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12 터키 이스탄불

좀좀이 2012. 2. 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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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열심히 자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기 시작했어요.

"국경검사구나..."

잠이 덜 깨서 비틀거리며 버스 밖으로 나왔어요. 불가리아 국경을 넘고 터키 국경을 넘었어요. 확실히 귀찮은 터키 국경심사. 다른 나라 국경심사는 몸만 내리면 되는데 터키 국경심사는 짐도 다 내려요. 입국심사 받은 후 버스에 있는 모든 짐을 다 꺼내서 다시 한 번 세관 검사를 받아요. 밀무역이 극성이라 이렇게 까다롭게 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추운 겨울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는 극악으로 귀찮은 일. 모든 심사가 끝나자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잠을 청했어요.


오늘은 성탄절. 그러나 여기는 터키. 터키는 이슬람 국가. 성탄절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버스가 이스탄불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환전소 찾기. 버스 터미널에는 당연히 호객꾼 투성이였어요. 우리는 그 호객꾼들 앞에서 아주 당당했어요. '잡을 테면 잡아라'였어요. 왜냐하면 터키 화폐가 단 한 푼도 없었거든요. 짐꾼만 조심하면 되었어요. 아무리 케밥 먹고 가라, 이 물건 좀 봐라, 어디 가는 버스 찾냐 외치며 우리의 팔목을 잡아도 뿌리칠 필요조차 없었어요. 터키 리라가 한 푼도 없었으니까요.


환전소를 찾으며 벨리코 터르노보로 가는 버스도 같이 찾아보았어요. 132번 사무실에서는 이스탄불에서  벨리코 터르노보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어요. 벨리코 터르노보 가는 버스는 금방 찾았지만 환전소는 금방 찾을 수 없었어요.


너무나 떳떳하고 당당하게 다니자 한 터키 호객꾼이 환전소를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문을 연 환전소는 한 군데도 없었어요.

"하...골때리네."

최소한 술탄 아흐멧 지구까지 갈 돈이 있어야 했는데 아무리 버스 터미널 근처와 내부 전부 돌아다녀도 환전소를 찾을 수 없었어요.

"조금 걸어나가면 있지 않을까?"

결론은?


천만에!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한참 걸었지만 환전소는 없었어요. 호텔이 보여서 호텔에 들어가 환전이 되냐고 물어보았지만 안 된다고 했어요. 호텔 직원이 유로와 리라를 1:1로 바꾸어줄 수는 있다고 했어요.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유로와 리라는 얼추 1:2쯤 되요. 이건 후려치는 수준이 아니라 사기치는 수준이에요.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 환전 되냐고 물어보자!"

버스 터미널에서 술탄 아흐멧 지구까지 걸어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생각이 아니었어요. 이건 분명 미친 짓. 술탄 아흐멧까지 걸어갈 바에는 차라리 택시 기사에게 사정해서 술탄 아흐멧까지 간 후, 환전소에서 환전해 돈을 주는 것이 훨씬 현명한 행동이었어요. 환전소가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어요.


동네 구멍가게가 보였어요. 주인 아저씨께 환전 되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물론 터키어를 몰랐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 했어요.

"10유로를 20리라로...오케이?"

"오케이."

주인 아저씨께서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시며 10유로를 20리라로 환전해 주셨어요. 드디어 숨통이 트였어요.


돈을 환전하고 거리로 나왔어요. 전날 비가 내렸는지 이스탄불 거리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어요. 주머니에서 껌을 하나 꺼내 입에 집어 넣었어요.

오물오물 쩝쩝쩝

껌이 물렁물렁하게 되자 신발을 벗어 아래 깔창에 붙였어요.

"이거 왜 이리 안 붙어?"

평소에는 신발 깔창에 신나게 잘 붙던 껌이 붙으라는 신발 깔창에는 붙지 않고 손에만 계속 붙었어요.

"아...돌겠네."

신발 깔창에 껌만 붙이면 대충 물이 새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문제는 신발에 껌이 붙는 게 아니라 제 손에만 껌이 붙는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결국 포기. 손에 침을 뱉어서 손에 붙은 껌을 다 떼어내고 트램을 탔어요.


술탄 아흐멧 지구에 숙소를 잡았어요.

"여기서는 우리 따로 다니자."

이스탄불 관광에 가슴이 부푼 친구. 그러나 저는 이스탄불을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이스탄불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아야 소피아의 회칠 때문. 교과서에도 나오는 성 소피아 사원은 '아야 소피아 뮈제시'에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성 소피아 사원을 모스크로 개조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모자이크 위에 회칠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 터키 정부는 이 회칠을 벗겨내고 있어요. 저는 이 회칠을 벗겨내는 행위 때문에 이스탄불을 매우 싫어해요. 이 회칠은 그냥 회칠이 아니에요. 이것은 오스만 제국 승리의 상징. 그런데 그것을 벗겨내고 있다는 것은 오스만 제국 승리의 상징을 없애고 있다는 거에요.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벗겨내는 것도 아니고 관광상품으로 비잔틴 제국의 모자이크를 팔아먹기 위해서 벗겨내고 있는 것인데 제 눈에 그것은 매우 굴욕적인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스탄불 관광 자체가 싫었어요.


