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14 불가리아 벨리코 터르노보

좀좀이 2012. 2. 3.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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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만나 오토가르로 갔어요. 여행 책자에는 분명히 이스탄불 오토가르에서 벨리코 터르노보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어요.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거칠게 잡는 호객꾼의 손길. '벨리코 터르노보'로 간다고 하면 무조건 버스가 없다며 '소피아'행 버스로 끌고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여기에 굴복할 제가 아니었어요. 분명히 제가 보고 있던 여행 책자에 벨리코 터르노보행 버스가 있다고 나와 있었거든요. 호객꾼들을 뒤로 하고 버스 회사 사무실을 하나하나 들어가보기 시작했어요.


"벨리코 터르노보 가요?"

"안 가요."

전부 벨리코 터르노보 가는 버스는 없다고 했어요.

"책이 잘못 나온 건가?"

버스 사무실을 한참 돌아다녔지만 벨리코 터르노보로 간다는 버스는 없었어요. 책이 잘못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분명히 책에도 있다고 했고,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도 있다고 했어요. 이것은 분명 제가 못 찾는 것.


버스 회사 사무실을 계속 돌아다니는데 한 버스 회사 사무실 직원이 우리가 '벨리코 터르노보'로 간다고 하자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잠깐 기다려보라고 했어요. 5분 뒤, 어떤 터키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오토가르 구석에 있는 작은 사무실. 벨리코 터르노보 직행 버스가 있다고 했어요. 최종 종착지는 바르나. 바르나 가는 길에 벨리코 터르노보를 들린다고 했어요.

"내 이럴 줄 알았어."

오토가르에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호객꾼들. 책의 정보가 맞았어요. 이스탄불 오토가르에서 벨리코 터르노보로 가는 버스는 있었어요. 비록 시간이 많지 않고 사무실이 오토가르 구석에 있어서 찾기 어려울 뿐이었지,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이스탄불에서 벨리코 터르노보로 가는 버스는 149번 사무실로 가야 해요.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 루세로 가는 버스인데 도중에 벨리코 터르노보를 경유하는 버스였어요.


친구와 버스표를 구입한 후, 간단히 저녁을 먹고 시간이 되자 버스에 올라탔어요.



터키-불가리아 국경.


터키 국경을 넘어가는 것은 별 거 없었어요. 터키 국경을 넘자 터키 면세점이 등장했어요. 사람들은 우루루 면세점으로 달려갔어요. 저와 친구도 면세점으로 달려갔어요. 저는 담배가 다 떨어졌기 때문에 담배를 구입했어요.

"노노노."

"와이?"

담배를 계산하려는데 계산대 점원이 제 여권을 확인하더니 저는 담배를 구입할 수 없다고 했어요. 제 여권을 가리키며 무슨 문제가 있다고 했어요.

"무슨 문제요?"

"도장 없어요."

"무슨 도장이요?"

"터키 도장이요."

"터키 도장 여기 찍혀있잖아요!"

"이건 안 되요."


점원이 문제삼은 것은 제 여권에 터키 국경을 넘은 도장이 없다는 것. 그러나 제 여권에는 터키 입국 도장과 출국 도장이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무조건 저는 면세점에서 물건을 살 수 없다고 했어요. 서로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아 시간만 계속 흘러갔어요. 답답한 직원은 제 뒤에 있던 터키인을 불렀어요. 그 터키인이 제게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해 주었어요. 터키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터키 입출국 기록이 1회 이상 있어야 한대요. 그런데 저는 터키 입출국이 1회이기 때문에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즉, 터키 입출국 도장이 총 3개 이상 찍혀 있어야 하는데 저는 달랑 2개 찍혀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문제 해결은 생각보다 간단히 이루어졌어요. 제게 문제를 설명해준 터키인 이름으로 담배를 구입한 것. 단, 담배를 돌려받는 것은 불가리아 입국이 끝난 뒤에 가능하다고 했어요. 짐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때 제가 면세점에서 구입한 담배를 가지고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어요.


