. 잃어버린 엔화는 없었어요.


"으아아! 10엔!"

10엔이 없어서 물을 마실 수 없었어요. 목은 점점 타들어가는데 남은 방법은 비행기 탑승해서 물을 마시는 것 외에는 없었어요.


돈도 없어...물도 없어...할 것도 없어...


처량함의 극치. 멍하니 비행기 시간만을 기다렸어요. 드디어 그렇게 갈망하던 탑승시간이 되었어요.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음료를 주겠지. 살았다!"

그러나 비행기가 뜨지 않았어요. 게이트도 닫혔는데 비행기는 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왜 안 떠!"

왜 안 떴는지 몰라요. 하지만 이때 비행기가 30분 늦게 출발했어요. 그 30분? 제게는 지옥이었어요.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어요. 스튜어디스가 음료수를 주기 시작했어요.


"물 주세요!"


저는 돌아오며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요.


몰타로 갈 때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도쿄에서 로마 가는 비행기에 탔는데 저는 복도쪽에 앉았고, 안쪽에는 게이 둘이 앉았어요. 서로 부비고 키스하고 난리치는 것 까지는 좋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는 순간 갑자기 엄청나게 몸이 안 좋아져서 끙끙 앓으며 잠을 자고 있었거든요. 어느 정도 아팠냐하면 열이 펄펄 끓고 너무 어지러워서 로마 공항 도착했을 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망할 놈들이 계속 들락날락거리며 잠을 잘 수 없게 했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들락날락거릴거면 창가 좌석과 바꾸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될텐데 이 거지같은 놈들이 창밖 보는 걸 미친 듯 좋아해서 둘이 창문에 들러붙어 있었어요. 둘이 창문에 들러붙어 있는 것은 제가 잠에서 깰 때마다 직접 보았어요. 그 자식들이 게이였고 비행기 안에서 서로 진한 스킨쉽을 쉴 새 없이 뜨겁게 해댔다는 사실은 친구로부터 들은 거에요. 아파서 잠을 자려는데 이 망할 자식들이 계속 들락날락거리면서 깨워대고, 다시 잠들려고 하면 스튜어디스가 기내식 먹으라고 깨웠어요. 그래서 도착한 로마에서는 공항 노숙. 몰타 가서 첫 일주일 동안은 진짜 엄청나게 아팠어요. 그 상태에서도 몰타를 미친듯이 돌아다녔어요.


몰타에서 유럽 본토로 여행을 갈 때도 시작은 고생이었어요.


몰타에서 돌아오는 길. 이틀 밤을 샜고, 엄지발가락에는 동상이 걸렸어요. 일본에서는 엔화...불과 10엔 부족해서 2시간 넘게 타는 목마름과 싸워야 했어요. 정말 눈 딱 감고 화장실 세면대 물을 마실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이것은 수미쌍관 여행인가요. 갈 때도 고생, 올 때도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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