친구가 먼저 씻고 나가자 저는 씻고 바로 잠을 청했어요. 그동안 쌓인 피로가 많아서 금방 잠들었어요. 친구가 몸이 약해서 제가 잠을 잘 자지 못했거든요. 가이드 역할도 하고 밤에 필요할 때에는 불침번도 섰기 때문에 너무 피곤했어요.


"밥 먹자!"

"응?"
자고 있는 저를 친구가 깨웠어요.

"너 여태 잤어?"

"응. 피곤해서 잤어."

"고등어 케밥 먹으러 가자."

이스탄불에서 가장 맛있는 거라면 바로 고등어 케밥. 갈라타 다리 아래에서 팔아요. 친구가 정말 맛있다며 제게 고등어 케밥을 사주겠다고 했어요. 공짜라는데 당연히 따라나갔어요.



갈라타 다리의 야경. 고등어 케밥을 하나 먹었어요.

"이거 맛있는데? 근데 뭔가 아쉽다."

"까짓거 하나 더 사주지 뭐. 얼마나 한다구."

그래서 2개 먹었어요. 역시 고등어 케밥은 예술이었어요. 이건 한국에서 팔아도 정말 잘 팔릴 것 같았어요.


"밥 잘 먹었다. 내가 디저트 살께."

친구에게 얻어먹었으니 제가 디저트를 사기로 했어요. 날이 어둡고 비도 좍좍 내려서 일단 비를 피하기 위해 지하 상가로 들어갔어요.


신발을 판다!


신발을 싸게 파는 곳을 발견했어요. 신발 한 켤레 30TL. 신발 사이즈가 우리와 아예 달라서 몇 번 신어보고 신발을 구입했어요.

"이것 좀 버려주세요."

바닥에 구멍난 신발을 버려달라고 하자 가게 주인은 알았다고 하더니 상점 구석으로 휙 던져 버렸어요. 참 편한 쓰레기 버리는 방법이었어요. 우리나라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정해진 곳에 버려야 하는데 여기는 그냥 구석에 휙 던지면 끝. 새 신을 신으니 확실히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았어요.


후식은 로쿰. 그런데 가격이 무지 비쌌어요. 그리고 달기는 엄청나게 달았어요. 후식을 먹고 나오니 비가 그쳤어요.




밤에 본 블루 모스크. 이것은 첨탑이 6개. 왕이 황금으로 지으랬더니 국가가 파산날 것을 걱정해서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6'으로 잘못 알아들은 척 하고 첨탑을 6개 올렸어요. 덕분에 사상 초유의 첨탑 6개짜리 모스크가 되었어요. 참고로 터키어로 금은 '알튼', 6은 '알트'. 첨탑 6개짜리 모스크는 이거 빼면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숙소에 돌아와 다음 일정을 알아 보았어요.





불가리아까지는 일정이 확정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불가리아에서 세르비아로의 경로였어요. 이 여행에서 저의 목적은 알바니아의 지로카스트라, 불가리아의 벨리코 터르노보를 보는 것이었어요. 이 도시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 같은 도시에요. 역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고 전통적인 모습을 많이 간직한 도시. 루마니아에도 이런 도시가 하나 있어요. 바로 '브라소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까지 바로 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자정 근처에 있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행 버스를 타야 했어요. 하지만 부쿠레슈티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볼 것 없고 음침한 도시. 부쿠레슈티로 가게 된다면 친구를 인민궁전 앞에 데려간 후...할 게 없었어요. 그럴 바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인민궁전이나 한 번 휙 보여주고 바로 가라 데 노르드로 가서 브라소프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았어요. 인터넷으로 기차 시간을 알아보았어요. 어떻게 해도 시간이 맞지 않았어요. 브라소프에 가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브라소프에서 베오그라드로 가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든 어쨌든 부쿠레슈티로 나와야 하는데 바로 이어지는 기차가 없었어요.


"불가리아에서 베오그라드로 바로 이어지지 않으면 여행 일정 어쩌지..."

이 겨울에 친구와 할 일 없이 부쿠레슈티를 다시 돌아다녀야 하나? 하지만 부쿠레슈티는 정말 돌아다니기 싫은 동네. 더욱이 버스가 새벽에 부쿠레슈티에 도착하기 때문에 환전소가 열 때까지는 그냥 빈털털이. 브라소프만 잘 연결되면 브라소프도 보고 나오고 싶은데 브라소프로의 연결이 정말 어려웠어요. 아니, 연결이 아예 안 되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옥상에 올라갔어요.



멀리 보이는 아야 소피아.



그리고 블루 모스크.


담배 한 대 태우고 방에 들어가서 바로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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