담배를 사고 입이 심심해서 비스켓을 사고 1유로를 냈어요. 다행히 비스켓은 여권 확인하지 않고 그냥 팔았어요.

"이거 터키 기념품이에요."

직원이 25키리시짜리 동전을 터키 기념품이라고 하며 거슬러 주었어요.


"이건 면세점에서 물건을 팔겠다는 거야, 안 팔겠다는 거야."

툴툴거리며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는 불가리아 국경으로 갔어요.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모두 우루루 내렸어요.


불가리아 입국심사대 앞.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여권을 직원에게 건네 주었어요. 직원은 여권과 저를 계속 번갈아 쳐다보더니 잠깐 뒤로 나가 있으라고 했어요. 친구는 바로 입국심사가 끝났어요. 다른 터키인들도 입국심사가 다 끝났어요. 그 모습을 계속 쳐다보기만 했어요. 저와 같은 버스에 탔던 모든 사람의 입국심사가 끝났는데도 제 입국심사는 진행되지 않았어요.


"따라와."

저와 같은 버스에 탔던 사람들 입국 심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국경 직원이 저를 불렀어요.

"어디로 가?"

"벨리코 터르노보요."

"얼마나 머무를 거야?"

"오늘 벨리코 터르노보 가서 하룻밤 자고 내일 베오그라드로 가요."

"왜 가는데?"

"관광이요."

직원은 제게 사무실로 따라오라고 했어요.


"망할 불가리아 국경!"

속으로 외쳤어요. 불가리아 국경을 곱게 넘은 적이 거의 없어요. 예전 여행할 때에도 불가리아 국경에서 문제가 생겼었어요. 그때는 제 여권이 다른 한국인 여권과 다른 여권이라서 문제였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직감적으로 이 사람들이 저를 한국 여권을 훔쳐서 불가리아로 밀입국하려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눈치챘어요. 국경 입국 심사대에서 졸린 눈을 하지 않고 눈을 크게 뜬 것이 문제. 제 여권 사진은 눈이 반쯤 감겨 있어요. 얼굴도 여권 사진과는 조금 달라졌어요. 여권은 2006년에 만들었고, 이때는 2009년 겨울. 눈을 크게 뜨자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어요.


사무실에서 다시 혼자 입국심사를 받았어요.

"너 뭐하는 인간이냐?"

"학생이요."

"무슨 학생?"

"몰타에서 어학연수중이에요."

"너 신분 증명서 다른 거 있어?"

"여기요."

여권 말고 다른 신분 증명서를 제시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국제 학생증과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했어요. 국제 학생증과 주민등록증을 제시하자 A4 용지에 불가리아어로 뭐라고 적더니 서명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일단 서명을 했어요. 아직까지도 무엇이 문제가 되었고,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이 뭔지는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가리아 입국심사는 발칸 반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것. 이것을 재확인했어요.


버스에 다시 올라탔어요. 또 잤어요.


깊게 잠이 들려는 순간 휴게소에 도착했어요.

"야, 휴게소다."

"나 잘래."

친구는 휴게소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잠을 계속 자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 혼자 내려서 휴게소로 갔어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버스에 타려는데 커피 가격이 얼마인지 궁금해서 옆 사람에게 물어보았어요. 옆 사람은 0.5유로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1유로라고 했어요.


영어 사용료가 0.5유로냐!


1유로짜리 동전을 건네주며 '네, 뻬트데세트!'라고 했어요. 그러자 주인이 깜짝 놀라며 제게 불가리아어를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조금 안다고 했어요. 주인은 1레바를 거슬러 주었어요. 참고로 유로와 레바는 얼추 1:2에요. 주인이 거스름돈을 몇 스토틴키 더 준 셈이었어요.


"헤이, 헤이!"

"응?"

"벨리코 터르노보!"

어두컴컴한 밤. 말이 좋아 새벽 4시지 밤 4시에 벨리코 터르노보에 도착했어요. 밖을 보니 비가 좍좍 내리고 있었어요.

"어쩌지?"

선택지는 없었어요. 비 내리고 깜깜한 새벽 4시에 방을 잡으러 돌아다니는 것은 그냥 대놓고 미친 짓. 호텔에서 잘 것이 아니라면 절대 추천하지 않는 방법. 벨리코 터르노보 버스 터미널에서 벨리코 터르노보 시내까지는 도로 포장도 좋지 않고 생각보다는 멀어요.

"동 틀 때까지 여기서 버티자."

그래서 노숙 시작. 마땅히 앉을 곳도 없었기 때문에 종이를 주워와서 바닥에 깔고 이불을 뒤집어 썼어요. 그리고 마무리는 모자.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이 안 보이게 했어요. 그렇게 친구와 나란히 앉았어요.


뭐뭐뭐뭐뭐뭐ㅏㅇㅁ니;ㅓㄹ;ㅁㄴㅇ 킥킥킥

ㅁ아럼;야ㅐ럼;야ㅓㅁㅁㅁ;아ㅓㅎ스키밍ㄴ 킥킥킥


겨우 잠들었는데 누군가 우리를 보며 떠드는 것 같아서 실눈을 떴어요. 중학생~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애들이 우리를 보며 킥킥 웃고 있었어요. 이야기나 하면서 놀까 하다가 어차피 불가리아어를 몰라 의사소통도 안 되겠지 생각하고 다시 잤어요.


아침 7시. 터미널 창밖을 보니 빗줄기가 가늘어졌어요. 친구를 깨웠어요. 친구가 일어났어요.

"커피 한 잔 마실래?"

"아니."

주머니를 뒤져서 불가리아 동전을 꺼냈어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밖으로 나왔어요. 추웠어요. 비는 곧 그칠 것 같았어요. 커피를 다 마시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어요. 잠시 후, 버스 터미널의 사무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우리 어떻게 할까? 비는 계속 내리는데."

"그냥 여기 떠나자."

원래 계획은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1박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날씨가 정말 엉망이었어요. 비가 그치기는 했지만 하늘을 보니 곧 다시 비가 내릴 것 같았어요. 눈이라면 그래도 참고 돌아다니겠는데 비가 내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어요.


소피아행 버스표를 구입하고 사무실에 가방을 맡긴 후 밖으로 나왔어요. 여기도 한 번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길을 헤맬 이유가 없었어요.





계속되는 오르막길이라 친구와 잠시 숨을 돌리는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어요.



벨리코 터르노보 성에 가려고 했지만 길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골목길이나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불가리아는 관광국가. 확실히 이제야 관광을 키워볼까 하는 알바니아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더욱이 벨리코 터르노보는 한때 불가리아의 수도였어요. 여기는 불가리아어 교재에도 나오는 도시.




상점에 진열된 인형들. 그러나 상점은 문을 아직 열지 않았어요. 그냥 창밖에서 구경만 했어요.





날이 좋았다면 너무 아름답다며 감탄하면서 돌아다녔겠지만 비가 좍좍 퍼부었어요.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이에요. 검은 색 나무에 은빛으로 장식한 트리. 너무 세련되어 보여서 하나 사고 싶었어요. 가격은 둘째치고 들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차마 구입하지 못했어요. 물론 구입하려고 했다 해도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아서 구입하지 못했겠지만요.



함박눈이 내리는 듯 하더니 다시 비가 좍좍 내리기 시작했어요. 벨리코 터르노보 일정은 완벽히 망쳤어요. 새벽에 버스 터미널에서 노숙하고 빗 속에서 길을 걸은 것 외에 크게 남는 것이 없었어요. 정말 아무 미련 없이 소피아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닥칠 일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였어요. 입국 심사에서 무슨 알 수 없는 서류에 서명하고 겨우 입국한 것도, 버스가 너무 일찍 도착해 버스 터미널에서 노숙한 것도, 빗 속을 헤치며 걸어다닌 것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어요. 이건 그냥 맛보기 수준, 새발의 피. 이런 것 가지고 여행을 망쳤다고 한 우리는 아직 경험 부족.


이때만 해도 우리는 벨리코 터르노보 여행을 이번 여행 최악의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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